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있는 노래랑 아이들이랑 - 15]

지난해 가을, 예상치 못한 이웃이 나타났다. 그것도 다랑이 다나와 비슷한 또래의 아이가 둘 있는 집, 심지어 그 집 막둥이 이름이 다울이란다. 그 이름도 정다운 정다울! 그리하여 우리 마을 5총사가 탄생하게 되었다. 나이 순으로 정리하자면 11살 박다울(남), 7살 박다랑(남), 6살 정겨울(남), 4살 박다나(여)와 정다울(여)!

나도 지난날을 떠올려 보면 집 가까이 사는 절친이 없던 날과 있던 날은 질적으로 큰 차이가 있었다. 2차원 평면이 4차원 홀로그램으로 확 뒤바뀌는 정도의 차이랄까? 그와 같은 차이와 변화가 우리 마을 5총사에게도 벌어졌고 그것은 곧 내 삶의 변화와도 이어지게 되었다. (엄마를 중심으로 돌아가던 아이들의 우주가 그 축을 친구로 바꾸며 재편성 되었으니 실로 엄청난 변화다.)

지난 주말, 마침 종일 비가 내리는 날이었다. 겨울이 (정)다울이와 하루종일 실컷 놀 수 있다는 생각에 어서 주말이 되기를 바라고 있던 아이들은 아침 일찍부터 비를 뚫고라도 달려 나갈 기세였다.

"엄마, 오늘 겨울이 유치원 안 가는 날 맞지? 우리 겨울이 집에 놀러 갔다 올게!"(다랑)

"안 돼! 비 오는 거 안 보여? 오늘 하루종일 비 많이 온다고 했어. 오늘은 그냥 집에서 놀아."

"나 다울이랑 놀기로 했는데.... 비 그만 오라고 수리수리 해야겠다. 비 오지 마라 수리수리 마수리!"(다나)

가끔 동네 어귀에 이런 이상한 포스터를 붙여 놓고 사람들을 부른다. 손님이 모이지 않아 내가 억지로 자리를 지키고 앉아 있었는데 나름 재미있는 잔치였다. ⓒ정청라

주문을 외우고는 곧장 문을 열고 뛰쳐나가는 다나를 붙잡아 왔다. 다나가 탈출하는 틈을 타서 함께 뛰쳐나가는 다랑이도 무섭게 불러들였다.

"야, 오늘 같은 날 애들 다섯이 집에서 날뛰면 겨울이 엄마 아빠가 얼마나 피곤하겠냐. 이따가 엄마가 비오는 날 기념으로 만화영화 보여 줄 테니까 집에 있어."

평소 같으면 만화영화란 말에 펄쩍펄쩍 뛰면서 기뻐했을 텐데 아이들은 시무룩한 얼굴이었다. 겨울이랑 같이 보고 싶다면서 저희들끼리 이런 말을 주고받았다.

"겨울이가 없을 때는 비 오는 날이 심심하지 않았어."(다랑)

"그때는 우리끼리 놀아도 재밌었잖아. 솔직히 난 겨울이가 마음에 안 들 때도 많아. 무슨 놀이를 하자고 하면 금방 싫증 내면서 다른 거 하자고 하고, 우리가 좋아하는 싸우기 놀이도 겨울이가 싫어해서 못하고...."

"맞아, 겨울이는 자기 맘대로일 때가 많아."(다랑)

"다울이도 나한테 사탕 안 준다고 그랬어. 그래서 나하고 싸웠어."(다나)

"근데 왜 이렇게 자꾸 생각나고 같이 놀고 싶은 거지? 이런 게 진짜로 좋아하는 건가? 아앙, 겨울이랑 다울이 보고 싶다!!!"(다울)

"나도!"(다랑)

"나보!"(다나)

아이들 말을 듣고 보니 기가 막히기도 하고 우습기도 해서 마침내 내가 져 주기로 했다. 아침 먹고 아침 운동 제대로 하면 겨울이네 집에 가도 된다고.... 아이들은 드디어 환호성을 내지르며 기뻐했고 비를 뚫고 겨울이네로 달려갔다. 갔다가, 이내 겨울이 다울이까지 데리고 우르르르 우리집으로 몰려왔다. 그러고는 얼마나 재밌게들 노는지.... 얼마나 신나게들 떠들고 웃어 대는지....(물론 집안은 순식간에 난장판이 되었지만.... 쩝....)

곁에서 지켜보면 '저렇게 좋을까' 싶다가, '좋을 만도 하지' 싶다가, 결국 '참 좋을 때다!' 부러워진다. 서로 싸우고 삐치고 울고 때릴 때도 있지만 돌아서면 또 좋아서 어쩔 줄을 모르니 말이다. 나도 저럴 때가 있었나? 좋아하고 좋아하고 또 좋아해서 날마다 '좋아해'라는 바다에 풍덩 빠져서 살던 날들이? 앗, 그러고 보니 지금도?

좋아해, 우리 마을 5총사!!!

좋아해 노랫말과 삽화.(박다울 솜씨) 노석미 작가의 그림책 '좋아해'의 글밥을 가지고 노래를 만들었다. 좋아하는 사람, 동물, 꽃, 나무.... 무엇이든 이름을 넣어 부를 수 있다는 게 이 노래의 매력! ⓒ정청라

정청라

인생의 쓴맛 단맛 모르던 20대에 누가 꿈이 뭐냐고 물으면 '좋은 엄마가 되고 싶다'고 대답했다. 하지만 막상 엄마가 되고 1년도 채 안 되어 좋은 엄마는커녕 그냥 엄마 되기도 몹시 어렵다는 사실을 깨닫고 '좋은 엄마'라는 허상을 내려놓았다. 그 뒤로 쭈욱 내려놓고, 내려놓고, 내려놓기의 연속.... 이제는 살아 있는 노래랑 아이들이랑 살아 있음을 만끽하며 아무런 꿈도 없이 그냥 산다. 아이를 기른다는 것은 '스스로 길이 된다는 것'임을 떠올리며 노래로 길을 내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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