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기와 삶 - 송승연] 광기라는 정체성의 자부심 Mad Pride!

오늘부터 12월까지 첫 번째 화요일마다 [광기와 삶](시즌 3)이 5회 연재됩니다. 정신장애인에 대한 억압과 배제, 심지어 혐오까지 급증하고 있는 시대에, 정신장애인의 해방과 행복, 그리고 광기와 더불어 살아가는 삶에 필요한 것을 함께 고민해 보고자 합니다.  

칼럼을 맡아 주신 송승연 님에게 감사드립니다. -편집자

 

‘시한폭탄, 격리조치, 위험, 무서움, 공포.’ 최근에 보도된 정신장애인 관련 기사에 달린 댓글 중 일부 단어들이다. 정신장애인의 낙인과 편견은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혐오가 되고, 차별과 배제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알고 있는 편견과 달리 정신장애인은 범죄의 피의자가 아니라 ‘피해자’가 될 확률이 비장애인에 비해 약 4-6배 높다는 연구도 있다.(de Vries et al., 2018; 이 연구자들은 정신장애인은 통상적으로 주거 부재 및 실업과 같은 열악한 사회적 환경에 직면하게 되는데, 이로 인해 범죄자와 접촉할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더 높은 범죄 피해 위험에 놓이게 된다고 언급한다.) ‘팩트’는 위험성과 거리가 있음에도 높아지고 있는 혐오. 이에 대한 대안은 무엇이 있을까?

우리는 먼저 장애(disability)의 개념에 대해 다시 한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일반적으로 장애를 바라보는 관점은 ‘의료 모델'(medical model)과 ‘사회적 모델'(social model)로 구분된다. 의료 모델은 장애의 원인을 한 개인의 신체적, 정신적 손상(impairment)에 위치시키는 것이며, 사회적 모델은 장애의 원인을 손상을 지닌 사람을 수용하지 못하는 광범위한 사회적 장벽으로 보는 것이다. 보다 쉽게 말하자면, 휠체어를 이용하는 신체장애인이 계단을 만나는 순간, 의료 모델은 장애인의 신체적 손상과 관련된 치료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고, 사회적 모델은 치료보다는 계단을 경사로(혹은 엘리베이터)로 만드는 것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다.

전통적으로 의료 모델이 주류적 관점이었지만, 2006년 전 세계 장애인 당사자들이 대거 참여하여 체결된 UN장애인권리협약(이하 UN CRPD) 이후 사회적 모델로 장애의 개념은 정립되어 가고 있다.(참고로 2019년 7월 기준 179개국이 비준하였으며, 한국은 2008년에 비준하였다.) UN CRPD 제1조를 보면 “장애인은 다양한 장벽과의 상호작용으로 다른 사람들과 동등한 조건으로 완전하고 실질적 사회 참여를 저해하는 장기간의 신체적, 정신적, 지적 또는 감각적 손상을 가진 사람을 포함한다.”고 정의한다. 즉 CRPD는 손상과 사회적 환경의 불일치로 인해 한 사람의 사회참여가 저해될 때 장애가 발생한다고 보는 것이다. 특히 정신장애인의 경우 UN CRPD에서 전통적 정체성인 정신질환자가 아니라 ‘심리사회적 장애인’(the Person with Psychosocial Disability)으로 정의된 뒤로 급격한 전환기를 맞고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정신장애인을 ‘장애화'(disabling)시키는 장벽은 어떤 것일까? 앞서 살펴본 ‘계단’과 ‘경사로’의 비유를 활용하자면, 정신장애인의 경우 사회적 편견, 낙인, 혐오가 보이지 않는 계단일 수 있다. 그렇다면 이 계단을 경사로로 바꾸기 위한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

이중 하나는 반낙인(anti-stigma) 캠페인으로, 주로 ‘정신질환은 신체질환과 다르지 않다’는 홍보방법을 채택했다. 정신질환이 신체질환의 일종으로 인식이 되면, 한 개인의 통제력을 벗어나는 존재가 되며, 그로 인해 정신장애인 개인을 향한 과도한 비난을 감소시킬 수 있고, 정신적 고통은 치료받을 수 있고, 두려워해서는 안 되며, 약점의 표시가 아니라는 의미를 가지게 된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반스티그마 전략(정신질환은 다른 질환과 마찬가지로 질환이다)은 낙인을 감소시키지 못했고, 오히려 정신장애인의 예측불가, 위험성, 두려움의 인식을 더 증가시킨 것으로 나타났다.(Corrigan and Watson, 2004; Read et al., 2006)

이에 반하여 급진적 정신장애인 단체들은 자신들은 아픈, 병든 존재가 아니며, 광기를 하나의 ‘정체성’으로 주장하였다. 이를 위해 새로운 대안으로 제시된 것이 바로 매드 프라이드(Mad Pride)다. 미쳤다고 꼬리표가 붙은 당사자들이 혐오에 맞서기 위해 광장으로 나선 것이다. 매드 프라이드는 당사자 스스로의 목소리로 자신들의 권리와 자랑스럽고 가치 있는 경험을 대중에게 알리고, 광기를 경험한 사람들에게 가해지는 억압과 폭력을 알리는 것에 중점을 두는 퍼레이드다. 이 행사는 1993년 캐나다 토론토에서 처음 시작하였으며, 현재는 호주, 남아공, 미국, 영국, 가나, 브라질, 독일, 프랑스 등 다양한 국가에서 시행되고 있다.

2019년 10월 국내에서 최초로 정신장애인 당사자 창작문화예술단 안티카가 매드 프라이드 개최를 준비하고 있다. (이미지 출처 = anticamind.com)

매드 프라이드는 다양한 당사자의 의견을 존중한다. 어떤 참가자는 단지 정신병이라는 낙인에서 벗어나는 것이 목표인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약물로 정신병을 치료할 필요가 없다며 의료체제가 제공하는 ‘치료’를 대체할 방법을 모색하는 사람들도 있다. 또한 어떤 이는 ‘HOUSING NOT HALDOL’이란 피켓을 들고 참여한다. ‘할돌(할로페리돌Haloperidol의 약어. 대표적인 1세대 항정신병약물)이 아니라 주거’라는 이 문구는 의료적 모델로서의 약물치료보다는 사회적 모델로서의 복지서비스가 정신장애인의 삶에 있어 더욱 필요하다는 것을 단적으로 드러내 준다. 본질적으로 매드 프라이드는 정신적 고통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동일한 한 가지 접근법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인식하게 만들고, 사람들이 스스로 선택을 할 수 있도록 권력을 부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여긴다.

물론 매드 프라이드에 동의하지 않는 정신장애인도 있다. “정신질환은 정체성이 아니고 축하할 일도 아니다. 정신질환은 무자비하며, 무차별적이고, 파괴적이다. 정신질환은 암이 병인 것처럼 병이다. 그리고 사람들은 둘 다로 죽는다.”(Misplaced pride. 가디언 2006.9.27.) 어쩌면 광기에 대한 과도한 낭만화는 우리가 늘 경계해야 하는 것일 수도 있다. 광기 혹은 정신건강과 관련된 위기와 고통은 확실하게 존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시에 정신건강에 미치는 다양한 사회적 요인들(부채, 불안정고용, 빈곤, 실업, 열악한 주거환경, 불평등 등)도 있으며, 정신장애인에 대한 혐오와 차별도 우리 주변에 분명히 존재한다.

광기의 경험에 대해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여전히 너무 많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서로의 이야기를 듣고, 배움으로써 이해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소위 중증 정신질환으로 분류된 사람들에게 흔하게 나타나는 것은 그들의 이야기를 사람들이 믿지 않거나, 함께 이야기를 하지 않는 것이다. 우리가 그들이 직면하고 있는 어려움을 ‘치료’할 힘은 없을지 모르지만, 그들의 경험을 듣고 나의 현실과 조응하는 과정은 분명 가능하다. 정신적 고통을 보다 더 사회적인 개념으로 설명하는 것은 대중에게 당사자의 행동을 자신의 삶의 맥락과 연결시켜서, 이해 및 공감할 수 있게 한다. 이를 위한 시작은 매드 프라이드가 될 수 있다. 국내에서도 2019년 10월 최초로 ‘혐오를 이기는 광기!’라는 슬로건으로 정신장애인 당사자 창작문화예술단 안티카(anticamind.com)에서 매드 프라이드 개최를 준비하고 있다. 매드 프라이드는 앞서 언급한 것처럼 단순히 계단을 경사로로 바꾸는 정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시스템 그 자체를 변화시키는 일종의 사회적 혁명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지속적으로 광기의 경험이 다양하게 행해지고 인식되는 새로운 세계를 상상할 필요가 있다.

송승연

가톨릭대 사회복지학과 박사 수료. 정신건강사회복지사. 정신장애인 당사자가 주체적 운동세력으로 확장되어야만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굳건한 믿음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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