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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6겹 페스츄리의 변주

기사승인 2019.08.16  18:1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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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욜라 즐거운 육아 일기 - 96]

여름방학도, 휴가도 보냈지만 이야기의 계절은 좀체 가지 않아 지난봄 언저리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래서 더위에 펄펄 열이 나면서도 ‘아, 그때 그 봄날이.... 어땠었더라.’를 더듬고 있는 나도 나지만, 그걸 또 들어 주려는 독자들도 시차 적응이 안 되긴 매한가지일 것 같다. 그러나 봄을 지나야 여름이 되고, 가을도 오는 법이니, 부모상담의 두 번째 관문이었던 메리 편으로 서둘러 들어가 보겠다. 

메리, 욜라, 로. ⓒ김혜율

메리는 내게 음.... 항상 녹록지가 않은 아이다. 지금껏 그랬다. 도대체 어디로 튈지 맞추지를 못하고 내가 생각하는 상식선에서 메리를 키우기는 좀 어려웠다. 초등학교 통지표에 적힌 ‘온순’이라는 한 마디로 표현할 수 있었던 나의 어린 시절과는 달리, 메리는 ‘온순’의 지구 반대편에 가 있다. 그래, 내가 여기 있다면, 메리는 지구의 핵을 뚫고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 쯤에 있겠다. 빵으로 치면, 내가 솥에서 쪄 올린 찐빵이라면, 메리는 256겹의 페스츄리다. 찐빵하면 팥찐빵이지만, 페스츄리는 딱 이거다 하는 게 있나. 그 안에는 애플잼이, 초코가, 커스터드 크림이, 아니면 레몬 크림이 들었을 수도 있다. 물론 찐빵도 여러 버전으로 변모 가능하지만 어디 페스츄리가 선사하는 무수한 변주에 미칠까. 그 페스츄리가 맘을 먹고 256겹에서 한 번 더 접으면 512겹, 그 다음엔 1024겹이, 또 그 다음엔 2048겹.... 그리고 4096겹.... 8192겹.... 또.... 또! 상상 속에서는 얼마든지 부풀어 오른다. 하지만 소박하게 잡아 단지 256겹의 통통한 메리빵을 앞에 둔 나는, 그 빵이 품은 잼도, 수많은 겹도 거의가 알 수가 없다. 

지치지 않는 에너지의 한 겹, 뭐든지 알고 싶고, 해 보고 싶은 호기심의 한 겹, 하지 마라는 건 더 하고 싶은 반항성의 한 겹, 어쩐 일인지 넘치는 자신감의 한 겹 같은 것은 내가 지금껏 찐빵으로 살아오며 결코 겸비하지 못한 것이다. 그것 말고도 또 있겠지. 생각건대, 그렇게 메리빵은 여러 요소들로 점점 부풀어 오르고 층층이 구워져 부에노스아이레스까지 가고 마는 것이다. 주로 방구석을 전전하며 지내는 요즘 나의 처지 때문인지, 내 평생 근처에도 못 가 본 부에노스아이레스까지 멀리도 갔는데, 아무튼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메리는 나와 많이 달라서 주로 혼란스럽긴 하지만 그만큼 나를 늘 깨어 있도록, 고민하도록 해 주는 귀한 친구라는 점이다. 사실 메리를 빼면 내 친구 중에도, 친구의 친구 중에도 메리 같은 아이는 없다. 메리는 누구와도 닮지 않았고, 누구라도 될 수 있는 아이다. 나는 그래서 메리가 어떻게 클지 잘 모르겠고, 그저 256겹 어딘가에는 엄마인 나의 모습도 몇 겹 들어 있겠지 하고 생각해 보는 정도다.

메리의 실상에 반해 학부모 상담은 지극히 평범하다. 유치원 땐 그래도 다양한 편이었는데, 초등학교에 들어와서는 선생님들은 하나같이 메리에 대해 ‘판에 박힌’ 의견을 내놓는 데 그치고 있다. ‘메리는 학교생활을 잘하고 있으며, 친구관계도 좋고, 수업태도도 좋아 나무랄 데가 없는 모범생이다. 메리 같은 아이는 100명이 있어도 힘이 안 들겠다.’ 하는 식이다. 하.... 어찌 그리 보는 눈이 없으신가. 무슨 애들이 나처럼 다 찐빵인 줄 아나. 내가 ‘선생님, 메리가 모범생이라니, 그렇지 않습니다. 메리는 제가 알기론, 아주 날라리입니다. 선생님! 똑바로 좀 봐 주십시오.’라는 눈빛으로 고개를 갸우뚱해도 선생님들은 ‘자 어떻습니까, 우리 사이 얼굴 붉힐 일 없어 참 좋지요?’ 하는 얼굴로 싱글벙글하실 뿐이었다. 선생님들은 그저 학교시스템에 맞춰서 아이의 두세 겹만을 보시고 그게 메리거니, 이 아이는 이렇거니, 저 아이는 저렇거니 하시는 거다. 뭐 그게 당연하다. 선생님이 도사도 아니니까. 선생님 눈이 멀었던지 말던지, 나는 일단 내 아이를 조금이라도 더 알아서 잘 자랄 수 있도록 지켜봐야 하는 사람이다. 

길 가면서 과자 먹는 아이들. ⓒ김혜율

그런데 모범생 메리는 학교에서 왜 모범생으로 살고 있을까? 의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혹시 메리는 엄마인 나도 잘 모르는 ‘사회생활 속 처세’를 터득한 게 아닐까 싶어 잘 보았더니, 메리는 그저 자기 페이스대로 자신을 천천히, 조금씩 드러내는 것뿐이었다. 메리는 모범생이고 뭐고 별 기준이 없고, 자기 내키는 대로 하다 보면 초반엔 모범생인 면이 부각되다가 곧이어 이런저런 모습이 계속 나오는 것이다. 얼마든지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는 메리다. 그래서 메리는 ‘의외성’이 특기다.

이번 학부모 상담도 혹시나 했지만, 이전과 다르지 않았다. 계속 있어 봤자 재미난 일도 없겠다 싶어 얼른 마무리짓고 나왔더니, 고작 5분이 지나 있었다. 좀 허탈했다. 그래, 메리야, 넌 누가 뭐래도 너대로 살아야겠다. 모범생에서부터 문제아까지 네 멋대로. 무딘 선생님도, 불안한 엄마도 모두 지나쳐서 너는 부에노스아이레스까지 가야 하지 않니. 메리는 메리로! 메리는 메리가! 메리는 메리에게! 이번 학부모 상담은 그렇게 결론 내리기로 했다.

메리의 학부모 상담까지 무사히 끝내니 이제 마지막 타자만 남았다. 바로 욜라의 상담인데, 지면관계상 다음 편으로 미룰까 싶지만, 그러면 또 계절이 바뀔 것 같아서 쓰는 데까지는 써 보기로 하겠다. 사실 세 아이 중 가장 기대되던(가장 걱정스러웠던) 것이 욜라의 학부모 상담이었다. 학교에 입학해서 처음 맞는 상담이기도 했고, 상담에 앞서 부모초청 공개수업이 있었는데, 그 경험이 나의 불안감을 가중시킨 탓이기도 했다.

교양 있게 꾸미고 학교에 방문한 날. 엄마가 학교에 나타나면 1학년 초 아이들은 으레 엄마를 보고 쪼르르 달려와 안기거나, 자꾸만 뒤를 돌아보며 엄마 얼굴을 확인하는데, 욜라는 자리에 묵묵히 앉아 있었다. 뒤에서 보면 붓글씨라도 쓰나 싶은 풍모였다. 내가 손을 붕붕 흔들자 살짝 웃어 주긴 했다. 선생님의 질문에, (아마도 엄마한테 잘 보이려고) 흥분한 아이들이 소리를 지르며 손을 드는 데 반해, 욜라는 손이 천근만근이나 되는 듯 손을 반쯤 들어올린 게 다였다. 그것도 한 박자 반 늦게. 욜라는 주로 친구들이 말하는 걸 듣고 베시시 웃기만 했다. ‘그래, 그럴 수도 있지. 다 한 마디씩 하면 수업이 아수라장이 될 테니, 욜라처럼 수업 내 미소만 짓고 있어도 좋아’ 하고 애써 생각하고 있는 그때, 바로 내 옆에서 나누는 대화가 들렸다. “아유, 쟤 좀 봐. 손을 입에 넣고 있잖아. 저기 남자애 하나랑 우리 애랑 둘이 그러네. 아휴, 손을 입에 왜 넣어.” 아이 엄마로 보이는 이가 발을 동동 구르자 아이 아빠인 듯한 이가 목소리를 낮추어, “내가 아까도 손 입에 넣지 말라고 혼냈는데.... 집에 가서.... 어쩌구저쩌구” 하는 거였다. 

손을 입에 넣고 있는 여자아이 하나와, 남자아이 하나. 그 남자아이가 욜라였다. 나는 그 부모에게 ‘제가 바로 그 남자애의 엄마입니다만’ 하고 아는 체도 못하겠고, 그냥 그들의 이야기를 못들은 척, 그런 욜라를 못 본 척할 수밖에 없었다. 교양을 지키지 않아도 된다고 배웠다면, 나는 그 자리에서 큰소리로 ‘욜라야! 손 빼!’라고 꽥 소리를 질렀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교양 있는 나는 ‘이따 보자. 욜라....!’ 하며 참기로 했다. 나는 많이 조급해졌다. ‘입에 손을 넣고 있는 남자아이’의 엄마로서, 수업 내내 발표 한 번 안 하고, 때때로 헤벌쭉 웃기만 하는 욜라를 남들이 바보로 볼까 봐서였다. 그러던 중 부모와 아이가 함께하는 작품 만들기 시간이 다가왔다. 이번에야말로 욜라의 바보 이미지를 바꿀 기회라고 생각한 나는 욜라와 머리를 맞대고 팝콘에 순간접착제를 발라 팝콘나무를 꾸몄다. ‘후훗. 바보라면 이렇게 팝콘나무를 꾸미지 못할 테죠, 안 그런가요, 선생님! 여러분! 욜라는 바보가 아닙니다.’ 하고 어필하고 싶었다. 하지만 선생님은 물론이고, 다른 부모들도 각자 바빠 이쪽은 전혀 보지 않았다. 

모래사장에서 로. ⓒ김혜율

그렇게 이미지 쇄신도 못 이룬 채 공개수업의 마지막 순서가 되었다. 아이들이 부모님을 위해 준비한 노래를 다 같이 부른단다. 교실 뒤에 서 있는 부모들과 아이들이 서로 마주보고 선 순간. 부모들은 저마다 스마트폰을 꺼내 들었고 아이들은 노래를 시작했다. 이제 감동할 차례인가 싶어 욜라를 보는데, 이럴 수가! 욜라는 노래를 부르지 않는다. 침착하자. 욜라 같은 아이가 몇 있다면 위안을 삼을 수도 있지. 싶어 보니 아까 입에 손을 넣고 있던 아이를 포함한 모든 아이들이 성실하게 입을 참새처럼 벌려 노래를 부르고 있는 게 아닌가. 오로지 우리 욜라만 입을 열지 않았다. 욜라는 아이들의 노래를 듣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왜 거기서 음악감상을 하고 있니, 욜라야! 아아, 그런 욜라의 모습은 다른 엄마들이 찍는 핸드폰 속으로 고스란히 들어가고 있었다.

나는 그날 이후로 얼굴이 빨개졌다 파래졌다 노래졌다가 한숨을 폭폭 쉬는 증상에 시달렸다. 그리고 어김없이 다가온 대망의 상담일! 지금까지 로와 메리의 상담 무사통과의 기운도 소용없이, 나는 자신이 없었다. 과연 선생님은 욜라에 대해서 얼마나 안 좋게 말씀하실까. 욜라에 대해 하실 말씀이나 있으실까. 너무 부정적인 이야기는 안 듣고 싶은데. 부디 무난히 지나갔으면 좋겠다. 그래, 아마 이번에도 눈먼 선생님일 테니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지는 말자. 욜라는 내가 어떻게든 해 보면 되니까. 하는 이런저런 생각으로 발걸음도 무겁게 학교로 향했다. (그 다음 이야기는 다음에 마무리짓도록 하겠습니다. 꼭이요 꼭.)

 
 

김혜율(아녜스)
(학교에서건 어디에서건) 애 키우는 거 제대로 배운 바 없이 얼떨결에 메리, 욜라, 로 세 아이를 낳고 제 요량껏 키우며 나날이 감동, 좌절, 희망, 이성 잃음, 도 닦음을 무한반복 중인 엄마. 워킹맘이다. 다행히 본인과 여러 모로 비슷한 남편하고 죽이 맞아 대체로 즉흥적이고 걱정 없이 살고 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김혜율 editor@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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