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가톨릭여성복지협의회 30주년 기념 토론회

10일 서울가톨릭여성복지협의회가 30주년을 맞아 가정폭력피해자 보호시설 퇴소 뒤 여성들의 경제적 자립 지원 방안을 모색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서울가톨릭여성복지협의회는 창립 30주년을 맞아 “가정폭력피해자 보호시설 퇴소 여성의 경제적 자립 실태 및 정책 방향”을 주제로 기념 토론회를 열고, 각 보호시설을 거쳐 자립하는 여성들이 실질적으로 겪는 경제적 어려움이 무엇인지 조사한 결과를 바탕으로 지원 방안을 제안했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가정폭력피해자보호시설 소숙희 시설장이 서울지역 보호시설 퇴소 여성 160명을 대상으로 “국가 지원 형태, 소비 및 부채, 자녀 돌봄, 직업 훈련, 자립과 경제활동 현황” 등을 설문과 집단 면접을 통해 조사한 결과를 발표했다.

먼저 소숙희 씨는 1997년 ‘가정폭력 방지 및 피해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가정폭력방지법)이 제정되면서 가정폭력이 가정 안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문제이며, 국가의 정책 개입의 영역임이 공포되었지만, 여전히 가정폭력 피해여성만을 대상으로 하는 특화된 법적, 제도적 지원체계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그는 가정폭력방지법이 제정된 지 20여 년이 지났고, 피해 여성을 위한 정책과 사회서비스는 구체적이고 다양해졌으며, 정책적 수준도 향상되었다면서도, “그러나 피해 여성들이 사회적 자원을 적극 활용하고, 주도적 삶을 살기 위한 자립 능력을 충분히 마련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으며, 안전 보장과 취업, 자녀 돌봄의 책임 등 복합적인 어려움에 직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주요한 조사 결과를 보면, 먼저 이들의 주택 소유나 거주 형태는 보호시설 퇴소 형태에 따라 다른데, 1년 미만일 경우 주거지원에 따른 그룹홈이 가장 많은 30퍼센트를 차지했다. 또 보호시설에 머무는 기간은 54퍼센트가 6개월에서 1년 미만으로, 이들이 보호시설 퇴소 뒤 자립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평균 4년 1개월이지만, 최소 1개월에서 최대 19년까지 큰 차이를 보인다.

국가 지원을 받는 비율은 약 35퍼센트로, 기초생활수급, 차상위계층, 한부모가족 지원과 기타 지원이다. 국가지원을 받지 못하는 경우는 성년 자녀가 있는 50대 이상의 여성들로 부양자가 있는 경우다.

어려운 일에 도움을 요청할 곳이 있느냐는 질문에는 가족과 친구, 사회복지사를 포함해 아무에게도 도움을 받을 수 없다고 답변한 비율이 20퍼센트였다.

보호시설 퇴소 뒤 자립 단계에서 경제적으로 가장 부담이 되는 항목은 집세, 관리비 등 “주거비”로 자녀교육 및 양육비, 식료품, 의료비, 부채 상환 항목 가운데 66퍼센트가 주거비 부담을 호소했다.

보호시설 지원과 관련해, 지원 서비스 이용은 주로 상담(98퍼센트), 프로그램, 의료, 법률, 교육, 직업훈련 순으로 모두 50퍼센트 이상의 높은 이용률을 보였다. 지원 서비스 만족도는 문화체험이나 미술치료 등이 가장 높았고 의료, 상담, 직업훈련, 법률, 교육지원 순으로 만족했으며, 가장 도움이 되는 것은 치료를 위한 상담과 자립을 위한 직업훈련이다.

각 분야별 직업훈련 가운데서는 반찬창업, 가정폭력 전문상담원, 운전면허, 사회복지사, 독서지도사, 요가 강사 등이 가장 많았으며, 직업 훈련이 도움이 되었느냐는 물음에는 도움이 되었다는 비율이 약 74퍼센트였다. 직업훈련이 도움이 되지 않은 이유로는 “불충분한 교육 기간, 본인의 적성”을 들었다.

7월 10일 서울가톨릭여성복지협의회가 30주년을 기념해, 가정폭력 피해여성들의 보호시설 퇴소 이후 자립에 대해 토론했다. ⓒ정현진 기자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이들은 보호시설 퇴소 후 경제적 어려움을 얼마나, 어떻게 겪고 있을까.

조사 응답자 가운데 42퍼센트가 병원비 부담으로 진료를 받지 못한 적이 있다고 응답했다. 다음으로는 자녀교육과 양육을 위한 부채발생과 대출, 실직, 월세나 전세 보증금 문제 등이 가장 많았다. 또 경제적 어려움은 대부분 2-3가지를 한꺼번에 겪고 있다.

또 가장 기본적으로 안정되어야 할 주거와 취업 문제가 해결되기 어렵고, 취업을 하더라도 취업형태가 불안정하거나 임금 수준이 200만 원 미만(50퍼센트)으로, 경제적 악순환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상황이다.

“주거문제가 가장 어려웠어요. 취업 문제는 그렇게 걱정을 안 했어요. 처음 남편과 떨어져 있기만 하면 살 것 같았어요. 건강하니까, 뭐든 하라면 할 거니까.... 그런데 집은 정말 막막했어요.”

“퇴소하고 아는 언니 집에서 생활했는데, 눈치가 보여서 쉼터 도움으로 주거지원 그룹홈에서 아들과 함께 생활하고 있어요. 이 경험을 하다 보니 주거문제가 제일 중요한 것 같아요. 그룹홈도 기간이 정해져 있고, 아기를 보면서 생활비를 벌기가.... 많이 받아야 200만 원인데, 저금을 한다고 해도 월세 보증금 밖에 안 되니....”

설문조사 외 5명을 대상으로 심층면접 조사를 진행한 결과, 조사에 참여한 여성들은 퇴소 이후 자립준비에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주거문제’라고 답했다.

소숙희 씨는 보호시설에서 퇴소한 가정폭력 피해 여성들이 온전한 자립을 위해서는 정서적, 사회적 자립과 함께 경제적 자립을 위한 사회적 지원체계를 구축해야 한다면서, “법적 제도적 차원의 통합 지원체계 구축, 주거 급여 제공, 고용서비스 확대, 자녀돌봄 서비스 지원 강화, 각 지역의 지원체계망 형성” 등을 제안했다.

그는 무엇보다 법적, 제도적 차원의 통합적 지원 체계를 위해서는 현행 가정폭력방지법, 한부모가족지원법 등에 가정폭력보호시설 퇴소여성의 자립을 위한 적극적 특별지원 규정이 신설되어야 한다며, “이는 보호시설에서의 안전한 보호, 퇴소 뒤 안정적 사회정착을 위한 성인지적 관점의 정책 구상과 함께 사회적 보호 책임의 제도화를 위해 가장 우선시해야 할 정책 과제”라고 강조했다.

이어진 토론에서 서경남 상임대표(전국가정폭력피해자보호시설협의회)는 “가정폭력 피해 여성의 통합 자립 지원 모델 개발과 지원 체계 구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서 대표는 자립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주거지원, 취업을 위한 직업훈련 등이지만, 주거지원은 턱없이 부족하고 직업 훈련은 개인의 적성이 고려되지 않은 채 진행되는 등 허점이 있다고 지적하고, 구체적 통계를 기반으로 현실적 지원과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자립은 경제적 부족함에서 벗어나는 것뿐 아니라 스스로를 지키고 당당하게 자기 자리를 찾는 것, 가해자의 폭력에 대항하기 위한 기본 조건이며, 폭력 피해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한 최선의 과제”라며, “이들의 치유와 자립을 위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는 쉼터 이후에, 지원이 단절되지 않고, 심리적, 경제적, 사회적으로 균형을 갖춘 통합적 회복을 지원하기 위한 지원 체계 구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마소현 활동가(수원 여성의전화)는 자신의 쉼터 체험을 통해, “피해여성들의 쉼터는 남성의 군대와 같은 곳이었으며, 이들은 치유와 쉼이 아니라 스스로 생활을 위해서 끊임없이 노동을 이어 가야 했던 곳, 퇴소당하지 않기 위해 또 다른 갑을 관계를 겪어야 했던 곳”이라고 말했다.

그는 “보호시설에 입소한 여성들이 사회로부터 받는 지원은 마땅한 권리이므로 보다 당당히 받을 수 있어야 한다”며, “정책 담당자들은 자립 성과를 수치화하는 것에 머무를 것이 아니라 당사자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라”고 요청했다.

신나래 전문위원(서울대 글로벌사회공헌단)은 “피해여성의 자립은 탈폭력의 과정에서 이해되어야 한다”며, “피해여성들에게 경제적 자립은 가해자와의 불평등한 권력관계를 재편하고 나아가 탈폭력을 시도할 수 있는 원동력으로 작용한다”고 말했다.

그는 피해여성들은 안전과 자립이라는 다면적 욕구가 있고, 폭력으로부터 벗어나는 과정에서 회복 중인 여성들에게 경제적 자립을 위한 프로그램 참여가 하나의 강요가 되어서는 안 된다며, “직업 훈련의 기회 제공뿐 아니라 기존의 직업과 직장을 안전하게 유지할 수 있는 방안도 제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날 토론회에 앞서 유경촌 주교는 “배척과 부당한 대우, 폭력에 시달리는 여성들은 이중으로 가난한 이들”이라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말을 전하며, “여러 고통 속에 있는 여성들에 대한 국가의 지원이 향상되었지만, 교회 역시 할 수 있는 몫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또 “이 토론회가 이 문제의 관심을 새롭게 불러일으키는 출발점이 되기를 바란다”며, “교회 안에서도 보다 구체적인 도움이 활성화되도록 방법을 더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올해 30주년을 맞는 ‘서울가톨릭여성복지협의회’는 1989년 6월 15일 ‘착한목자의집’ 전신인 마리아자매원, 여성생활연구원, 여성의 집, 어머니의 집, 막달레나의 집, 사마리아의 집 등 6개 시설이 모인 여성복지위원회로 시작됐다. 1998년 ‘가톨릭여성복지회’로 명칭이 바뀐 뒤, 2000년 현재의 서울가톨릭여성복지협의회가 됐다. 미혼모시설 ‘마음자리’, 꿈터새터민지원센터, 서울이주여성디딤터 등 모두 24개 시설이 참여한다.

이들은 가정폭력상담, 가정폭력 피해여성 쉼터, 이주여성 쉼터, 성매매피해 청소년과 일반여성 시설, 미혼모자생활시설, 북한이탈여성, 입양시설 등 다양한 폭력과 가난에 노출된 여성들의 존엄성 회복을 위해 활동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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