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fault_top_notch
default_news_top
default_setNet1_2
default_news_ad1
default_nd_ad1

옥수수 아기의 빛

기사승인 2019.09.06  16:18:35

공유

- [살아 있는 노래랑 아이들이랑 - 18]


비가 안 오는 틈을 타서 얼른 집앞 텃밭에 나가 옥수수를 따 왔다. 아이들이 오매불망 기다려 온 옥수수다. 옥수수는 알이 단단하게 여물면 맛이 덜하기 때문에(단맛도 확 줄고 딱딱해서 먹기도 힘들다. 경상도 말로 파이다.) 따는 타이밍이 아주 중요하다. 수염이 검실검실하면서도 옥수수를 감싸고 있는 푸른빛은 생생할 때 따는 게 좋다.

마침 이때다 싶은 옥수수가 제법이라 끊어 담고, 씨 하려고 남겨 둔 것들도 따 왔다. 그리고는 다른 일 제껴 두고 옥수수 찔 채비부터 했다. 제 아무리 마침 좋게 익은 옥수수라 하여도 바로 쪄 먹지 않으면 최고봉의 맛을 만끽할 수 없기 때문이다. 속껍질 한 올 정도만 남기고 후닥닥 껍질을 벗겨 바로 쪄 먹어야 제맛이다.(제맛을 제대로 보고 나면 단 한순간도 지체해서는 안 된다는 걸 실감할 것이다.)

내가 옥수수 껍질을 벗기고 있으니 다나가 왔다. 온몸으로 웃으며 펄쩍펄쩍 뛰기까지 하면서.

"엄마, 어떤 옥수수야?"

"밭에서 따 왔어. 다나가 언제 익나 하고 옛날부터 기다리던 옥수수 말이야. 엄마가 딱 맛있게 여물었을 때 이때다 하고 따 왔지."

"우와, 우리 옥수수가 이렇게 많이 컸구나. 나도 껍질 벗길래."

그리하여 다나와 함께 껍질을 벗기는데, 씨 하려고 따 온 단단한 옥수수 껍질을 벗기다가 다나도 나도 경탄을 금치 못했다. 글쎄, 옥수수알 빛깔이 얼마나 신비롭고 다채로운지 눈을 뗄 수조차 없으니 말이다. 아는 분이 인디언 옥수수라며 종자를 나눠 주셔서 심은 거였는데, 껍질을 막 벗겨 냈을 때의 생생한 빛깔로 만나서 그런지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 없이 아름다웠다. ('비전퀘스트'라는 인디언 타로 카드가 있는데, 그 카드에 나오는 옥수수 그림과 똑닮은 모습! 진짜 인디언 옥수수가 맞긴 맞나 보다.)

종자로 쓸 인디언 옥수수와 타로카드. ⓒ정청라

"엄마, 이거 너무 귀여워. 내가 안아 줄거야."

다나가 아기 목소리를 내가며 말을 했다. 귀여워서 어쩔 줄 모르겠다는 듯이 옥수수를 품에 꼭 안고서.... 그러고는 옥수수에 뽀뽀하고, 옥수수를 볼에 대고 부비고, 옷을 들어 올려 그 속에 옥수수를 보물처럼 감추고, 마치 인형 아기를 대하듯이 보살피는 게 아닌가.

"다나야, 그건 잘 말려 뒀다가 심을 거야. 그러면 더 예쁜 옥수수 아가들이 많이많이 태어나거든."

"와, 그럼 내 밭에 심을 거야. 알았지? 오빠 밭에 말고 내 밭에 내가 다 심을 거야!"

"옥수수대 하나에 옥수수알이 얼마나 많은데 그래. 오빠랑 사이좋게 나눠 심어야지. 그래야...."

내가 이렇게 진부한 설명을 늘어놓고 있는데, 느닷없이 다나가 '옥수수 아기' 노래를 불러 달라는 부탁을 했다. 옥수수 아기 노래라.... 막막하지만 그냥 막 나오는 대로 불러 본다.

 

옥수수 아기 너무 귀여워

내 품에 안아 줍니다

옥수수 아기 사랑스러워

살며시 뽀뽀합니다

 

밋밋하고 단순한 노랫말과 곡조지만 내가 불러 놓고도 뭔가 가슴 깊이 쑥 들어오는 느낌이 들었다. 다나도 아주 좋아해서 금방 따라 불렀고, 다울이는 휘파람으로 반주까지 넣어 주었다. (반주에 맞춰 부르니 왠지 더 그럴듯?ㅎ) 즉흥적으로 나오는 노래 가운데는 물거품처럼 바눗방울처럼 사라지는 게 대부분인데, 이 노래는 어쩐지 한동안 곁에 있을 것 같다. 옥수수 아기가 지닌 오묘한 빛이 우리 마음속에서 늘 살아 숨쉬기를 바라며....!

2년 전쯤 옥수수 먹는 다랑이. ⓒ정청라
2년쯤 전에 옥수수 먹는 다나. ⓒ정청라

참, 갓 따서 찐 옥수수를 아이들이 (엄마 먹어 보라 한마디 없이) 게눈 감추듯 순식간에 먹어 치웠다는 사실은 안 비밀!

참참, 이 노래는 '옥수수 아기'에 아이 이름을 넣어 불러 주어도 좋다. 예를 들어, '다나다나다나 너무 귀여워~' 하는 식으로 말이다. 이름을 넣어 부르며 안아 주고 뽀뽀해 주면 아이가 아주 좋아할 것이다. 가을장마에도 지지 않는 뽀송뽀송한 빛줄기 하나, 아이 가슴에 스며들 것이기에 말이다.

정청라
인생의 쓴맛 단맛 모르던 20대에 누가 꿈이 뭐냐고 물으면 '좋은 엄마가 되고 싶다'고 대답했다. 하지만 막상 엄마가 되고 1년도 채 안 되어 좋은 엄마는커녕 그냥 엄마 되기도 몹시 어렵다는 사실을 깨닫고 '좋은 엄마'라는 허상을 내려놓았다. 그 뒤로 쭈욱 내려놓고, 내려놓고, 내려놓기의 연속.... 이제는 살아 있는 노래랑 아이들이랑 살아 있음을 만끽하며 아무런 꿈도 없이 그냥 산다. 아이를 기른다는 것은 '스스로 길이 된다는 것'임을 떠올리며 노래로 길을 내면서 말이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정청라 editor@catholicnews.co.kr

<가톨릭뉴스 지금여기>의 기사는 영리 목적이 아니라면 누구나 출처를 밝히고 무료로 가져다 쓸 수 있습니다.
default_news_ad5
default_side_ad1
default_nd_ad2

만평·포토에세이

1 2 3
set_P1
default_side_ad2

인기기사

default_side_ad3

섹션별 인기기사 및 최근기사

default_setNet2
default_news_bottom
default_nd_ad4
default_bottom
#top
default_bottom_not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