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있는 노래랑 아이들이랑 - 17]

'손님이여 오라!'

해마다 여름이면 나는 각오부터 단단히 한다. 남들에겐 여름휴가철이 나한테는 손님맞이철이기 때문이다. 꾀죄죄한 우리 집에 찾아오는 손님은 대체로 성격이 무던한 경우가 많으므로 크게 걱정은 안 하지만 그래도 식구끼리 있을 때와는 다른 마음가짐이 되는 것은 사실이다.

올해는 고등학교 때 나와 무려 3년을 같은 반 단짝으로 지낸 친구가 내려왔다. 8살, 6살, 3살 세 아이와 함께 말이다. 간간이 전화통화만 하며 지내고 내가 어쩌다 친정에 가면 잠깐 얼굴이나 보는 정도였는데, 이번엔 장장 7박8일을 내리 함께 지내게 됐다. (사람과 사람의 인연이 물길 따라 흘러가면서 만나고 헤어지고의 연속이라는 생각이 드는데, 지나온 어느 대목에서 만난 친구를 다시 만나니 얼마나 감회가 새롭던지.... 게다가 고만고만한 애가 셋 있는 것도 서로 짠 듯이 닮았다는 게 신기하다.) 옛날 친구니까 스스럼없이 살림도 나누어 하고, 애들도 같이 돌보면서 말이다.

그러면서 참 많은 얘길 나누었는데, 아무래도 주요 관심사와 주제는 '육아'였다. 친구는 말했다. 우리 집에 와서 진짜 휴가를 보내는 느낌이 드는 게 애들 뒤를 매니저처럼 졸졸 따라다니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라고, 우리 집에서는 아이들이 집, 마당, 골목을 마음대로 드나들며 지들끼리 잘 노는데 그게 참 신기하다고 말이다. 그러면서 덧붙이길 친구는 아파트촌에 살면서 다른 엄마들에게 아이들을 너무 풀어 놓고 키우는 거 아니냐는 눈총을 받고 있다고 했다. 아이들을 학원 같은 데 보내지 않고 날마다 놀이터에 나가 오후 6시까지 주구장창 놀게 한다는 게 눈총을 받는 이유란다. 하루에 겨우 세네 시간 놀리는 게 방임이라니, 그렇담 우리 아이들은 집에서 완전 내놓은 수준이라는 건가?

아이들과 함께 동화책 읽기. ⓒ김성희

여기서 잠깐 우리 집 아이들을 떠올려 보면 요즘 해가 길어져서 저녁밥을 8시가 되어야 먹는데 그때까지도 노느라 바쁘다. 내가 밥 먹으러 들어오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최후 협박까지 해야 "아이, 더 놀고 싶은데...." 하면서 아쉬움이 만연한 얼굴로 들어온다. 이렇게 놀아도 놀아도 더 놀고 싶어서 몸이 달아 있는데 하루 한두 시간도 눈치 봐 가며 노는 아이들은 대체 뭔 재미로 살까? 스마트폰 게임이나 유튜브가 억눌린 놀이 욕구를 해소해 줄까? 과연 그것이 몸으로 뛰어노는 재미와 맛을 대신할 수 있을까? 점점 더 강퍅해지는 요즘 아이들의 삶을 생각하면 안타깝고 가슴이 아프다.

친구가 와 있는 동안 우리 집 아이들 여섯, 막판에 이웃집 아이 둘까지, 다해서 여덟 명의 아이들은 그야말로 놀자판이었다. 소꿉장난, 카드놀이, 구슬치기, 술래잡기, 탐정 놀이, 그림 그리기, 책 만들기, 싸우기 놀이, 책 읽기, 엉망진창 공연 만들기, 악기 연주, 비행기 접어 날리기, 트럭 짐칸에 올라타기, 왕자 공주 놀이.... 이렇게 놀다 저렇게 놀다, 혼자 놀다 같이 놀다, 무궁무진하게 놀았다. 그렇게 원도 한도 없이 다 노는구나 싶었는데도 친구 큰딸은 집에 돌아가기 하루 전날 이렇게 말했다.

"시간이 얼마 안 남았어. 우리 빨리 놀자. 내일은 아침 일찍 일어나서 집에 가기 바로 직전까지 실컷 노는 거야. 알았지? 다같이 약속하는 거야!!!"

놀아도 놀아도 지치지 않고 오히려 놀면 놀수록 눈빛이 총총해지고 기운이 팔팔해지는 아이들에게 깊은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보낸다. 너희들이 '신'나는 만큼 세상은 더 생기발랄해진단다. 그러니 제발 잘 놀아만 다오!

다같이 신나게 노는 세상, 놀아도 눈총 받지 않는 세상을 꿈꾸며, 김명수 님의 동시 '나무들의 약속'을 읊어 본다. 이 시가 얼마나 좋은지 내내 입에 달고 다니고 싶어 노래로도 만들었으니 한번 들어 보시라~^ㅇ^

(사진 ⓒ김성희)

 

숲속 나무들의 봄날 약속은

다같이 초록잎을 피워내는 것

 

숲속 나무들의 여름 약속은

다같이 우쭐우쭐 키가 크는 것

 

숲속 나무들의 가을 약속은

다같이 곱게곱게 단풍드는 것

 

숲속 나무들의 겨울 약속은

다같이 눈보라를 이겨내는 것

(동시 원문에는 '이겨 내는 것'이 '견뎌 내는 것'으로 되어 있는데 노래를 만들면서 내가 바꾸었다. 좀더 적극적인 몸짓이 좋을 것 같아서.... 헌데 좀 더 세월이 지나고 내공이 쌓이면 담담하게 '견뎌 내는 것'으로 부르게 될 것 같기도 하다.)


덧.

친구 가족을 배웅하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다울이가 말했다.

"엄마, 손님이 너무 오래 있으니까 힘들다. 가니까 아쉽기는 한데 그래도 이제 쉴 수 있어서 좋아."

그래, 아이들도 내심 힘든 부분이 있었을 거다. 하지만 힘든 게 다가 아니니까, '혼자만 잘 살면 무슨 재민겨'란 책 제목도 있듯이 다같이 잘 살아야 진짜 재미가 있으니까 각오하고 하는 일이지. 함께 있는 순간순간이 지나고 나면 다 아쉽고 아련한, 다시 못 올 추억이 되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아니까 말이다.

아무튼 다울이 말에 나도 충분히 공감하는 바, 손님을 더 부담 없이 맞을 수 있는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다. 다음 글(어쩌면 다음다음 글이나 다음다음다음 글)에서 그 이야기를 펼쳐 놓게 될지도 모르겠다.

정청라

인생의 쓴맛 단맛 모르던 20대에 누가 꿈이 뭐냐고 물으면 '좋은 엄마가 되고 싶다'고 대답했다. 하지만 막상 엄마가 되고 1년도 채 안 되어 좋은 엄마는커녕 그냥 엄마 되기도 몹시 어렵다는 사실을 깨닫고 '좋은 엄마'라는 허상을 내려놓았다. 그 뒤로 쭈욱 내려놓고, 내려놓고, 내려놓기의 연속.... 이제는 살아 있는 노래랑 아이들이랑 살아 있음을 만끽하며 아무런 꿈도 없이 그냥 산다. 아이를 기른다는 것은 '스스로 길이 된다는 것'임을 떠올리며 노래로 길을 내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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