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상우 신부] 6월 2일(주님 승천 대축일) 사도 1,1-11; 에페 1,17-23; 루카 24,46-53

이번 주일 1독서는 사도행전의 첫 부분을 들려줍니다. 사실 1독서에 등장하는 사도행전 1장은 사도행전의 시작으로도 볼 수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루카 복음의 끝과 이어지는 내용으로 볼 수 있습니다. 루카 복음서와 사도행전은 같은 사람이 썼다고 전통적으로 전해집니다. 그래서 초기교회의 많은 흔적은 루카 복음과 사도행전을 한 권의 책으로 생각했습니다. (당시에는 지금처럼 성경의 순서 즉 목차가 정해 있지 않았습니다) 지금 루카 복음과 사도행전의 사이에 요한 복음이 배치되어 있는 것을 감안했을 때 우리는 루카 복음을 루카(라고 불리워지는 이)의 첫 번째 책, 사도행전을 그의 두 번째 책으로 이해하는 데는 크게 무리가 없어 보입니다. 

루카의 첫 번째 책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존귀하신 테오필로스 님, 이 모든 일을 처음부터 자세히 살펴본 저도 귀하께 순서대로 적어 드리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하였습니다.(루카 1,3) 그리고 이 사실을 자신의 두 번째 책에서 다시 한번 상기시킵니다. 1독서는 이렇게 시작합니다. 테오필로스 님, 첫 번째 책에서 저는 예수님의 행적과 가르침을 처음부터 다 다루었습니다.(사도 1,1) 이 첫 번째 책이 바로 루카 복음서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루카 복음을 쓴 목적을 이어서 말합니다. 즉, 예수님께서 당신이 뽑으신 사도들에게 성령을 통하여 분부를 내리시고 나서 승천하신 날까지의 일을 다 다루었습니다.(사도 1,2) 루카 복음서가 예수님의 승천까지를 다루었다면 사도행전은 다시 한번 예수님의 승천을 언급하면서, 그 뒤에 사도들을 중심으로 신앙 공동체가 생기고 사도들의 행적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 1독서에서 복음서보다는 조금 상세하게 예수님의 승천 이야기를 전해들을 수 있습니다.

이렇게 루카 복음과 사도행전에는 테오필로스라는 사람이 등장합니다. 그리고 1차적으로 루카는 자신의 복음서와 사도행전을 테오필로스라는 사람을 위해 썼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 사람이 누구인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그 사람에게 루카는 복음서를 통해서 예수님의 행적과 말씀을 전하고, 사도행전에서는 그 뒤의 이야기들을 다루면서 자신이 보고 체험했던 것들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목적을 루카 복음 1장 4절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는 귀하께서 배우신 것들이 진실임을 알게 해 드리려는 것입니다.’

루카 복음사가. (이미지 출처 = Picryl)

방금도 말씀드렸지만 테오필로스라는 사람이 우리는 누구인지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루카 복음과 사도행전의 비슷한 흐름에서 우리는 루카 복음사가의 마음을 읽을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테오필로스라는 말은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많은 분이 아시겠지만 테오스가 그리스어로 하느님이라는 뜻이고 필로라는 말은 사랑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결국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하여금, 하느님께서 보내신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행적과 말씀을 더 잘 알고 믿게 하기 위한 것이지요. 그러기에 테오필로스라는 이름은 루카 복음과 사도행전의 수신인인 한 사람이 될 수도 있지만, 우리 자신도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복음을 비롯한 성경을 읽는 이유 역시, 테오필로스라는 이름처럼 하느님을 사랑하기 위함이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루카 복음사가가 예수님을 알리고자 하는 그 대상, 또 다른 테오필로스인 셈입니다. 

주님을 사랑하십니까? 여기에 아니오라고 대답하실 분은 없으실 것입니다. 그렇게 우리 역시 테오필로스로 살아가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우리는 주님에 대해 증언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승천하시기 전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도 바로 그것입니다. 너희는 이 일의 증인이다.(루카 24,48) 진정한 테오필로스의 역할은 떠나신 주님을 증거하는 삶입니다. 전해들은 것을 자신 있게 증언할 수 있어야 합니다.

더불어 오늘은 홍보 주일이기도 합니다. 교황님께서 지적하신 바와 같이 가짜뉴스 등 갖가지 미디어의 부작용 속에서 올바른 언론의 역할이 크게 요구되고 있습니다. 일찍이 제2차 바티칸공의회도 이를 지적한 적이 있습니다. ‘교회의 모든 자녀는 마음과 뜻을 합쳐 시대와 환경이 요구하는 대로 사회 커뮤니케이션 매체를 여러 가지 사도직 활동에 지체 없이 효과적으로 적극 활용하도록 노력하며, 해로운 매체들에 앞서 나가야 한다. 특히 도덕과 종교의 발전이 더욱 긴급한 활동을 요구하는 지역일수록 그러하다.’ - 사회 매체에 관한 교령 ‘놀라운 기술’(Inter Mirifica) 13항. 미디어는 사람의 관심을 필요로 합니다. 사람들이 관심이 없는 미디어는 무의미합니다. 교회의 이름으로 이루어지는 대중매체들이 주님을 올바로 증거할 수 있도록 형제자매님들의 사랑과 관심이 필요합니다. 교회의 언론과 미디어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주님을 제대로 증거할 수 있도록 관심을 가져 주시기를 청합니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주님의 교회의 모습을 전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기도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유상우 신부(광헌아우구스티노)

천주교 부산교구 사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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