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하는 시 - 박춘식]

빛과 어둠. (이미지 출처 = Pixabay)

갑자기 하느님을 만나서

- 닐숨 박춘식

 

몇 해 전 - 뜨겁고 텁텁한 한여름 - 대구 어느 노인 복지관 옆 마당 그늘에서 - 한 영감이 큰 소리로 - 머라카노, 그 노인 나이가 67이라고- 그렇답니다 - 알라들이 어른 앞에 우예 모가지 세우며 설치노 - !?? - 제가 - 멀찌감치 서 있는 노인에게 - 저 큰 어르신의 연세를 물었더니 89이라고 합니다 - 저는 까치발로 그 자리를 비키면서 - 노인에게 ‘나이’란 좀 덜커덩하지만, ‘연세’는 참 무섭구나 - 구시렁거리며 돌아서는데 - 에고, 참 - 하느님께서 걸어오십니다 - 퍼뜩, 인사 올리면서 - 엉겁결에 춘추가 얼마이신지 여쭈어봅니다

 

- 만날 나날 오늘이고, 오늘 나이는 ‘하나’이다

? 그러면 어제 춘추는 어떠하신지요

- 나에게는 오늘이 어제이고, 내일도 오늘이다

? 송구스럽습니다만, 춘추는 없으십니까

- 너는 ‘빛이 생겨라’는 말을 알겠지

? 성경의 첫 말씀으로 잘 알고 있습니다만, 어찌,,,

- 지금도 그 빛이 어둠 속을 뛰어가고 있느니라

? ········

 

 

<출처> 닐숨 박춘식 미발표 시(2019년 7월 1일 월요일)

 

대구서 본 그 89세 노인의 얼굴은 기억 안 나지만 목소리를 칼칼했음을 기억합니다. 그때 그 노인의 목소리를 듣고, 제가 어릴 때 시골에 살면서 옆 마을 어느 노인의 고함 소리를 연상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무서운 노인이라고 소문났지만, 악의가 전혀 없는 분이심을 알았고, 그분 자제 분이 성직자였음을 잘 알고 았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옛 노인의 구성진 이야기를 들어 본 일이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나이는 어김없이 층층을 만듭니다. 그리고 나이는 하느님이 주시는 가장 귀중한 선물인데, 사람들은 이 선물을 감사히 여기기보다 득세를 하려는 욕심으로, 자기 자랑을 펼치는 분이 많이 있는 듯합니다. 신앙을 가지신 노인들에게 당부하기가 매우 조심스럽습니다만, 나이 70 넘어서면 묵묵히 지나간 잘못을 참회하면서 기도에 전념하심이 좋을 듯합니다. ‘우리 집안의 신앙적인 삶은 내가 기도로써 뒷받침한다’ 또는 ‘한반도의 평화를 위하여 나의 기도를 한 트럭 가득 실어 휴전선으로 판문점으로 보낸다’ 또는 ‘굶고 있는 아이들에게, 내 기도가 빵이 되어 전달되는 기적을 만든다’ 하는 믿음으로 기도하신다면 아주 좋을 듯합니다.

닐숨 박춘식
1938년 경북 칠곡 출생
시집 ‘어머니 하느님’ 상재로 2008년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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