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가톨릭 평화운동 '팍스 크리스티' 한국에서 시작

국제 가톨릭 평화운동 단체 ‘팍스 크리스티’ 한국 지부가 창립됐다.

‘팍스 크리스티 코리아'(PCK) 창립 준비위원회는 8월 24일 창립 총회를 열고 공동대표단 선출과 사업계획을 승인하는 한편, 서울대교구 유경촌 주교 주례로 창립 미사를 봉헌했다.

팍스 크리스티 코리아 준비위는 올해 1월 출범 제안 모임을 시작해 매월 준비 모임을 진행했으며, 창립 총회를 기점으로 304명이 회원으로 가입했다. 공동대표단에는 서울대교구 박동호 신부, 한국가톨릭여성연구원 박은미 대표, 경희대 공공대학원 이성훈 특임교수, 가톨릭대 종교학과 최혜영 교수가 선출됐다.

“우리는 평화가 실현 가능하고, 폭력과 불의의 악순환도 끊을 수 있다고 믿는다. 우리는 모든 인간이 폭력의 두려움에서 해방된 평화로운 세상을 건설하는 것을 비전으로 삼으려고 한다.”(국제 팍스 크리스티 비전 중에서)

이들은 창립 선언문에서 동북아와 한반도가 다시 평화와 폭력의 갈림길에 서 있고, 한반도는 여전히 냉전을 벗어나지 못하는 상황에서,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체제 구축과 한반도를 세계 평화의 발원지로 만드는 노력을 시작해야 할 때라며, 단순히 전쟁이 없는 상태나 세력 균형이 아닌 정의의 결과로서 평화를 지향하겠다고 선언했다.

이들은 “시대의 요청에 부응해 한반도에서 가톨릭 신앙에 기반을 둔 평화운동을 시작하고자 하며, 이는 비폭력, 화해, 연대, 평등의 가치에 기반을 둔 정의로운 평화, 생태적 평화를 실현하려는 것”이라며, “이웃 종교와 공익적 가치를 추구하는 시민사회와 협력할 것이며, 남북, 중국과 일본 그리고 아시아와 지구촌 모든 국가와 민족이 화해하고 협력하는 평화의 문화와 문명을 건설하는 데 헌신할 것”이라고 밝혔다.

‘팍스 크리스티 코리아’라는 이름은 단지 남한 사회 안의 평화운동이 아니라 남과 북을 아우르는 ‘한반도’로부터 시작되는 동북아, 국제 평화를 지향한다는 의미를 담는다.

“정의에 기반을 둔 평화 추구, 모든 폭력 반대, 특히 한반도의 분단 해결과 동아시아 평화 구축에 앞장 선다”는 비전에 따라, 이들은 “국내외 가톨릭교회와 NGO, 정부 기구와 협력 연대, 평화 관련 정책 감시와 정책 수립 지원, 평화 영성 개발 및 평화 교육 지원, 평화 문화 정착, 한국 교회의 평화 사목 참여, 국제 팍스 크리스티 사업 참여, 국제 사회의 평화 구축 활동 참여” 등을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팍스 크리스티 코리아 공동 대표단.(왼쪽부터 이성훈, 박동호, 최혜영, 박은미) ⓒ정현진 기자

“평화를 빈다는 것은 우리 자신과 이웃, 그리고 모든 피조물과의 화해와 평화”

창립 미사를 주례한 유경촌 주교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세계 평화의 날 담화를 통해 이야기한 평화는 “우리 각자가 하느님과 평화로운 관계를 맺는 것, 다양성과 역사를 지닌 가정과 이웃 국가 등 모든 이웃 공동체의 평화, 모든 피조물과 공동의 집인 지구의 평화”를 말한다며, “팍스 크리스티 회원이자 하느님의 자녀로서 우리는 평화는 스스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으로부터 얻어야 하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유 주교는 “하느님의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 다르며, 그래서 우리는 이 활동을 하면서 ‘주님의 평화’라는 이름처럼 그리스도에게 집중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오해된 평화를 이야기할 수 있다”며, “너무 평범한 방법이라고 할 수 있지만, 기도를 통해, 특히 ‘평화의 기도’라는 묵주기도를 통해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킨다면 훨씬 힘을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유 주교는 원수를 사랑하고 박해한 이들을 위해 기도하라는 예수의 평화는 이해도 실천도 어려워 보이고, 특히 현재 남과 북, 미국, 중국, 일본간 관계를 보면 더욱 실현 불가능해 보인다면서도, “한일 관계의 예를 들면, 일본의 무리한 요구에 대한 정치외교적 노력과 별개로 무조건 일본 사람을 배척하거나 미워하는 것을 경계하고, 기본적으로 선의의 교류를 위해 노력한다는 생각을 하면, 조금은 예수의 평화가 무엇인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평화는 이미 완성된 완제품으로 소비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평화를 향한 갈망이 중요하다”며, “그래서 매 순간 무엇을 할 것인지 고민하고 그 고민을 이웃과 나눠야 한다. 또 단지 남한, 한반도만을 위한 이기적 결론이 아니라 다른 민족, 폭력과 전쟁에 억눌린 소수민족, 난민들이 폭력의 굴레에서 벗어나 인간다운 삶을 되찾을 수 있도록 힘을 모으는 것에 동참하자”고 말했다.

한편 팍스 크리스티 코리아 창립 축하 메시지를 보낸 강우일 주교는, “한국전쟁으로 말미암아, 한국 사회에서 평화란 무력 균형, 안보 차원에서만 인식되고 있다”며, “그러나 무력을 통해서 평화를 얻을 수 없다는 것이 교회의 가르침이다. 보다 평화로운 수단과 논리로 적극적 평화 활동이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팍스 크리스티 코리아가 평화운동의 그릇이 되기를 바란다”고 격려했다.

창립 총회에 참석한 이진영 수녀(사랑의 씨튼 수녀회)는 <가톨릭뉴스 지금여기>에, “하느님의 평화가 지구촌 어느 곳에서도 깨어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작은 힘이나마 함께하고 싶었다”며, “이익이나 기득권 유지를 위해서 정말 중요한 것을 놓치는 일이 많다. 특히 국제 분쟁 지역에서 폭력으로 많은 이의 존엄과 인권이 파괴되는 안타까운 일들에 대해 팍스 크리스티 회원들이 하느님의 사랑으로 연대하고 평화와 인권이 증진되도록 역할을 하기 바란다”고 말했다.

창립 총회와 함께 봉헌된 미사. ⓒ정현진 기자

팍스 크리스티.... 주님의 평화 그리고 평화를 통한 평화

팍스 크리스티는 현재 5개 대륙 50여 개 국가에서 약 50만 명이 참여하는 국제 평화운동이다. 아시아 태평양에서는 12개국이 참여하고 있으며 한국은 13번째 나라가 됐다.

‘그리스도의 평화’라는 뜻의 ‘팍스 크리스티’는 제2차 세계 대전 말인 1945년 3월 프랑스 몽토방의 피에르 마리 테아 주교가 프랑스와 독일의 화해를 위한 운동으로 시작했다. 유대인들의 권리, 인간 존엄을 지키는 운동이었던 ‘팍스 크리스티’는 1952년 교황 비오 12세에 의해 공식 가톨릭 국제 평화운동의 지위를 얻었다.

이후 팍스 크리스티는 유럽 전역의 평화운동으로 확대됐고, 핵무기 반대를 비롯한 군축 운동, 제3세계의 빈곤과 독재 문제 해결, 양심적 병역 거부 운동, 민족간 분쟁, 인종주의와 난민 문제 등에 참여했다. 또 교회 안에서도 1963년 선포된 회칙 ‘지상의 평화’, 1967년 회칙 ‘민족들의 발전’을 만드는 데에 기여했으며, 2016년에는 당시 교황청 정의평화평의회와 공동 개최한 회의에서 “정의로운 전쟁”에 대한 교리를 “정의로운 평화”로 바꾸기 위한 논의를 진행하고 이를 공식 촉구했다.

‘팍스 크리스티’ 운동은 ‘하느님나라의 평화’라는 가톨릭 평화관에 근거하며, 교회를 ‘하느님의 백성’이자 ‘하느님나라 운동’으로 이해한다. 수직적 위계 질서가 아니라 하느님나라 여정의 수평적 파트너십을 지향한다. 이에 따라 평신도, 수도자, 주교가 평등하게 회원으로 참여하며, 교회 일치와 종교간 대화, 협력도 적극 추구하며, 아래로부터의 참여로 각자 시민사회 일원으로 다양한 국제 평화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

8월 24일 열린 팍스 크리스티 코리아 창립 총회에는 100여 명의 회원들이 참석했다. ⓒ정현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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