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치스코 교종 최신 강론말씀]

(편집 : 장기풍)

“하느님께는 어떤 죄도 마지막이 아니다”

교종, 9월15일 연중 제24주일 삼종기도 가르침

프란치스코 교종은 9월15일 성 베드로 광장에서 진행된 연중 제24주일 삼종기도 가르침을 통해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이 예수님께서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저 사람은 죄인들을 받아들이고 그들과 함께 음식을 먹는군’ 하고 말하며 투덜대는 이날 복음을 설명했다. 교종은 그들의 불평이 사실은 “예수님께서는 죄인들을 받아들이시고 그들과 함께 음식을 드셨습니다.”라는 ‘경이로운 선포’라고 강조했다. 

가르침 내용.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오늘 복음(루카 15,1-32)은 예수님께서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계시는 것을 보고 몇몇 사람들이 “저 사람은 죄인들을 받아들이고 또 그들과 함께 음식을 먹는군”(루카 15,2)이라며 투덜대는 장면으로 시작됩니다. 그런데 이 문장은 사실 경이로운 선포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죄인들을 받아들이시고 그들과 함께 음식을 드십니다. 이는 지금 모든 성당에서 미사 때마다 일어나는 일이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당신 자신을 바치는 성찬식에 우리를 흔쾌히 받아들이십니다. 우리는 성당 문 위에 이런 글귀를 쓸 수 있을 겁니다. “여기서 예수님께서는 죄인들을 받아들이시고 당신의 식탁에 초대하십니다.” 주님께서는 비판하는 자들에게 대답하시며, 그분에게서 멀어졌다고 느끼는 이들에 대한 당신의 총애를 드러내 주는 아주 놀라운 비유 세 가지를 들려주십니다. 오늘 각자 복음을 펼치고 루카 복음 15장의 세 가지 비유를 읽으면 정말 좋습니다. 아주 놀라운 내용입니다.

첫 번째 비유에서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너희 가운데 어떤 사람이 양 백 마리를 가지고 있었는데 그 가운데에서 한 마리를 잃으면, 아흔아홉 마리를 광야에 놓아 둔 채 잃은 양을 찾을 때까지 뒤쫓아가지 않느냐?”(루카 15,4) 여기서 ‘너희 가운데 어떤 사람’은 누구입니까? 상식이 있는 사람이면 계산을 해 보고 아흔아홉 마리를 지키기 위해 한 마리를 희생할 겁니다. 반면 하느님께서는 체념하지 않으십니다. 하느님 마음 안에는 그분의 아름다운 사랑을 아직 모르는 여러분이, 삶의 중심에 예수님을 아직 받아들이지 못하는 여러분이, 어쩌면 인생에서 일어난 불행한 일 때문에 사랑을 믿지 못하는 여러분이 있습니다. 두 번째 비유에 나오는 주님께서 잃어버리고 끊임없이 찾기를 멈추지 않으시는 그 작은 은전 한 닢이 바로 여러분입니다. 이 비유는 여러분이 그분 눈에 소중하고 유일한 존재라는 것을 말해 줍니다. 여러분은 있는 그대로의 위치가 있고 누구도 여러분을 대신할 수 없습니다. 저 또한 누구도 하느님 마음 안에서 저를 대신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세 번째 비유에서 하느님께서는 방탕한 아들을 기다리는 아버지십니다. 하느님께서는 항상 우리를 기다리시고 지치지 않으시며, 마음을 놓지 않으십니다. 우리 각자가 되찾은 아들이요, 되찾은 은전이며, 기뻐하며 어깨에 맨 잃어버린 양이기 때문입니다. 그분께서는 우리가 그분 사랑을 깨닫기를 매일 기다리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렇게 말합니다. “하지만 저는 많은 일을 저질렀고, 너무 망쳤습니다!”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하느님께서는 있는 그대로의 여러분을 사랑하시며, 오직 하느님 사랑만이 여러분의 삶을 바꾸실 수 있음을 아십니다.

그런데 복음의 핵심인 우리 죄인을 위한 하느님의 끝없는 사랑이 거부될 수도 있습니다. 비유에 나오는 큰아들 태도가 그렇습니다. 큰아들은 그 순간 사랑을 이해하지 못하고 마음속에 아버지라는 의식보다 주인이라는 의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는 우리에게도 위험한 생각입니다. 자비로우신 하느님보다 엄격한 하느님, 용서보다는 힘을 통해 악을 응징하시는 하느님을 믿는 것입니다. 하느님은 그런 분이 아닙니다. 하느님께서는 힘을 통해서가 아니라 사랑을 통해 구원하십니다. 강요가 아니라, 제안하시는 분입니다. 그러나 아버지의 자비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큰아들은 마음이 닫히고 더 나쁜 잘못을 저지릅니다. 스스로를 의롭다고 생각하고, 배신당했다고 추측하며, 자기 생각을 정의의 토대로 삼아 모든 것을 판단합니다. 그래서 아우에게 분노하고 아버지를 질책합니다. “아버지 당신의 가산을 들어먹은 저 아들이 오니까, 살진 송아지를 잡아 주시는군요.”(루카 15,30) ‘당신의 아들’이라는 표현을 보십시오. 그를 ‘내 동생’이라 부르지 않고, ‘당신 아들’이라고 부릅니다. 스스로를 유일한 아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스스로를 의롭다고 믿을 때, 타인이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할 때, 우리 또한 잘못을 범합니다. 우리가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맙시다. 혼자 힘으로 선하신 하느님 도움 없이 우리는 악을 이길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잊지 마십시오. 복음서를 펼쳐 루카 복음 15장의 세 가지 비유를 읽으십시오. 아주 좋을 것이고, 여러분에게 구원의 말씀이 될 겁니다.

그러면 어떻게 악을 무찌를 수 있습니까? 하느님의 용서와 형제들의 용서를 받으면서 악을 이길 수 있습니다. 고해성사 때마다 일어나는 일입니다. 우리는 고해성사를 통해 우리 죄를 이기는 아버지 사랑을 받습니다. 더 이상 죄는 없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죄를 잊어버리십니다. 하느님께서 용서하실 때, 우리 죄를 잊어버리시는 겁니다. 우리에게 얼마나 좋으신 하느님이십니까! “아무렇지도 않습니다.”라고 말하고도 비슷한 상황이 생기면 즉시 잘못된 일들을 떠올리는 우리와 같지 않으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악을 지워 버리시고 우리의 내면을 새롭게 만드십니다. 우리 안에 슬픔이 아닌 기쁨을 소생시켜 주십니다. 마음속에 어둠과 의심이 아니라 기쁨을 소생시켜 주십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용기를 내십시오. 하느님께는 어떤 죄도 마지막이 아닙니다. 삶의 매듭을 풀어주시는 성모님께서 스스로 의롭다고 믿는 억측에서 우리를 해방시켜 주시고 언제나 우리를 껴안아 주시고 용서해 주시기 위해 기다리시는 주님께 나아갈 필요를 느끼게 해 주시기를 빕니다.

 

“아프리카에서 복음 형제애 정의 평화의 누룩을“

교종, 9월11일 수요 일반접견 남아프리카 순방 설명

프란치스코 교종은 9월11일 성 베드로 광장 수요 일반접견 교리교육을 통해 모잠비크, 마다가스카르, 모리셔스 순방에 대해 설명했다. 교종은 그리스도께서는 세상의 희망이라고 강조하면서, 평화와 화해의 씨앗을 뿌리기 위해 이번 순방길에 올랐다고 설명하고 이번 순방이 이 나라들의 국민을 위해 ‘풍요로운 결실’을 맺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가르침 내용.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안녕하세요! 저는 모잠비크, 마다가스카르, 모리셔스 사도적 순방을 마치고 어제(9월 10일) 저녁 돌아왔습니다. 평화와 희망의 순례자로서 이번 순방을 허락해 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저를 초대해 주시고 큰 애정과 관심으로 환영해 주신 각국 지도자들과 주교단에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이번 순방을 위해 많이 애써주신 현지 주재 대사들에게도 감사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세상의 희망이십니다. 그분의 복음은 모든 민족을 위한 형제애와 자유, 정의와 평화의 가장 강력한 누룩입니다. 거룩한 복음 전파자들 발자취를 따른 이번 순방에서 저는 예수님의 누룩을 모잠비크와 마다가스카르 그리고 모리셔스 국민들에게 전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최근 오랜 무장 충돌로 많은 고통을 겪었고 지난봄에는 두 번의 사이클론으로 심각한 피해를 입은 땅 모잠비크에 희망과 평화와 화해의 씨앗을 전해 주기 위해 갔습니다. 교회는 지난 8월1일 대통령과 야당 지도자 간 새로운 평화협정을 통해 한 걸음 더 앞으로 나간 모잠비크 평화의 여정과 동행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평화협정 과정에서 많은 역할을 한 산 에지디오 공동체에 감사를 표하고 싶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저는 국가 지도자들에게 공동선을 위해 함께 일할 것을 촉구했습니다. 저는 여러 종교 젊은이들과의 만남에서 그들에게 무관심과 불안을 극복하고 사회적 우정을 확산시키고 노인들의 전통을 소중히 여기면서 국가건설에 이바지하라고 격려했습니다. 마푸투 원죄 없이 잉태되신 성모마리아 주교좌성당에서 있었던 주교, 사제, 수도자들과의 만남에서는 그들에게 하느님 부르심과 자신들 기원에 대한 감사의 기억 안에서 나자렛의 길, 곧 하느님께 관대한 “네”의 길을 제시했습니다. 이 복음적 현존의 강력한 표징은 산 에지디오 공동체 헌신으로 건립된 모잠비크 수도 외곽의 짐페토 병원입니다. 병원에서 저는 가장 중요한 것이 병자들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병원 관계자들은 같은 종교를 가지고 있지 않지만 모두 병자들을 위해 일하고 있었습니다. 병원장은 무슬림 여성으로 훌륭한 분이었으며, 에이즈 연구원이었습니다. 이 병원은 가톨릭 평신도 단체 산 에지디오 공동체가 설립했습니다. 그럼에도 모두 형제처럼 일치해 협력하고 있었습니다. 모잠비크 순방의 정점은 짐페토 경기장에서 거행한 미사입니다. 비가 내리는 가운데 미사가 거행되었지만 모두 행복했습니다. 노래와 종교적 춤이 있었으며, 행복이 넘쳤습니다. 비가 내리는 것은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그곳에 예수 그리스도의 호소가 울려 퍼졌습니다. 폭력을 잠재우고 형제애를 불러일으키는 진정한 혁명의 씨앗, 진정한 사랑의 씨앗인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루카 6,27)가 울려 퍼졌습니다.

그리고 저는 마푸투에서 마다가스카르 수도 안타나나리보로 이동했습니다. 마다가스카르는 아름다운 자연과 자원이 풍부하지만 빈곤한 나라입니다. 저는 마다가스카르 국민이 전통적 연대 정신에서 영감을 얻어 환경과 사회정의에 대한 존중을 결합함으로써 역경을 극복하고 발전된 미래를 건설할 수 있기를 기원했습니다. 이러한 방향에서 저는 예언적 표징으로 페드로 오페카 신부가 설립한 ‘우정의 도시’ 아카마소아를 방문했습니다. 그곳에서는 일과 인간의 존엄성을 찾아주고, 가난한 이들을 돌보는 것과 어린이 교육을 함께 실천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그들 모두 복음에 따라 움직입니다. 저는 아카마소아 근처 화강암 채석장에서 그곳 노동자들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안타나나리보 맨발의 가르멜회 수녀원에서 여러 관상수도회 수녀님들과 만났습니다. 사실 믿음과 기도 없이는 사람에게 합당한 도시가 세워지지 않습니다. 

마다가스카르 주교님들과는 하느님의 백성, 특히 가난한 사람들과 사제들을 돌보면서 ‘평화와 희망의 씨앗을 뿌리는 사람들’이 되겠다는 약속을 새롭게 했습니다. 우리는 마다가스카르 최초로 시복된 복녀 빅투아 라소아마나리보를 공경했습니다. 전야기도에 참석한 젊은이들과는 증언과 노래와 춤으로 충만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또 마다가스카르 수도 외곽에 위치한 수아만드라키자이 교구의 드넓은 야영장에서 주일미사를 거행했습니다. 예수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수많은 군중이 모였습니다. 마지막으로 생 미셸 대학에서 마다가스카르의 성직자, 남녀 수도자, 신학생들과 만났습니다. 이 만남은 하느님께 드리는 찬미의 표징이었습니다.

9월9일에는 관광지로 유명하지만 여러 인종과 문화가 통합된 모리셔스 공화국을 방문했습니다. 사실 지난 2세기 다른 민족, 특히 인도에서 많은 사람이 모리셔스로 들어왔습니다. 독립 후에는 경제 및 사회개발에 빠른 성장을 경험했습니다. 모리셔스는 종교간 대화가 왕성하고, 서로 다른 종교 지도자들 사이의 관계도 돈독합니다. 이러한 상황이 우리 서방 사람들에게는 익숙하지 않지만 그들은 아주 자연스럽게 우애를 나누며 살고 있습니다. 제가 주교관에 들어섰을 때, 아름다운 꽃다발 하나를 볼 수 있었습니다. 이 꽃다발은 대이맘이 형제애의 표지로 보낸 것이었습니다. 또 ‘모리셔스 일치의 사도’로 알려진 복자 자크 데지레 라발 신부를 기념하는 ‘평화의 모후 성모마리아 기념관’에서 미사를 봉헌했습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그리스도 제자들의 신분증인 ‘참행복’에 관한 복음은 이기적이고 차별하는 거짓된 웰빙에 대한 유혹을 위한 해독제입니다. 복음과 “참행복”은 이기적이고 차별하는 행복에 대한 해독제이면서 자비와 정의와 평화가 가득한 진정한 행복의 누룩이기도 합니다. 저는 주교님들이 가난한 사람들의 복음화를 위해 행하는 일에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이어 모리셔스 당국자들과의 만남에서 저는 공동 프로젝트의 차이점을 극복하고 조화를 이루려는 노력에 대해 감사의 말을 전했으며, 오늘날에도 환대의 능력과 민주주의를 발전시키고자 하는 노력을 지속해 주길 당부했습니다.

저는 어제(9월10일) 저녁 바티칸으로 돌아왔습니다. 저는 해외순방을 시작하기 전과 돌아온 뒤에는 항상 ‘성모대성전’을 찾아 ‘로마 백성의 구원’ 성모성화 앞에서 기도합니다. 왜냐하면 성모님께서 어머니로서 저의 여정에 함께해 주시고, 저의 말과 행동을 지켜 달라고 기도하기 위해서입니다. 성모님과 함께라면 저는 안심하고 갈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하느님께 감사드리고 이번 사도적 순방을 통해 뿌려진 씨앗이 모잠비크, 마다가스카르, 모리셔스 국민들에게 풍성한 열매를 맺게 해 달라고 기도합시다. 고맙습니다!

 

“국가는 가정을 돌볼 의무가 있다”

교종, 순방귀국 기내회견에서 강조

프란치스코 교종은 9월10일 아프리카 3개국 사도적 순방을 마치고 돌아오는 기내회견에서 다양한 사안에 답했다. 교종은 회견에서 특히 국가가 가정을 돌볼 의무가 있음을 강조했다. 또 제노포비아(이방인 혐오)를 질병으로 규정하고 이데올로기적 식민지화에 맞서 문화정체성을 지켜야 한다고 호소했다. 또 교회 내 분열에 관해서는 그런 일이 없길 바라지만 두렵지는 않다고 답했다. 교종은 회견에서 순방성과를 설명하고 기자들 질문에 답하는 한편 순방 중 인상 깊었던 일들을 이야기했다. 교종은 붉은색 유니폼을 입고 철야기도와 이튿날 미사에 참례하기 위해 야영장을 가득 메웠던 마다가스카르 젊은이들을 기억했다. 주일 오전 100만 가까운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교종은 그들은 가난했으며, 그곳에 오기 위해 굶주림을 견뎌야 했지만 모두 기뻐했다며 그날을 영원히 기억할 것이라고 말했다. 

교종은 대중이 느끼는 보편적 기쁨의 감정에서 분리된 채 살아가는 사람이나 단체를 경고하면서 ‘자신의 문화적 뿌리를 잊고’ 사는 외로운 이들에게 나타나는 첫 번째 증상은 슬픔이라고 지적했다. 교종은 ‘아이는 가난한 이들의 보화‘며 ‘어린이와 젊은이의 땅’ 아프리카와 더 이상 아이를 낳지 않는 ‘할머니 유럽’이 마주보고 있다고 말했다. 교종은 인구감소는 ‘웰빙’과 연관돼 있는 것 같으며 육아의 풍요로움 대신 소유물이나 생활의 안락함만을 추구하고 미래에 대해 불신하는 요즘 세태를 지적했다. 또 교종은 전 국민 무상교육과 젊은이들에 무상 직업훈련을 제공하고 싶다는 모리셔스 총리를 높이 평가했다. 교종은 모리셔스 수도에서 봉헌된 미사에서 인파 속에서 부모를 잃고 경찰보호를 받았던 어린 소녀를 기억하면서 “국가는 가정과 젊은이들을 책임질 의무가 있으며, 성장을 뒷받침할 의무가 있다.”고 강조했다.

또한 교종은 평화는 용서이지 승리가 아니라고 강조하면서 1992년 ‘산 에지디오 평신도단체’ 중재로 성립된 모잠비크 내전 종결협정과 이어진 긴 평화합의 과정을 설명하면서 제2차 세계대전 개전 전날 방송된 “평화로 잃을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러나 전쟁으로는 모든 것을 잃을 수도 있습니다.”라는 비오 12세 교종의 역사적 메시지를 인용했다. 또 교종은 이탈리아 북동부 레디풀리아 군인묘지를 방문했을 때나 여러 전쟁기념식이 있을 때마다 전쟁의 사악함을 생각하며 눈물 흘린다고 고백했다. 교종은 ‘승리’의 나팔소리가 울려서는 안 되며 어느 곳에서든 평화란 깨지기 쉬운 것이므로 갓난아이처럼 아주 부드럽고 큰 용서의 마음으로 다뤄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교종은 모잠비크 기자의 자국 내 확산되는 제노포비아(이방인 혐오) 문제에 관한 질문에 이는 아프리카만의 문제가 아니며, 제노포비아는 ’질병‘이며, 지난 세기 나치즘, 파시즘 정부로 하여금 인종법을 정당화시켰던 같은 종류라고 말했다. 교종은 제노포비아는 정치 포퓰리즘 물결을 타고 나타나며, 우리는 이에 맞서 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교종은 이번 아프리카 3개국 사도적 순방 일정을 통해 경험한 ‘종교 간 형제애’의 다양한 모습을 높이 평가했다. “타종교 존중은 중요한 일입니다. 저는 선교사들에게 개종을 강요하지 말라고 충고하고 있습니다.” 교종은 개종을 목표로 하고 진리 안에서 하느님을 경배하도록 가르치지 않는다면 그것은 그리스도인 선교방식이 아니라고 말했다.

이날 회견에서는 커뮤니케이션 역할에 관한 질문에 교종 개인적 견해를 밝혔다. 교종은 최근의 연구를 인용하면서 ‘사실'(facts)을 우선시해야 함을 강조하고 ‘사실’이란 그것을 둘러싼 ‘생각들’과는 구분되는 것이라고 설명하면서 사실과 그에 대한 생각을 뒤섞을 경우 전자가 훼손될 위험이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교종은 보도(커뮤니케이션)는 ‘인간적’이고 인간의 목소리가 담겨 있어야 하며 인간적인 것이란 건설적인 것, 사람에게 유익한 것, 절대 전쟁의 수단이 되지 않는 것을 뜻한다고 강조했다. 이밖에도 교종은 식민 지배를 하던 점령국의 태도에 관한 질문에 그들은 식민지 독립을 인정하더라도 빈손으로는 떠나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으며 이제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 지리적 의미의 식민지화보다 이데올로기적 식민지화가 더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마지막 질문은 최근 교종에 대한 미국 내 보수파 성직자들의 비난에 관한 것이었다. 교종은 비난의 목소리가 미국에서만 들려오는 것은 아니며, 여기저기서 심지어는 바티칸 안에서도 들려오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교종은 적어도 목소리를 낸 사람들은 솔직하기라도 하다며 교회 내에는 늘 ‘분열이라는 선택지가 존재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교종은 분열은 두렵지 않으며, 다만 분열이 없기를 기도할 뿐이라고 말했다. 교종은 분열이란 교리가 아닌 이데올로기에서 비롯된 엘리트주의적 분리일 따름이며, 융통성 없는 엄격한 도덕관은 결국 나쁘게 끝날 것이 분명한 가짜 종파분리적 그리스도교 국면을 조장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끝으로 교종은 이러한 공격에 흔들리고 있는 이들에게 관대해야 한다며, 그들이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으므로 온유함으로 그들과 동행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장기풍(스테파노)
전 <평화신문> 미주지사 주간
2006년 은퇴. 현재 뉴욕에 사는 재미동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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