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상식 속풀이 - 박종인]

성체성사. (이미지 출처 = Flickr)

미사 중에 빵과 포도주가 성체와 성혈로 변화된 직후에 신자들은 사제가 “신앙의 신비여” 하는 선포를 듣게 됩니다. 이에 맞춰 신자들은 1) 주님께서 오실 때까지 주님의 죽음을 전하며 부활을 선포하나이다. 혹은 2) 주님께서 오실 때까지 이 빵을 먹고 이 잔을 마실 적마다 주님의 죽음을 전하나이다. 혹은 3) 십자가와 부활로 저희를 구원하신 주님, 길이 영광받으소서. 이 셋 중에 하나로 응답합니다.

“신앙의 신비여”에서 말하는 신비는 전례적 맥락으로 볼 때, 직전에 제대에서 벌어진 거룩한 변화를 가리킵니다.(전례사전 참조)

좀 더 넓게 이해한다면, “신비”는 인간의 이성이 사고할 때, 뭔가가 있다는 것은 알지만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는 무엇을 말합니다. 하느님은 삼위일체로 설명된다는 것. 하느님이 사람이 되어 오셨다는 강생신학이 그와 같은 신비에 속합니다. 그러한 신학적 지식은 가지고 있지만, 하느님에 대해 우리는 제한적으로만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신비로 치자면, 묵주기도에서 말하는 “신비”도 종류가 네 가지나 됩니다. “환희의 신비”, “빛의 신비”, “고통의 신비”, “영광의 신비”가 있고, 각 신비는 묵상할 주제를 다섯 개씩 가지고 있습니다. 모두 사람이 되어 오신 하느님, 곧 예수님과 관련 있으며 여기에 동참하고 계신 성모님의 역할도 신비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신비(mystery)는 본래 그리스어의 뮈스테리온(mustērion)에서 온 단어로, 그리스도교 신앙 안에서 라틴어의 성사(sacramentum)라는 말과 대응합니다. 성사의 정점은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사람이 되어 오신 하느님인 그리스도 예수님입니다. 하느님의 가려진 면이라 할 수 있는 신비가 눈에 보이고 만져지는 사람으로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하느님은 가리운 면을 가지고 계시고 그것이 무한이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신비는 아예 모르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완전히 다 아는 것도 아닌 그 중간에 있는 무엇입니다. 결국 끊임없이 깨달아 가는 진리라 하겠습니다. 이 세상에서의 삶이 다하는 순간까지 알아야 할 것이고, 다음에 오는 세상에서 하느님을 만났을 때 비로서 모든 것이 밝혀질 그것을 가리킵니다. 

신비를 알고자 하고 알아야 하는 모든 신앙인들은 진리에 대해 묻고 답하고 알아가는 데 지치지 않아야 합니다. 우리 각자의 삶도 온전히 설명할 수 없는 것이기에 신비롭습니다. 내가 무엇 때문에 태어났는지 나중에는 다 알게 될 것입니다. 부단히 묻고 조금씩이라도 알아 가는 것이 중요하겠습니다. 

박종인 신부(요한)
서강대 인성교육센터 운영실무.
서강대 "성찰과 성장" 과목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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