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치스코 교종 최신 강론말씀]

(편집 : 장기풍)

“이기적인 무감각에 끌려 다니지 말자”

교종, 7월14일 연중 제15주일 삼종기도 가르침

프란치스코 교종은 7월14일 연중 제15주일 성 베드로 광장에서 삼종기도를 바치기 전 ‘착한 사마리아인’ 비유를 들려주는 이날 복음을 해설했다. 교종은 하느님께 대한 사랑과 형제들에 대한 ‘구체적이고 관대한 사랑’ 사이에 존재하는 떼어낼 수 없는 연결을 한층 더 살아가자고 모든 이들을 초대했다. 가르침 내용.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안녕하세요! 오늘 복음은 잘 알려진 착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루카 10,25-37)를 소개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영원한 생명을 얻으려면 무엇이 필요하냐는 율법교사의 질문을 받고 성경에서 답을 찾으라고 하시며 이렇게 초대합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힘을 다하고 네 정신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루카 10,27) 하지만 누구를 ‘이웃’으로 이해해야 하는지에 대한 다른 해석들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은 한 번 더 묻습니다. “그러면 누가 저의 이웃입니까?”(루카 10,29) 여기서 예수님께서는 이 아름다운 비유를 통해 대답하십니다. 여러분 모두 오늘 루카복음 10장25절을 읽어보시길 바랍니다. 복음에서 가장 아름다운 비유 중 하나입니다. 이 비유는 그리스도인 삶의 패러다임이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이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에 대한 본보기가 되었습니다. 루카 복음사가 덕분에 우리는 이 보화를 얻게 되었습니다. 짧은 이야기의 주인공은 사마리아인입니다. 그는 길에서 강도에게 매 맞고 돈을 빼앗긴 사람을 만나 돌봐줍니다. 우리는 유다인들이 사마리아인을 경멸하고 이방인으로 취급했던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비유의 긍정적 인물로 사마리아인을 선택하신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이런 방식으로 예수님께서는 편견을 극복하고자 하셨습니다. 이방인이나 참된 하느님을 알지 못하거나 하느님의 성전을 다니지 않는 사람도 도움이 필요한 형제를 위한 연민을 일으키며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 도와주면서 그분의 뜻에 따라 행동할 수 있음을 보여주십니다.

사마리아인보다 앞서 사제와 레위인, 다시 말해 하느님 공경에 자신을 바친 사람들도 똑같은 길을 지나갔습니다. 하지만 두 사람은 길바닥에 쓰러져 있는 불쌍한 사람을 보고도 멈추지 않고 지나쳤습니다. 아마도 그 사람의 피로 더럽혀지지 않기 위함인지도 모릅니다. 하느님의 위대한 계명에 대한 공경과 연관된 인간적인 규칙, 곧 피로 더럽혀지지 말라는 규칙을 우선시했던 겁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무엇보다 자비를 바라십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신앙을 가지지 않았던 사람, 바로 그 사마리아인을 모델로 제시하십니다! 우리 또한 우리가 알고 있는 많은 사람들을 생각해 봅시다. 어쩌면 선행을 실천하는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일지 모르지만 예수님께서는 신앙인이 아닌 그 사람을 모델로 선택하십니다. 그리고 이 사람은 형제를 자기 자신처럼 사랑하며, 온 마음을 다하고 온 힘을 다해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을 드러냅니다. 그가 알지 못했던 하느님입니다! 그리고 동시에 참된 신심과 충만한 인간애를 표현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아주 아름다운 이 비유를 들려주신 다음, “그러면 누가 저의 이웃입니까?”라고 물었던 율법교사에게 반문하십니다. “너는 이 세 사람 가운데에서 누가 강도를 만난 사람에게 이웃이 되어 주었다고 생각하느냐?”(루카 10,36) 이런 방식으로 예수님께서는 상대방의 질문과 우리 모두의 논리를 뒤집습니다. 우리의 판단기준을 토대로 누가 이웃이고 누가 이웃이 아닌지 정의를 내리는 것은 우리가 아니라 도움이 필요한 상황에 처한 사람입니다. 바로 그 사람이 자기 이웃이 누구인지 인식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그의 이웃이란 그에게 자비를 베푼 사람(루카 10,37)입니다. 자비를 베풀 줄 아는 것, 이것이 우리의 키워드입니다. 만일 여러분이 도움이 필요한 사람 앞에서 ‘가엾은 마음’을 느끼지 못한다면, 만일 여러분의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다면, 무엇인가 잘못된 것이라는 뜻입니다. 주의하십시오. 조심합시다.

이기적인 무감각에 끌려다니지 맙시다. 연민을 위한 능력은 그리스도인의 시금석, 더 나아가 예수님 가르침의 시금석이 되었습니다. 예수님 몸소 우리에 대한 성부의 연민이십니다. 만일 여러분이 길을 가다가 길바닥에 누워 있는 노숙자를 보고 쳐다보지도 않고 지나가면서 “저런, 술을 많이 마시니 저렇게 됐군. 술에 취한 사람이야”라고 생각하신다면 정말로 그 사람이 술에 취한 것인지 자문해 보십시오. 혹시 여러분의 마음이 완고해진 것은 아닌지, 여러분의 마음이 얼음장이 된 것은 아닌지 자문해 보십시오. 이러한 결론은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인간생명 앞에서 자비야말로 사랑의 참된 모습이라는 것을 말해 줍니다. 우리는 이처럼 예수님의 참된 제자가 되어야 하고 성부의 얼굴을 드러내야 합니다. “너희 아버지께서 자비하신 것처럼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루카 6,36) 그리고 우리 아버지이신 하느님께서는 연민을 가지고 계시기 때문에 자비로우신 분입니다. 이러한 연민을 가질 수 있고 우리의 고통과 죄, 우리의 악습과 불행에 가까이 다가오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동정녀 마리아께서 우리의 하느님 아버지께 대한 사랑과 형제들에 대한 구체적이고 관대한 사랑 사이에 존재하는 떼어 낼 수 없는 연결을 이해하고 한층 더 살아가도록 우리를 도와주시고, 자비를 가지고 자비 안에서 성장하는 은총을 주시기를 바랍니다.
 

 

“난민은 세계화된 사회의 버림받은 이들의 상징”

교종, 7월6일 람페두사 섬 방문 6주년 미사강론

프란치스코 교종은 7월6일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봉헌된 교종의 ‘람페두사 섬’ 방문 6주년 미사 강론에서 난민들은 ‘세계화된 사회의 버림받은 모든 이들의 상징’이라고 강조했다. 람페두사 섬은 현재도 ‘희망의 여행’을 위해 전쟁과 가난에서 도망치는 사람들이 모여 뉴스가 집중되는 이탈리아 섬이다. 2012년 10월11일 34명의 난민이 죽은 채 발견됐으며 2013년 10월3일에는 교종이 366명이 수장된 바다 앞에서 기도하기 위해 즉위 후 처음 람페두사 섬을 방문했던 기억을 되새기면서 “소외된 자들은 속았고 사막에서 죽도록 버림받았다”고 말했다. 강론 내용.

무엇에 앞서 난민들은 인간이며 사회적 이슈나 이주 관련 문제만이 아닙니다! 오늘날 난민들은 세계화된 사회에서 버림받은 이들의 상징입니다. 난민캠프 안에서 유린된 이들이 무자비한 바다의 파도에 도전합니다. 난민들은 사랑하고 다시 일으켜 세우라고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요청하신 소외된 이들입니다. 소외된 자들은 난민캠프에서 고문당하고 성학대받으며, 유린당했습니다. 소외된 사람들은 무자비한 바다의 파도에 도전하고 임시적이라기에는 너무나 긴 시간 난민캠프에 방치되고 있습니다. 이들은 단지 사랑하고 다시 일으켜 세우라고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요청하신 소외된 사람들의 일부입니다. 난민 신자들 가운데 몇몇 분들은 불과 몇 개월 전에 도착했음에도 최근 도착한 형제자매들을 도와주고 있습니다. 그분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야곱 성조는 계속해 나가야 할 어려운 여행길에서 자신을 지켜 달라고 청하면서 주님께 자신을 맡겨드립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의 피난처, 우리의 산성, 우리의 방패, 우리의 갑옷이며, 시련의 순간에 닻이시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환난 중에 기도하는 신자를 위한 피난처이십니다. 세상이 제공하는 안전도 효험이 없고 남은 것이란 하느님 밖에 없음을 깨달을 때 우리 기도는 더 순수해집니다. 오직 하느님만이 땅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에게 하늘을 활짝 열어 줍니다. 오직 하느님만이 구원하십니다.

소외된 이들은 모두 다시 일으켜 세워야 할 사람들입니다. 오늘 마르코 복음은 병과 죽음에서 해방을 청하는 병든 여인과 회당장의 주님께 대한 완전한 신뢰를 보여 줍니다. 한편에는 권력자의 딸이 있고 다른 한편에는 고통받는 여인이 있습니다. 그 여인은 병 때문에 거부당하고 소외되고 부정한 사람이 됐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차별하지 않으십니다. 왜냐하면 두 사람 모두 도움이 필요했고, 사랑하고 다시 일으켜 세워야 할 소외된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 제자들에게 가장 보잘것없는 이들을 우선적으로 선택하라고 가르치십니다. 사랑을 실천할 때는 소외된 사람들을 첫째 자리에 두어야 합니다.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종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오늘날의 가난은 수없이 많습니다. 복합적 차원에서 가난한 사람들이란 압제받는 사람들, 소외된 사람들, 노인, 병자, 힘없는 이들, 가장 보잘것없는 이들로 여겨지고 취급받는 모든 사람들을 말합니다. 저는 람페두사 섬 방문 후 매일 자신들을 괴롭히는 악에서 해방되기를 청하면서, 주님께 울부짖는 ‘소외된 자들’을 생각합니다. 소외된 자들은 속은 자들, 사막에서 죽도록 버림받은 자들입니다. 소외된 자들은 난민캠프에서 고문당하고 성학대당하며, 유린당한 자들입니다. 불행히도 우리네 도시의 실존적인 주변부는 버림받고 소외되며, 억압당하고 차별받으며, 성학대당하고 착취당하며, 방치되고 가난하고 고통받는 사람들이 조밀하게 모여 살고 있습니다. ‘참된 행복’이신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고통을 위로하고 자비를 베풀며, 의로움에 주리고 목마른 그들을 배불리 먹이고 하느님의 부성적인 보살핌을 느끼게 해주며, 그들에게 하느님나라를 향한 여정으로 인도하도록 우리를 부르십니다.

우리 모두 제1독서에 나오는 야곱의 사다리처럼 하느님을 향해 오르도록 소외된 사람들을 도와주는 천사가 됩시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과 땅 사이 연결이 보장되고 모두 다가갈 수 있게 되었지만 사다리 계단을 오르는 것은 책임, 노고, 은총이 필요합니다. 가장 약하고 취약한 이들은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저는 우리 모두 힘없는 자, 절름발이, 병자, 소외된 자, 곧 보잘것없는 이들을 팔에 안고 계단을 오르내리는 천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이들은 뒤처지며, 이미 하늘의 빛이 비추는 것을 알아채지도 못한 채 오직 지상의 비참함만을 바라볼 뿐입니다. 우리 모두 주님께서 직접 우리를 부르셨던 구원과 해방의 사명에 협력합시다. 아무도 이러한 사명을 완수하는 책임에서 제외될 수 없습니다.

 

교종, 뱅상 랑베르 사망 애도, 생명존엄성 강조

프랑스 11년 식물인간, 법원판결 연명중단 사망

오토바이 사고로 전신마비가 되어 11년을 식물인간 상태로 버텨 온 프랑스 뱅상 랑베르가 프랑스 최고법원 판결에 따른 의료진의 연명치료 중단 열흘째인 7월11일 42세로 프랑스 북동부 랭스 병원에서 숨을 거뒀다. 프란치스코 교종은 애도를 표하고 “주님께서 랑베르를 당신의 집으로 맞아들이시길 기도한다”고 말했다. 교종은 랑베르를 둘러싼 법적공방과 관련된 입장을 밝힌 바 있다. 교종은 “생명의 시작과 자연스러운 끝에 이르기까지 유일한 주인은 하느님이십니다. 생명을 지키고 ‘버리는 문화’에 굴복하지 않는 것이 우리의 의무입니다”라고 말했다. 랑베르 아내와 형제자매는 연명치료를 중단하기를 원했으나, 가톨릭신자인 부모와 친척들은 이를 반대해 법정공방으로 이어졌으며 랑베르는 최근까지 연명치료 중이었다. 교종은 랑베르 사례를 비롯해 수차례 인간생명의 자연스러운 끝을 지키자고 호소했다. 그러나 의료진은 최고법원 최종판결에 따랐다. 교종은 전날 10일 트위터를 통해 “버려지고 죽음으로 내몰린 병자들을 위해 기도합시다. 사회가 생명의 가치를 따지지 않고 모든 생명을 시작부터 자연스러운 끝에 이르기까지 보호할 때, 그 사회는 인간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의사는 생명을 지키는 사람이지 생명을 앗아가는 사람이 아닙니다.”라고 말했다.

 

“교종은 동방교회가 발전하고 번영하길 열망한다”

우크라이나 그리스 동방 가톨릭교회 수장 강조

우크라이나 그리스 동방 가톨릭교회 수장 스비아토 슬라프셰브추크 상급대주교는 7월 8일 회견에서 프란치스코 교종 및 바티칸 부서장들과 함께 한 이틀간 회의가 자치권이 있는 동방 가톨릭교회와 바티칸 관계를 위한 새 방법론을 보여줬다고 밝혔다. 프란치스코 교종은 ‘우크라이나 그리스 동방 가톨릭교회’(UGCC)에 대한 교종의 친밀과 유대감을 전할 의도로 유례없는 이번 회의를 요청했다. 공보실 성명에 따르면 교종은 바티칸 협력자들과 함께 “이 교회(UGCC) 역사를 비롯해 영성적, 전례적, 신학적, 교회법적 전통 그리고 순교자들의 피로 봉인되고 증명된 베드로 후계자와의 친교에 대한 충실성에 감사했다. 슬라프셰브추크 상급대주교는 이번 회의가 UGCC에 대한 교종의 지지를 보여주었으며 이틀간 회의에 빠짐없이 참석한 프란치스코 교종이 가까움, 대화, 만남을 통해 전쟁으로 고통받는 우크라이나의 모든 국민과 우리교회와 가까이하고 있음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회의는 “우리 교회 발전을 위해 필요한 조건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라는 데 촛점이 맞춰졌다고 밝혔다. 이 물음은 그리스도 교회에 관한 온전하고 가시적인 일치를 가져오는 수단으로서 ‘우니아티즘’(uniatism)으로  불리는 방식을 거부하는 데서 출발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 물음은 UGCC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동방교회들에 대한 것이기도 하며 이 물음에 관한 교종의 답변은 매우 분명하고 웅변적이며 상징적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교종께서는 우리교회뿐 아니라 다른 동방 가톨릭교회들도 발전하고 번영하기를 열망하십니다”라고 말했다. 또한 그는 UGCC 주교들이 교종을 우크라이나에 초청했다고 밝혔다. 대주교는 교종의 우크라이나 방문은 우크라이나 동부지역에서 발생한 ‘하이브리드 전쟁’을 종식시킬 매우 설득력 있고 상징적 가능성이 될 것이라고 희망했다. 그는 우크라이나 사람들은 동부지역에서 5년 동안 진행된 전쟁의 결과로 고통을 겪고 있으며 인도적 위기에 직면해 있다고 밝혔다. 이런 가운데 대주교는 이 지역 11개 가톨릭성당은 위험한 상황에서 희망의 증인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본당을 담당하고 있는 사제들은 많은 일을 할 수는 없지만 사람들 가운데서 사제들의 존재란 하느님께서 우크라이나 사람들을 버리지 않으신다는 증거이기도 하다고 강조했다.

장기풍(스테파노)
전 <평화신문> 미주지사 주간
2006년 은퇴. 현재 뉴욕에 사는 재미동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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