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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 도덕 그리고 신앙

기사승인 2019.07.11  16: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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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상우 신부] 7월 14일(연중 제15주일) 신명 30,10-14; 콜로 1,15-20; 루카 10,25-37

저는 고등학생 때 사회과목을 참 좋아했습니다. 그중에서 ‘법과 사회’와 ‘정치’라는 과목에 많은 흥미를 느꼈습니다. (혹시나 이 글을 보는 고등학생 분들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그 두 과목이 통합되어서 '법과 정치'라는 과목으로 개정되었습니다.) 사람이 사회를 살아가는 데 있어서 직접적인 이야기들을 많이 다루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법과 사회’ 1단원의 첫 장에 나오는 법의 의의와 구조라는 테마 가운데에서 법과 도덕의 관계에 대해서 설명하는 부분이 나옵니다. 여기에 처음으로 등장하는 주제가 있습니다. 바로 ‘착한 사마리아인의 법’(Good Samaritan Law)입니다. 이 법의 배경이 되는 것이 루카 복음 10장, 바로 이번 주일의 복음입니다.

이 법은 ‘자신에게 특별한 피해가 유발되지 않은데도 타인의 생명이나 신체에 중대한 위험이 발생하고 있음을 보고도 구조에 나서지 않는 경우에 처벌이 가능함’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유럽의 많은 국가가 이 내용을 형법에 적용시키고 있는데, 예를 들어 프랑스 형법 제223-6조는 “위험에 처해 있는 사람을 구조해 주어도 자기가 위험에 빠지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자의로 구조해 주지 않은 자는 5년 이하의 징역, 혹은 7만 5000유로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는 이 ‘착한 사마리아인의 법’이 직접적으로 적용되지 않고 있습니다만 소극적 의미로 활용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 5조 2항은 이렇게 규정되어 있습니다. ‘생명이 위급한 응급환자에게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응급의료 또는 응급처치를 제공하여 발생한 재산상 손해와 사상에 대하여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이 없는 경우 그 행위자는 민사책임과 상해에 대한 형사책임을 지지 아니하며 사망에 대한 형사책임은 감면한다.’ 바로 위급한 상황에 처한 다른 사람을 돕다가 의도하지 않은 불의의 상황에 처하더라도 정상참작 또는 면책을 받을 수 있다는 점입니다. 여전히 법학계에서는 ‘착한 사마리아인의 법’을 실제 형법에 적용시키는 데에 있어서 많은 논쟁이 있습니다. 

강도를 만난 사람에게 이웃이 되어 준 사마리아인. (이미지 출처 = Pixabay)

독일의 법학자 예링은 “강제성 없는 법은 타지 않는 촛불과 같다”는 말을 남겼습니다. 그렇게 법과 도덕의 가장 결정적 차이는 바로 강제성인 것입니다. 사실 ‘착한 사마리아인의 법’에 대한 논쟁의 중심이 있는 것도 바로 강제성입니다. 도덕에 강제성을 부여하는 것에 대해서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아니 질문을 한번 바꾸어 보겠습니다. 강제성이 없다고 해서 우리는 그로부터 자유로울까요? 사실 우리는 신앙생활 속에서도 끊임없이 이 질문과 대면하게 됩니다. 신앙생활에도 강제성은 없습니다. 세례를 받음으로 인해 신자로서의 기본 의무가 부과되지만 엄연히 말하면 그것을 지키지 않는다고 해서 형법상의 처벌을 받지는 않습니다. 앞의 ‘착한 사마리아인의 법’ 앞에서 던질 수 있는 하나의 답안 ‘꼭 그걸 해야 되는 건 아니잖아’라는 말이 신앙생활 안에서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는 것이지요. 

조금만 우리의 삶을 생각해 본다면 중심이 되는 것은 강제성이 아님을 인정하게 됩니다. 문제는 주님의 말씀대로 얼마나 하느님과 이웃을 사랑하느냐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이 말씀하시는 그 사랑은 오늘 1독서가 지적하는 바와 같이 추상적이지 않고 현실적입니다. ‘그것은 하늘에 있지 않다.’(신명 30,11) ‘그것은 하늘에 있지도 않다.’(30,12) ‘사실 그 말씀은 너희에게 아주 가까이 있다.’(30,14) 결국 강제성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길은 문제는 사랑을 실천으로 옮기려고 하는 나의 의지입니다. 복음의 첫 부분에 등장하는 내용에 집중해 봅니다. 자신이 율법을 잘 알고 있음을 인정받은 율법학자는 ‘자기가 정당함을 드러내고 싶어서’(루카 10,29) 예수님께 누가 이웃임을 묻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웃의 범위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이웃은 사랑의 실천으로 정해짐을 그 사람에게 일러주고 계십니다. “가서 너도 그렇게 하여라.”(10,37) 도덕에 그리고 신앙생활에 강제성이 없다 해서 우리는 자유롭습니까? 강제성은 구체적인 행동을 부과합니다. 하지만 우리 신앙인에게 있어서 구체적인 행동을 이끄는 것은 바로 강제성이 아니라 1독서와 복음이 말하는 바와 같이 하느님과 이웃에 대한 사랑입니다. 그리고 그 사랑은 이스라엘과 사마리아인이라는 비유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인간과 인간이 가지고 있는 경계를 허물어 줍니다.

한 가지 덧붙이고 싶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너는 이 세 사람 가운데에서 누가 강도를 만난 사람에게 이웃이 되어 주었다고 생각하느냐?”(루카 10,36)라는 주님의 대답에 율법학자는 명시적으로 ‘사마리아인입니다’라고 대답하지 않고 “그에게 자비를 베푼 사람입니다.”(10,37)라고 둘러서 표현합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사마리아인들을 매우 부정적으로 바라보았기 때문입니다. 그걸 잘 아시는 주님께서는 의도적으로 사마리아인을 이웃의 본보기로 예를 드셨습니다. 그렇기에 율법학자의 입에서 나왔어야 할 답은 ‘사마리아인입니다’가 되었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나의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 나와 성향이 다른 사람일지라도 잘한 것은 잘했다고 인정할 수 있는 사회, 그런 아름다운 사회가 되기를 더불어 소망해 봅니다.

유상우 신부(광헌아우구스티노)

천주교 부산교구 사제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유상우 editor@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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