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상우 신부] 10월 6일(연중 제27주일) 하바 1,2-3; 2,2-4; 2티모 1,6-8.13-14; 루카 17,5-10

지난주 월요일부터 수요일까지 본당의 구역장, 반장님들과 제주도를 다녀왔습니다. 본당에서 가장 많은 봉사를 하시는 분들 중 하나인 구역분과에 속하신 봉사자 분들과 용수성지, 대정성지 등 제주교구 순례지와 함덕 해수욕장, 섭지코지 등 제주도의 아름다운 곳도 함께 느끼고 왔습니다. 

이틀째 오전의 일입니다. 마라도 성당에서 미사를 드리고 나니 교구 사제 정기 인사가 발표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발령에 따라 저도 임지를 옮기게 되었습니다. 양산 성당에 온 지 9개월 만에 다른 곳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여행의 남은 하루 반나절은 의도치 않게 교우 분들과의 이별여행이 되어 버렸습니다. 일정을 끝내고 본당으로 돌아오니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난 9개월 간의 생활이 머릿속을 흘러갔습니다. 무언가 한창 진행되고 있는 일들도 많았고 이제 막 시작하려는 것들도 있었습니다. 지난 여름 신앙학교를 통해서 더 가까워진 주일학교 학생들과의 나름 거창한 계획도 있었고 본당 교우분들과 앞으로 하기로 한 이러저러한 약속들도 쌓여 있었습니다. 그러한 모든 것들을 접어둔 채 지난 주일 송별식을 했습니다. 그 전 주일 영명 축일을 맞아 축하해 주시는 교우 분들에게 한 주 만에 이별을 고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그런 저에게 이번 주일 하느님의 말씀은 정말 절실하게 와닿았습니다. 제가 가진 생각들과 감정들을 정리할 수 있게 해 주시는 말씀이었습니다. ‘저희는 쓸모없는 종입니다. 해야 할 일을 하였을 뿐입니다.’(루카 17,10) 9개월 간의 짧은 생활을 돌아보면 분명 자랑하고 싶은 일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 앞에서 자랑할 일은 아님을 새삼스레 깨닫습니다. 왜냐하면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기 때문입니다. 그 반대로 분명 아쉬운 일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역시 하느님 앞에서 투정 부릴 일을 아님도 깨닫습니다. 왜냐하면 앞으로도 해야 할 일을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하고 싶었던 것들, 그것을 내려놓는 것이 바로 종으로서 그분의 뜻을 따르는 길임을 알고 있고, 있는 그 공간과 시간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바로 종의 역할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이제 새로운 공간에서 첫 주일을 맞게 됩니다. 이제는 새로움을 맞는 태도가 조금은 달라졌습니다. 무엇을 계획하고 그것을 성취해 가는 것보단 해야 할 일을 하는 종의 모습을 더욱더 깊이 묵상해 봅니다. 낯설고 떨리는 그 마음마저 하느님께 돌려드리고자 합니다. 종은 주인을 믿고 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오늘 복음의 제자들의 청원-“저희에게 믿음을 더하여 주십시오.”(루카 17,5)-이 지금 이 순간 저의 청원임을 고백합니다.

성당을 떠나며. (이미지 출처 = Pexels)

주님의 종으로 살아가는 이들에게 그분께서 더욱더 큰 믿음을 심어 주시를 청하며 지난 한 주일 저에게 힘을 주었던 생활성가 한 곡을 소개하며 글을 마칩니다.

 

열일곱이다 – 소명

 

주님께서 나를 부르시어 당신 말씀 내려주시고

나를 지으시기 전부터 나를 뽑아 세우셨네

사랑으로 나를 부르시는 당신의 뜻 알지만

나의 연약한 마음이 나를 두렵게 하네

 

오 주님 저는 아이라서 말할 줄 모릅니다

오 하느님 저는 부족하여 당신의 일 할 수 없습니다

두려워 마라 너를 보내는 곳에 네게 명하는 것에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너를 구해 주리라

 

세상이 너와 맞서 싸우겠지만 너를 당해 내지 못할 것이다

내가 너를 구하려고 너와 함께 있기 때문이다

부족한 도구로 일하시는 나보다 나를 더 사랑하시는

나의 나약함 아시는 주님께서 날 부르시네

두려워 마라 너를 보내는 곳에 네게 명하는 것에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너를 구해 주리라
 

유상우 신부(광헌아우구스티노)

천주교 부산교구 사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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