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구현사제단, 문규현 신부, 임수경 씨 군사분계선 통과 30주년 미사

문규현 신부, 임수경 씨(수산나)의 군사분계선 통과 30주년을 기념하는 미사가 봉헌됐다.

12일 광화문광장에서 사제, 수도자, 신자 150여 명이 참여한 가운데 천주교 정의구현전국사제단이 봉헌한 이 미사는 지난 7월 15일 시작된 ‘한반도 평화정착 기원 월요미사’이기도 하다.

1989년 8월 15일 문규현 신부는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 대표로 평양 세계청년학생축전에 참가하기 위해 방북했던 임수경 씨(수산나)를 판문점 군사분계선을 넘어 남쪽으로 데리고 내려왔다. 이를 사제단은 ‘분단선 통과’라고 부른다.

당시 한국외대 학생이던 임 씨가 1989년 6월 30일 방북하자, 사제단은 7월 25일 문규현 신부를 북한으로 보내 임 씨와 동행하도록 했다. 두 사람은 8월 15일 판문점 군사분계선을 넘어 남으로 돌아왔다. 두 사람은 한국전쟁 뒤 군사분계선을 넘은 최초의 민간인이 됐다.

군사분계선을 넘자마자 이들은 바로 붙잡혀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항소심에서 징역 5년을 선고받았으며 3년 여 복역 끝에 1992년 성탄절 전날 밤 석방됐다.

이날 미사는 천주교 정의구현전국사제단 대표 김영식 신부 주례로 전국 교구와 수도회에서 온 사제 30여 명이 공동집전했다. ⓒ김수나 기자

이날 미사는 사제단 대표 김영식 신부(안동교구) 주례로 전국 교구와 수도회에서 온 30여 명의 사제가 공동 집전했다.

함세웅 신부는 강론에서 문 신부와 임 씨를 포함해 “민족의 일치와 화해를 위해 가시밭길을 간 이들이 우리의 선구자이며 이들의 고통은 예수의 고통과 연결된다. 이들에게 우리는 역사적 빚을 졌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광화문 네거리, 방해자들 속에서 30주년 미사를 봉헌하는 것이 마음 아프지만, 이는 오히려 예수의 십자가를 가깝게 따르는 한 방법은 아닐까”라면서 “고난과 수모를 이기고 이 자리에 온 두 분처럼 우리도 고난극복의 마음으로 남북평화와 공존을 위해 미사를 드리자”고 말했다.

이날 사제단은 성명을 내고, “1989년 분단선 돌파는 3.1혁명과 임시정부 수립 70년 만에 피어난 독립정신의 꽃이자 민주정신의 열매”로, “두 사람의 역사적 방북은 개인의 결단 이전에 당시 사제단과 전대협의 파견이었음을 기억하며 그들의 어깨에 십자가를 지웠던 우리가 오늘 짊어져야 할 사회적 책무가 무엇인지 묻는다”고 말했다.

사제단은 “감히 통일을 논하지도, 함부로 분단에 접근하지도 말라던 시대의 금기와 금단을 깨뜨리는 일은 오로지 십자가가 아니면 불가능한 일이었다”고 평가하고, "겨레의 일치를 위한 눈물겨운 수고들을 생각하면서 한반도의 평화 프로세스를 좌절시키기 위해 평화헌법을 깨뜨리려는 일본 아베 내각의 무도한 무역규제 등 우리를 둘러싼 많은 어려움을 이겨 내자”고 호소했다.

12일 광화문광장에서 봉헌된 분단통과 30주년 기념 및 한반도 평화정착을 위한 월요미사에서 문규현 신부가 발언했다. ⓒ김수나 기자

이날 문규현 신부는 "1989년은 새로운 통일의 역사가 기록된 해로, 그해 6월 평양과 임진각에서 남북 동시 봉헌된 통일염원미사와 5개월 뒤 한반도의 평화통일을 위한 국제대행진단의 대장정은 한반도의 강고한 분단의 장벽을 다시금 확인하는 사건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30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남북은 대립, 반평화, 반통일의 장벽 앞에서 앓고 있고, 당시 판문점을 넘어설 때 남쪽 구역에서 가장 먼저 만났던 미군은 아직도 변함없이 이 나라에 숨어 있는 지배자, 통치자, 조정자로 행세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도 한반도 분단을 이익으로 여기는 미국의 논리는 조금도 변함없고, 최근 일본의 경제전쟁 선포는 “또 하나의 대미, 대일 분단을 낳았다”며 “정치 지도자들의 회담 몇 번으로는 결코 이 상태를 해결할 수 없고, 남북 민중의 평화, 통일에 대한 자주적 열망이 가장 중요하다”며, “남북 민중의 열망으로 정치 권력을 움직이고, 동아시아 정세를 변화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는 민중과 함께할 수 있는 한반도와 동북아 평화에 대한 대안을 긴급히 내놓아야 하며, 그것이 바로 분단통과 30년을 기념하는 의미”로 “비핵 종전선언을 사실화하고, 평화협정을 이끌어 한반도의 자주 평화와 민족 대단결의 역사를 완성, 선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분단의 서러움으로 45년을 지내는 오늘 이 시간, 이 분단을 넘고자 합니다. 이 비극의 자리에 당신 보고 계시지요? 우리 7000만 동포의 아픔을 당신은 알고 계시지요? 이 아픔을 그냥 지나칠 수 없어서 우리는 이 장벽을 우리의 작은 몸으로라도 부서뜨리고 싶습니다.” (1989년 8월 15일 군사분계선을 넘으며 문규현 신부가 바친 기도)

이날 미사에 참례한 임수경 씨(수산나). ⓒ김수나 기자

미사에는 임수경 씨도 참석했다. 그는 1989년 군사분계선을 넘던 순간 문규현 신부가 한 이 기도를 읊은 뒤, 당시 22살이었던 자신은 프란치스코 성인의 ‘평화를 구하는 기도’를 했다며, “늘 평화를 비는 마음으로 30년 전 군사분계선 위에서 바쳤던 평화의 기도를 이번 광복절에도 바칠 수 있길 바라고, 프란치스코 교황이 문규현 신부 등 사제단과 평양 장충성당에서 미사를 함께 봉헌하면 참 좋겠다”고 말했다.

미사를 마치며 김영식 신부는 “지난달부터 매주 월요일 봉헌하는 이 미사는 한반도 평화를 염원하며 잊지 않기 위한 우리의 몸부림이자 호소”라며 “이 호소가 비록 정체불명의 무리가 쏟아내는 악다구니에 삼켜진다 해도 하느님께서는 아시리라 여기며, 우리의 절절한 기도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대한민국수호천주교인모임’(이하 대수천)은 3주째 미사를 방해하는 집회를 열었다.

지난 7월 29일 미사에는 여형구 신부(서울대교구 은퇴 사제)도 대수천 집회에 참석했다. 회원들은 사제단과 미사 참례자들을 '사탄'이라고 부르며, 강론은 물론 영성체 때도 소음과 욕설로 미사를 방해했다.

이에 대해 함세웅 신부는 경찰에게 이들의 행동을 제지해 달라고 공식 요청하겠다면서 “3주째 이어지는 저들의 방해에 마음이 찢어지듯 아프다. 의견에 반대할 수는 있지만, 시민이자 신앙인으로서 미사 방해는 절대 안 된다. 이는 성령을 거스른 독성죄로 용서받을 수 없다. 일치와 화해를 위해 노력해 주길 호소한다”고 말했다.

이날 '대한민국수호천주교인모임'(대수천)은 3주째 미사를 방해하는 집회를 열었다. ⓒ김수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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