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자가 바라본 세상과 교회]

(그림1) ‘나의 첫 번째 강론’, 존 에버렛 밀레이. (1863) (이미지 출처 = 런던 길드홀 갤러리 홈페이지)

무엇을 듣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눈을 동그랗게 뜨고 미간에 힘을 주고 입을 앙 다문 얼굴을 보면 매우 집중하고 있는 것만은 분명합니다. 긴장도 한 듯 보입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엄마가 집에서 가장 좋은 옷을 입혀서 데려온 것 아닌가 싶습니다. 옆에 놓인 성경과 그림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지금은 성당의 미사 중 강론 시간입니다. 영국의 천재 작가 존 에버렛 밀레이는 당대 화제가 되는 그림을 많이 그렸지만 자신의 5살 딸을 모델로 그린 이 작품을 통해 엄청난 인기를 얻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그림은 2년 후 그려진 다음 그림으로 시리즈가 완성됩니다.

(그림2) ‘나의 두 번째 강론’, 존 에버렛 밀레이. (1864) (이미지 출처 = 런던 길드홀 갤러리 홈페이지)

강론에 집중하느라 애쓰던 소녀는 결국 지쳐 잠들었습니다. 같은 장소에서 같은 옷을 입고 있는 것으로 보아 앞 그림과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이야기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2년 이후 제작된 이 그림의 모델이 된 딸은 꽤 성장했지만 작가의 의도로 근소한 시기에 그린 연작의 느낌을 갖게 되었습니다.

처음에 이 그림을 보고는 소녀가 너무 귀엽고 작가의 표현 방식과 내용이 너무 재미있어 한참을 웃었는데, 당시 이 연작이 전시된 공간에서 켄터베리 대주교가 한 이야기를 읽어 보고 무릎을 쳤습니다. 그 자리에는 고위 성직자들과 교회 책임자들이 다수 앉아 있었나 봅니다. 일부를 요약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저는 항상 이곳[전시장]을 방문하면 즐거울 뿐 아니라 얻는 것이 있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이 자리에서 저는 매우 소중한 교훈을 얻습니다. 이는 저 혼자만이 아니라 여기에 저를 둘러싸고 있는 신부님들에 의해서도 연구될 만한 것입니다. 저는 성당에서 잠들어 있는 저 작은 아가씨를 보며 그녀가 무의식 중에 온몸으로 해 주는 훈화를 듣습니다. 우리가 지난 세 시간 동안 한 강론 끝에 이 아가씨는 잠들어 버렸고, 졸리는 담론과 긴 설교의 악에 대해 경고를 해 주고 있습니다. 이 평화로운 잠을 깨워 정말 미안합니다만, 나중에 일어났을 때, [강론 중에 졸았다고] 도덕적으로 나무랐던 이들에게 사실 그녀가 무엇을 가르쳐 주었는지, ‘첫 번째 강론’ 이후 과연 무엇이 그녀에게 도움이 되었을까를 우리 [설교자들, 성직자들] 스스로 질문하도록 가르쳐 주었다는 사실을 이 작은 아가씨가 알아주었으면 합니다.”

참으로 겸손한 말씀이 아닐 수 없습니다. 당시 잡지에 난 일반 평론을 보면, 사람들은 작가의 이 두 번째 그림을 보고 “그래, 강론은 절대 길고 지루하면 안 된다는 사실을 보여 주고 있는 거라고!” 하며 통쾌해 했다고 합니다. 항간에 오가는 이런 평들을 익히 다 듣고도 남았을 대주교는 위와 같은 성찰을 나눕니다. 처음에 이 '나의 강론' 시리즈 두 점을 보았을 때 너무 귀여워서 웃다가, ‘그럼 이 미사는, 강론은, 이 시간들은 이 아이에게 어떤 의미가 되었을까?’ 하고 일차적 질문에 멈추었던 저는 이제야 이 그림을 보며 성찰할 수 있었습니다. 대주교의 이 이야기를 다시 읽어 보다가, 그리고 기도방에서 졸고 있는 저를 보다가, 보이지 않지만 가장 분명한 사실, 진실을 놓치고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조는 이 딸아이에게도, 이 미사에 함께했을 부모와 다른 신자들에게도, 대주교와 동료 성직자들에게도, 저에게도, 우리 모두에게, 예수님은 각자의 마음 깊이 함께하시며 조건 없이 사랑하신다는 사실이 이제야 다가옵니다. 우리가 그렇게 교회를 이루고 하느님을 따르는 여정의 동료들이 되게 하신다는 생각이 이제야 듭니다. 예수 성심 성월을 보내며, 졸기도 하고 서로 잠들어 버리게도 하는 저의 마음에도, 우리의 마음에도 오직 당신의 사랑 때문에 와 주시는 그 자비에 감사 기도를 드립니다.

하영유(소화데레사)
성심수녀회 수녀
가톨릭대학교 출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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