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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 교종 최신 강론말씀(2019년 6월 9-11일)

기사승인 2019.06.13  16:3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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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란치스코 교종 최신 강론말씀]

(편집 : 장기풍)

“사제들을 위해 기도합시다”

프란치스코 교종과 함께 하는 6월 기도지향

 

프란치스코 교종은 6월 한 달 사제들을 위해 기도하자고 권고했다. 교종은 전 세계 기도 네트워크가 만든 영상 메시지에서 “모두가 완전한 것은 아니지만 많은 사람들이 겸손과 기쁨으로 자신을 봉헌하면서 끝까지 모험한다”고 강조했다. 또 교종은 사제들은 모두를 위해 열심히 일하기 위해 가까이 준비된 사람들이며 그들의 모범과 증거에 감사드리자고 덧붙였다. 한편 2017년 ‘교회통계연감’ 통계에 따르면 2017년 전 세계 성직자 수는 41만 4582명이며 신학생 수는 11만 5328명이다. 아시아가 29.8%로 가장 높고 아메리카 27.3%, 아프리카 27.1%, 유럽이 14.9% 순이다.

 

 

“성령께서는 희망 안에서 닻을 내리십니다”

교종, 6월9일 성령 강림 대축일 미사 강론에서 강조

 

프란치스코 교종은 6월9일 성 베드로 광장에서 집전한 성령 강림 대축일 미사에서 ‘우리시대의 신속한 변화 속에서 조화는 소외된 것처럼 보이지만 성령께서는 광란 속에 그리스도의 죽음 이후 제자들의 사건에서 질서를 잡아주신다고 강조했다. 또한 교종은 우리 안에 계신 예수님을 다시 살리시고 살게 하시는 성령께서는 사도들에게 하셨던 것처럼 우리를 다시 태어나게 하시고, 두려움과 불안을 몰아내시며, 새로운 힘을 주신다고 설명했다. 강론 내용.

종점에 도달한 것처럼 보였던 제자들의 사건은 결국 성령의 젊음에 의해 새롭게 변했습니다. 불안에 사로잡혔다고 느꼈던 젊은이들은 그들을 새롭게 했던 기쁨에 의해 변화됐습니다. 성령께서 이런 일을 하셨습니다. 성령의 힘은 ‘내부의 조화’ 일치 혹은 어울림을 가져올 뿐 아니라 외부에도 조화를 가져오고 사람들 사이에도 조화를 가져옵니다. 맑은 거울에 비추듯 폭발할 위험을 무릅쓰고 있는 오늘날 세상 광기를 생각해 봅시다. 모든 것에 우리를 나쁘게 반응하게 만드는 지속적인 긴장감으로 부추겨져서 신속한 해결책을 찾고,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약을 잇달아 구하며, 살아있다는 것을 느끼기 위해 계속해 흥분을 추구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무엇보다 성령이 필요합니다. 광기 속에 질서를 잡아주시는 분은 바로 성령이십니다. 성령께서는 불안 속에 평화이시고 낙심 가운데 신뢰이며, 슬픔 안에 기쁨, 늙음 안에 젊음, 시련 속에 용기이십니다. 인생의 폭풍우 같은 물살 사이에 희망의 닻을 고정시키시는 분이십니다. 성령은 서로 다른 것을 대립시키지 않는 다양성을 존중하는 조화입니다. 모두가 매우 ‘소셜(social)’하지만 극히 ‘사회적(sociali)’이지 않는 역사적 시기에도 우리를 교회가 되게 하는 조화입니다. 더 나아가 자기 자신과 현실을 우선시하며 타인을 배제하는 태도에서 생기는 위험이 종종 교회 안에도 도사리고 있습니다. 항상 ‘둥지’를 만들며 자기 그룹 주변에만 모이고 자신이 선호하는 것들에만 집중하려는 유혹입니다. 교회 안에서도 둥지에서 분파로 넘어가는 것은 순식간입니다. 우리는 얼마나 자주 어떤 사람을 거스르거나 어떤 것에 대항하는 것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규정하는지요! 반면에 성령께서는 떨어져 있는 이들을 이어주시고, 멀리 있는 이들을 합쳐주시며, 흩어진 이들을 데려오십니다. 오늘날 세상에서 부조화는 그야말로 분열이 됩니다. 너무 많이 가진 사람이 있는가 하면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 사람이 있습니다. 100년을 살려고 애쓰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태어나지 못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성령께서는 자녀들과 형제들의 장소로 교회와 세상을 빚어내셨습니다. 교회와 세상 두 존재는 혐오의 문화에 의해 그 아름다움이 빼앗겼고, 애석하게도 그런 문화 안에서 우리가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사물의 명사를 망각하는 ‘형용사의 문화’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내가 공감하지 않는 의견에 대한 무조건적 혐오의 문화 안에서 살아갑니다. 오직 ‘성령에 따라 사는 사람’만이 희생자에서 사형집행인으로 넘어가면서 악을 악으로 갚는 논리를 깨뜨릴 수 있습니다. 성령에 따라 사는 사람은 불화가 있는 곳에 평화를, 분쟁이 있는 곳에 일치를 전합니다. 영적인 사람들은 악을 선으로 갚고 오만함에 온유함으로, 악함에 선함으로, 소음에 침묵으로, 험담에서 기도로, 비관주의에 미소로 대응합니다. 영적인 존재가 되고, 성령의 조화를 맛들이기 위해서 우리 앞에 성령의 시선을 둘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친교’와 ‘교회’는 자신의 본질을 왜곡시키며, 결국 지치게 되어 본연의 의미를 잃게 됩니다. 성령을 통해 교회는 하느님의 거룩한 백성이 됩니다. 선교사명은 개종우선주의가 아니라 같은 아버지로부터 사랑받는 다른 형제자매들에게 기쁨을 퍼뜨리는 것입니다. 성령 없이 교회는 하나의 조직에 불과합니다. 성령없이 선교는 선전이 되고 친교는 하나의 노력에 불과합니다. 성령은 교회의 처음이자 마지막 필요입니다. 우리를 일치의 장인(匠人), 선을 씨 뿌리는 자, 희망의 사도가 되게 해주시도록 성령께 기도합시다. “하느님의 조화이신 성령이시여, 두려움을 신뢰로 바꾸시며 닫힌 곳을 선물로 변화시켜주시는 성령이시여, 저희에게 오소서. 부활의 기쁨, 영원한 마음의 젊음을 주소서. 우리의 조화이신 성령이시여, 저희를 한 몸이 되게 하시니, 당신의 평화를 교회와 세상에 내려주소서. 성령이시여, 저희를 일치의 장인, 선을 씨 뿌리는 사람, 희망의 사도가 되게 하소서.”

 

 

“조건 없이 주지 않으면 하느님과의 관계도 없다”

교종, 6월11일 산타마르타의 집 아침미사 강론

 

프란치스코 교종은 6월11일 산타 마르타의 집 아침미사 강론을 통해 하느님에게서 거저 받은 것은 거저 주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교종은 은총은 구매하는 게 아니고 섬김을 받는 것도 아니며 하느님 백성을 섬기는 것이라고 말했다. 강론 내용.

그리스도인의 삶은 섬기는 삶입니다. 회심 초기나 혹은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을 자각하기 시작하면서 섬기고, 섬기기 위해 마음을 열며 하느님 백성을 섬기지만, 나중에는 오히려 하느님 백성에게 섬김을 받는 그리스도인들이 있습니다. 그들을 볼 때 매우 슬픕니다. 이런 일은 아주 좋지 않고 하느님 백성에게도 나쁜 일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소명은 ‘섬김 받기’ 위한 것이 아니라, ‘섬기기’ 위한 것입니다. 마음을 활짝 여십시오. 그리스도인의 삶은 ‘조건 없이 베푸는 삶’입니다. 오늘 말씀의 전례에서 제시된 복음구절을 보면 주님께서는 구원의 핵심으로 나가십니다.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마태 10,8) 구원은 돈으로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무상으로 주어진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결제를 요구하지 않으시고 무료로 우리를 구원하십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행하신 것처럼 우리도 다른 이들에게 행해야합니다. 이 하느님의 조건 없는 베푸심이야말로 가장 아름다운 일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실 선물이 넘치도록 많다는 걸 생각하십시오. 주님께서는 오직 한 가지만 원하십니다. 곧 우리가 마음을 여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기도’를 바칠 때, 주님의 조건 없는 베푸심이 우리에게 올 수 있도록 마음을 열고 기도합시다. 조건 없이 주지 않으면 하느님과의 관계도 없습니다. 때때로 영적인 어떤 것 혹은 어떤 은총이 필요할 때, 우리는 이렇게 말합니다. ‘아, 저는 이제 단식을 할 것입니다. 고행하고, 9일기도를 바칠 것입니다. 좋습니다. 하지만 주의하십시오. 이런 것은 은총의 값을 ‘결제하기’ 위해서도, 은총을 ‘구매하기’ 위한 것도 아닙니다. 은총이 주어지도록 여러분 마음을 활짝 여는 것입니다. 은총과 하느님의 모든 선물은 대가 없이 주어집니다. 그러나 문제는 마음이 졸아들고 닫혀 “대가 없이 주어지는 많은 사랑을 받을 수 없는 것입니다. 하느님과는 흥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느님과는 거래하는 것이 아닙니다.

특히 대가 없이 거저 베풀라는 것은 사목자들인 우리를 위한 것이고, 은총을 판매하지 않기 위함입니다. 하느님 은총으로 장사하는 사목자들을 볼 때 마음이 아픕니다. “저는 이런 일을 하겠습니다만 비용이 좀 들어갑니다. 이것은 아주 비쌉니다.” 그러나 주님의 은총은 거저 베풀어진 것이고 여러분은 이 은총을 거저 베풀어야 합니다. 우리는 영성생활을 하면서 항상 대가를 지불하는 위험에 빠질 수 있습니다. 항상 그렇습니다. 주님과 이야기할 때 조차도요. 마치 우리가 주님께 뇌물을 주고 싶어하는 것처럼, 보상원리에 빠질 위험이 있습니다. 그래서는 안 됩니다! 그런 일은 좋지 않습니다! “주님, 당신께서 저에게 이런 일을 해주신다면 저도 당신을 위해 이 일을 하겠습니다.” 그래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이런 약속을 하는 것은 우리 마음을 활짝 열어 우리를 위해 준비되어 있는 주님의 조건 없는 베푸심을 받기 위한 것입니다. 하느님과의 이러한 무상성의 관계는 그리스도교적 증언에 있어서나 그리스도인의 섬김에 있어서나, 혹은 하느님 백성의 목자들이 사목생활을 하는 데 있어서나 타인과 관계를 맺는 데 도움을 줍니다. 길을 떠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앞으로 나아갑니다. 선포하십시오. ‘섬김을 받는 것’이 아니라, 섬기십시오. 여러분이 거저 받은 것을 거저 주십시오. 하느님께서 조건 없이 주신 은총, 거저 주어진 은총, 그분께서 주시려는 은총, 바로 거기 있는 하느님의 은총이 우리의 마음에 도달할 수 있도록, 우리의 성덕의 길은 마음을 활짝 여는 것입니다. 아멘.

 

 

“휴머니즘 재건 위해 교육의 변두리 돌아봐야”

교종, 가톨릭교육 국제회의에 영상메시지

 

프란치스코 교종은 ‘국제 가톨릭교육 사무국’이 뉴욕에서 개최한 국제회의 참가자들에게 영상 메시지를 보냈다. 교종은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종께서 말씀하셨던 것처럼 가톨릭 교육기관들이 구상하도록 부르심받은 휴머니즘은 인간과 양도할 수 없는 인간의 권리, 정의와 평화의 가치, 연대와 보조성의 논리 안에서 개인, 사회, 국가의 분명한 관계가 중심이 된 사회의 비전을 보호하는 것입니다.”라고 강조했다. 이번 회의는 ‘사랑의 문명을 건설하기 위한 형제애의 휴머니즘을 가르칩시다’라는 주제로 개최되었다. 메시지 내용.

오늘날 교육이 직면한 가장 큰 어려움 중 하나는 휴머니즘 해체의 풍조가 만연해 있는 것입니다. 개인주의와 소비주의는 협력을 경시하고, 공동의 가치를 흐리게 하며, 공존의 가장 기본이 되는 원칙의 뿌리를 침식하는 논쟁을 일으킵니다. 또 사람들과 민족들 사이 관계를 둘러싼 무관심의 문화는 우리 공동의 집에 대한 보호뿐만 아니라, 휴머니즘의 의미를 부식시킵니다. 이 해체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현실의 교육에 대한 상승작용이 필요합니다. 첫 번째는 가족입니다. 모든 교육자들은 젊은이들이 더 결속되고, 더 평화로운 세상의 적극적인 건설자들이 되도록 도와주기 위해 인류 성장과정의 협력자로 부르심받았습니다. 휴머니즘을 재건한다는 것은 또한 교육의 변두리로, 사회의 변두리로, 생활의 변두리로 향하게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봉사, 만남, 환대를 통해 가장 약하고 상처받기 쉬운 사람들에게 기회를 주는 것입니다. 교육의 세심한 과업을 위협하는 위험이란 인간을 온전한 성장을 위해 관심을 갖게 하지 않고 실험실의 대상처럼 여기는 ‘결과물의 독재’입니다. 따라서 교육은 기준점을 계속 바꾸면서 속도의 소용돌이 안에 존재를 감금하는 ‘신속화’라는 걸림돌과도 마주해야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정체성 자체는 일관성을 잃고, 심리적 구조는 끊임없는 변화 앞에서 붕괴되고 맙니다. 따라서 시간의 중요성으로 되돌아가 이 같은 속도의 혼돈에 대응해야 합니다. 인간은 지식을 학습하고 확립하며 변화시키기 위해 자신의 시간을 필요로 합니다. 시간을 재발견하는 것은 우리 공동의 집을 보호하기 위해 영감을 찾고, 다가올 세대에 대한 존중 안에서 새로운 형태의 삶이 제안하는 것을 활성화하면서 침묵의 진정한 가치를 인정하고 피조물의 아름다움을 묵상하기 위해 잠시 멈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교종, 2020년 이라크 방문 희망

 

프란치스코 교종은 6월 10일 중동지역 ‘동방 가톨릭교회 지원단체 연합’(ROACO) 제92차 총회에서 대표들에게 행한 연설에서 “이라크를 계속 생각한다”면서 내년에 이라크를 방문하고 싶다고 밝혔다. 연설 내용.

이라크는 지역 패권세력 간의 끊임없는 분쟁으로 초래된 긴장국면으로 되돌아가지 않고 종교인을 포함한 사회의 모든 요소가 공동선을 지향하는 가운데 평화로운 미래를 건설해갈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현재 ROACO 관할에 있는 시리아와 우크라이나, 그리고 이스라엘 성지 등 몇몇 국가에서도 신자들이 계속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특히 수십만 이라크 소수 그리스도교 공동체는 이슬람국가(IS) 체제 아래 박해와 고난을 받았으나 지하디스트들이 추방된 이후 자유를 되찾았습니다. 이라크는 가톨릭과 정교회를 포함해 동방전례를 거행하는 동방교회의 고향입니다. 동방 가톨릭교회 성직자 및 신자들의 생명구호를 위해 전 세계 다양한 나라의 기부단체를 한데 모으는 역할을 한 ROACO 위원회에 감사드립니다. 여러분들은 최근 희망을 강탈당한 모든 이들의 간청에 응답했습니다. 시리아의 극적인 상황에 대해 그리고 여전히 인류애의 위기를 극도로 야기할 수 있는 위험이 검은 구름처럼 도사리고 있는 불안정한 지역에 대해 저는 큰 슬픔을 느낍니다. 또한 저는 우크라이나도 기억합니다. 그곳 사람들이 평화를 알게 되길 희망하고 있습니다. 현재 이스라엘 성지의 그리스도교 공동체는 현상유지 원칙에 따라 현지 사람들과 국제협력 속에 서로 나란히 일하고 있습니다.

또한 저는 이민자와 난민들을 생각합니다. 우리는 비행기 안에 탄 사람들의 간절한 기도를 듣습니다. 또 희망을 찾아 보트에 올라탄 수많은 사람들의 소리도 듣습니다. 이들은 어떤 항구가 자신들을 환대할지도 모릅니다. 유럽은 비싸고 정교한 무기들을 싣고 온 배를 위해서만 문을 엽니다. 그 무기들은 심지어 아이들까지 파괴해버립니다. 희망과 위로의 소리는 지치지 않고 행하는 자선활동의 메아리입니다. 그 활동을 가능하게 한 여러분과 여러분이 대표하는 모든 단체에 감사를 보냅니다. 우리는 다음 세대를 위해 희망을 심어주어야 합니다. 젊은이들이 인류애 안에서 온갖 이데올로기의 식민화의 형태들로부터 벗어나 열린 마음과 열린 정신으로 성장하도록 도와줘야 합니다. 올해 에티오피아와 에리트레아의 젊은이들은 양국의 평화를 갈망하며 무기를 버리고 화합 안에서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지난 2월 아부다비에서 선언한 ‘세계 평화와 더불어 사는 삶을 위한 인간의 형제애’에 담긴 메시지를 널리 알리기를 부탁드립니다.

장기풍(스테파노)
전 <평화신문> 미주지사 주간
2006년 은퇴. 현재 뉴욕에 사는 재미동포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장기풍 editor@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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