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하는 시 - 박춘식]

노부부. (이미지 출처 = Pixino)

끝장까지 기다리시는 하느님

- 닐숨 박춘식

 

구약성경을 기록한 분들은

하느님 손에 칼을 쥐여 드렸습니다

메시아 예언과 함께 천 년 또 천 년 후

하느님은 까무러치는 사랑으로 나타납니다

그리고 이즈음에는

하느님을 마냥 기다리시는 사랑이라고 말합니다

 

외면당하시면서도 묵묵 기다리십니다

사람에게 짓밟히면서도 그 사람을 끝까지 기다리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아무리 나쁜 불량아라도

막판에는 손잡아주시려고 초조하게 기다리시며

계속 눈길을 떼지 않습니다

 

십일 년 치매 할멈의 숨통을 꾸욱 눌러 끝내면서

하늘과 조상에게 마지막 욕질을 하는 여든 할배가

뒤뚱거리며 끝내 자기 몸을 시궁창에 던집니다

그때 막대 같은 할배의 발목을 덥석 잡으시는 하느님,

죽은 할멈의 대성통곡을 대성통곡으로 품으시는 하느님,

용서비는 기도를 맑은 미소로 감싸주시는 큰 사랑님,

끝장까지, 두 손을 펴들고 기다리시는 하느님.

 

<출처> 닐숨 박춘식 미발표 시(2019년 8월 19일 월요일)

 

탈출기 22장 21-23절의 내용은 너무 두렵습니다. “너희는 과부나 고아도 억눌러서는 안 된다. 너희가 그들을 억눌러서 그들이 나에게 부르짖으면, 나는 분노를 터뜨려 칼로 너희를 죽이겠다. 그러면 너희 아내들은 과부가 되고, 너희 아들들은 고아가 될 것이다.“ 구약의 하느님은 이렇게 칼을 들고 죄인을 죽입니다. 무서운 하느님이라고 적어야 하는 까닭이 있었겠지만, 참으로 덜덜 떨리는 하느님이십니다. 그러나 신약성경은 ‘하느님은 사랑이시다’는 말씀을 하시면서, 몸소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의 무한하신 참 사랑을 기록하였습니다. 그런데 사랑이신 예수님께서 세우신 교회(신부 주교들 교회)는, 학문적 이론으로 교리를 정리하면서 엄격한 규범의 하느님을 만들어 2000년 동안 양들에게 가르치며 이끌어 왔습니다. 최근에 와서 근대 성인들의 말씀이나 몇몇 사제들의 진솔한 강론을 통하여 ‘하느님은 죄인을 끝까지 기다리시는 분’이라는 말을 자주 듣습니다. 제가 어릴 때 ‘신부님 말씀 안 들으면 하느님의 벌을 받는다’ 또는 ‘교리 한 개라도 안 지키면 벌 받는다’는 말을 자주 들었습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다’는 말을 열 번 넘게 가르치며 보여 주면서, 한 번 정도 ‘잘못하면 벌 받는다’고 말했다면 참 좋았을 터인데, 하는 생각이 지금에서야 불쑥 튀어나오는 것을 어찌하면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닐숨 박춘식
1938년 경북 칠곡 출생
시집 ‘어머니 하느님’ 상재로 2008년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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