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 기고 - 김순애]

추석을 앞두고 제주도 각종 현안에 대한 여론조사가 진행되었다.

비자림로 사업 역시 뜨거운 지역 현안 중 하나였는데 뚜껑을 열어 보니, 계획대로 사업을 진행하자는 도민은 21.5퍼센트에 불과했다. 도민의 41.5퍼센트는 사업을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고 답했고 27.7퍼센트는 최소한의 공사만 진행해야 한다고 답했다.

작년 8월 비자림로의 수백 그루 나무가 잘려 나갔을 때, 그 흉측한 모습은 제주도민보다 오히려 제주도를 사랑하는 도외 국민에게 더 큰 공분을 자아냈다. 당시 많은 사람은 각자가 사랑하는 제주의 풍경들이 훼손되고 사라지는 것에 안타까움과 분노를 보냈다. 하지만 원희룡 제주도지사 등 사업을 찬성하는 측은 비자림로의 베여 나간 삼나무들은 아토피를 일으키는 등 사람들에게 피해를 준다며 오히려 돈을 들여서라도 베어 내야 하는 존재라는 기묘한 논리를 폈다.

비자림로 인근에 사는 일부 주민도 자신들이 어릴 때 조림사업의 일환으로 동네사람들과 같이 심은 나무가 베인 것에 대해 타 지역사람들이 왜 왈가불가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심정을 내비치기도 했다. 또 어떤 이들은 인공림인 삼나무숲이 훼손되는 것에 대해 환경단체와 시민들이 과도하게 반응한다며 인공림의 생태적 가치를 폄하하면서 비자림로 공사를 합리화하려는 움직임도 있었다.

하지만 올 3월 다시 강행되었던 비자림로 공사는 5월 31일 중단되었다. 비자림로에 곁들여 살고 있던 멸종위기 생물들이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영산강유역환경청은 제주도에 사업을 중단하고 정밀조사를 실시하라는 공문을 보냈다.

이는 2015년 제주도가 영산강유역환경청에 제출한 ‘비자림로 도로건설공사 소규모 환경영향평가서’에 대해 양 기관이 협의한 내용에 근거한다. 제주도는 비자림로 공사를 시행하기 전 소규모환경영향평가를 실시했고, 협의기관인 영산강유역환경청은 ‘공사 및 운영 시 예측하지 못하였거나 예측의 부적정 등으로 주변 환경에 악영향이 발생 또는 예상되는 경우, 추가적인 저감대책을 조속히 강구, 시행함으로써 주변 환경피해 및 민원발생을 예방하여야 한다’는 내용으로 협의를 마쳤다.

거짓부실 작성 의혹이 있는 ‘비자림로 도로건설공사 소규모 환경영향평가서’에는 공사 구간에 멸종위기종 등 보호종이 없다고 나와 있다. 하지만 시민들의 모니터링으로 시작된 비자림로 서식 멸종위기종들의 발견은 전문가들의 조사로 이어졌고 놀라운 결과가 나왔다. 6월에 짧게는 하루, 길게는 1주일에 걸쳐 진행된 비자림로 공사 구간의 조사 과정에서 멸종위기종 7종, 천연기념물 5종이 발견된 것이다.

비자림로 벌목 현장에서 잘린 나무. ⓒ김순애
지난 5월 30일 멸종위기 생물 발견으로 공사가 멈춘 비자림로 공사 현장. ⓒ김순애

조사를 진행했던 전문가들은 비자림로가 인간과 자연의 경계 지점에 위치하고 있기에 오히려 생태적으로 더욱 풍부한 측면이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제 사람들은 더 이상 비자림로가 인공림이니 베어도 된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 비자림로의 생태적 가치가 사람들에게 충분히 입증된 것이다. 70퍼센트 가까운 제주도민들이 비자림로의 생태적 풍요로움을 보전하기 위해 사업을 전면 재검토하거나 최소한의 공사만 진행해야 한다는 말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 환경정책을 세우고 실현하는 관은 어떤 방식으로 생태와 환경을 대하고 있을까? 환경부는 말로는 미세먼지 대책을 강조하고 멸종위기종 복원 및 보존사업을 위해 다양한 정책과 사업을 수립하고 시행하고 있다. 하지만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어느 부서와도 갈등을 일으키지 않는 선에서의 사업만을 열심히 쫓고 있고 개발로 인한 환경 파괴를 원천적으로 막기 위한 적극적인 노력은 상당히 부족해 보인다.

환경부가 이럴진대 환경파괴를 동반하는 개발 사업을 진행하는 국토부와 각 지자체는 어련할까? 개발이 진행되기 전 진행되는 환경영향평가에서 멸종위기 생물의 존재는 아예 지워지거나 개발에 큰 방해가 되지 않는 정도로 축소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고 설사 핵심 사업부지에 멸종위기생물이 서식하고 있다 하더라도 사업자들은 이들을 이주시키고 동물들의 이동통로를 만드는 등의 미봉책을 통해서 환경부의 협의를 얻어 내어서 얼마든지 사업을 강행할 수 있다.

비자림로의 경우에도 제주도는 정밀조사를 통해 발견된 멸종위기생물, 천연기념물의 존재를 어쩔 수 없이 인정하면서 ‘공사 차량의 속도 제한, 경적 사용 제한, 강제 포획 및 이주, 대체서식지 조성, 차폐막 설치 등’의 방안을 마련 뒤 공사를 강행하겠다고 한다.

하지만 전문가가 아닌 시민들도 상식적으로 알 수 있다. 지금까지는 비자림로에 도로가 있었지만 그나마 왕복 2차선 도로였고 높은 삼나무가 도로 양쪽에서 차량들과 인간들이 자연에 미치는 간섭을 최소화시켜 주었는데 갑자기 양쪽 나무를 다 베어 내고 거의 기존 도로의 3배에 가까운 도로가 건설되고 기존보다 더 많은 차가 더 빠른 속도로 달린다면 비자림로 주변 생태계는 엄청난 혼란에 빠질 것이다.

지난 3월 비자림로 벌목을 모니터링하기 위해 세웠던 오두막이 숲의 일부가 되고 있다. ⓒ김순애

기존에는 그나마 좁은 도로여서 서식지 단절 효과가 미미했지만 도로가 확장되면 로드킬이 어마어마하게 증가하고 로드킬을 학습한 생물들은 더 이상 이동하지 않아 생물들의 서식지는 단절되고 축소될 것이다. 서식지가 축소되면서 생물들의 밀집도가 증가할 것이다. 심한 경우 이동이 자유롭지 못한 동물들의 근친교배가 증가하고 유전적으로 약화된 생물들의 멸종 가능성도 높아질 것이다. 각종 생물들을 빛으로부터 보호해 주던 삼나무들이 다 사라지면서 애기뿔소똥구리 등 빛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곤충들이 차량과 가로등을 향해 돌진할 것이다. 또한 삼나무가 베이고 도로 폭이 넓어지면서 가장자리 부분 토양은 햇볕으로 훼손되어 버린다. 이때 외부에서 유해종 식물들이 침입해 토착종을 잠식하기 시작할 것이다. 최악의 경우 비자림로 숲은 생태적 풍요로움을 모두 상실해 버린 빈껍데기 숲이 될 수도 있다.

비자림로의 멸종위기 생물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보다 본질적 접근이 필요함에도 사업 시행자나 이를 그나마 견제해야 하는 환경부는 개발을 계속 진행할 수 있게 하는 명분을 만드는 기술과 제도만 더욱 진화시키고 있는 듯하다.

스웨덴의 16살 소녀 그레타 툰베리는 2018년 8월부터 매주 금요일마다 등교를 거부하고 스웨덴 국회 밖에서 기후변화에 대한 책임 있는 행동을 정치인들에게 요구하며 1인 시위를 진행했다. 그레타 툰베리는 말한다. ‘기후 문제에 대한 해답은 이미 나와 있고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은 정신을 차리고 변화하는 것’이라고.

비자림로에 대해서도 해답은 이미 나와 있다. 비자림로 사업을 전면 재검토하고 그 지역을 생태적으로 보존해야 한다. 제주도와 환경부는 정신을 차리고 그 해답을 실천해야 한다.

김순애

비자림로를 지키기 위해 뭐라도 하려는 시민 모임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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