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큘라의 겨울잠

기사승인 2019.08.14  15:4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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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큘라, 엄니와 화해하다 3]

일상은 거북이걸음처럼 느리게 가고 휴가는 화살처럼 날아가듯이 안식년 2년은 쏜살같이 지나 2007년 말 고국에 왔을 때 아버지가 나를 기다리고 계셨다. 다음 해인 2008년 초 아버지는 전립선암 진단을 받으셨고, 자식 중에서 가장 시간이 많다고 여긴 나를 당신의 병원 진료 보호자로 택하셨다. 나는 추위를 무릅쓰고 아버지를 꼼짝없이 따라다녀야 했다. 선천적으로 기관지가 약한 나는 한기에 계속 노출되자 감기 기운이 시작되었고 드디어 심한 기침을 동반한 폐렴으로 발전했다. 아버지는 다행히 초기에 암이 발견되어 다른 장기로 전이가 되지 않은 상태였고, 수술 결과도 좋아 차츰 암의 늪에서 벗어나셨다. 반면에 나는 폐렴이 심해져 병원과 약국을 왔다 갔다 하면서 힘겨운 그 겨울을 보냈다. 어려서부터 약골인 내가 사경을 몇 번 헤맨 적이 있어서 엄니와 언니는 내가 폐렴에서 벗어나자, 기침을 끊이지 않고 하던 그때에 ‘아무래도 금자가 이번에는 어려울 것 같다’고 하면서 마음이 아팠다고 나에게 말했다.

귀국 뒤에 남편 베드로는 예전에 다니던 직장에 복귀했고, 나는 종교기관에서 일하면서 겪은 정신적 트라우마 때문에 특정 단체에 매이기보다 프리랜서로 뛰기로 했다. 안식년을 떠나기 전부터 연구위원으로 활동한 ‘우리신학연구소’에서 청소년 관련 프로젝트를 함께 하자고 해 2008년 1월 30일 총회 때 인준을 받아 연구소 부설 ‘청소년 센터-숨’을 맡았다. ‘숨’센터에는 활동가에 해당하는 매니저들이 주일학교 청소년, 교사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일 년을 걸쳐 준비한 뒤에 청소년을 대상으로 ‘청소년인권캠프’를 개최했고, 인천교구 고강동 성당 주일학교 초등부, 대전교구 진잠성당 중고등부 대상으로 한 ‘점, 선, 리듬’ 예술창작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매니저들은 주일학교 중고등부 학생들을 위한 ‘사진반’, ‘밴드부’, ‘교사교육’을 담당했다.

‘숨센터’ 매니저인 이경란이 진행한 고강동 성당 주일학교 중고등부 밴드부 성탄발표회. 잘 연주하는 것보다 준비하는 과정에서 자신을 발견하고 친구들 존재의 소중함을 알게 되고 함께 성장할 좋은 기회였다고 생각한다. 교회가 성당에 나오는 청소년들이 각자의 끼를 발산할 다양한 기회를 마련했으면 좋겠다. ⓒ최금자

귀국할 때 우리 짐을 날라 주기 위해 공항으로 마중 나온 인연으로 알게 된 지인의 부탁으로 ‘인천교구 우리농’ 매장 중년 활동가를 대상으로 (아)‘줌마 자존감 세미나’를 2년 동안 진행했다. ‘새세상을 여는 천주교 여성공동체’ 부설 ‘미리암 이주여성센터’의 운영위원으로 4년 동안 활동하면서 이주여성의 삶이 녹록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또한 인터넷 언론인 <가톨릭뉴스 지금여기>가 초창기 다음 카페로 시작한 2008년에는 객원기자로, 정식 언론으로 등록한 뒤부터 현재까지 편집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귀국 후 다양한 활동으로 내 다이어리는 약속과 활동으로 빼곡히 채워졌지만 내면의 기쁨과 열정은 사그라들고 있었으며, 겉으로는 활발하게 활동하는 듯해도 속으로는 점차 자신감을 잃어 가고 있었다. 내 영혼은 서서히 우울의 심연으로 가라앉고 있었다. 나는 이런 증상이 시작되기 전부터 중년기의 심적, 신체적, 영적 변화에 대한 글을 읽었던 터라, '차츰 내면과 생체리듬의 변화-평상시에 일어나던 시간에 못 일어나고, 식욕이 급격히 감소하고, 유머가 사라지고, 두뇌 회전이 느려지고, 만사가 걱정으로 시작해 불안증세로 증가하며 부정적인 시각이 우세해진다' 등등을 감지하게 되었고 우울증이라는 자가진단을 내렸다. 이런 결론이 나오자 2009년 그 어느 날 병원을 방문해 나의 상태를 얘기하며 우울증 같다고 하자, 의사는 우울증세는 그리 심각하지 않은 듯하니 일단 약을 며칠 먹은 뒤에 다시 만나자고 했다. 

약을 복용한 지 3일 후 평생 이 약을 먹으며 살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순간 나 자신이 한없이 초라해 보였다. 하루는 엄니와 언니가 있는 자리에서 선언했다. “나, 우울증 약 안 먹고 내 의지로 극복해 볼 거야. 혹시 약 안 먹어서 죽을지라도 후회하지 않을 것이니까 슬퍼하지 마.” 우울증을 겪어 본 엄니는 그것이 얼마나 무서운 병인지 알고 있었기에 눈물을 흘렸다. 지금도 약이 몇 알 들어 있는 그때 약병을 기념으로 간직하고 있다. 그 순간의 다짐과 비장함을 잊지 않기 위해.

부모님 결혼 61주년 기념 가족 모임 때에 두 분의 다정한 모습. 내 나이보다 더 많은 세월 동안 부부, 부모로서 살아오신 최우열 아버님과 김정순 어머님에게 감사한다. 자식을 위해 자신들의 꿈과 욕망을 접고 온전히 몸과 마음으로 고생하신 두 분 세대의 모든 부모님에게 존경을 표하고 싶다. ⓒ최금자

이탈리아에서의 화산폭발 뒤 시작된 심적 하강은 그 끝을 모르고 진행되고 있었다. 2009년의 겨울은 나에게 가장 힘든 시기였다. 나는 우울증에서 탈출하기 위해 노력했다. 인천에서 서울 우면산동으로 왕복 4시간이 걸리는 명상모임에 참석했다. 모임이 끝나고 집에 돌아오면 한밤중이었다. 모임 중에 참석자들이 서로의 경험을 돌아가면서 나눴는데, 30대 초반인 한 여성은 ‘우울증 앓은 지 10년 가까이 되었는데, 언제 이 터널에서 탈출할지 출구가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그 순간 그럼 난, 언제 이 여정을 끝낼 수 있을지 두려웠다.

나는 베드로가 출근하는 시간에 일어나지 못했고 식사는 하루에 한 끼 먹고 종일 자다가 남편이 퇴근할 때 겨우 일어나는 경우가 많았다. 이런 상태로 오래 있다가는 내 삶의 끝이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집에서 전철을 타야 도착하는 ‘부평복지관’에 가서 겁도 없이 자원봉사활동을 신청했다. 아침에 일어나지도 못하는 주제에 봉사활동이라니. 복지관에 도착해야 할 30분 전까지 누워 있다가 시계를 보고 화들짝 놀라 대충 옷 입고 전철을 타고 역에서 내려 숨을 헐떡거리며 복지관으로 달려갔다. 2009년 말부터 2010년 초순까지 어르신들을 위한 노래교실, 한글반과 웃음치료, 지적 장애아동들을 위한 음악치료 강사 보조로 활동하고, 어르신을 위한 도시락 배달을 했다. 그해 겨울은 유난히 춥고 눈도 많이 와 길이 빙판이었는데 행여나 넘어질세라 종종걸음으로 길을 걸으며 도시락을 배달했다. 가족의 돌봄을 받지 못하고 외롭게 사시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도시락을 받아 들고 반가워하는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고 짠하다.

우울증을 앓으면서 그것이 가까이하기에는 너무 먼, 멀리하기에는 너무 가까운 당신처럼 느껴졌다. 탈진된 나를 방치한 것을 일깨워 준 고마운 친구처럼, 내 주변 사람들, 특별히 엄니가 나에게 미친 영향이 얼마나 크고 결정적인지를 알게 해 준 지인이었음을 그 긴 여정 동안 깨닫게 되었다.

‘숨센터’ 매니저인 김영란이 진행한 고강동 성당 주일학교 중고등부 사진반 모임. 어려운 가운데서도 매니저를 맡아 준 후배에게 고마웠다. ⓒ최금자

최금자(엘리사벳)

주일학교 중고등부 교리교사. 30년 넘게 청소년들과 희로애락을 나누며 즐겁게 살고 있다. 인생의 동반자 베드로와 함께 지난 6년 동안 열었던 붙박이 ‘어린이카페 까사미아’를 이어서 청소년들을 위한 ‘무빙 까사미아’를 준비하고 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최금자 editor@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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