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비평 - 박병상]

미국의 문호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말년에 쿠바에 살면서 여러 대작을 남겼다. 쿠바 여행자는 대개 적지 않은 입장료를 감당하고 헤밍웨이 저택을 방문하는데, 서재의 고색창연한 책들보다 벽 여기저기 붙은 커다란 사슴 대가리가 눈길을 끈다. 평소 사냥을 즐긴 그는 자신의 집에 장식하며 자랑하고 싶었나 보다. 저택 마당의 한 구석에 앙증맞은 무덤 4개도 방문객의 눈을 멈추게 한다. 헤밍웨이의 반려견들이다.

고기나 돈벌이가 아니라 오로지 재미를 위해 야생동물을 총 또는 석궁으로 사냥하는 부자들의 놀이가 있다. 잡은 동물을 기념이 될 박제로 만들어 과시하는 이른바 ‘트로피 사냥’이다. 대형 동물이 서식하는 아프리카에서 주로 미국인 고객으로 끌어들인다는데, 미 정부가 최근 트로피 사냥꾼의 전리품인 사자 사체의 일부나 가죽을 도입할 수 있도록 허가했고, 그런 결정은 거센 논란으로 이어졌다고 소식통이 전했다.

트로피 사냥꾼이 지불하는 거액으로 아프리카 국가들은 생태계 보전의 재원을 확보한다고 미국 사냥협회가 환영 성명을 발표했지만 동물애호가 중심의 시민단체는 반대 목소리를 높인 모양이다. 일부 부자들의 잔혹한 과시욕을 위해 대형 동물의 사체 도입을 허용한다면 멸종위기 동물의 반입으로 이어질 거라며 항의하며 어처구니없어 했다는데, 어떨까? 부자들의 트로피 사냥을 허용한다면 아프리카의 생태계가 보호될까? 트로피 사냥을 즐긴다는 미 트럼프 대통령의 장남은 그런 의견에 동의하려나?

제국주의의 산물인 동물원은 패권을 쥔 국가에서 과시 목적으로 경쟁적으로 열었지만 요즘은 다르다. 교육과 멸종위기 동물의 보전을 명분으로 내세우면서 전시 방법도 개선했다는 걸 홍보한다. 훤히 보이는 곳에 가둬 마네킹처럼 전시하던 제국주의 시절과 달리 동물의 생태 조건에 최대한 부합하면서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동물이 눈치채지 못하게 관람하는 방식으로 전환한다고 덧붙인다. 하지만 아무리 습성에 맞게 꾸몄더라도 동물원의 동물이 살가워할 리 없다. 고유 생태 조건과 기후가 맞지 않는 공간에 사로잡혀 야생성을 잃었고, 관람객의 냄새와 소음을 하루하루 견디며 연명할 따름이다.

제주 선흘 곶자왈 모습. (사진 출처 = 제주도 지질공원 홈페이지)

동물에 맞는 생태계 조성과 관계없이 세계의 주요 동물 관련단체는 그 지역에 서식하지 않는 동물의 전시 자체를 중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제주도 곶자왈에도 시대착오적 계획이 착착 진행된다는 소식이 들린다. 관광 투자를 앞세우며 아프리카 사파리를 조성하겠다는 게 아닌가. 고유 생태계를 보유하는 곶자왈을 국립공원으로 지정해 보전하겠다는 의지를 천명해 온 지자체가 제주도인데, 그중 생태계가 가장 자연스럽게 보전된 조천읍 선흘리 일원 곶자왈 56만 제곱미터(약 169,400평)에 ‘제주동물테마파크’를 조성하겠다니! 그런 민간 사업자의 계획을 제주도 당국이 묵인했다는 의혹이 일면서 논란이 커진다.

1600억 원의 사업비로 2023년 완공하겠다는 제주동물테마파크는 해외 동물의 생태공간일 수 없다. 제주도와 무관한 사자와 코끼리, 그리고 호랑이를 비롯해 20여 종의 대형 동물을 철망에 가두지 않고 사육하더라도 보전과 무관하다. 호텔과 글램핑장을 갖춘 사파리가 포함된 이상 구경거리에 지나지 않는다. 선흘 곶자왈은 제주 특유 동식물과 멸종위기종이 다수 분포하는 지역이다. 제주도는 아프리카와 생태환경이 엄연히 다른데, 생태적 가치가 빼어난 곶자왈에 아프리카 사파리를 어떻게 구상할 수 있을까? 이권을 위한 민간 사업자의 계획을 반려하지 않았다니, 보전을 되뇌는 제주도 당국의 진정성은 당연히 의심받을 만하다.

제주도는 물론 전국의 환경단체에서 반대 목소리를 높이는 가운데 제주도의회도 민간 사업자의 계획을 즉각 반려할 것을 촉구하고 나섰다고 언론은 전한다. 몰상식을 돌이키라는 상식적 요구가 아닐 수 없다. “숲을 의미하는 ‘곶’과 우거진 수풀이라는 ‘자왈’이 모인 곶자왈은 제주도 중산간의 생태계 보고일 뿐 아니라 지하수의 원천이다. 생명의 모태인 곶자왈에 골프장과 생수공장이 버젓이 조성된 상황을 돌이키지 못하는 제주도에 아프리카 대형 동물을 가둔 테마파크가 조성된다면 세계적 조롱거리의 하나로 등록될 것이다.

총과 석궁으로 죽이지 않을 뿐, 계획된 제주도 곶자왈의 동물테마파크는 아프리카 트로피 사냥터와 다를 바 없다. 이윤 추구를 위해 대형 동물의 생명을 수탈하는 공간이 아닌가. 동물원 자체를 없애라는 목소리가 세계적으로 선명해지는 상황에서 곶자왈에 아프리카 사파리라니. 생태 관광이라는 추세에 역행한다. 제주도의 곶자왈은 보전될 때 가장 아름답다.

 
 

박병상 

인천 도시생태, 환경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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