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의 지혜”, 교황 프란치스코와 친구들, 이냐시오영성연구소, 2019

"세월의 지혜", 교황 프란치스코와 친구들, 이냐시오영성연구소, 2019. (표지 제공 = 이냐시오영성연구소)

“나는 이 책을 젊은이들에게 맡깁니다.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꿈이 그들을 더 나은 미래로 데려다 줄 것입니다.... 여기에 내가 바라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젊은이와 노인이 새로운 동맹을 맺고 살아가는 세상입니다.”(교황 프란치스코, “세월의 지혜” 23쪽)

“세월의 지혜”는 세계 곳곳의 노인들이 살아온 이야기를 담았다. 이야기는 노인들의 개별적 삶을 넘어 젊은 세대가 살아가는 데 필요한 지혜와 깨달음, 미래에 대한 희망을 주고자 한다.

이 책은 프란치스코 교황이 기도 중에 노인의 지혜가 젊은이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란 영감을 얻으면서 기획됐다. 2018년 미국 예수회 '로욜라 프레스’가 낸 이 책을 예수회 한국관구장 정제천 신부가 이번에 우리말로 옮겼다. 

‘로욜라 프레스’와 다른 10곳의 예수회 출판사, 비영리 후원기구 ‘언바운드’가 세계의 노인 250여 명을 인터뷰해 이 중 84명의 이야기를 노동, 투쟁, 사랑, 죽음, 희망이란 주제로 나눠 실었다. 이는 평소 교황이 삶에서 중요하게 여긴 가치다.

예수회 안토니오 스파다로 신부가 교황에게 인터뷰 내용을 들려주고 교황은 당사자들의 사진을 보며 그에 대한 응답을 썼다. 84편 중 31편에 달린 교황의 응답에는 동년배로서 깊은 공감과 그의 체험, 지혜가 담겼다. 교황은 이 책의 서문과 다섯 주제에 대한 머리말도 썼다.

각 장의 끝에 실린 ‘내가 배운 노년의 지혜’에는 젊은이가 노인과 만나 지혜와 깨달음을 얻은 체험과 이에 대한 교황의 응답이 담겨 두 세대가 맺을 새로운 동맹의 희망을 보여 준다.

4일 이 책을 번역한 정제천 신부는 예수회 한국관구에서 진행된 기자간담회에서 출판 과정과 의미, 세대 간 교류를 위한 과제 등을 나누고, 이 책을 통해 노인과 젊은 세대의 활발한 교류와 협력에 더 많은 이가 공감하고 동참하면 좋겠다고 밝혔다.

이 책이 다룬 노인과 젊은 세대 간 대화는 지난 2014년 교황 방한 때 주요 메시지와 연결되며, 당시 교황은 한국 주교단, 청와대 등 여러 자리에서 다음 세대를 위한 전달자로서 우리 교회가 “기억의 지킴이”가 될 것을 강조했다는 것이 정 신부의 설명이다.

그는 “젊은이에 대한 프란치스코 교황의 관심은 교황이 되기 전부터 상당히 각별했다”면서 ”기억의 지킴이란 앞서 살아간 이들의 신앙과 삶의 지혜를 우리가 정확히 알아듣고 이를 젊은이에게 전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노인과 젊은이의 만남, 하느님나라에 더 가까워지는 길

프란치스코 교황은 심화된 자본주의의 가장 큰 피해자로 노인과 젊은이를 꼽았다고 정 신부는 진단했다. 그러면서 “젊은이들은 경쟁의 가장 첨예한 장소로 내몰리고, 살아남은 극히 일부를 뺀 나머지는 루저로 살아가는 세상이 됐다”고 말했다.

또 “전통사회에서는 노인의 경험과 지혜가 공동체의 역사를 규정하고 아름답게 가꾸는 희망으로 여겨져 존중받았다. 하지만 오늘날 노인은 더는 생산성이 없는 존재로 밀려났고, 저는 이를 노인이 사회적으로 고려장 되는 시대라고 표현한다”고 말했다.

정 신부는 자신이 대학에 떨어져 낙담한 채 고향 광주로 돌아가는 야간열차에서 한 노인이 해 준 격려의 말로 다시 일어섰다고 떠올리며, “옛날에는 노인과 젊은이가 만나는 자리가 많았는데 지금은 세대 간 갈등을 부추기는 일이 많고 건전한 만남이 적다”고 지적했다.

이 책에서 교황은 “노인은 꿈을 꾸고, 젊은이는 환시를 본다”는 요엘서 3장 1절을 인용해 노인이 꿈꾸는 세상을 젊은이에게 전수하면 젊은이들이 미래의 희망을 볼 수 있다며 이 두 세대가 만날 때 시너지 효과가 있다고 강조한다.

책을 번역하면서 정 신부는 노인들의 이야기에 감동해 많이 울었다면서 기억에 남는 몇 장면을 소개했다.

노르웨이의 75살 구리 뤽그가 10살 무렵 할머니와 대화한 장면이다. 구리는 할머니에게 죽음이 두렵지 않느냐 물었고 이에 할머니는 삶과 죽음을 주교좌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에 비유해 답한다. 햇빛에 빛나는 아름다운 스테인드글라스 창문도 해가 지면 빛깔을 잃고 캄캄해지는 것처럼 삶이란 스테인드글라스 넘어 죽음이라는 해가 비치고 있어 아름답게 반짝인다는 것.

정 신부는 “죽음이 없다면 삶의 의미도 사라질지 모른다는 할머니와 손자의 아름다운 대화를 번역하며 울었다. 10살 먹은 손자가 죽음을 묻는데 나라면 야단쳤을 텐데, 질문을 존중하고 눈을 바라보며 답하는 할머니의 마음이 참 고마웠다”고 말했다.

그는 “70이 넘은 나이까지 어릴 적 할머니와의 대화를 기억하는 것을 보면, 그가 사는 동안 할머니와의 대화를 자주 떠올렸을 것이다. 특히 어려울 때 할머니의 말씀을 기억하며 죽음이 두렵지만은 않은 아름다운, 삶의 바탕인 사건이라는 것에 위안을 느꼈다”고 말했다.

4일 예수회 한국관구장 정제천 신부가 세계 노인들의 삶의 경험을 담은 책 "세월의 지혜"를 소개했다. ⓒ김수나 기자

“인생은 틀에 넣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2차 대전으로 아버지를 일찍 잃은 마리아라는 노인은 젊은 시절 만나서는 안 되는 남자와 사랑에 빠지고 그의 아이까지 낳게 된다. 부적절한 만남인 것을 알면서도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할 수밖에 없었던 자신의 체험을 이야기하면서 그녀는 인생이 양탄자와 같다고 말한다.

하느님은 씨줄과 날줄을 엮어 양탄자를 짜듯 우리 인생을 만들어 가신다. 그런데 위에서 보면 깔끔한 무늬의 양탄자도 뒤집으면 엉킨 실로 엉망이다. 인생도 앞에서 보면 그럴듯한데 뒷면을 보면 부끄럽고 죄스럽다는 것이다.

노인이 된 그녀는 아버지가 오래 살았다면 부적절한 사랑에 빠지지 않았을 테고 또 다른 삶을 살았을 수도 있지만, 자신의 인생은 하느님께서 엮으신 것이기 때문에 모든 것을 자신의 인생으로 받아들인다고 했다.

정 신부는 교황이 참여한 책이라 윤리적이고 고답적일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고 설명했다.

이 책에는 모범적이고 아름다운 결혼뿐 아니라 이혼 등 사람들이 쉬쉬할 만한 이야기도 나온다. 그러면서 2년 전 열린 혼인에 대한 시노드가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끝났을 때 교황이 사제나 신학자들 교회법 학자들의 생각보다 세상은 훨씬 더 넓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교황의 말에 대해 정 신부는 “우리는 규정할 수 없다. 우리가 다루는 것을 마치 전부로 여기고 나머지는 가짜라고 하는 것은 오만하다는 뜻”이라면서 “이 책에는 인생이 담겼고 피상적인 것이 아닌 폭넓고 구체적인 세월의 지혜가 담겼다”고 말했다.

이를테면 그는 “이혼하면 안 된다는 것은 누구나 알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법에 얽매이지 않는 노인들의 지혜는 인생은 틀에 넣을 수 있는 것이 아니란 것이다. 이들의 지혜를 젊은이들에게 전하는 기회가 더 많아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정제천 신부는 현재 예수회 한국 관구장으로 스페인 코미야스 대학에서 영성신학으로 박사학위를 받고, 광주 가톨릭대 교수, 예수회에서 양성 담당과 부관구장을 지냈다. 2014년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 때 수행, 통역을 맡았다. 옮긴 책으로 “로욜라의 성 이냐시오 영신수련”, “하느님 안에서 나를 발견하기”, “당신 벗으로 삼아 주소서”(공역)가 있다.

“세월의 지혜”는 이냐시오영성연구소 홈페이지(inigopress.kr)에서 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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