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 구영주] "썸 타는 부부", 손엘디, 바오로딸, 2019

하느님께서 보시니 참 좋았다.(창세 1,31)

흔히들 알고 있는 썸 탄다는 말이 있다. 5-6년 전쯤 이 말은 가요계와 대중매체에 갑자기 등장하면서 연인들이 새로운 사랑을 시작하기 전 서로 이 사람인가, 아닌가, 소위 말해 간을 보는 상태, 적절한 호감을 갖고 있지만 아직은 애매모호한 사이를 썸 탄다고들 했다. 심지어 사랑으로 골인하게 되는 연인관계보다 더 짜릿한 게 바로 이 썸을 타는 시기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서로에게 이상적 자기 기준의 기대가 거의 배제된 상태로 상대의 모습 그 자체를 그저 설레어 하는 가장 순수한 상태이기도 하다.

그런데 여기 한 부부가 사랑을 해서 결혼을 한 지 40여 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썸을 타고 있다. 실로 놀랍지 않은가. 그들의 꿀 떨어지는 작은 메모와도 같은 일상의 수많은 에피소드와 저자의 사유가 담긴 작은 편지와도 같은 메시지들은 정말이지 사랑스럽다 못해 앙증맞다. 저자는 이 책을 40주년 결혼기념일에 자신의 아내에게 바친다고 작가의 말에 담았다.

남편 손엘디, 그의 아내 배 카타리나. 이 두 부부는 한국가톨릭 교회 안에서 1999년부터 12년간 포콜라레 새가정운동 한국 책임자로 일했고, 2000년부터 가정복음화를 위한 강연을 지속적으로 해 왔으며 2007년 교황 베네딕토 16세를 개인 알현했다. 2017년부터는 한국천주교주교회의 가정과 생명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두 부부는 20여 년간 무료로 가정문제를 상담하며 수많은 부부를 도왔다.

하지만 자신들이 이렇게 되기까지는 먼저 자신들 안에 찾아온 뼈아픈 실연의 시간들이 있었고 자주 이혼을 생각할 만큼 서로 너무나 맞지 않아 힘들었다고 고백한다. 책의 저자인 손엘디 작가는 세상을 동그랗게 보는 여자와 사각형으로 보는 남자가 만났으며 과거 우리는 물과 기름 같은 사람들이었다고 고백한다. 여느 부부들과 마찬가지로 두 사람도 10여 년을 치열하게 싸우다가 어느 날 순간 깨닫게 된다.

서로 상대방이 틀렸다, 그러니 당신이 바꾸어야 한다가 아니라 당신과 나는 다르며 그 다름과 고유성을 인정하고 서로의 모습 안에 그것들을 담아내고 녹여 내야 한다는 것을. 저자의 표현대로 사각형 마음에 동그라미 마음을 담게 되었고 동그라미 마음 안에 사각형의 마음을 담게 되었던 것이다. 이처럼 상대방을 위해 자신의 마음을 먼저 변화시켜 간 부부. 필자 역시 가정생활을 하는 사람으로서 이런 이상적인 말들이 우리의 가슴속에 그리고 삶의 실천으로 내려오기까지는 얼마나 깊고 큰 인내의 시간들이 필요한지 감히 헤아릴 수 없을 듯하다. 하지만 두 부부는 오직 하느님의 말씀만을 붙들고 살아왔다. 순교란 거창한 것이 아니라 어쩌면 삶 속에서 자기 뜻을 죽이고 즉, 내가 완전히 죽고 너 안의 하느님이 살아나는 가장 크나큰 영성적 체험이자 결심이 아닐까.

"썸 타는 부부", 손엘디, 바오로딸, 2019. (표지 제공 = 바오로딸)

우리는 흔히들 사랑하면, 반쪽짜리 목걸이 신화에 집착한다. 나의 반쪽을 맞추어 줄, 그리고 채워 줄 그래서 나를 완성시켜 줄 또 다른 반쪽을 찾는다. 영혼의 짝패를 만들려 한다. 하지만 이것은 사랑에 대한 완전히 잘못된 허상이자 신화일 뿐이다. 우리는 이미 온전하다. 하느님의 모상대로 창조된 결핍 없는 온전한 하나의 인격체다. 하지만 세상의 신화는 나에게 반쪽인 당신이 필요하고 그런 당신만이 나의 부족을 채워 줄 수 있다는 잘못된 믿음으로 자신만의 반쪽을 찾아 헤매게 한다. 그렇게 찾아 헤맨 존재에게 우리는 나를 완성시켜 줄 구원자처럼 이상적 기대를 한다. 여기에서부터 우리의 사랑은 어긋나기 시작한다. 그것은 사랑이 아닌 그저 나의 결핍을 채우기 위해 비롯된 허기진 구걸일 뿐이다. 게다가 상대방 역시도 나에게 그런 기대감을 갖게 되기 마련이므로 우리는 자신의 욕구와 이상을 상대가 채워 주지 않는다고 느끼며 심지어 상대방이 변했다고 생각하고 자주 질책하며 분노를 느낀다.

우리는 세상에서 사랑을 완전히 오독하고 있는 것이다.

사랑은 그 자체로 이미 온전하며 우리는 그분의 모상대로 창조되어진 ‘사랑 자체’다. 이미 ‘온전한 나’와 이미 ‘온전한 너’가 만나서 그 사랑이 융화되고 서로를 성장시키는 더 큰 사랑으로 나아갈 때야 비로소 진정한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저자 역시도 처음에는 이런 시행착오를 무수히 겪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런 수많은 상처와 아픔의 시간을 지나 자연스레 깨닫게 된 한 가지, “함께 살아도 혼자 사는 것처럼, 혼자 지내도 같이 지내는 것처럼”이라는 사랑의 본질을 깨닫기에 이른다. 너와 나는 각각 온전하고 독립된 개체이며 누구도 누구를 위해 일방적으로 종속되거나 희생하거나 하지 않고 대등하게 서로를 존중하며 주체적으로 살아갈 때 그 사랑은 우리를 아주 강한 결속의 끈으로 이어 줄 것이다.

필자 역시도 상대가 나에게 맞추어 주길 바라는 마음이 생기는 순간 결혼생활이 불행해진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나의 아내는, 나의 남편은, 나의 기대를 맞추어 주기 위해 내게 온 사람이 아니다. 그리고 나 역시도 마찬가지다. 서로에 대한 기대를 버리고 서로의 모습을, 나와는 다른 서로의 모습 속에서 그 사람 안에 고유하게 심어 놓은 하느님의 모습, 그 본질만을 바라볼 때 아이처럼 단순하고 기쁘게 사랑하며 살 수 있다. 그러니 그런 지혜와 사랑의 본질을 깨달은 저자는 말한다. “우리는 부부지만 상대에 대한 애착을 버렸다” 애착은 다른 말로 집착이며 나에게 맞추어 주길 바라는 마음이다. 내 뜻대로 되길 바라는 마음이다. 하지만 이런 마음에서 결혼생활의 고통이 시작된다는 것을 저자는 10여 년의 다툼과 갈등 속에서 명징하게 바라보며 알게 되었던 것이다.

40여 년째 여전히 썸 타는 부부

이게 가능할까? 가능하다. 썸녀에게 이것저것을 요구해 보라, 썸남에게 자신에게 맞추라고 요구해 보라, 틀림없이 둘 다 도망갈 것이다. 썸을 탈 때는 서로에 대한 요구가 없다. 기대도 없다. 그냥 서로의 존재 자체가 설레고 좋다. 요구가 없지만 가장 설레고 짜릿하며 사랑으로 나아가는 가장 황홀한 시간이기도 하다. 이것을 결혼생활에서도 유지한다는 것은 대단한 축복이며 두 부부의 노력이 만들어 낸 크나큰 열매다. 두 부부는 정말이지 사랑의 고수가 틀림없다.

여전히 서로를 보면 설레고 내가 뭐 좀 더 해 줄 게 없나를 고민하는 부부. 그러나 어느 순간 상대에 대한 집착은 과감하게 끊어 내는 부부. 이런 삶의 모습으로 정착하기까지 두 부부가 견뎌 냈을 아픔과 노력의 시간에 저절로 고개가 숙여지며 깊은 감동의 박수를 보내고 싶다. 이분들의 모습을 볼 때면 한 가지 필자의 마음속에 떠오르는 성서의 구절이 있다.

“하느님 보시기 참 좋았다.”

어쩌면 사람을 남자와 여자로 만드시고 서로에게 좋은 짝으로 곁에 두실 때 하느님의 마음은 모든 부부가 지금 이들 부부처럼 독립되고 주체적인 각자의 인격을 해치지 않으면서 아낌없이 사랑하는 바로 이 모습을 원하셨으리라는 것을.

많은 부부가 상대에게 여전히 기대하고 요구한다. “왜 이런 식으로 해.”, “당신은 이걸 좀 고쳐야 해.”, “당신은 이게 틀렸어.” 하지만, 거꾸로 생각해 보자. 내가 상대방에게 끊임없이 이런 평가들을 받을 때 우리 안에는 사랑보다 미움의 감정이 싹틀 수밖에 없다. 사실 이런 이야기를 쓸 때 필자는 고통스럽다. 결혼생활을 하는 모든 이들을 대표해 이 대목에서 속으로 외친다. (그걸 누가 모르나?)

사실 이런 이상적 이야기는 누구나 할 수 있다. 필자 역시도 그렇다. 그것이 가슴으로 내려오기까지가 너무나 힘든 것이다. 저자가 지난날의 자기 모습을 밝은 빛 안에서 바라보며 회개하고 자신의 아내를 사랑하게 된 이야기는 지금 현대를 살아가는 모든 부부들에게 하나의 이상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저자의 숨은 노력과 땀방울들이 필자는 행간에서 느껴진다. 그리고 그것이 노력하면 이룰 수 있는 천국의 삶이라는 것을 생생히 보여 준다.

저자가 쓴 일상의 에피소드들은 작다 못해 보잘것없어 보인다. 조금 유치하고 유아적으로 느끼는 독자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부부생활이고 삶이다. 부부는 치약을 어디서부터 짜서 쓰는지, 양말을 왜 뒤집어 벗어 놓는지와 같은 아주 지극히 사소한 것에서부터 갈등하는 존재들이다. 이런 작고 보잘것없는 것으로부터의 균열이 이혼까지 몰고 가기도 하는 것처럼 이렇게 작고 보잘것없는 것에서부터의 사랑이 우리를 일으켜 세운다. 이 지점은 무척이나 중요하다.

이 책은 그런 사소한, 너무나 사소해서 이야깃거리조차 될 것 같지 않은 저자의 단순하고 담백한 일상을 통해 부부가 어떤 식으로 서로의 존재와 상황을 이해하고 해석하고 받아들이는지를 잘 보여 주고 있다. 쉽고 재미있게 그리고 가슴 찡한 감동으로 보여 준다. 칠순을 바라보는 나이의 저자 모습이 그리고 그의 아내의 모습이 얼마나 귀엽고 사랑스러운지 그들의 일상은 마치 천국에서 사는 어린 아이 같은 모습이다. 읽다 보면 웃음이 나고 공감이 되며 마음이 찡해지는 우리 자신들의 이야기다.

나는 그 누구에게도 사랑받을 권리가 없다.
오직 사랑할 의무만 있을 뿐이다.

저자의 이 구절이 마지막 책장을 넘길 때까지 필자의 가슴에 작은 파문을 일으키며 감동의 무늬로 남아 있다. 누군가 나를 사랑해 주는 것이 마땅하고 당연한 것이 아니라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사랑받을 권리를 내세울 수 없는데도 부족한 내게 사랑을 주는 나의 배우자가 얼마나 소중하며 하느님께서 보내 주신 더없이 귀한 선물인지를 요즘 들어 필자도 깊이 느끼며 감사한다. 그래서일까. 종종 눈치 없이 엉뚱한 소리를 하던 남편이 가끔 설거지를 할 때면 이상스레 귀여워 몰래 가서 엉덩이를 토닥이며 말한다. 있는 그대로 어리바리한 당신을 사랑해! 

구영주(세레나)
11살, 세례 받고 예수님에게 반함. 뼛속까지 예술인의 피를 무시하고 공대 입학. 돌고 돌아 예술대학원에서 서양화를 전공하며 피는 절대 속여서는 안 됨을 스스로 증명. 아이들과 울고 웃으며 화가로, 아동미술치료사로 성장.
칼럼과 서평 쓰기가 특기며, <가톨릭 다이제스트> 외 여러 잡지에서 자유기고가로 활동. 현재 남편과 10살 아들, 두 남자와 달콤 살벌한 동거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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