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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리게, 노래하듯이

기사승인 2019.07.08  16:3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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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욜라 즐거운 육아일기 - 95]

머지않아 여름방학이다. 여름휴가도 다가온다. 물론 크리스마스도 다가오고 있다. 그런데 시간을 앞으로 돌려 올 초의 일을 떠올리려 한다. 가물가물한 과거의 일을. 기억하는 이 없겠지만 내가 저번에 ‘충격적인 학부모 상담이 어쩌고’ 하면서 쓸데없이 다음 이야기에 대해 예고를 했기 때문이다. 매사에 성실성이 부족한 나라고는 해도 약속은 지키려 하는데.... 어쩌다 보니 많은 부분 양심을 상실하여 일말의 양심도 소중해진 탓이라고 해 두자.

나는 내 명의로 된 번듯한 집은 없지만, 은행 빚은 좀 지고 있다. 은행에 돈 빌리러 갈 때 비굴한 게 싫어 빨리 돈을 갚고 싶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빚을 청산하기는 참 어렵다. 빚은 잡을 수 없는 무지개처럼 자꾸만 멀리 간다. 무지개 같은 빚을 안고 살아가면서 무지개는커녕 하늘조차 올려다보지 않는 작자들을 이해할 수 없었는데 십년도 훨씬 더 전에 일명 ‘형법(刑法)의 신(神)’이라고 불리던 한 선생의 학문적 성취를 사모했던 내가 수업 중에 그가 한 말을 기억하고 있는 까닭이다. 

그는 무술계로 치면 폭포수 아래서 엄지발가락 하나만을 딛고 폭포수를 등으로 처맞으며 균형을 잡고 서 있는 ‘용소야’(실존인물은 찾을 수가 없다)에 필적하는 학문의 고수였다. 그것도 은둔해 있는 재야의 고수. 그는 서울 신림동 고시촌의 한 학원강사로 재직하고 있었다. 나는 수업 중에 그가 전수하는 학문적 깨달음 중 극히 일부분, 말하자면 빵 한 덩어리의 껍질 부스러기만 먹었을 뿐인데도, 심장이 요동치며, 손이 떨리고, 온몸이 달아오르는 현상에 시달렸다. 그는 사람이 아니었다. 차라리 신에 가까웠다. 그런 그가 어느 날 제군들에게 ‘이 세상 범죄 중에 가장 나쁜 범죄가 무엇이라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여기저기서 이런저런 범죄들을 말하는데, 그는 그중 ‘사기죄’를 들었다. '아니, 어째서요?'라는 의문을 품는 우리에게 선생은 말했다. 사기꾼은 그를 믿었던 상대의 마음에 큰 상처를 주므로 사실상 한 사람을 죽이는 것과 같다고, 그래서 사기를 당하고도 살아가는 건 죽는 것보다도 가혹한 일이기에 사기야말로 젤 나쁜 범죄라는 것이다. 나는 눈에 보이지 않는 상처 또한 크게 여기는 선생의 인간적 시각에 감탄했다. 

지금 생각하면 믿었던 누군가에게 큰 사기를 당해 집안이 거덜이 났고, 어머니마저 충격으로 몸져 누우신 바람에 폭포수를 뚫고 하늘에 올라 용이 되려던 찰나, 하는 수 없이 땅으로 곤두박질치면서 학원가 용으로 머물 수밖에 없던 선생 자신의 사연이 반영된 게 아니었던가 싶기도 하다. 아무튼 당시 나는 사기꾼이랑은 상종을 말자 굳게 다짐하였고, 사기는 물론이고 이러저러한 각종 범죄에 분노하며 공부하다 말고 독서실 밖으로 뛰쳐나가는 게 일이었다. 나간 김에 포장마차에 들러 따끈한 황금잉어빵을 사 먹고, 오뎅도 사 먹고, 스페셜토스트를 주문해 기다리며 분함을 삭혔던 것이다. 그렇게 과거의 나는 정의로웠는데. 그리고 현재까지도 그런 노선을 걷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수박을 들고 있는 로. ⓒ김혜율

여차하면 남의 빚을 갚아 줄 만큼의 재력과 아량이 있는 한 선배가 있다. 선배의 돈을 빌려간 동네 사람, 동창, 아는 사람들 중에는 끝내 돈을 안 갚는 이가 있다고 했다. 야반도주를 해서 행방불명된 정도는 아니고, 오며 가며 얼굴을 보는 사인데도, 또 돈을 갚을 만큼 형편이 나아졌음에도, 끝내 빚 청산에 대해선 감감무소식인 사람들이란다. 나는 바로 그들을 사기꾼으로 분류했다. 무려 형법의 신이 지적한 최악의 범죄가 아니던가. 그래서 소리 높여 그들을 비난했는데, 웬걸! 선배는 마치 아무런 상처도 입지 않은 얼굴로, 아니 어떤 상처라도 다 나은 얼굴로 나를 달래었다. “저도 처음엔 갚으려고 했겠지. 그런데 그게 자꾸 미뤄지고 시간이 흐르다 보면.... 어느 순간엔 그러려니 하게 되는 거야. 안 갚아도 마음이 편안해지는 거지.(‘그래서 그들이 이해가 가.’라는 말이 생략되어 있었다.)” 

처음부터 나쁜 의도는 없어도, 이후에 상황을 합리화하며 지난 일을 묻어 두다 보면 사람이 그리되기도 한다는 선배 말을 들으니, 사기꾼의 습성도 이해 못할 바는 아니었다. 그런데 음, 어쩐지 낯이 익은데? 하는 느낌이 강하게 드는 건 왜일까. 바로 지금의 내 모습이 딱 그 짝이 아닌가! 밀린 원고에 대한 방관과 계속되는 침묵 말이다. 원래의 나는 원고 마감일을 하루라도 넘기면 담당기자님을 뵐 면목이 없어 발을 동동 구르는 사람이었는데,(늘 늦었고 늘 그랬다) 지금의 나는 마감을 몇 달을 넘기고도 될 대로 되라지 하며 손을 놓고 글 한 줄 쓸 생각을 안 하고 있다. 지금은 이런 구구절절한 변명으로 원고를 채우고 있지만. 아아, 그 옛날 형법의 신이 이런 나를 보면 뭐라고 꾸짖을까. 이제라도 뉘우치며 양심을 만회하고 새 삶을 살아 보고 싶다. 사기꾼이 되기는 정말 싫다. 그래서 말인데 지금에 와선 별 충격이랄 게 없는 ‘그때 그 학부모 상담주간’ 속으로 살짜쿵 들어가 보려 한다.

유치원이든, 학교든 매 학기 한 달 정도 지난 뒤에는 그동안 아이들의 유치원생활, 학교생활을 바탕으로 선생님과 학부모 간 상담이 이뤄진다. 약 2주에 걸친 상담주간, 나는 세 아이 상담에 참석하기 위해 연차를 3일이나 썼다. 상담순서는 로, 메리, 욜라 순이었다. 내게 그 순서는 음악에서 셈여림으로 치면 크레센도(점점 세게)의 느낌이었다. 로는 피아노(p)로 여리고 가볍게 시작해 메리에서는 메조포르테(mf)로 약간 세게, 욜라에 이르러서는 포르테시모(ff)! 선생님이 욜라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을 매우 세게, 포르테시모로 들려 준다 해도 담담하게 받아들이기로 다짐하였다. 우선 상담의 애피타이저 격인 로의 상담에 참석했다. 예상대로 그날의 분위기는 셈여림으로 하자면 여리디여렸음은 물론이고, 칸타빌레(노래하듯이) 느낌이 추가되었다. 

로의 학부모 상담은 10여 명의 엄마들이 아이들이 쓰는 조그마한 의자에 엉덩이를 반쯤 걸친 채로 이루어지는 집단 상담이었는데, 나는 그날에 대해 테이블 중앙에서 가녀리게 타고 있던 향초, 부드럽게 흐르던 음악, 그리고 저마다 아름답게 성장한 채 매사 조심스럽고 감격에 겨워하던 어머니들을 아련하게 기억한다. 아기 같기만 한 우리 아이가 유치원이라는 대 사회생활을 생각보다 훌륭히, 때로는 근근이라도 해 나가는 모습을 전해 듣고 울 것같이 감격에 겨워하던 어머니들이여. 나도 한땐 그랬었다! 지금의 나는 감격보다는 화를 많이 내는 어머니가 되었지만. 그래도 자신감만큼은 예전보다 많아진 것 같은데, 나는 로의 담임 선생님에게 허심탄회하게 소감을 전했다. “선생님, 저는 로에 대해선 걱정을 안 해요. 선생님도 메리, 욜라, 로, 셋 다 보셔서 아시겠지만, 로가 개중 낫거든요. 호호.” 로가 백퍼센트 완벽한 유치원생이라서가 아니라, 셋 중에 그나마 낫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걱정하지 않는다는 심정을 전한 것이다. 

나무 그늘 아래서 욜라와 로. ⓒ김혜율

막강한 걱정, 생전 처음 보는 걱정 앞에서 자잘한 걱정, 한 번 학습한 걱정은 명함도 못 내민다. 어차피 흘러가는 시간 속에 놓아 두면 사라지는 것들이니까. 그러나 그런 걱정을 처음 접하는 어머니들은 어디 그런가. 얼마나 크게 다가올지 알고 있다. 나는 자꾸 의자를 고쳐 앉으며, 차를 홀짝거리면서도 아이의 현재에 사활을 걸고 있는 엄마들에게 이런 말을 하고 싶었다. ‘아름다운 어머니들이여, 지금 하고 있는 걱정으로 너무 애쓰지 말아요. 그중 대부분은 몇 년만 지나도 아기자기하고 깜찍하게 보일 걱정들이거든요. 이런 걱정, 저런 걱정, 안 할 수는 없어도 적당히 적당히. 지나 보면 알겠지만 대부분의 걱정들이 자취도 없이 지나갑니다. 대신 마음의 여유와 믿음이라는 면역을 주면서 말이지요.’

하지만 실제로 입 뻥긋 안 했다. 그 아름다운 어머니들은 나보다 빨리, 더욱 지혜롭게 그것을 알게 될 테고, 멋지게 나아갈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로에 대해 느끼는 여유로움도 늘 옆에 훌륭한 조언자들을 두고도 그리 오래전에 획득한 것은 아니다. ‘개중 나은 로도 토끼반에서 가장 부끄러움이 많은 편인데, 그런들 어쩌겠나, 그게 로인데. 나중에 바뀌든지 말든지 하겠지.’ 하고 이제야 맘 편히 생각하고 있는 나는 사실, 좀 늦된 편이라 하겠다. 하지만 이런 약간의 감각조차 메리와 욜라 앞에선 말라버리고 만다. 작은 의자에 앉아 이쪽저쪽 엉덩이를 번갈아 걸쳐 가며 눈을 초롱초롱 빛낼 나는 메리와 욜라에 대해선 참으로 아름다운 어머니일지도 모른다. 어째서인가. 음.... 지면 관계상 이쯤에서 다음으로....(인간이 달라지는 건 참 힘든가 보다.)

 
 

김혜율(아녜스)
(학교에서건 어디에서건) 애 키우는 거 제대로 배운 바 없이 얼떨결에 메리, 욜라, 로 세 아이를 낳고 제 요량껏 키우며 나날이 감동, 좌절, 희망, 이성 잃음, 도 닦음을 무한반복 중인 엄마. 워킹맘이다. 다행히 본인과 여러 모로 비슷한 남편하고 죽이 맞아 대체로 즉흥적이고 걱정 없이 살고 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김혜율 editor@catholicnews.co.kr

<가톨릭뉴스 지금여기>의 기사는 영리 목적이 아니라면 누구나 출처를 밝히고 무료로 가져다 쓸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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