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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생명운동, 더 넓은 생명의 지평으로

기사승인 2019.07.15  18: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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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여기 좌담회] 교회 생명운동 앞으로 무엇을 함께 해야 할까

2019년 4월 11일 헌법재판소는 낙태를 처벌하는 현행 형법이 ‘헌법불합치’라고 판단했다.

낙태처벌이 시작된 지 66년 만이었다. 헌재는 헌법불합치 선고에 따라 관련법을 2020년 말까지 개정하라고 국회에 주문했으며, 이때까지 법률을 개정하지 못하면, 낙태 처벌법은 폐지된다.

이에 낙태죄 폐지를 반대하며, 서명운동 등을 전개해 온 가톨릭교회는 즉각 “유감”을 표하고, “임신과 출산을 여성 개인에게 떠넘긴 채, 임신한 여성을 위한 정책적, 문화적 노력에 소홀했음을 인정하고, 이를 깊이 성찰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입장을 밝혔다.

또 신중한 후속 입법 절차를 주문하고, 생명의 문화를 지켜내는 건강한 사회를 기대하며, 이를 위해 교회도 노력할 것을 선언했다.

‘살인하지 말라’는 십계명부터 교회 문헌까지 그 어떤 생명도 함부로 대하거나 죽여서는 안 된다는 교회의 가르침은 자명하고도 단호하다.

따라서 헌재 판결 이후, 법안 수정을 비롯해 보다 성숙하고 보편적인 생명존중 문화를 만들어 가야 한다는 과제의 무게와 이를 위한 교회의 몫은 더욱 커졌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는 낙태 찬반, 태아의 생명권과 여성의 자기결정권 사이의 갈등, 죄의 여부와 처벌 문제, 생명을 지켜야 한다는 당위성과 현실 삶 사이의 간극을 함께 극복하고 넘어서기 위해서, 교회가 가져야 할 태도는 무엇인지, 어떠한 방향을 설정하고 실천 방법을 제시해야 할지 논의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이번 좌담회에는 강석주 씨(카타리나, 서울대 여성학협동과정 박사 수료), 이전수 씨(라파엘, 생명공학연구소 연구원), 박은미 씨(헬레나, 한국가톨릭여성연구원 대표)가 참석했다.

서울대 여성학협동과정 박사과정에 있는 강석주 씨는 "교회가 구체적으로 여성들이 겪는 몸경험에 대해 귀 기울여 달라"고 요청했다. ⓒ정현진 기자

“논의의 장 없는 하달식 생명운동, 오히려 교육과 참여 기회 놓친다”
“교회, 임신 가능한 여성들에게 필요한 삶의 요건이 충분한지 물어야”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 우선, 과거부터 현재까지 교회가 생명운동을 어떻게 해 왔는지 돌아보고 평가해야만 앞으로의 방향을 제안할 수 있을 것이다. 지난 생명운동에서 교회는 무엇을 지켰고, 또 놓친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

박은미 : 질문을 받고 지난 낙태죄 폐지 반대 서명운동을 생각해 봤다. 당시 각 본당에서 서명을 받았는데, 낙태에 대한 윤리적 문제, 생명을 지키기 위한 교회의 역할에 대해 적어도 본당에서 한두 번은 같이 이야기하고, 성찰한 결과로 서명해야 했다. 하지만 생명의 당위성만으로 무조건 서명해야 한다는 태도였다.

신자들 가운데 50대 이후는 대체로 임신이나 피임문제를 떠난 입장에서 교회가 이르는 대로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아이의 생명을 지키는 것은 당연하므로 서명에 참여했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옳은 이야기라도 사제들조차 인원수를 채우기 위한 일방적 서명에 상당히 비판적이었다.

교회조차 태아의 생명권과 여성의 자기결정권 사이의 문제로 이분화하는 프레임을 그대로 가져오면서, ‘태아의 생명’을 선택해야 한다는 의견에 다른 의견을 보이면, 반교회적, 반생명적인 사람으로 여기는 것은 교회가 놓친 부분이라고 본다.

헌재 판결이라는 긴급한 상황이 끝났으니, 이제라도 각 본당에서 생명윤리에 대한 강의를 하거나 논의의 장을 마련해 신자들이 오늘날의 생명 문제를 성찰하는 기회를 갖도록 해야 한다. 그런 과정 없이 답이 정해진 하달식 운동은 오히려 교육의 기회를 잃게 된다.

강석주 : 낙태, 임신중지는 그 자체로 고유한 해결책이 필요한 특수한 문제다. 그런데 교회가 이 문제를 다루면서 이러한 핵심이 흐려지고 있다.

세상 인구의 절반이 임신할 수 있다. 그런데 원치 않는 성적 접촉, 성폭력, 불완전한 피임법 등 여러 이유로 임신이 중단될 수 있다. 그런데, 이런 상황을 “태아가 죽는다”는 프레임만으로 본다. 교회는 임신 가능한 모든 이들에게 필요한 삶의 요건이 충분하느냐는 질문을 하지 못하고 있다.

또 교회가 생명을 지켜야 한다는 높은 가치, 태아 생명 수호의 입장에서 낙태, 사형제, 안락사 등을 함께 다루기 때문에 ‘여성의 몸 경험으로서 임신중지’라는 고유한 문제의 본질을 보지 못하는 것 같다.

이전수 : 공감한다. 서명을 받을 당시 본당 주일미사에서 강론으로 서명운동에 대한 교구장 메시지를 읽었다. 그러나 내용에는 서명을 해야 한다는 당위만 있을 뿐 이유나 맥락에 대한 설명이 없었다. 아마 다른 본당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물론 생명을 지켜야 하고, 낙태는 일어나면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처벌 조항을 유지해 달라는) 서명 운동을 왜 해야 하는지는 설명하지 않았다.

성교육도 마찬가지다. 교회는 인공피임을 반대해 자연피임법 외의 피임법이나 대안을 잘 가르치지 않는다. 교회의 가르침과 달리, 통계적으로 청소년 성경험 비율이 올라가고 있는데, 피임이나 성에 대한 충분한 교육이 없는 상태다. 이런 상황에서 준비되지 않은 결혼이 답일 수도 없다. 교육과 문화적 바탕이 없는 상태에서 순결을 강요하거나 미성년자의 성경험이 무조건 나쁜 것이라고 몰아가는 것은 구시대적 발상이다. 낙태 문제에 대한 논의 전에 이런 부분이 선행되거나 동시에 진행돼야 하는데, 충분하지 않다.

2017년 12월 2일 명동성당 앞에서 낙태죄 폐지 반대 서명운동이 진행되고 있다. ⓒ지금여기 자료사진

“종교적 죄와 사회법적 죄는 구분되어야 한다”
“교회 내 낙태 경험자에게 수치심 주는 방법, 생명운동 목적에 맞지 않아”

<지금여기> : 생명운동에 대한 교육이나 생명존중 문화 확산을 위해서도, 교회 안에서 공론화가 더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앞에서 나왔다. 그러나 낙태를 찬성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낙태를 막기 위해서는 다른 방향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입장조차 드러내기 힘들다. 또 설명이나 논의 과정조차 없는 서명운동의 일면이 생명운동의 본질과 맞지 않게 ‘폭력적’이라는 지적도 들린다. 이런 평가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박은미 : 낙태한 여성이 고해성사를 하면, 사제는 그 여성을 사목적으로 보살핀다. 죄의식을 너무 갖지 말라든가,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먼저 위로한다고 들었다. 교회가 공적으로는 “낙태는 안 된다”는 마지노선을 놓치면 안 되기 때문에, 강경하지만, 개별적으로는 사목적 배려를 한다는 것이다.

헌재 판결은 “낙태를 죄로 보지 말자”는 선언을 한 것인데, 교회는 교리적, 윤리적으로 그것을 놓을 수 없다. 죄로 보지 않으면 생명을 지킬 수 없다는 것이고, 그래서 헌재 판결이 교회로서는 절박한 문제였다.

이전수 : 교회 입장은 이해한다. 그러나 종교적 죄와 형법상 죄는 구분되어야 한다.

교회의 생명운동은 종교적, 윤리적 죄의식과 관념을 따지는 차원인데, 이를 세속의 형법과 동일시한다는 생각이다. 교리와 사회법이 동일시되면서, 사회법이라는 한 축이 무너지면 교회 안에서도 혼란이 일어나고 지켜야 할 것을 잃게 된다는 두려움이 있다. 먼저 이 두 가지를 분리해야 한다. 분리되지 않으니 헌재 판결을 두고 결론이 나지 않는 말이 서로 반복되는 것이다.

강석주 : 종교적으로 낙태가 죄라는 입장을 지켜야 하는 것은 이해한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그 방법이 폭력적이었다는 사실은 꼭 짚어야 한다.

전 세계적으로 이뤄지는 임신 가운데 25퍼센트가 인공유산으로 종결된다는 통계가 계속 보고되고 있다. 또 한국의 낙태 관련 실태조사에 따르면, 가임기 여성의 19.9퍼센트가 임신중지 경험을 한다. 불법이기 때문에 과소추정됐을 것과 국가정책으로 산아제한을 장려하던 시절을 고려하면 훨씬 더 많은 여성들이 임신중지 경험을 했을 것이고, 이 가운데 가톨릭 신자 여성도 분명히 있다. 그런데 마치 교회 안에 경험자들이 없는 것처럼 행동하는 것에 모욕감을 느끼게 된다.

성직자, 수도자들이 지난해 겨울부터 태아 발모양 배지를 달기도 했는데, 교회 안에 있는 임신중지 경험자 입장에서는, “당신이 죽인 아기의 발 모양”이라는 메시지다. 여성들이 모멸감과 수치심을 느낄 수 있다는 것에 배려가 없었다.

2018년 보건복지부 조사에 따르면, 2018년 10월 현재, 임신경험 여성의 19.9퍼센트가 인공임신중절을 경험했다. 이 여성들 가운데 미혼은 46.9퍼센트, 기혼(법률혼)은 37.9퍼센트였다.

또 2016년 5월 미국 낙태연구단체 구트마커연구소와 세계보건기구가 각국 정부 통계를 바탕으로 가임기 여성의 낙태율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2010년부터 4년간 연평균 낙태 건수는 5600만 건으로 임신 4건 당 1건의 낙태가 이뤄졌다.

 

이전수 : 이런 방식의 낙태 반대 운동은 그 목적을 위해서도 도움이 안 된다고 생각한다. 또 다른 아쉬움은 낙태를 고민하는 여성들의 현실적 어려움을 교회가 전혀 보듬지 못한다는 것이다. 교회는 현실적 어려움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그들이 낙태를 선택하지 않도록 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박은미 : 교회가 미혼모를 돕기 위한 활동을 하는데, 사실상 이들만 지원한다고 해서 낙태의 근본 이유는 바뀌지 않는다. 물론 미혼모 일부라도 실질적 도움을 받는 것은 의미 있지만, 크게 보면 낙태를 하지 않아야 교회가 지원한다는 상징적 활동인 것이다.

생명공학연구소 연구원 이전수 씨는 "생명에 대한 시선을 넓고 깊게 본다는 것은 살아 있고, 살아가는 이들의 고통을 이해하는 것"이라며, 모든 이들이 충분히 하느님의 자비 안에서 행복을 느끼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정현진 기자

<지금여기> : 통계에도 보이듯 기혼여성들의 낙태율이 미혼여성의 낙태율 못지 않게 높다. 따라서 미혼모를 돌보고 지원하면 낙태를 줄일 수 있다는 입장은 본질을 파악하지 못했다고 볼 수 있다. 현실 파악을 위해서는 교회가 당사자인 여성들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는 의견이 있는데, 이런 기회가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

강석주 : 교회는 낙태라는 특수한 문제에 대해 전문성을 갖기 어렵다. 또 다른 측면에서 교회가 여성의 현실적 목소리를 듣지 못하는 것은, 성모신심과도 연관이 있다고 본다. 지고지순하고 순결한 동정녀 성모마리아를 가장 이상적인 여성상으로 공경하는 가톨릭교회는 성관계를 하는 여성의 몸, 피임 실패를 공포스러워하는 여성, 임신중지의 기로에 서 있는 여성들의 경험을 들으러 가기에 다른 종교보다 훨씬 먼 자리에 있다.

박은미 : 또 ‘성가정’의 관점에서도, 아이가 없는 가정이나 한부모 가정, 미혼모자 가정은 성가정이 아닐 뿐더러 비정상 가정으로 보고 있다. 교회의 가르침에 따라 생명을 지키려는 싱글맘 가정조차 정상가정이 아닌 것이다. 그래서 요즘에는 성가정이라는 말 자체를 쓰지 말자는 의견도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사랑의 기쁨'에서 가정 형태에 대해 정상이라는 말 대신 “일반”(regular)이라는 말을 썼다. 정상이라는 말을 쓰는 순간, 조손가정, 한부모(미혼부,모) 가정 등은 정상이 아닌 것인데, 그런 고민이 부족하다.

“과거 국가가 피임을 권장했을 당시 교회의 침묵, 성찰해야”
“생명과 삶은 전 생애, 전체 사회 구조에서 맞물리는 가치”
“헌재, 여성의 존엄성과 태아의 생명권은 그 무게를 다툴 수 없다”

<지금여기> : 헌재 판결의 의미를 한번 짚어 보고 싶다. 태아의 생명권과 여성의 자기결정권으로 이분화된 사고를 넘기 위해 더 봐야 할 맥락은 무엇인가?

강석주 : 헌재 판결의 의미는 세 가지 정도로 볼 수 있다. 첫째는 임신상태를 유지할 것인지 중단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자체가 여성의 존엄성을 실현하는 수단이고 전인적 결정이라는 문구를 넣었다는 것. 두 번째는 2012년 판결과 달리 태아와 여성을 대립 구도로 보는 것을 넘어섰다. 여성의 안위가 태아의 안위라는 것, 즉 태아의 독립성과 개별적 특수성을 인정하면서도, 태아의 생명을 위해서는 여성의 신체적, 사회적 안전이 보장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세 번째는 국가의 책임을 강조한 것이다. 국가가 실질적으로 태아를 보호하지 못하고 여성을 형벌로 위협하는 것은 여성의 인권을 심각하게 위협한다는 의견이다. 또 과거 낙태를 권장한 국가 제도 성찰을 요구하고 가족계획이 모순적이고 비일관적이었다는 성찰이 들어 있다.

또 헌재 판결에서 다시 짚은 재생산권은 그 자체가 임신중지와 지속 결정 양자 모두를 포함한다. 자기결정권은 남녀 모두에게 있지만, 여성은 임신과 출산을 한다는 특성이 있고, 그것이 여성 인생에 심대하고 핵심적 문제이므로 우선권이 여성에게 있다는 의미다.

박은미 : 모순적이고 비일관적인 국가의 가족계획 제도 실행에는 교회의 묵인도 책임이 있다. “인간생명” 반포 50주년을 맞았을 때, 피임법의 역사를 들여다봤다. 국가가 피임을 권장했을 당시 교회가 침묵한 것에 대한 반성은 없었다. 그것부터 반성해야 한다.

이전수 : 임신중지 결정은 여성 혼자, 아무렇지 않게 하는 것이 아니다. 출산 뒤 양육과정에 필요한 사회경제적 요소를 종합적으로 고려한 뒤, 적절하지 않은 환경이기 때문에 부득이 임신중지를 선택한다. 마치 자판기에서 상품을 뽑듯이 임신중단을 하는 것이 아니라는 맥락이 헌재 판결에 드러나 있다.

2017년 11월 27일 주교회의 생명윤리위원회가 '낙태죄 폐지' 청원과 관련된 정부 답변에 입장을 밝혔다. (이미지 출처 = 주교회의 생명운동본부)

<지금여기> : 다시, 교회의 생명운동으로 돌아와, 앞으로 생명을 지키기 위한 활동의 지평을 어떻게 함께 마련할 수 있을까?

강석주 : 출산한 여성이 학습권이나 일자리를 보장받음으로써 일생을 잘 살도록 도와줘야 한다는 관점이 교회 안에 부족하다. 태아뿐 아니라 출산 뒤 여성과 태아의 삶까지 고민해야 한다. 생명, 인생, 삶은 영어로 모두 ‘라이프’(life) 하나의 단어다. 이 세 가지가 따로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전 생애, 전체 사회 구조 속에서 맞물리는 가치다.

박은미 : 무엇보다 그동안 생명운동의 범주, 지평이 너무 좁았다. ‘태아’에만 관심이 집중되어 있다. 생명운동의 시야가 좁고, 그래서 그 외의 생명, 삶과 연관 짓지 못했기 때문에 낙태 반대 운동이 한계를 갖고 더 많은 이의 적극적 관심과 참여가 어렵다.

일례로 낙태 문제만큼 중요한 것이 가정폭력 문제다. 가정폭력을 없앨 수는 없지만 교회가 가정폭력에 대해 엄격하게 가르치고, 가해자를 단죄하는 것이 필요하다. 맞아서 죽는 이들, 집 밖으로 쫓겨나는 일들이 너무 많고, 이 역시 피해자를 비롯한 가족 모두의 생명, 삶의 문제다.

생명운동의 지평을 넓히고, 한 생명이 태어나서 자라는 동안 겪을 수 있는 생명에 대한 수많은 폭력, 혐오, 차별에서 그들을 지키겠다는 태도로 전환하지 않는 한, 교회의 생명운동은 같은 자리에 머물게 될 것이다.

또 인권감수성을 높이는 것도 필요하다. 인권 침해 사건에 대해서, 교회가 중심을 잡아 판단하고 공적으로 문제 제기해야 한다.

강석주 : 또 하나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교회가 피임 교육에 소극적이라는 것이다.

우선 교회가 가르치는 피임법은 ‘자연주기법’(빌링스법)인데, 현실과 맞지 않는 것을 넘어 여성을 임신 갈등에 처하게 할 수도 있는 위험한 방법이다.

(피임법은 아니지만)체외사정 성공률이 약 76퍼센트인데, 자연주기법 성공률은 78퍼센트다. 사실상 피임법으로 볼 수 없는데, 계속 신자들에게 자연피임법을 강조한다. 피임 과정과 실패했을 경우의 모든 부담을 여성이 지는 것을 알면서도 방조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또 가톨릭 기반 병원에서는 응급피임약조차 처방하지 않는다. 사후 피임에 반대하는 교회의 입장 때문이지만, 피임 실패 가능성 때문에 병원에 갔을 때, “처방하지 않는다”는 말을 듣는 것은 도움이 필요해 내원한 여성 개개인에게 상당한 수치심을 준다. 심지어 성폭행 피해자에게도 처방하지 않는 것은 비인도적 행위다. 교육과도 맞물려 있어서 가톨릭대를 나온 의료진이 이 부분에 대해 중립적 교육을 받지 못하는 문제도 있다.

박은미 : 자연피임법은 원래 피임이 아니라 자연임신을 위한 방법이다. 몸을 살펴서 자연적으로 임신을 하라는 방법이고, 현재 서울성모병원 등에서 하고 있는 ‘나프로’ 임신법이 그것이다. 이제 명칭을 제대로 찾은 것이고 이를 피임법으로 부르면 안 된다.

또 자연주기법은 스스로 몸을 섬세하게 살필 사회경제적 상황이 안 되는 여성들에게 “너의 몸에 소홀하다”는 메시지를 전달할 수도 있다.

한국가톨릭여성연구원 박은미 대표. 그는 "생명운동의 시야를 더 확장해야 한다"면서, "낙태반대뿐 아니라 가정폭력 문제 등 혐오, 폭력의 문제를 함께 봐야 한다"고 말했다. ⓒ정현진 기자

“생명운동, 낙태 반대 운동을 둘러싼 공론의 장은 왜 없을까?”
“절반의 책임이 있는 남성이 낙태에 관심없는 이유, 교회가 다시 되물어야”
“낙태만큼 중요한 가정폭력 문제, 생명운동은 모든 차별, 혐오, 폭력에서 생명을 지키는 것”

<지금여기> : 앞서 전반적으로 생명운동의 지평을 넓히고, 생명을 바라보는 인식이 전반적으로 바뀌어야 할 필요가 있다는 이야기를 나눴다. 낙태를 막는 것은 절박하고 중요한 문제지만 생명운동이 ‘낙태’에만 머무는 것은 생명이 총체적이지 못하고 구분되는 것은 아닌가?

강석주 : 성폭력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2014년 9월 유니세프가 낸 아동폭력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 20살 미만 소녀의 10퍼센트가 성폭행 피해를 당한 것으로 드러났다. 2017년 여성가족부가 조사, 발표한 ‘2016년 전국 성폭력 실태조사’에 따르면 여성의 21.3퍼센트가 평생 동안 신체접촉을 수반한 성폭력을 경험했다고 답했다.

사회 전체 성폭력이 아니더라도 교회 안의 성폭력에 대해 얼마나 성찰하고 있는가. 교회 안에서 일어나는 성폭력 사건에 대한 사회법적 처벌은 이뤄지지 않고 있는데, 임신중지 문제에 대해서만 조직적으로 신자들을 참여시키는 것을 보면서, 교회의 생명 안에 여성은 없다는 것을 연속으로 느꼈다.

<지금여기> : 생명운동 영역에서 세미나, 심포지엄 등을 열었지만 앞서 말했듯 각 본당 일선, 일반 신자들이 참여하는 공론장이 마련될 기회는 없었다. 위로부터의 하달이 아니라 아래로부터 논의와 참여를 위해서 어떤 시도를 할 수 있을까?

이전수 : 개인 경험으로 볼 때, 낙태문제에 대해서는 이야기를 꺼내기 어렵다. ‘낙태 반대’에 철저히 동의하거나 입을 다물거나 두 가지 양상이다. 단순 찬반 이전에 다양한 생각을 가진 이들 사이에 대화를 기대하기 어렵고, 민감한 사안이라서 피하기도 한다. 본당이나 교회 소공동체 안에서 이 문제를 공론화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생각이다.

교회에 남아 있는 청년들은 그나마 교회를 잘 따르는 이들이다. 이미 다른 가치로 충돌을 겪은 이들은 교회 울타리를 벗어났다. 결과적으로 공론화는 떠난 이들이 아니라 교회 안의 청년들을 위해서이고, 그 안에서 공감대를 만들고 소통이 되도록 해야 한다.

교회 중심 기관에서 대화의 장을 마련했으면 좋겠다. 굳이 학술적 방식이 아니더라도, 평신도끼리, 평신도와 성직자, 수도자 사이에 대화할 수 있는 채널이 만들어지고, 그 안에서 합의되면 자연스럽게 생명운동의 가치가 확산되고 참여도 이어질 것이다. 그러려면 신자들도 요구해야 한다.

박은미 : 성직자 중심의 운동이기 때문에 대화의 장을 여는 데 한계가 있었다. 그동안 교회 내에서 생명운동에 대한 문제제기가 있었는데, 그것은 결국 교회와 교회의 일에 대한 애정이었다. 애정이 없다면 떠나면 그만이다. 굳이 남아서 문제제기를 할 이유가 없다. 교회가 이런 부분을 받아들이고 여유를 가져야 한다.

강석주 : 애정을 가지고 대화를 시도하는 것은 중요하지만, 교회가 너무 멀리 왔다고 생각한다.

먼저 헌재 판결에 반대하는 실력행사를 많이 하고 있는데, 이것은 부정의하다. 먼저 실력행사를 멈추라는 요구가 있어야 한다.

교회는 수정란부터 생명으로 보는데, 여성의 몸에서 착상되지 않고(착상부터 임신) 배출되는 수정란을 애도한 적이 있나. 모체의 필수성마저 고려하지 않는 생명관이 바탕이라면, 아무리 애정이 있어도 대화하기 어렵다. 자궁의 역할을 포함해 기본 과학적 사실에 대한 선행학습도 필요하다.

<지금여기> : 현재의 논의에 성과 임신, 출산, 양육 등 전반적 과정을 둘러싼 '남성의 책임'이 없다는 지적이 상당하다. 교회는 이에 대해 어떻게 정리하고 전달해야 할까?

이전수 : 임신과 낙태에 대한 절반 이상의 책임을 가진 남성도 처벌해야 한다는 요구가 있었지만, 헌재 판결에서도 이를 명시하지는 않았다. 여성에 대한 처벌이 그랬듯, 남성에 대한 처벌, 책임에 대한 법률적 강제는 향후 위헌의 소지도 있다.

박은미 : 이 질문은 교회에 돌리고 싶다. 교회가 남성의 책임을 이야기하고, 낙태에 대한 생각을 물어야 한다. 아마 낙태에 대한 생각을 물으면 남성들은 생각한 적 없다고 답할 것이다. 그런데 이 중요한 문제에 왜 관심이 없고, 생각해 보지 않았는지, 무엇이 그렇게 만들었는지 교회도 일정 부분 책임을 지고 교육에 나서야 한다.

강석주 : 바로 그것이 교회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남성을 교육하고 남성의 자리를 마련하는 것. 남성들이 책임을 지지 않는다고 해서 처벌하고 악마화하는 것은 옳지 않다. 여성처럼 남성도 처벌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남성의 성윤리, 교육을 다시 시작해야 한다.

4월 11일 헌법재판소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는 '낙태죄 폐지 반대 전국연합' 회원들. 이날 낙태죄 페지를 반대하는 77개 단체가 모였다. ⓒ김수나 기자

<지금여기> 끝으로 좌담회를 정리하면서 강조하거나 당부하고 싶은 말씀 부탁드린다.

강석주 : 낙태를 줄이기 위해서는 먼저 원치 않는 임신을 줄여야 한다. 또 원치 않는 임신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정확하고 구체적인 성교육이 있어야 한다. 교회의 성교육에서 그런 것이 구현되는지 성찰도 필요하다. 피임, 임신중지, 임신유지, 출산, 양육 과정 등 여성의 몸을 둘러싼 경험에 대해 교회가 여성의 다양한 삶의 목소리를 경청하기를 바란다.

또 국가는 국민들이 안전하고 건강하게 재생산 과정을 실천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박은미 : 원치 않는 임신을 예방하기 위해 구체적 성교육을 해야 한다고 하는 것은 마치 혼인 이전에 청소년의 성이 더 문제라고 말하는 느낌이다. 그러나 낙태를 더 많이 하는 세대는 기성세대고 교육이 더 필요한 세대다. 임신과 낙태를 둘러싼 전반적 성윤리 교육이 필요하고 그런 차원까지 교회가 시야를 넓혀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다시 강조하지만 교회는 생명운동의 방법, 범주를 보는 시야를 훨씬 더 넓혀야 한다.

이전수 : 생명에 대한 시선을 넓고 깊게 본다는 것은, 살아 있고,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의 고통을 이해하는 것이다. 태어날 태아도 중요하지만 이미 태어나서 살아가고 있는 이들이 충분히 하느님의 자비 안에서 행복을 느끼는 삶을 교회가 함께할 수 있다면 좋겠다.

교회의 생명운동이 틀렸다, 맞다 또는 죄를 지었다, 아니다의 논쟁을 넘어 신자들의 현실적 어려움을 나누고, 공감하며, 함께 이야기할 수 있는 소통의 장을 마련하는 운동이기를 바란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정현진 기자 regina@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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