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티에레스 신부] 9월 8일(연중 제23주일) 지혜 9,13-19; 필레 9,10. 12-17; 루카 14,25-33

이번 주간의 복음은 복음서 교재들 중에서 가장 “거친” 부분들 중의 하나다. 처음에 읽어 보면 예수님이 우리에게 말하려는 의미가 무엇인지 이해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제자들은 무엇을 “미워해야 하는가”

예수님을 따르는 것은 우리에게 가장 가깝고 소중한 것, 즉 우리의 가족들을 “미워하는 것”이라고 단언하면서 루카 복음은 시작된다.(루카 14,26) 매우 강한 구절이다. 그 뜻을 이해하기 위하여 우리는 예수님이 사용한 동사, “미워하다”가 셈족의 표현방식이라는 사실을 지적해야 한다. 다시 말하자면 예수님이 살고 있었던 당시 문화적 배경의 전형적 표현방식인 것이다. 그때에 “미워하는 것”의 의미는 지금의 “미루는 것” 혹은 두 번째 자리에 두는 것과 같은 의미다. 이렇게 본다면, 우리는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미움을 가지라고 요구되는 것이 아니다. 대신, 예수님을 따르는 데 있어 우리에게 가장 자연스럽고 합법적인 사람들조차 상대화시키는 것이 필요한 것이다. 예수님을 따르라는 명령보다 더 우위에 있는 것은 없다.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우리가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것을 예수님께 대한 신앙의 빛으로 보아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오늘 복음에서 말하는 “미워하는 것”의 의미다.

오늘 요구되고 또 구체화되어 있는 “미워하는 것”은 십자가를 지는 데 있어 필요한 조건이다.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실제로, 예수님을 따르는 것을 다르게 표현하는 방식이다. 루카 복음에서는 매일 십자가를 지는 것이 강조된다.(루카 14,27)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의 길을 따르는 것은 충실함과 수많은 결정을 내리는 일상의 과정이다.

예수 따르는 길. (이미지 출처 = Pixabay)

대가를 따지기

루카는 그리스도교적 결단의 특징이 되어야 할 진지함과 깊이를 우리가 이해하도록 다른 이미지들을 사용하고 있다. 신앙의 길은 망대를 짓는 것과 같다.(루카 14,28) 또한 어떤 왕이 다른 왕과 전쟁을 하는 것과 같다.(14,31) 두 경우 모두 그 비용을 따져 보아야 한다. 값을 계산한다고 해서 방법과 돈을 수적으로 계산하라는 뜻이 아니다. 복음서는 우리에게 신앙생활의 비용, 그 요구들을 생각해 보라고 초대하는 것이다. 예수님께 대한 신앙이 심지어 우리의 일상생활까지 포함하여 우리의 삶 전체에 심오하게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면 우리는 제자됨의 참된 의미가 무엇인지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복음서에서 의미하는 제자됨의 대가를 계산하고 평가해 보는 것이 필요하다.

복음 말씀은 전형적인 루카 식의 표현으로 끝난다.(루카 14,33) 우리들이 가진 모든 소유물을 포기하는 것이다. 재물, 소유물, 그리고 권력을 축적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삶에 있어 가장 큰 적이다. 제자됨의 대가는 재물에 대한 우리의 탐욕을 포기하는 것이다. 예수님을 따르는 데 있어 끼어들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래서 우리는 다른 사람들을 형제자매처럼 맞아들일 준비를 해야 한다. 사랑으로 이웃을 환영하는 것은 바오로가 필레몬에게 보낸 아름다운 서간의 주제인데, 이 서간은 항상 제대로 이해되지 못하고 있다. 바오로는 오네시모스를 “마치 그대가 나를 맞아들이는 것처럼” 환영해 달라고 청하고 있다.(필레 1,17) 뿐만 아니라 바오로는 필레몬에게 “내가 말하는 것 이상으로 그대가 해 주리라고” 믿는다고 말한다.(1,21) 무상의 사랑은 끝을 모른다. 그것은 우리의 길을 올바르게 만드는 데 도움이 된다.(지혜 9,18)

 

구스타보 구티에레스 신부
1928년 페루 리마 출생. 의대를 졸업한 뒤에 사제로 살기로 결단했다. 사제가 된 뒤에는 리마 가톨릭대학에서 신학과 사회과학을 가르치면서 리마 빈민지역에서 가난한 이들을 위한 사목을 했다. 대표적인 해방신학자로 빈민의 관점에서 복음을 증거해 왔다. 주요 저술로는 "해방신학"(1971) 외 다수가 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저작권자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