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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초록의 아름다움

기사승인 2019.08.13  11:1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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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학 오디세이아 2 - 박정은]

빗소리가 세상의 모든 소음을 삼키고, 내가 머무는 홍제동 낡은 집 창밖에 초록의 커다란 잎들이 푸른 건 바로 이런 거라고 가르치고 싶어 하는 듯 온몸을 흔들어 대는 늦은 밤, 온통 초록색이었던 이 무덥고 치열했던 8월에 내가 건져 올린 삶의 기쁨들을 하나하나 떠올려 본다. 내일이면, 나는 또 짐을 챙기고 공항 구석에서 여기와 저기 사이, 그 틈새 공간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누릴 것이며, 내가 살고 있는 미국으로 돌아가, 새 학기 속으로 뛰어들어 가야 할 것이다. 여름 동안 어디론가 떠났던 동교 교수들과 만나서, 서로가 지낸 여름 이야기를 나눌 것이다. 아직 그것이 무슨 의미인지는 알 수 없으나, 이번 여름에 만난 일상의 편린들은 제주 서문 시장에 누운 갈치처럼 반짝이며 기쁨을 준다. 이렇게 주룩주룩 내리는 장대비처럼 시원하게, 내 생에 생기를 제공한다. 이 생기는 또 일상의 지친 시간표에 내려 앉아 내게 뜨거웠던 여름의 기억들 속에서 의미를 찾아 줄 것이다. 존 듀이는 아름다움 혹은 미학은 어떤 대상, 기억, 경험이 내 생에 의미를 줄 때 발생한다고 주장했는데, 나는 이 실용주의적 사고에 공감한다. 오래된 벗의 다정한 눈길이나, 가난 속에서도 빛을 잃지 않는 사람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들은 내 마음의 결을 바꾸어 주며, 어떤 의미를 탄생시키는데, 그 순간, 깊은 초록의 8월은 아름다움이 되는 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사이공에 있는 예수회 수련소 건물. 초록빛의 선과 기도, 그리고 시가 배어 있는 공간. ⓒ박정은

이번 여름 가장 깊이 내 마음에 남은 시간은 베트남 사이공에서 보낸 보름의 날들이었다. 너무 더워 창을 열지 못하고, 미사를 드리러 아침에 나오면 다듬어지지 않은 초록의 나무들이 나를 압도했다. 집이나 건물들은 나무를 다치지 않도록 지어져 있어서, 그래서인지 내 눈에 사이공의 거리는 다소 정리가 되지 않은 느낌이었다.

나는 신학 과정을 공부하는 예수회원들에게 “인간: 섹슈얼리티” 수업을 했다. 수업은 매일 아침 8시부터 11시까지였고, 성 정체성, 심리적, 성적 발달 단계, 동성애와 트랜스젠더, 사제들의 아동 성학대 등의 주제를 함께 공부했다. 처음 나에게 이 수업을 부탁해 온 학장에게 나는 “내가 가르치면 학생들이 위험할 수도 있는데 괜챦겠냐”고 농담을 했었는데, 학생들은 한번도 성에 대해 공부해 보거나 이야기해 본 적이 없었다며, 진지하게 수업에 임했다. 그래서 매 수업마다 섹슈얼리티에 대한 담론을 비판할 뿐 아니라, 자신의 성을 돌아보도록 함께 나누고, 또 생각을 쓰고, 어떤 질문이든 적도록 했다. 특히 ‘서구의 식민을 경험한 아시아 남성의 몸은, 결국 여성의 몸과 같은 위치에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는 현실에 대해, 또한 ‘동성애는 인권의 문제’라는 주제로 토론을 할 때, 우리는 세 시간을 훌쩍 넘기고 늦게 점심을 먹기도 했다. 영어로 수업하는 것은 단지 소통을 위한 것일 뿐이니, 영어를 못한다고 기죽지 않기로 서로 약속을 했다. 그래서 영어를 잘 못하는 학생은 베트남어로 이야길 하고, 다른 학생이 통역을 해 주기도 했다. 

마지막 날 수업에, 영어를 꽤 잘하는 축이었던 톤이 가정 안에서의 폭력을 이야기하다 갑자기 눈물을 흘리더니, 자기 말로 자기의 경험을 한참 이야기했다. 자기의 모국어, 온전히 자기를 확인하게 해 주는 기적 같은 말. 그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고 더듬더듬한 통역을 들으면서도, 그의 마음이 느껴져 나도 눈물을 흘렸다. 그러니까 그의 모국어를 나는 한국어로 듣고 있었다. 수업을 마치고 내려오면서, 성령강림에 외국에서 온 사람들이 저마다 자기 말로 알아들었다는(사도행전 2장) 이 구절을 기억했다. 그리고 다시 한번 성령강림은 내가 알아들을 수 없는 외국말을, 나에게 온 존재를 주는 나의 모국어로 듣는, 그래서 강한 나라의 언어와 약한 나라의 언어가 서로 같은 높이를 견주는 그런 사랑의 순간이었음을 깨달았다.

사이공 문화박물관. 밖와 안의 조화, 그리고 나무와 건물이 조화로운, 그래서 평화로운 건물이어서 인상적이었다. ⓒ박정은

이 두 주 동안 나는 정말 행복했는데, 그것은 예수님과 함께 일생을 살겠다는 이 젊은이들이 매일 적어 보내는 질문들에 대해 나의 삶을 돌아보며 솔직한 답변을 하면서, 그리하여 감정적으로 친밀해지면서부터였던 것 같다. 그들은 젊은 남성으로서 겪는 많은 혼란과 문제들을 내게 적어 보내면서, 나의 정결은 어떤 것인지, 또 수도자로 살면서 사랑에는 빠져 보았는지를 진지하게 묻기도 했다. 어떤 수사는, 수업에서 내가 한 말의 의미를 다시 묻기도 하고, 또 깊이 있는 자신의 성찰을 나누기도 했다. 매일 비는 정신없이 쏟아지고, 날은 무더운데, 이 낯선 열대의 나라에서 나는 이 젊은이들의 아픔과 상처받기 쉬운 연약함과 그리고 용기를 보면서 내 맘속에 시작된 하늘나라로 현기증을 느꼈다.

점심을 먹고 나면 우리는 성당에 함께 올라가서 의식 성찰을 했다. 나는 학생들에게 무엇을 성찰하는가 하고 물었는데, 대부분의 학생 수사님들은 현재에 머물면서 내 마음을 잠깐 들여다본다고 이야기해서 그들의 훌륭한 답변에 나는 마음이 흡족했다. 설거지를 함께 하면서 이런저런 수다를 떨고, 마치면 한 시간 오수를 즐겼다. 처음엔 난 낮잠을 안 잔다고 했는데, 웬걸 둘째 날부턴 이 낮잠시간이 너무 좋았다. 잠을 자면 다시 기운이 회복되었는데, 그러면 함께 간 줄리아 수녀와 거리를 걷고, 여지없이 베트남 쌀국수를 길에서 사 먹으며, 카페에 들려 학생 수사님들이 제출한 숙제를 읽으며 코멘트를 달아 주었다. 수업 준비는, 더위 때문에 너무 힘들어서 일찍 자고 대신 새벽에 일어나서 했다. 한국에서 수련 시절, 마르코 복음을 함께 공부할 때, 그 복음 강의가 너무 좋아서 하루 종일 마음이 둥둥 떠 있는 것 같았던, 구름 위의 산책 같았던 그때의 그 행복감이 나를 찾아왔다. 어디서 오는지 모르는 이 행복감을 어찌할 수 없어, 그냥 팔을 벌리고 사이공의 골목골목을 걸어 다녔다.

어느 사이공의 골목길 풍경. ⓒ박정은

그리고 첫 주말에는 내 학생들과 시내에 있는 씨지브이극장에서 영화 '기생충'을 보았다. 영화를 보고 난 뒤, 우리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냄새가 가지는 상징, 빈부차의 문제에 대해 한참을 토론했다. 그러다 한 수사가, 누가 누구에게 기생하는 걸까라는 질문을 하며 가진 자가 가지지 못한 자에게 기생하고 있는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한국영화를 함께 본다는 것이 내게는 감동적이었지만, 베트남 사회에서 한국이 뜻하는 것은 가진 자이고, 누리는 자이고, 자본가이기에 괜히 미안해졌다. 내가 깊이 사랑하게 된 이 학생들의 나라, 예수님을 깊이 사랑하고 따르는 이 젊은이들의 나라, 지금도 많은 시골의 아가씨들이 농촌의 노총각에게 팔려 오듯 시집 오는 나라, 그래서 우리 나라 사람들과 사돈이 된 사람들이 많은 이 나라에서 조금은 미안하게, 조금은 측은하게, 그러나 겉으로는 히히덕거리며, 그들과 숙소로 돌아왔다.

수업을 마친 주말, 우리 반 학생들과 나는 마지막 만찬을 하러 시내로 나갔다. 소나기 속에 우비를 입고, 오토바이 뒷자리에 앉아 진초록 나무를 흔들어 대는 바람을 가르며 그들이 좋아하는 식당에서 함께 저녁을 먹었다. 그들과 함께 간 국수집은 왠지 더 재미있고 또 맛있었다. 별거 아닌 이야기로 깔깔대던 식사를 마친 뒤, 그들이 고른 '로맨틱'한 카페에서 우리는 꼭 내년에 이 카페에서 다시 모이기로 약속 했다. 예수회를 떠나 캐나다 토론토 교구로 가는 마틴을 제외하고, 우리는 성소를 잘 지키고 있다가 다시 만나자고 했다.

사이공의 거리는 진짜 시끄럽다. 모두를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므로 정신없고, 나무들은 여기저기 삐죽삐죽 자라고 있다. 그런데 조그만 골목에만 들어가면, 조용하고 나무로 둘러싸인 매우 시적인 공간이 나타난다. 사람들은 조용하고, 말이 없다. 나도 왠지 조용히 걷게 되는 골목길을 지나다니면서, 내면이 고요한 사람들에 대해 생각했다. 성령강림은 무척 시끌벅적한 사이공의 거리 같지만, 실은 이 골목길 같은 내면의 사건이다. 내가 만난 젊은이들의 마음속에 자리한 “복음”과 “헌신” 그리고 가난이 남긴 “슬픔”들은 아직도 내 맘을 울린다. 그 아름다움은 사이공의 골목길을 닮았다. 나는 아직 이 감동을 내가 수업에서 만날 미국의 학생들에게 어떻게 이야기 나눌지 알지 못한다. 아니 어쩌면 그냥 내 맘에 남아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들의 이야기는 내 맘에 초록색 아름다움으로 깊이 새겨졌다. 황홀한 아름다움으로.

학생들과 수업 마치고 한 저녁식사 풍경. ⓒ박정은

박정은 수녀
미국 홀리네임즈 대학에서 가르치며, 지구화되는 세상에서 만나는 주제들, 가난, 이주, 난민, 여성, 그리고 영성에 대해 관심한다. 우리말과 영어로 글을 쓰고, 최근에 “슬픔을 위한 시간: 인생의 상실들을 맞이하고 보내주는 일에 대하여”라는 책을 썼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박정은 editor@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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