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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 교종 최신 강론말씀(6월 22-26일)

기사승인 2019.06.28  16:4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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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란치스코 교종 최신 강론말씀]

(편집 : 장기풍)

“초대 그리스도인 공동체는 형제애 상징이자 모범”

프란치스코 교종, 6월26일 수요접견 사도행전 교리교육

 

프란치스코 교종은 6월26일 성 베드로 광장에서 진행된 수요 일반접견 교리교육에서 사도행전을 계속 이어갔다. 이날 교종이 인용한 성경구절은 전적으로 하느님과 형제들을 향한 사랑에 헌신한 초대 그리스도인 공동체의 삶을 묘사한 사도행전 2장 대목이다. 루카 복음사가는 사도행전에서 예루살렘 교회를 모든 그리스도인 공동체의 패러다임으로 소개한다. 가르침 내용.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안녕하세요! 성령강림의 열매, 초대 그리스도인 공동체에 부어주신 하느님 성령의 강력한 강림의 열매는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 안에서의 구원에 대한 기쁜 소식 곧 ‘케리그마’(kerygma)에 의해 마음이 꿰찔림을 느끼게 했으며, 회개하고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성령의 선물을 받아들임으로써 자유롭게 그리스도를 따르게 했습니다. 약 3천명 사람들이 이 형제애에 참여하기 위해, 신자들의 보금자리며 복음화사업의 교회적 누룩인 그리스도인 공동체에 들어왔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이 형제자매들의 신앙의 온기가 그들의 삶을 하느님의 일이 펼쳐지는 현장으로 만들었습니다. 하느님의 일은 사도들을 통해 기적과 표징으로 드러났습니다. 특별한 것이 평범해지고 일상적인 것이 살아계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시는 공간이 되었습니다. 이에 대해 루카 복음사가는 예루살렘 교회를 모든 그리스도인 공동체의 패러다임으로 보여줍니다. 신화화하거나 최소화하지 않으면서 매혹적인 형제애의 상징으로 보여준 것입니다. 사도행전의 이야기는 우리가 초대교회 그리스도인들이 모인 곳인 ‘친교의 공간’, 곧 그리스도 안에서 형제자매 간 사랑의 친교의 공간인 하느님의 가족으로 모인 집을 들여다볼 수 있게 해줍니다. 우리는 그들이 매우 구체적인 방식으로 산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은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고 친교를 이루며 빵을 떼어 나누고 기도하는 일에 전념”(사도 2,42)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사도들의 가르침을 다 함께 열심히 경청합니다. 영적이며 물질적인 재물의 나눔을 통해서도 높은 수준의 인간관계를 실천합니다. 그들은 ‘빵을 떼어 나눔’, 곧 성찬례를 통해 주님을 기억하며 기도로 하느님과 대화했습니다.

이는 그리스도인의 태도, 선한 그리스도인의 네 가지 모습입니다. 타인을 희생시키면서까지 자신의 이익을 만드는 경향이 있는 인간사회와는 달리 신자들 공동체는 공유와 연대를 육성하기 위해 개인주의를 버립니다. 그리스도인 영혼에는 이기심을 위한 자리가 없습니다. 여러분의 마음이 이기적이라면 여러분은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여러분은 단지 자신에게 유리한 것이나 이익을 추구하는 세상사람입니다. 루카 복음사가는 신자들이 함께했다고 말합니다.(사도 2,44 참조) 친근함과 일치는 신자들의 방식이며 스타일입니다. 가까이서 상대방에 대해 걱정하고 상대방을 뒷담화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돕기 위해 가까이 있어야 합니다. 세례성사의 은총은 그리스도 안에서 형제들 간의 친밀한 유대관계를 보여줍니다. 그리스도께서는 형제들이 서로 나누고 스스로를 타인과 함께하는 존재로 자신의 신원을 드러내며, ‘각자의 필요에 따라’(사도 2,45) 내어주라고 초대하십니다. 다시 말해 너그러움, 자선, 다른 사람들을 돌보고, 병자를 방문하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방문하며, 위로가 필요한 사람들을 도우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형제애는 그것이 바로 도움이 필요한 이들과의 친교와 그들에 대한 관심의 길을 선택했기 때문에 교회는 참되고 진정한 전례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루카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그들은 날마다 한마음으로 성전에서 열심히 모이고 이 집 저 집에서 빵을 떼어 나누었으며, 즐겁고 순박한 마음으로 음식을 함께 먹고, 하느님을 찬미하며 온 백성에게서 호감을 얻었다.”(루카 2,46-47) 마지막으로 사도행전의 이야기는 주님께서 공동체 성장을 보장하신다는 것을 상기시켜줍니다.(사도 2,47 참조) 하느님과 형제들과의 진정한 계약을 믿는 이들의 인내는 많은 사람들을 매료시키며, 정복하는 매력적인 힘이 되고, 모든 세대에 걸쳐 믿는 이들의 공동체가 살아가는 원리입니다. 우리 공동체들이 새로운 삶과 연대와 친교의 사업을 실천할 수 있는 곳이 되도록 전례가 하느님과 만나는 장소, 형제자매들과의 친교가 이루어지는 장소가 되도록 천상 예루살렘의 문을 열게 하는 장소가 되도록 성령께 기도합시다.

 

 

“처음인 것처럼 성찬례에 다가갑시다”

프란치스코 교종, 성체성혈 대축일 삼종기도 가르침

 

프란치스코 교종은 6월23일 바티칸 성 베드로 광장에서 열린 그리스도의 성체성혈 대축일 삼종기도 가르침에서 우리 모두 ‘처음인 것처럼 성찬례에 다가가자고 강조했다. 또 교종은 이날 저녁 로마시내 카살 베르토네에서 미사를 봉헌한 뒤 이어 성체행렬을 거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와 함께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복자품에 오른 ‘원죄 없으신 잉태 성모마리아 프란치스코 수녀회’ 마리아 카르멘 라카바 안디아 수녀와 13명의 동료 수녀들을 기억했다. 가르침 내용.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안녕하세요! 오늘 이탈리아를 비롯해 다른 모든 나라에서는 ‘지극히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성체성혈 대축일’을 지냅니다. 오늘 복음은 갈릴래아 호숫가 건너편에서 일어난 ‘오천 명을 먹이신 기적사화’(루카 9,11-17)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병자들을 치유하시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말씀하시길 원하셨습니다. 저녁이 되자 제자들은 주님께 이렇게 말했습니다. “군중을 돌려보내시어 주변마을이나 촌락으로 가서 잠자리와 음식을 구하게 하십시오”(루카 9,12) 제자들도 지쳐 있었습니다. 사실 그들이 있던 곳은 황량한 곳으로 사람들이 음식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걸어서 마을로 가야 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이 상황을 보시고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너희가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어라”(루카 9,13) 이 말씀은 제자들을 깜짝 놀라게 했습니다. 그들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어쩌면 화가 나기도 해서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저희가 가서 이 모든 백성을 위하여 양식을 사 오지 않는 한 저희에게는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밖에 없습니다.”(루카 9,13)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참된 회심을 하도록 이끄십니다. 이는 각자 ‘자신을 위해‘라는 논리에서 ’나눔의 논리‘로 변화하는 회심입니다. 나눔은 하느님의 섭리가 우리에게 맡긴 작은 것에서 시작해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당신께서 행하고자 하시는 바를 분명히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대충 쉰 명씩 떼를 지어 자리를 잡게 하여라.”(루카 9,14) 그런 다음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손에 들고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축복의 기도를 바치십니다. 이어서 빵을 떼고 물고기를 나누어 제자들에게 주시자 제자들은 그것들을 군중들에게 나누어주었습니다. 모든 사람이 배불리 먹을 때까지 음식은 동나지 않았습니다.

이 기적은 모든 복음사가들이 전하고 있을 정도로 아주 중요합니다. 이 기적은 또 메시아의 권능과 그분의 ‘연민’을 드러냅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을 가엾이 여기십니다. 그와 같은 경이로운 행위는 예수님의 공생활의 위대한 표징들 중 하나로 남아 있을 뿐 아니라 마지막에 가서는 그분의 희생에 대한 기념, 다시 말해 세상의 구원을 위해 내어주신 그분의 몸(성체)과 피(성혈)의 성사, 곧 성찬례가 되리라는 것을 미리 보여줍니다. 성찬례는 아버지와 형제들에 대한 유일한 사랑의 행위였던 예수님 실존 전체의 요약입니다. 빵을 많게 하신 기적에서와 마찬가지로 성찬례에서 예수님께서는 빵을 손에 드시고 아버지께 축복의 기도를 올리신 다음 빵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셨습니다. 포도주 잔을 가지고도 똑같이 행하셨습니다. 하지만 당신 수난의 밤, 바로 그 순간 그분께서는 죽음과 부활을 통한 당신의 파스카의 영속적인 기념인 새롭고도 영원한 계약의 유언을 그 행위에 남기길 원하셨습니다. ‘지극히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성체성혈대축일’은 매년 주님의 이 놀라운 선물, 곧 성찬례에 대한 기쁨과 경이로움을 새롭게 하도록 우리를 초대합니다. 소극적이고 기계적인 자세가 아니라 감사하는 마음으로 이 선물을 받아들입시다. 우리는 기계적으로 성찬례에 임하거나 무미건조하게 영성체하러 나가서는 안 됩니다. 그래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성체를 모시기 위해 제대 가까이 다가갈 때마다 그리스도의 몸에 대한 우리의 “아멘”을 진정으로 새롭게 해야 합니다. 사제가 우리에게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말할 때, 우리는 “아멘”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그 “아멘”은 확신에 찬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아멘”이어야 합니다. 이는 예수님이십니다. 바로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님이시고 살기 위한 힘을 나에게 주시기 위해 오시는 예수님이십니다. 바로 그분이 예수님이시고 살아계신 예수님이십니다. 따라서 우리는 습관적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성체를 모시러 나갈 때마다 우리는 이번이 마치 처음으로 하는 영성체인 것처럼 임해야 합니다. 하느님의 거룩한 백성의 성체성사에 대한 믿음의 표현은 ‘지극히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성체성혈대축일’에 가톨릭교회가 거행하는 성체행렬입니다. 저 또한 오늘 저녁 로마의 카살 베르토네에서 미사를 봉헌한 뒤 성체행렬을 거행할 것입니다. 라디오와 텔레비전 방송을 통해 영적으로 모두 참여하기를 초대합니다. 우리가 성찬례 안에서 흠숭하는 예수님을 믿음과 사랑으로 따르도록 성모님께서 우리를 도와주시길 빕니다.

 

 

“의사들은 생명의 시작과 끝에 있는 봉사자들”

교종, 국제 가톨릭의사협회 대표단에 예수님 모범 강조

 

프란치스코 교종은 6월22일 오전 바티칸 사도궁 살라 레지아에서 국제 가톨릭의사협회 대표자 5백여 명과 만난 자리에서 ‘의사’이신 예수님, 병자들을 온전히 치료하기 위해 그들에게 가까이 다가가시는 예수님의 방법을 모범으로 제시했다. 연설 요약.

저는 여러분들이 자신들을 예수성심에 봉헌하고자 하는 행위를 높이 평가합니다. 어떤 질병으로든 고통받는 사람들을 향한 배려와 동정심은 종종 초기 그리스도 공동체가 예수님을 ‘의사’처럼 제시했습니다. 예수님은 병들거나 장애를 지닌 사람, 특히 그 때문에 멸시당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가까이 하셨습니다. 이렇게 그분은 병자를 죄인으로 선고하는 판단을 부수고 당신의 친밀감으로 그분의 가장 가난한 자녀들에 대한 아버지 하느님의 끝없는 사랑을 나타내셨습니다. 병든 사람들을 치료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사명에 대한 구성적 차원 중 하나로 나타납니다. 이런 이유로 그것은 교회에 그대로 남아있습니다. 복음서에는 그리스도의 설교, 그리고 ‘갖가지 질병과 고통에 시달리는 환자들과 마귀 들린 이들, 간질병자와 중풍병자들’(마태 4,24)을 그분께서 고쳐주신 치유행위 사이에 강한 연관성이 분명히 드러납니다. 치유하는 것은 그 사람과 대화에 들어가는 것을 뜻합니다. 예수님께서 병자들과 고통받는 사람들을 돌보시는 방법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만지셨고 그것이 금지된 경우에도 당신을 만지도록 내버려두셨습니다. 사실 예수님에게 있어 치유한다는 것은 그 사람에게 가까이 다가가는 것이며, 심지어 그 사람을 위해 무엇을 원하느냐고 묻는 것을 뜻합니다. 의사가 고통받는 사람에게 자신에게서 무엇을 기대하는지 묻는다는 것은 의아하게 들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치료의 관계에서 말과 대화의 가치를 강조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에게 있어서 치유한다는 것은 인간의 열망과 당신의 아들 안에서 활동하시는 하느님 사랑의 아름다운 힘을 나타내기 위한 대화로 들어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치유한다는 것은 어떤 길을 시작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평안, 위로, 화해와 치유의 길입니다.

예수님은 결코 일부분만 고쳐주신 게 아니라 고통받는 인간의 전체성 안에서 전 인격과 영혼의 일치, 영육의 치유를 행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치유는 인간을 다시 일으키시며, 일으키신 다음에는 이따금 그를 파견하십니다. 그리고 치유된 후에는 많은 사람들이 그분의 제자가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모든 사람들과 기계적인 관계가 아니라 거리가 없는 개인적이고 풍요로운 관계를 만드십니다. 여러분은 고통받는 이들의 형제이자 의사이신 예수님의 학교로 예수님을 믿는 의사로, 예수님의 교회구성원이 되라는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여러분은 질병으로 시련의 순간을 보내고 있는 이들에게 가까이 있으라는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여러분은 섬세한 치료를 제공하고 인간의 존엄과 영육의 통합성(온전성)을 존중하라는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여러분은 그들을 더욱 인간답게 해주는 치료의 행위를 동반함으로써, 치료가 더 효과적으로 되게 하는 적절한 대답을 해주며, 그들의 소리에 주의 깊게 경청하라고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의사 여러분은 하느님에게서 오는 희망뿐 아니라 우리가 감사를 느끼는 의학연구를 위해 일하는 모든 사람들에게서 오는 희망을 주라는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최근 100년 동안 엄청난 진보가 있었습니다. 새로운 임상의학과 많은 치료법이 시험단계에 있습니다. 이 모든 치료법들은 과거 세대에게는 생각조차 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고통을 줄이고, 각자 자신의 건강, 그리고 가까운 이들과 친척들의 건강을 더 잘 책임지도록 교육해야 하며, 또 그렇게 교육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치료한다는 것이 시작부터 마지막까지 생명의 선물을 존중한다는 뜻이라는 걸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는 생명의 주인이 아니라 우리에게 맡겨진 것입니다. 의사들은 생명을 위한 봉사자들입니다. 여러분의 사명은 특별한 방법으로 하느님께서 각자에게 생명과 사랑을 주시길 원하시는 우리 아버지라는 것을 느끼게 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능숙함, 인내, 영적인 힘과 형제적 연대, 그리고 전문성과 협력할 수 있는 역량, 그리고 엄격한 윤리성이 필요합니다. 하느님의 말씀과 성사라는 원천에서 스스로를 새롭게 해야 합니다. 성령께서 예민하고 복잡한 상황을 마주하는 여러분에게 올바른 방법으로 옳은 말을 하며 적시에 옳은 침묵을 하기 위한 식별의 은총을 주시기를 청합니다.

장기풍(스테파노)
전 <평화신문> 미주지사 주간
2006년 은퇴. 현재 뉴욕에 사는 재미동포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장기풍 editor@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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