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련단체 “천주교성지화 뚜렷”, 중구청 “균형 위해 노력”

지난 1일 시민에 전면 개방된 서소문역사공원과 서소문성지역사박물관을 두고 특정 종교(천주교) 유적 사업이라는 지적이 다시 나왔다.

서소문공원 조성사업 과정부터 “천주교 순교성지화”라는 비판은 계속 있었다.

지난 5월 29일 서울대교구장 염수정 추기경의 주례로 서소문 밖 네거리 순교성지 축성 및 미사가 봉헌됐다. 이 미사 때 103위 순교성인 중 5위 순교자의 유해가 제대에 안치됐다.

제대에 안치된 5위 순교자는 1839년 기해박해 때 순교한 이영희 막달레나, 이정희 바르바라, 허계임 막달레나, 1866년 병인박해 때 순교한 남종삼 세례자요한, 최형 베드로다. 

이날 서울대교구에 따르면, "서소문성지역사박물관은 서소문 밖 네거리가 지닌 시대의 기억과 역사적 가치를 소중히 여기며 이곳을 생명의 공간으로 새롭게 탄생시켰다. 이곳에서는 140여 종의 교회사와 조선 후기 사상사 사료가 상설 전시되며 레퀴엠이 상설 공연된다"고 밝혔다. 

이날 미사 강론에서 염 추기경은 "이곳은 단일 장소에서 가장 많은 순교자를 배출한 한국 최대의 순교성지"이며 "이 성지는 우리에게 순교자들의 증거와 죽음, 그리고 하느님과 만나는 천상 영광의 하늘을 묵상하고 일깨워준다"며 이곳이 성지임을 강조했다. 

지상 공원에 있는 노숙자 예수상. ⓒ김수나 기자

이 사업은 2011년 서울대교구가 문화체육관광부, 서울시, 중구청에 ‘서소문 밖 역사유적지 관광 자원화 사업’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전체 사업비는 596억 원으로, 2018년 총사업비 기준으로 국비 50퍼센트, 시비 30퍼센트, 구비는 20퍼센트다. 

지상에 서소문역사공원, 지하에 서소문성지역사박물관을 지어 지난 1일 개방됐으며 중구청과 위수탁 계약을 맺은 서울대교구의 순교자현양위원회가 박물관 관리와 운영을 맡았다.

개방을 앞둔 지난 5월 28일 서소문역사공원바로세우기 범국민대책위원회와 동학농민혁명 단체협의회는 성명서를 내고, 서소문공원을 “범종교 명실상부한 희생자 추모관 시설로 바꾸라”고 요구했다.

이들은 성명서에서 “지하 전시공간은 천주교 순교역사 기념관이 되고 말았다”며 “특정 종교 공간인 천주교 추모 시설과 미사 시설을 철폐하라”고 말했다.

이어 이들은 “고려시대 윤관 동상 철거는 역사공원이 아닌 완전한 천주교 성지화의 뚜렷한 증거”라며 “윤관 동상 복구”와 “(천주교 순교자)현양탑 철거”도 요구했다.

원래 이곳에는 여진정벌과 남경(현 서울) 조성에 공로가 큰 고려 윤관 장군 동상이 있었으나, 조성사업 과정에서 철거됐다.

또한 이들은 새로 만들어진 서소문역사공원에 “동학농민군 지도자의 참형, 효수 기록이 전혀 없는 것은 역사 편향이자 왜곡”이라고 비판했다.

조선 후기 서소문에는 감옥과 처형장이 있었다. 이곳에서는 천주교인을 비롯해 동학농민혁명의 지도자 등 당시 사회 변혁을 위해 저항한 수많은 이들이 참형을 당했다. 손화중, 김개남, 이필제, 김내현, 성재식, 최재호 등 동학농민혁명의 지도자들이 대표적이다. 

한 신자가 지하 2층에 있는 성 정하상 기념경당에서 절하고 있다. ⓒ김수나 기자

한편, 천주교인은 한국가톨릭대사전의 ‘서소문 밖’ 항목에 따르면 한국의 103위 성인 중 44명이 이곳에서 순교해, 최대 순교지다. 

지상 공원에는 천주교 순교자 현양탑, 프란치스코 교황 방문 기념 제대, 노숙자 예수상 등이 설치돼 있고, 지하 전시공간에는 140여 종의 교회사와 조선후기 사상사 자료가 전시되고, 천주교 정하상 성인을 기념하는 경당이 있다.

지하 3층 상설전시관의 경우, 조선후기 사상사를 주제로 한 1전시관에는 실학자였던 이익과 정약용의 저서 몇 개를 빼고는 조선후기 천주교 박해 및 순교에 관한 사료가 대부분이다. 서소문의 역사성을 보여준다는 2전시관 역시 조선후기 서소문의 모습을 담은 정약용의 ‘목민심서’와 성벽철거 뒤의 ‘경성부명세신지도’(1914) 등 외에 전시물 대부분이 천주교 순교 관련 사료 및 유물이다.

동학관련 사료는 ‘동학도 포고문’과 동학지도부가 제시한 ‘폐정개혁안’ 등이 전부로, 전시물의 90퍼센트 이상이 조선후기 천주교 관련 사료다. 6월 2일 서울대교구 주보에도 상설전시관 안내로, 1관을 “조선후기 사상사의 전환기적 특성을 토대로 본 한국천주교회사 소개”로 설명했다. 

이 때문에 범대위와 동학관련 단체는 이번에 조성된 공원과 전시관이 천주교에 편향됐다고 비판하고 있다.

한편, 공원 조성을 위한 행정적, 재정적 지원방안을 논의한 2018년 6월 서울시의회 “서소문 밖 역사유적지 관광자원화 사업지원 특별위원회 활동결과보고서”에 따르면, 특정 종교에 치우친 내용도 있다. 

특별위원회의 2015년 9월 회의는 “서소문 밖 유적지 관광자원 사업이 공간과 건축물이 시민들에게 천주교 역사공간으로 느낄 수 있게 상징성 있는 공간 또는 건축물로 설계 필요”가, 같은 해 12월 회의에서는 “천주교 역사유적인 만큼 동학 역사를 반영하려는 민원요구에 원칙적으로 대응”이란 주요의견이 나왔다.

서소문역사공원과 서소문성지역사박물관 안내도. ⓒ김수나 기자

천주교 편향이라는 논란에 대해 중구청 관계자는 “당연히 특정 종교를 위해 사업하면 안 되며, 이 사업은 서소문 밖 역사를 관광자원화 한다는 취지에서 출발한 것이기 때문에 편향 주장을 수긍할 수 없다”고 5일 <가톨릭뉴스 지금여기>에 말했다.

그는 “사업 초기부터 특정종교 편향이라는 논란이 있다 보니 담당부서에서도 이를 계속 염두에 두고, 천주교 외 단체들의 목소리도 반영하려고 노력했다”면서 “특히 동학 쪽 주장 중 타당한 부분 및 서소문의 역사 전반을 균형감 있게 다루는 전시물로 구성했다”고 말했다.

그는 천주교가 박물관 이름에 “순교”라는 단어를 넣자고 주장했지만 우리가 반대했다면서, “아무리 재단(천주교서울대교구유지재단)이 운영자라고 해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전시물이나 공간구성은 중구청, 서울시청, 문광부와 수많은 협의를 통해 결정된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윤관 동상 철거는 후손들이 철거와 이전에 흔쾌히 동의해서 이뤄졌으며, 철거 당시에는 아무 말이 없다가 최근 들어 특정 종교 편향 주장을 펼치는 논거로 끌어들인 것은 합당하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현양탑도 이번 사업 시행 전부터 있던 것으로, 이번에 새로 만들어 세운 것이라면 논란이 될 수 있겠지만, 그 전부터 있던 것을 이번 사업과 연결시키는 것은 무리라고 말했다.

천주교는 1984년 서소문공원 안에 순교자 현양탑을 건립했으나 1997년 공원이 새로 단장되면서 헐렸고, 현재 탑은 1999년 다시 세워졌다.

1999년 세워진 순교자 현양비에는 순교성인(왼쪽), 순교복자와 순교자(오른쪽)의 이름과 생몰연도가 새겨져 있다. ⓒ김수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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