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상우 신부] 10월 20일(연중 제29주일) 이사 2,1-5; 로마 10,9-18; 마태 28,16-20

본당을 떠나 새로운 곳으로 왔습니다. 주일미사에 참석하는 교우 분이 천 명이 넘는 큰 성당에 있다가 저녁 일곱 시만 되면 어두컴컴한 밀양의 어느 조용한 시골로 말입니다. 이 글을 쓰는 기준으로 감물생태학습관에 부임한 지 2주째가 되었습니다. 아직 보름이 채 되지 않았지만 벌써부터 많이 달라진 삶을 체험합니다. 많을 때는 300명이 넘는 교우 분들과 함께 큰 성전에서 미사를 드리다가 이제는 조그만한 경당에서 관장신부님과 직원, 봉사자 두세 분과 함께 아침 6시 반에 성무일도와 함께 미사를 드리고 하루를 시작합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눈에 들어오는 풍경부터 다릅니다. 이곳 밀양 감물리는 계단식으로 되어 있는 다락논이 펼쳐 있습니다. 논과 밭 사이의 좁은 길을 다니는 분들을 마주하며 아침을 맞습니다.

제가 해야 될 일도 달라졌습니다. 본당을 떠나 새로운 곳에 왔으니 우선 적응부터 해야겠지만 당장 내년 연초에 시도해 볼 주일학교 겨울피정을 안내하기 위해서 교구 신부님들께 보낼 우편물을 작업하는데, 공문을 만들고 혼자 풀 붙이고 가위로 자르다 보니 한나절이 금방 가는 날도 있었습니다. 가끔은 조금 막막하기도 합니다. 과연 내가 잘 살아갈 수 있을까? 하는 근원적 질문이 자연스럽게 던져집니다. 올해의 남은 일들과 내년의 계획을 준비하면서 ‘할 수 있을까?’ 아니 ‘내가 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이 머릿속을 감쌉니다. 아니 그 질문은 의심에 가깝다고 해도 그렇게 과장된 표현은 아닌 것 같습니다.

이번 주일 복음은 마태오 복음의 마지막 부분입니다. 전교주일에 알맞은 텍스트이지요. 그런데 제가 복음을 묵상하면서 눈에 머물렀던 부분은 바로 제자들의 상태였습니다. “그러나 더러는 의심하였다.”(마태 28,17) 예수님과 함께 다니면서 말씀과 기적들을 체험한 제자들, 나아가 그분의 죽음과 부활까지 목격한 제자들이지만 의심을 버리지 못합니다. 예수님의 부활 직후 토마스에게 하신 그분의 말씀이 떠오릅니다. “네 손가락을 여기 대 보고 내 손을 보아라. 네 손을 뻗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아라. 그리고 의심을 버리고 믿어라.”(요한 20,17) 그러나 마지막 순간에도 제자들은 의심을 버리지 못합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그들을 질책하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힘을 주시지요. 제자들에게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당신의 말씀을 전하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주님의 마지막 말씀은 그들에게 위로가 됩니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마태 28,20) 의심하는 제자들에게 주님께서는 언제나 당신께서 함께 계시겠다는 약속을 하십니다.

감물생태학습관에서 경작하고 있는 논 일부. ⓒ유상우

우리는 살아가면서 끊임없이 크고 작은 의심을 합니다. 과연 하느님은 계실까? 왜 주님께서는 나에게 이런 상황을 주실까? 이런 의심은 교회 공동체 안에서도 유효합니다. 교회의 모습과 인간에 대한 실망 속에서 생기는 의심 말입니다. 그렇지만 그 의심 속에서도 주님은 그 자리에 여전히 계십니다. 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사목을 하면서 가지는 여러 가지 질문을 넘어선 의심, 하지만 그 의심의 끝자리에는 주님의 섭리가 있음을 끊임없이 깨달아 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곳에서도 저에게 펼쳐질 그분의 뜻을 기다리며 의심하고 질문하는 제 모습을 돌아보게 됩니다. 하느님께서 주신 이성을 가진 인간이기에 의심하는 것은 어떻게 보면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하지만 그 의심에서 멈추지 않고 하느님의 뜻을 찾아가는 것이야말로 성숙된 신앙인의 여정을 가는 데 있어서 중요한 일임을 새삼 깨닫습니다.

이 관점에서 오늘 교회가 기념하는 전교주일이라는 말도 되새겨 봅니다. 선교가 교회의 가장 큰 임무임을 모르는 분들은 없으리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 역시 의심이 들 수밖에 없습니다. “내가 이웃에게 하느님의 말씀을 전한다고 해서 과연 될까?” 하지만 그 의심이 의심으로만 머문다면 우리의 신앙은 죽어 갈 수밖에 없습니다. 의심하는 제자들에게 움직일 수 있는 힘을 주신 주님께 우리 역시 당신의 말씀을 전할 수 있는 힘을 달라고 기도해야겠습니다. 그리고 내가 살아가는 세상 속에서 하느님의 뜻을 바라볼 수 있는 지혜 역시 청해야 됨을 깨닫습니다. 교황님께서는 “교회는 세상 안에서 선교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은, 우리가 하느님의 시선과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봄으로써 모든 사물의 올바른 차원을 알게 해 줍니다.”(2019년 전교 주일 담화)라고 말씀하시면서 교회와 세상은 분리될 수 없는 관계에 있음을 다시 한번 상기해 주고 계십니다. 

전교주일, 민족들의 복음화를 위한 미사를 봉헌하는 이번 주일에 제2독서에서 사도 바오로가 인용한 이사야서 52장 7절 “얼마나 아름다운가, 산 위에 서서 기쁜 소식을 전하는 이의 저 발!”이라는 말씀처럼 우리의 크고 작은 의심이 주님을 향한 아름다운 발걸음으로 변화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유상우 신부(광헌아우구스티노)

부산교구 감물생태학습관 부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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