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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은 아버지이시며 어머니이시다”

기사승인 2019.06.11  11:5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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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이 담긴 전례력을 따라 - 박유미] 성령강림에 잊어 왔던 의미를 다시 돌아보다

“하느님은 아버지이시며 어머니이시다”(요한 바오로 1세)

'Veni Sancte Spiritus', 14세기 노래집에서. (이미지 출처 = 박유미)

오랜만에 '삶이 담긴 전례력에 따라서' 글을 올린다.

늘 그날에 그 의미를 생각하다 보니 항상 뒤늦게 정리를 하게 되기 때문이기도 한데, 여전히 늦었지만 그래도 얼마 전, 우리에겐 소리 없이 하지만 작지 않은 반향으로 진행되었던 교회개혁을 요구하는 독일 가톨릭 여성들의 파업에 대해 전해 들으며 지난 어느 성령강림 묵상이 문득 다시 떠올랐기 때문이다. 어쩌면 당시로서는 ‘놀라움’은 있었지만 내 생각과 의식에 크게 별로 영향을 주지 못해서 오랫동안 의식 저 아래 묻혀 있었던 의미!  

우리 교회 안에서도 오랫동안 잊어 왔고 잃어버렸던 부분이다.

삼위일체 사랑의 역동성 안에서, 그 모습을 따라 나아가는 구원의 역사에 담아 전하는 신앙선조들의 믿음과 생각. 남과 여, 생명의 조화와 풍요로움!

그 의미를 다시 돌아보며 오늘 우리에게 오시는 성령의 이끄심을 향한다.

4세기까지 교부들은 성령을 위로자 어머니로 표현했다.

히브리어로 여성이었던 구약의 성령 루아흐(Ruach), 생명의 숨이며 생명의 힘, 영의 힘이며 에너지로서…. 하늘과 땅, 하느님과 인간을 연결한다.

성령 창 : 구약과 신약의 성령. (이미지 출처 = 박유미)

“한처음에 하느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다.
땅은 아직 꼴을 갖추지 못하고 비어 있었는데,
어둠이 심연을 덮고 하느님의 영이 그 물 위를 감돌고 있었다”(창세 1,1-2)

“당신 얼굴을 감추시면 그들은 소스라치고,
당신이 그들의 숨을 거두시면 그들은 죽어 먼지로 돌아갑니다.
당신의 숨을 내보내시면 그들은 창조되고 당신께선 땅의 얼굴 새롭게 하십니다.”(시편 114,29-30)

신약에서 프뉴마(Pneuma), 그리이스어로 중성으로 “영은 생명을 준다.... 내가 너희에게 한 말은 영이며 생명이다”(요한 6,62)에서처럼 살아 움직이게 하는 힘이다.

바람, 불길, 비둘기로 표현되며 살아 움직이게 하는 힘, 그 영으로 새로 태어나 그 움직임에 따라 살아가는 이들만이 하느님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

“누구든지 물과 성령으로 태어나지 않으면, 하느님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
바람은 불고 싶은 데로 분다. 너는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에서 와 어디로 가는지 모른다.
영에서 태어난 이도 다 이와 같다.”(요한 3,8)

그 영으로 태어난 이는 그 움직임에 따라 살아간다. 스스로 계획하는 대로가 아니라, 잘 계산하고 그에 따라 관리하며 이루어 간다고 믿고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그분의 움직임에 따라, 그분의 뜻에 따라 살아가는 삶은 자유롭다.

남독 오버바이에른 우어샬링 성 야고버 성당 제대 천정화 일부. (1390년경) (이미지 출처 = 박유미)

‘주님은 영이십니다. 그리고 주님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가 있습니다.”(2고린 3,17)

라틴어 번역이 되면서 Sancte Spiritus, 이 성령은 남성으로 표현된다. 변혁기였던 중세 중기, 세상의 혼란과 어려움 속에서 전지전능하신 하느님, 심판자이신 하느님 상으로부터, 사랑으로 세상을 창조하시고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주신 하느님께서 이 창조물의 구원을 위해 스스로 인간이 되어 오시고 수난을 겪으셨다는 하느님 사랑에 더 집중하면서 어머니와 같은 하느님의 사랑을 그리는 표현이 많이 나타난다. 성모 마리아에 대한 신심이 이렇게 나타나기도 하고, 소피아에 의탁하는 신앙표현도 많아졌다. 성부와 성자는 이미 남성으로 규정되어 있지만, 삼위일체 신비 안에서 여성으로 표현되고 또 그렇게 하늘과 땅, 하느님과 창조물을 연결하는 힘으로 새겨졌던 성령은 여성으로 표현하기도 하였다.  

남독 오버바이에른 우어샬링의 성 야고버 성당 제대화가 남아 있는 대표적 그림이다. 하나의 옷에두 팔을 지녔지만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이신 삼위일체, 흰머리와 수염으로 확실하게 구분되는 성부와 성자에 비해 중앙에 있는 성령은 여성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사도 요한처럼 어린 소년을 나타내는 것일 수도 있다는 해석도 있지만 옷 주름으로도 여성적인 특성이 더 확실하게 보인다. 다른 성당 제대화처럼 재림하시는 예수님이 당신을 바라보는 신자들을 정면으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고개를 돌려 이 삼위일체를 향하고 있다는 것도 인상적이다.

“하느님은 아버지이시며 어머니이시다!”

말씀이 우리 안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미지 출처 = 박유미)

어머니와 같은 하느님은 당시 사람들에게나 초대교회 신앙선조들에게나 사람들 안에서만 아니라 자연 안에서 작용하는 하느님의 힘을 가깝게 느끼고 볼 수 있게 해 주었다. 그리고 자연질서와 같이 하느님 창조의 뜻 안에서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잘 깨닫게 해 주었다.

교계제도가 확립되면서, 또 과학기술의 발달과 사회질서 변화 앞에서 교회를 보호하기 위해 세상으로 높이 올라 서서 ‘인간 구원’에 강조점을 두면서 잃어 왔던 부분이기도 하다. 

살아 있는 교회로서 성령의 이끄심과 도우심을 믿고 세상 끝까지 어떤 문화와 어떤 언어로 이야기하는 이들에게나 기쁜 소식을 전하고 복음을 증거하라는 성령 강림 대축일의 의미대로 다시금 세상에 문을 연 제2차 바티칸공의회!

“말씀이 우리 안에서 작용하고 있습니다.”(1테살 2,13)   

성령의 역사 : 세상을 넘어 성인들의 통공까지. (이미지 출처 = 박유미)

이 말씀이 하느님 백성으로서 교회가 말씀을 선포하고 증거하며 복음을 전하도록 하는 기초가 되었다. 사람의 말을 넘어서 실제 안에서도 초월성을 전하는 말씀, 성령의 이끄심 안에서 시대의 징표를 보고 서로 연대하며 함께 나아가는 길을 제시하는 말씀, 우리 안에 작용하는 힘.

“하느님은 아버지이며 어머니이시다”라는 말씀에서처럼 이제 성령을 받아 삼위일체 신앙 안에서 부활 신비를 살아갈 것을 새기는 전례시기에 하느님 창조의 뜻을 따라가는 생명의 숨결이자 힘이며 타오르는 불길이자 평화로 이끄는 성령이 오심을 생각하니 새로운 열정과 희망이 솟는다.

삼위일체 사랑의 역동성처럼 남과 여, 창조물과 인간 모두가 함께, 더 나아가 모든 성인들과 통공으로 사랑으로 이루신 창조의 세계가 당신께 기쁨이 되도록 힘써 가라는 소명에의 열정이, 그리고 어둡고 혼란하게 보여도 오랫동안 잊고 있던 것을 새롭게 일깨워 주시듯, 시대의 징표들에 대해 언제나 함께, 새롭게 기억하고 일구며 나아가야 하는 길을 일깨우고 도와주시리라는 희망이 넘쳐 늦어도 늦지 않았다는 가벼운 마음으로 나누게 된다.

'찬미받으소서, 나의 주님'. (이미지 출처 = 박유미)

박유미 프리랜서(수산나)
서강대 사회학과, 독일 본, Friedrich-Wilhelm-Uni. 종교사회학 전공, 가톨릭사회론 제1 부전공, '빙엔의 힐데가르트 성녀에 대한 시대별 반향으로 본 교회와 사회와의 관계 연구'. 학문과 일상생활, 교회 안의 신앙생활과 일상의 간격에 다리를 잇는 교육과 프로그램에 깊은 관심이 있으며 전례력과 성인들의 가르침에 담긴 사회적 배경 인식과 성찰을 통해서 사회교리의 보편성과 사회영성 일상화를 나누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박유미 editor@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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