default_top_notch
default_news_top
default_setNet1_2
default_news_ad1
default_nd_ad1

삶은 견디고 채우고 때우는 것인가

기사승인 2019.05.30  11:30:03

공유

- [수도자가 바라본 세상과 교회]

“야…. 근데 듣다 보니 좀 이상하다. 넌 거기 왜 갔는데?”

“네?”

“가고 싶어서 갔을 거 아니야. 누가 등 떠민 게 아니고.”

“그죠.”

“근데 가서 뭐 하는 건데? 하고 싶은 거 안 하고?”

“아, 몰라요.… 음.… 활동시간 채우는 거? 그것 때문에 하는 것 같은데?”

“그거 왜 채우는데?”

“뭐…. 생기부(생활 기록부)에 쓸 수 있으니깐? 나중에 입시에.”

(옆에서 듣던 친구가) “오, 현실적인데?”

 

고등학생들과 수업 중 한 친구가 최근 자신이 미술 동아리에서 하고 있는 조별 과제 이야기를 해 주었습니다. 이야기하는 본인도, 듣는 친구들도 저도 듣다 보니 미궁에 빠지는 것 같았습니다. 공동 작업을 하기로 해서 몇 주째 의논만 하고 있다는데 각자 특별히 생각하거나 원하는 것 없이 던지는 말들로 ‘시간을 채우고’ 있다 보니 현재 나온 작업 제안은 정작 아무도 하고 싶어 하는 것도 아니고 현실적인 제작도 불가능한 상태였습니다. 이 이야기를 꺼낸 친구는 대화를 주고받다가 생각이 정리됐는지, 이번 동아리 모임에서는 ‘정신 바짝 차리고’ 이야기해 봐야겠다 했습니다. 그러나 이야기를 잘해서 이 작업을 좀 시작해 보는 문제만이 아니었습니다. ‘미술 활동’이라는 이름으로 어쩌면 가장 자발적이고 창의적으로 생각하고 실험해 볼 수 있는 자리에서마저 여지없이 드러나는 ‘시간 때우기’의 문제였습니다.

그 동아리에 있는 친구들만이 아니라 이 대화를 함께 하던 자리의 친구들 모두 마찬가지였습니다. 의문은 일어나지 않았고, 오히려 이렇게 시간 때우는 것이 ‘생기부’ 상에는 그럴듯한 한 줄로 들어가면 목적이 달성되는 것, 그것이 ‘현실’이었습니다. ‘입시를 위한 시간 채우기’. 꽃같이 피어날 아이들의 삶의 순간순간은 ‘채우기’와 ‘때우기’로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견디는 것’으로 살도록 이 삶의 구조와 방식을 촘촘히 만들어 온 우리 자신들은 여기에 얼마만큼 질문이 가능할까요. 질문할 만큼 낯설게 볼 수라도 있는 걸까요.

 

“너네 기말고사 언제 끝나니.”

“아, 7월 *일. 시작하는 날은 모르겠는데 끝나는 날은 정확히 알아요.”

“오, 그러게. 끝나고 놀 계획 있어?”

“아뇨, 봉사시간 (채우는 거) 때문에요. 그날 시험 끝나면 하기로 했어요.”

 

기말고사가 끝나는 날짜를 기억하는 이유가, 그래도 그때까지 참다가 놀 기대 때문일 거라 생각한 건 또 저만의 착각이었습니다. 학부생들과 수업 중 ‘봉사 점수’의 문제에 대해 토론한 적이 있었습니다. 우선, ‘봉사 점수’를 토론해 볼 계제로 삼기 위해서는 선행 과정이 필요했습니다. 초등학교 때부터 ‘봉사’는 ‘점수’로 환산되는 것이었다 보니, ‘봉사’와 ‘점수’를 따로 떨어뜨려 보기 위한 질문부터 시작해야 했습니다. 이미 대학에서도 ‘봉사 점수’ 제공 제도의 특화를 졸업 뒤 취업을 위해 마련된 특장점으로 제시하고 있는 상태에서, ‘봉사’의 의미가 무엇인지, 그것이 무조건 점수로 환원되어 온 이유가 무엇인지, 그것을 과연 점수로 환원할 수 있는 것인지를 자문하도록 하는 것 자체가 자신이 성실히 살고 있는 당연한 현실에 질문을 갖고 문제를 제기하도록 이끄는 어렵고 위험한 과정이었습니다. 어찌 보면 그 구조를 만들고 유지하는 데에 기여한 한 사람으로서 먼저 그 체계를 문제시하고 더 싸우고 노력하며 바꾸지 못하고, 교육을 통해 이 체계에 잘 순응해 살도록 여기까지 착실히 온 아이들에게 자문해 보도록 이끄는 것 자체가 순서상 무책임하다는 자책도 들었습니다.

(그림1) ‘런던 순례기’ 중 ‘뉴게이트 운동장’, 귀스타브 도레, 1872. (이미지 출처 = 런던 테이트 현대미술관 홈페이지)

19세기 프랑스의 미술가 귀스타브 도레는 영국에서 개인전을 성황리에 여는 동안 특별한 계약 제안을 받습니다. 조건은 5년간 일 년에 3개월씩 런던에 머물면서 도시의 모습을 담아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당대 이미 유명한 삽화가였던 도레는 이를 승낙하여 긴 프로젝트를 시작했고 그 삽화들은 지금도 영국의 당시상을 기록한 중요한 자료로 남아 공저자의 글과 함께 꾸준히 출간되고 있습니다. 그림1은 그중 한 장면입니다. 도레가 선택하고 표현한 장면들은 어찌 보면 런던 사람이 아닌 타인의 눈으로 보았기에 가능했던 것들인데, 그는 하나를 그리는 동안 사진 찍듯이 장면만을 담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오래 머물며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도시 뒷골목 지붕 없이 자는 가족들, 부당한 상거래가 오가는 시장의 상인들, 편파적 재판이 이루어지는 법정의 사람들 등, 그 사회에서 이미 지극히 당연하게 여겨진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겼고, 그중 한 작품이 이 ‘뉴게이트 감옥 운동장’의 수감자들이 운동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당시 런던 현지의 미술 평론가들은 그의 이러한 작업들에 격분했고, “도레는 현실을 그대로 그린 것(copying)이 아니라 만들어 냈다(inventing).”며 고소하기도 했습니다.

(그림2) ‘수감자들의 체조’, 빈센트 반 고흐, 1890. (이미지 출처 = 모스크바 푸시킨박물관 홈페이지)

고흐는 그의 생애 말년 생-레미의 정신병원에 입원한 동안 많은 대가들의 작품을 모작했습니다. 자연 속으로 나가 그림을 그릴 수 없던 조건에서 그는 존경하는 작가들의 작품들을 자기 방식으로 다시 그려 내며 삶의 의미를 이어 갔습니다. 밀레의 ‘씨 뿌리는 사람’ 등 인간 삶의 고되지만 소박하고 아름다운 모습, 자연에 대한 경외를 가득 담은 풍경 등을 그려 낸 당시 작품들 가운데 그림2가 있었습니다. 폐쇄 병동에 갇혀 있던 고흐가 자신의 현실과 직접적으로 동일성을 느낀 작품이라 모작했을 것이란 추측을 쉽게 해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원작에는 딱히 눈에 띄지 않았던 그림 한가운데 남성의 얼굴 생김새가 매우 뚜렷하고 크게 묘사되었는데 누가 보아도 고흐 자신과 흡사하다는 사실도 이 추측을 뒷받침합니다.

그런데 고흐의 삶 전반을 보면 그렇게 간단히 자기 처지의 동일시로만 볼 수는 없습니다. 잠깐 가진 직장에서도, 스승에게도, 선교지에서 만난 가난한 이웃들에게도, 친구들에게도, 사랑하는 여인에게도, 평생 관계 맺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거부당하고 버림받으면서도 사람에 대한 기대와 연민을 버리지 않았던 고흐의 태도가 이 병원 안이라고 달랐을 리 없습니다. 고흐의 저 응시하는 눈은 오히려 이 원 안에 ‘함께’ 있는 이들을 다시 보게 합니다. 항상 갑갑해 보이던 이 그림 속 그 시선에서 문득 희망이 엿보이는 것 같았습니다.

‘의미’를 ‘사는’ 것이 아니라 ‘때우고 채우며’ 살아 의미가 무엇인지조차 생각할 수 없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 아이들과, 그것이 괴롭다면서도 여전히 그 삶을 공고히 해 가는 데 일조하고 있는 제 자신. 고흐의 눈을 쳐다보다가, 그제서야 예수님이 어디에 계셨을까를 찾게 되었습니다. 내 마음이 이만큼 아프다면 우리 주님은, 하며 정신을 차리고 보니, 이 안에 함께 계시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감옥에 갇힌 이들”을 포함해 “이 작은 사람 하나에게 해 준 것이 나에게 해준 것”이라고 자신을 이 한가운데 위치시키셨을 뿐 아니라,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을 것이다.”라고 하신 그분이 여기에 계시는구나. 깊은 눈의 관찰자로 그린 도레의 그림에서, 그 원 안의 한 사람으로서 그린 고흐의 그림에서, 다시 그 한가운데를 함께 걷고 계실 구세주 예수님의 말씀에서, 다시 기도하면서 마음을 차려 봅니다.

문제의식을 가져도, 마음이 아프고 자괴감이 들어도, 문제를 파악하려 해결해 보려 애를 써도, 비슷한 수준과 비슷한 방식의 사고를 하며 같은 사회를 구성하고 비슷하게 살아온 저 역시 현상만을 나열하는 데 그칠 뿐입니다.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는 것은, 예수님이 여기에 함께 계시려 오셨던 그 사랑의 신비를 다시, 믿기 때문입니다. “누구든지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라야 한다. 내가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사람도 함께 있을 것이다.”라고 하신 분이 정작 먼저 우리와 함께 살려 오셨다는 사실이 다시 이 자리에서 하느님을 찾고 ‘주님 제가 무엇을 해야 할까요’를 기도하며 고개를 들게 합니다. 그래도 아이들에게 사과는 해야겠습니다. 언제쯤 이 사과를 그쳐도 되는 날이 올지 모르겠지만, 그때까지는 계속 해야 합니다. 얘들아, 삶은 때우고 채우고 견디는 것이 아니란 사실을 내 자신도 증명해 주질 못해서 정말 미안하다. 견디는 것이 아니라 살아 볼 만한 세상을 만들어 주지 못해서, 그런 세상을 만들 힘을 키워 주지 못해서 정말 미안하다.  

하영유(소화데레사)
성심수녀회 수녀
가톨릭대학교 출강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하영유 editor@catholicnews.co.kr

<가톨릭뉴스 지금여기>의 기사는 영리 목적이 아니라면 누구나 출처를 밝히고 무료로 가져다 쓸 수 있습니다.
default_news_ad5
default_side_ad1
default_nd_ad2

만평·포토에세이

1 2 3
set_P1
default_side_ad2

인기기사

default_side_ad3

섹션별 인기기사 및 최근기사

default_setNet2
default_news_bottom
default_nd_ad4
default_bottom
#top
default_bottom_not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