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영식의 포토에세이]

부산에서 제주를 가는 비행기를 탔습니다. 비행기는 가덕도 위를 지났습니다. 하늘에서 본 가덕도는 너무나도 아름다웠습니다. 가덕도는 부산과 경남의 신공항으로 뜨거운 감자입니다. 부산의 정치권과 언론들은 가덕도 신공항을 이슈로 끌고 가기 위해 야단이지만, 가덕도는 지금 그 자리에서 말이 없었습니다.

비행기가 이륙하고 20분이 되었을까요. 제주 공항에 도착하기 직전이었습니다. 몇 년 전만 해도 맑고 푸른 제주의 모습이었지만, 눈에 백태가 낀 것마냥 희뿌옇습니다. 하늘 위에서조차 선명한 한라산을 볼 수가 없었습니다. 제주도를 뒤덮는 미세먼지 때문입니다. 도시에서는 한 그루의 나무가 미세먼지의 대책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제주도에는 미세먼지의 주요인으로 지목받고 있는 자동차 길을 위해 숲을 베어 내고 있습니다. 참으로 어리석은 일입니다.

제주도는 늘 특별법에 시달렸습니다. 특별법이라는 이름 뒤에는 항상 개발이라는 파괴의 이름이 따라왔습니다. 결코 제주를 제주답게 그냥 두지 않았습니다. 이미 이 특별법에 반대해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젊은이도 있었지만, 자본주의는 탱크처럼 밀려왔습니다.(참조 링크) 이 특별법은 소위 말하는 민주정부에서 더 확대되고 심화되었습니다. 자본의 이름으로 개발이라는 물신은 어떤 정권과도 상관없이 자본의 수탈과 이익을 극대화시켰습니다.

비자림로 입구에 들어서면 숨이 턱 막힐 정도로 삼나무를 비롯한 다양한 생물 종들이 학살되고 있는 현장과 맞닥뜨리게 된다. 우리는 이 학살의 현장에서 "무엇을 위해서? 누구를 위해서?"를 끊임없이 질문해야 한다. ⓒ장영식

김대중 정부였던 2001년 8월, 처음으로 제주도권의 그린벨트가 30년 만에 전면 해제되는 것을 시작으로 전국의 그린벨트가 해제되기 시작합니다. 박정희는 제주를 ‘한국의 하와이’로 만들겠다고 했지만, 제주는 하와이가 아니라 제주 그 자체입니다. 노무현 정부에서는 2006년 7월 1일자로 제주도를 제주특별자치도로 출범시켰습니다. 물론 여기에는 지방분권이라는 의미도 있었지만, 제주의 난개발은 브레이크가 없이 질주했습니다.

박근혜 정권 때였던 2015년 11월 ‘제주 공항 인프라 확충 사전타당성 검토 연구 용역보고서’가 발표됩니다. 이 보고서는 숱한 논란을 낳고 있지만, 국토교통부는 현 공항을 유지하며 새로운 공항을 추가하는 ‘제2공항 건설 안’을 밀어붙이고 있습니다. 6월 19일(수) 오후 3시 제주 농어업인회관에서 ‘제주 제2공항 입지산정 타당성 재조사 및 기본계획 수립 용역’ 최종 보고회가 무산되었지만, 국토교통부는 최종 보고회 무산과 관계없이 제2공항을 강행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제주도민들이 반대하는 제2공항 건설은 반민주적인 행태임에도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적폐세력들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이미 제주도는 절차적 민주주의도 무너지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제주도민들은 강정 해군기지에 이어 제주2공항은 공군 기지로 전락할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습니다. 해군기지와 공군기지 뒤에는 미국이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30-40년 되었을 삼나무가 쓰러지고 난 뒤에 사람들은 그 학살의 슬픔을 기록했다. 기록은 역사이니까. ⓒ장영식
시민들은 비자림로 숲이 학살되는 것은 제주2공항 건설과 관련이 깊다고 인식하고 있다. 또한 제주2공항은 미국의 공군기지라는 인식도 함께 하고 있다. ⓒ장영식
비자림로 숲의 학살 뒤에는 우리의 침묵이 함께 동조하고 있다. 우리의 비밀과 거짓이 동조하고 있다. ⓒ장영식

제주2공항을 위해서는 제주의 숱한 자연과 삶의 터가 유린당합니다. 그 결과 마을들과 오름 그리고 숲으로 관계 맺고 있는 제주의 전설들이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그 한가운데에 비자림로 숲이 있습니다. 지금 현재 왕복 2차선 도로를 4차선으로 확장하기 위해서 30-40년 된 삼나무 숲을 없애고, 천연기념물과 멸종 위기 야생 생물 등의 다양한 자연생태계를 학살합니다. 이 야만적 학살에 맞서 ‘비자림로를 지키기 위해 뭐라도 하려는 시민 모임’의 시민들과 양심적 학자들이 생태계의 보물인 비자림로 숲의 파괴를 막아야 한다고 호소하고 있습니다. 체르노빌의 포그롬과 같은 학살을 막아야 한다고 호소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시민들은 이 학살의 숲에서 멸종위기의 팔색조를 만났고, 애기뿔쇠똥구리의 서식지를 찾았습니다. 이제 비자림로 숲의 팔색조와 애기뿔쇠똥구리는 우리 모두의 이름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결코 세계적인 제주도를 원치 않습니다. 제주인에 의한 제주인을 위한 제주다운 제주를 원할 뿐입니다. 지금 제주도에서 일어나고 있는 거짓은 제주만의 거짓이 아닙니다. 용산이 그랬고, 쌍용자동차와 콜트 콜텍이 그랬습니다. 강정이 그랬고, 밀양과 청도와 소성리가 그랬습니다. 4대강과 핵발전소를 둘러싼 새빨간 거짓말들이 그랬습니다. 이 거짓말 뒤에는 공익을 가장한 사익을 추구하는 인간의 탐욕이 있습니다. 평화를 이야기하면서도 평화를 원치 않는 군산복합체가 있습니다. 이윤의 사유화를 추구하는 자본과 토건 세력들이 있습니다. 거기에 기생한 못된 정치인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피에 젖은 땅, 제주의 파괴와 학살을 지켜보면서 질문해야 합니다. “진실은 무엇인가? 거짓의 대가는 무엇인가?”라고 끊임없이 질문해야 합니다. 그 질문 속에 답이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녹색당 당원들이 성산읍 대수산봉에 올랐다. 제주2공항이 건설되면 사라질 오름들과 마을들 그리고 숲들을 바라보며, 제주2공항 건설을 막아낼 것을 다짐하고 있다. ⓒ장영식
하나의 숲을 지켜낸다는 것은 우리의 숨을 지켜내는 것과 다름 아니다. 먹고 사는 일에만 열중하는 것이 아니라 어머니이신 대지와 형제이신 태양과 자매이신 달을 지켜내는 것과 다름 아니다. ⓒ장영식

장영식(라파엘로)

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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