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회 인권연대 연구센터, '글로벌 컴팩트' 세미나

11일 예수회 인권연대 연구센터가 세계 이민의 날(9월 29일)을 맞아 세미나를 열고 난민, 이주민에 관한 국제문서인 ‘글로벌 컴팩트’를 소개하고 한국사회의 과제를 짚었다.

‘글로벌 컴팩트’는 난민과 이주민의 안전하고, 질서 있는 정규적 이주를 위해 2018년 12월 유엔이 채택한 국제문서이지만, 국제협약이나 조약과 달리 강제력이 없고 한국에서는 아직 낯선 문서다.

이 문서는 세계 여러 나라와 국제기관, 시민사회 등이 협력해 난민, 이주민이 인간답게 살 수 있도록 출신국의 문제해결 지원, 체류국 지역공동체와의 공생, 최종 정착국에서의 사회통합을 목표로 한 수년간 노력의 결과로, 난민 문제에 대한 107개 조항으로 이뤄졌으며 한국을 포함한 181개 나라가 채택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2017년 교황청 산하에 인간발전부를 만들어 국제사회가 글로벌 컴팩트를 논의하기 시작할 때부터 적극 개입했으며, 실무자들을 통해 그 내용이 각국에서 이행되도록 노력하고 있다.

특히 가톨릭 교회는 글로벌 컴팩트를 프란치스코 교황의 요청인 “환대, 보호, 증진, 통합”을 중심으로 요약해 “난민과 이민을 위한 20가지 사목 행동지침”과 “난민과 이민을 위한 20가지 행동지침”이란 문서로 배포했다.

이날 난민, 이주민 전문가인 황필규 변호사(공익인권법재단 공감), 이탁건 변호사(재단법인 동천), 김민 신부(예수회 아시아 태평양 지역구 이주사도직 네트워크 책임자)의 발표로 글로벌 컴팩트의 내용과 한계, 한국사회의 과제와 교회의 역할 등을 논의했다.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이사장 황필규 변호사. ⓒ김수나 기자

먼저 황필규 변호사는 한국이 이 문서를 채택했지만 과연 적극적으로 난민, 이주민 의제에 결합할 준비가 됐는가란 물음을 던졌다. 그는 한국이 외국인 혐오, 인종주의를 좀 더 논의하고 극복해야 한다고 봤다.

그는 정부의 발표, 법률, 정책, 일상 용어에서 쓰는 “단일민족, 순혈, 혼혈” 같은 용어가 한국의 지속적이고 광범위한 인종우월주의를 보여 주며, 함께 사는 다른 민족이나 집단과의 이해와 관용, 우의 증진을 저해할 수 있다는 유엔인권차별철폐위원회의 권고를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2018년 예멘 난민 사태도 갑자기 일어나지 않았다. 2012년 난민법 제정이 포털사이트 검색 1순위가 되면서 에이즈 유발, 성폭력 등 근거 없는 난민혐오 여론이 일어났고, 2013년 난민신청자 숙소 건립을 둘러싸고 지역주민들의 1년이 넘는 반대 등이 그 전조였다.

이어 2015년 다수 시리아 난민에게 인도적 체류를 허용하면서 난민 보호에 앞장선다고 했던 한국 정부는 그로부터 한 달여 뒤 파리에서 테러가 나자 시리아 난민을 국내의 잠재적 테러리스트로 규정하는 등 모순적 태도를 보였고, 문제는 국민 대부분이 이를 너무나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고 그는 지적했다.

그는 이것이 단지 헤프닝에 그치지 않고, 시리아 성인 남성 난민신청자라는 이유로 30명이 6개월 동안 인천공항에 불법 감금되는 결과를 낳았고, 2018년에도 난민에 대한 고민이 없는 상태에서 일자리, 종교, 여성, 아동의 안전문제 등 한국사회의 취약함과 갈등의 기점이 예멘 난민으로 직결됐다고 설명했다.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난민법이 있지만 난민심사나 이의신청 절차, 인도적 체류가 기형적으로 운영되고 생계지원, 사회통합에서도 갈 길이 멀다. 난민심사를 신청하면 난민 자격을 심사하는 것이 아니라 심사여부 자체를 결정하는 방식으로 운영되는 것이 한 사례다.

그는 이러한 한국 상황에서 글로벌 컴팩트가 아직 먼 이야기지만 틈은 있다면서 “제주도에서 예멘 난민을 지원한 천주교 신자들을 만났을 때 밖에서 보면 절망적인데 안에서는 더 그렇지 않느냐 물었더니 그래도 사람들이 바뀌는 것이 느껴진다는 답을 들었다”고 전했다.

재단법인 동천 이탁건 변호사. ⓒ김수나 기자

글로벌 컴팩트, 정부 공식 번역본도 아직 없어

이어 재단법인 동천 이탁건 변호사는 한국이 글로벌 컴팩트를 적극 채택했지만 난민 반대자들의 시위와 항의로 정부 당국은 아직 글로벌 컴팩트에 대한 목소리나 움직임이 없고 문서의 번역본조차도 내놓지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 국가 간 합의의 결과로 법적 구속력이 없어 “긴 쇼핑 리스트에 불과하다”는 비판과 함께, 정규적, 합법적 이주가 강조되다 보니 미등록 이주민의 인권은 충분히 다뤄지지 못하고 각국의 이해관계가 달라 애매한 표현도 가득하다는 비판도 나온다고 설명했다.

그는 글로벌 컴팩트가 다양한 국제인권협약과 인간의 기본적 권리에 기반한 내용이므로 단순한 정치적 약속에 머물러서는 안 되며 구속력이 필요해 당장은 아니더라도 국제조약으로 발전할 가능성도 있다고 봤다.

무엇보다 그는 한국 정부가 글로벌 컴팩트를 적극 해석하고 구체적으로 이행하도록 시민사회와 각계각층이 요구할 때 이 문서는 생명력을 가진다면서, 교황의 2018년 세계 이민의 날 담화에 나온 “환대, 보호, 증진, 통합”을 주제어로 글로벌 컴팩트의 주요 조항을 유엔인종차별철폐위원회의 권고사항과 함께 한국의 구체적 사례를 통해 짚었다.

그는 이주노동자들의 노동권을 지나치게 제약하는 고용허가제와 한국에서 태어났지만 출생신고가 허락되지 않는 이들을 위한 ‘보편적 출생신고’, 아동 구금 방지도 개선돼야 할 부분이라고 지적했다.

현재는 불법체류자에 성인과 아동을 구분하지 않고, 단지 15살 미만의 아동에 대해서만 원칙적으로 구금하지 않는다고 규정하기 때문에 부모 구금 시 자녀 또는 청소년 구금도 가능하다.

이밖에도 체류자격 통보의무 면제 확대, 건강권과 보건권, 미등록 이주아동의 교육권 보장 및 강제퇴거 유예 문제 등도 글로벌 컴팩트 조항에 근거해 한계점을 살펴봤다.

이탁건 변호사는 “외국인을 대하는 한국사회의 문제를 돌아봐야 한다. 국가가 원하는 정규적 방식으로 정착하지 못한 이들을 인정하고 보호하지 않는다면 큰 문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예수회 인권연대 연구센터 부소장 김민 신부.(예수회 아시아 태평양 지역구 이주사도직 네트워크 책임자) ⓒ김수나

난민, 이주민 돕는 것 넘어 함께 살아야 근본적 인간 성장 가능  

이어 김민 신부가 글로벌 컴팩트 논의에서 단지 법만이 아닌 근본적으로 우리 마음을 바꾸는 ‘회심’이 필요하다고 강조하고, 2018년 프란치스코 교황의 세계 이민의 날 담화에서 처음 나오는 “환대, 보호, 증진, 통합”이 글로벌 컴팩트의 근본을 짚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가톨릭 교회가 왜 글로벌 컴팩트와 같은 고도의 법률적인 것에 관심을 기울이는가, 프란치스코 교황은 왜 주교 시절부터 끊임없이 난민과 이주민 등 특별한 도움이 필요한 이들에게 각별한 관심을 보이는가를 물었다.

김 신부는 “프란치스코 교황은 우리가 타자를 만나게 될 때 기본적으로 성장한다고 강하게 믿는다. 노숙자에게 성당을 개방하고, 교구에서 난민을 수용하자는 제안의 밑바탕에는 교회가 고통받는 이들의 쉼터이자 야전병원을 넘어서서 그들과 만나 한 공간 안에서 살아갈 때야말로 한 인간으로서 성장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다”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이민자들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문제로 이민자들을 받아들일 때 우리는 온전히 한 인격을 회복할 수 있다”면서 “난민, 이주민 문제는 전면적으로 마음을 바꾸는 회심의 영역”이라고 강조했다.

난민, 이주민 현장 활동에서 설득을 얻어 내는 데 어려움, 관심 증진과 의식 개선 등을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질의응답도 이어졌다.

이탁건 변호사는 두 가지 사례를 통해 난민, 이주민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2013년 법무부가 영종도에 80여 명의 난민 신청자 입주시설인 난민센터(출입국 외국인지원센터)를 지을 때만 해도 주민들은 범죄 우려와 집값 하락 등을 이유로 대책위까지 꾸려 강하게 반대했지만 5년이 지난 지금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또 그는 친구들의 적극 도움으로 지난해 난민 지위를 인정받은 이란 출신 김민혁 군의 사례를 들며, “김 군이 난민 인정을 받아서가 아니라 한국사회에서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던 청소년 당사자들의 운동”으로 “난민 반대자들도 학생들 앞에서는 가짜 난민이니 돌아가라고 쉽게 말할 수 없었고 학생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주었다”라고 말했다.

김 군은 지난해 난민을 인정받았지만 아버지는 2016년 불인정 처분에 이어 지난 8월 재신청에서도 불인정을 받아 인도적 체류자다. 김 군이 성인이 되면 이 자격도 박탈당할 가능성이 크다.

11일 예수회센터에서 열린 난민과 이주민에 관한 글로벌 컴팩트 세미나에는 사제, 수도자, 평신도 활동가 등 50여 명이 참여했다. ⓒ김수나 기자

난민에 대한 혐오정서를 바꾸는 방안에 대해 김민 신부는 각 본당 공동체의 회심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웃을 환대하는 것은 옛날 문화에서나 가능하며 지금은 옆집조차도 쉽게 문을 열어 주지 않는다. 환대의 문화가 정착되기 위해서는 문화부터 바뀌어야 한다”면서 “구체적 지점으로 들어가야 한다. 교회로 말하면 각 본당 공동체가 회심을 위한 기반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2002년부터 이주노동자를 만나 봉사해 왔다는 김명옥 씨(율리아)는 난민, 이주민 문제를 본당 공동체와 어떻게 구체적으로 연결할 수 있는지를 물었다.

이에 대해 김 민 신부는 교황청 인간개발부의 활동 목적, “난민과 이민을 위한 20가지 행동지침”은 각 나라 주교들이 자신의 지역에서 행동하도록 요청하는 것으로, 교구나 수도회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전체 교회를 움직이는 주교들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현재 글로벌 컴팩트와 관련된 한국 정부 공식 번역물은 없다. 이탁건 변호사 등 관련 전문가들은 내년쯤 글로벌 컴팩트의 내용, 제정 경과, 해설 및 국내 법제도 개선 방안 등을 담은 “이주 글로벌 컴팩트 가이드북”을 낼 예정이다.

(왼쪽부터) 김민 신부, 이탁건 변호사, 황필규 변호사. ⓒ김수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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