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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 교종 최신 강론말씀(10월 28-31일)

기사승인 2019.11.07  16: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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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란치스코 교종 최신 강론말씀]

(편집 : 장기풍)

“성령께서는 우리의 사슬을 끊으신다”

교종, 10월30일 수요 일반접견 교리교육

프란치스코 교종은 10월30일 성 베드로 광장에서 열린 수요 일반접견 교리교육에서 사도행전 교육을 계속하면서 그리스도교가 유럽에 전파된 과정을 설명했다. 교종은 성령이 사람들 마음을 열고 믿음을 대담하게 한다면서, 성령이 교회의 선교사명의 주인공임을 거듭 강조했다. 

가르침 내용.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안녕하세요! 사도행전을 읽으면서 우리는 성령께서 어떻게 교회 선교사명의 주인공인지 알 수 있습니다. 성령께서는 복음 선포자들에게 가야 할 길을 제시하고 안내하는 분입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바오로 사도가 트로아스에 도착해 환시를 받은 순간 명확하게 알 수 있습니다. 환시 중에 마케도니아 사람 하나가 바오로에게 “마케도니아로 건너와 저희를 도와주십시오”(사도 16,9) 하고 청합니다. 지금도 북부 마케도니아 사람들은 이것을 자랑스럽게 얘기합니다. 즉 바오로가 예수 그리스도를 알려 줄 것이라고 생각했기에 바오로를 부른 것에 대해 자랑스러워합니다. 저를 따뜻하게 환영해 준 그곳 다정스러운 주민들을 기억합니다. 바오로 사도가 그들에게 전해 준 믿음을 잘 지키길 기원합니다. 바오로 사도는 주저하지 않고 마케도니아로 떠났으며, 자신을 보내신 분이 다름 아닌 하느님이심을 확신하고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로마와 아시아를 잇는 에나시아 도로변에 위치한 ‘로마 식민시’(사도 16,12)였던 필리피로 갔습니다. 필리피에서 3일을 보낸 바오로의 체류를 특징짓는 세 가지 중요한 사건이 있습니다. (1) 리디아와 그녀 가족에게 복음을 전하고 세례를 줌. (2) 주인들에 의해 착취를 당한 귀신 들린 하녀를 치유해 준 뒤, 실라스와 함께 감옥에 갇힘. (3) 바오로가 갇힌 감옥의 간수와 그의 가족들이 회심하고 세례를 받음. 이 세 가지 일화를 바오로의 삶을 통해 살펴봅시다.

복음의 권능은 무엇보다 먼저 필리피의 여인들, 특히 티아티 시 출신 자색 옷감 장수로 하느님을 섬기는 이였던 리디아라는 여인에게로 향합니다. 주님께서는 ‘바오로가 하는 말에 귀 기울이도록’(사도 16,14) 그녀 마음을 열어 주셨습니다. 리디아는 실제로 그리스도를 받아들이고 가족과 함께 세례를 받았으며 바오로와 실라스를 자신의 집에 초대하면서, 그리스도 제자들을 환대했습니다. 이 사건은 유럽에 처음으로 그리스도교가 전파된 증거입니다. 복음은 마케도니아를 통해 유럽에 전파되었습니다. 리디아의 집에서 열정을 체험한 뒤 바오로와 실라스는 감옥에 갇히는 가혹함과 마주칩니다. 리디아와 그녀 가족의 회심에 대한 위안에서 감옥의 절망에 이른 것입니다. 그들은 ‘점을 쳐서 주인들에게 큰 돈벌이를 해 주던’, 귀신 들린 하녀(사도 16,16)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치유해 주었다는 이유로 감옥에 갇힙니다. 그녀의 주인들은 많은 돈을 벌었고 이 가난한 하녀는 점술사들이 하는 일을 했습니다. 곧 사람의 미래를 점쳤고 “집시여, 이 손을 잡아라” 하고 노래하는 것처럼 손금을 읽었습니다. 이것에 사람들은 돈을 지불했습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오늘날에도 역시 이것 때문에 돈을 지불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제가 있던 교구에는 매우 큰 공원이 있는데 그곳에 60여 개가 넘는 테이블에서 남녀 점술사들이 앉아 사람들 손금을 봐 주었고 사람들은 이를 믿었던 것을 기억합니다. 사람들은 돈을 지불합니다. 이런 것이 바오로 사도가 살았던 당시에도 있었던 일입니다. 그 하녀의 주인은 보복을 하고자 바오로를 고소하고 사도들을 붙잡아 관리들에게 끌고 가서 도시에 소동을 일으켰다는 죄목으로 고소합니다.

그런데 무슨 일이 일어납니까? 감옥에 갇힌 바오로에게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바오로와 실라스는 암담함 속에서도 불평하지 않고 하느님께 찬미가를 부릅니다. 이 찬미가는 그들을 감옥에서 해방시키는 힘을 방출합니다. 그들이 기도하고 있을 때 큰 지진이 일어나 감옥의 기초가 뒤흔들리고 문들이 모두 열리고 사슬이 다 풀렸습니다.(사도 16,25-26) 성령강림 때의 기도처럼 감옥에서 바친 기도는 경이로운 결과를 초래합니다. 간수는 수인들이 달아났으려니 생각하고 자결하려 했습니다. 만약 수인이 도망치면 간수는 그들 목숨으로 대신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바오로는 큰 소리로 “우리가 다 여기에 있소”(사도 16,27-28) 하고 말합니다. 그러자 간수는 “제가 구원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사도 16,30)라고 묻습니다. 사도들은 “주 예수님을 믿으시오. 그러면 그대와 그대의 집안이 구원을 받을 것이오.”(사도 16,31)라고 대답합니다. 이 순간 변화가 일어납니다. 그날 밤 간수는 자신의 가족과 함께 주님의 말씀을 듣고 사도들을 자신의 집으로 데리고 가서 매질당할 때 생긴 상처를 씻어 주고 그와 온 가족이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하느님을 믿게 된 것을 온 집안과 더불어 기뻐했습니다.’(사도 16,34) 그는 식탁을 준비하고 바오로와 실라스를 자신들과 함께하기를 초대합니다. 위로의 순간입니다. 이 익명의 간수의 어두운 마음에 그리스도의 빛이 빛나고 어둠을 물리칩니다. 마음의 사슬이 풀려나고 그와 그의 가족들이 전혀 느껴 보지 못했던 기쁨이 꽃핍니다. 이처럼 성령께서 선교사업을 하십니다. 처음부터, 성령강림 이후부터 성령께서는 선교 사업의 주인공입니다. 성령께서는 우리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시며 우리를 행동하게 하는 소명에 충실하게 하십니다.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서 말입니다.

우리도 오늘 리디아처럼 하느님께 민감하고 형제들에게 호의적인 열린 마음을 성령께 청합시다. 바오로와 실라스와 같은 대담한 믿음을 청합시다. 성령의 어루만짐에 자신을 내어 맡긴 간수의 마음과 같은 열린 마음을 청합시다.

 

교종, 아르헨티나 ‘루한의 성모상’ 축복

프란치스코 교종은 일반접견 뒤 성모상 두 점을 축복했다. 영국 주교단은 이날 1982년 포클랜드 전쟁 당시 영국군이 영국으로 옮겨온 아르헨티나 수호성인 ‘루한의 성모’를 아르헨티나 주교단에게 반환했다. 한편 영국 올더숏 가톨릭 군종성당 ‘성 미카엘과 성 조지 대성당’에는 루한의 성모상 복제품이 전달될 예정이다. 영국 군종교구장 폴 제임스 메이슨 주교는 교구장에 임명된 직후, 포클랜드 전쟁 당시 영국군이 가져간 ‘루한의 성모상’을 돌려받는 대신 올더숏 대성당에는 루한의 성모상 복제품을 제공하겠다는 아르헨티나 군종교구장 산티아고 올리베라 주교 제안을 포클랜드 전쟁에 관한 양국의 화해의 표현으로 기꺼이 수용했다. 1982년4월 아르헨티나 군대가 영국령인 포클랜드 제도를 침공할 당시 그들은 부에노스아이레스 ‘루한의 성모 대성당’에 안치돼 있는 성모상(1630년 원작)의 복제품을 포클랜드로 모셔 왔다.

 

“그리스도의 사랑은 연속극의 사랑이 아니다”

교종, 10월31일 산타 마르타의 집 아침미사 강론

프란치스코 교종은 10월31일 산타 마르타의 집 아침미사 강론에서 우리 각자를 위한 예수님 안의 하느님의 애틋한 사랑을 이해해야 하며, 그럴 때라야 진정 그리스도의 사랑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강론 내용.

성령께서는 ‘우리를 위한 그리스도의 사랑’을 우리로 하여금 이해하게 해 주시고 주님에게서 사랑받고 우리 자신을 내어 맡길 수 있도록 우리 마음을 준비시키길 바라십니다. 오늘 제1독서 로마서 대목은 ‘이방인들의 사도’ 바오로가 심지어 ‘환난, 역경, 박해, 굶주림, 헐벗음, 위험, 칼’조차도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우리를 갈라놓을 수 없다’고 말한 것은 ‘다소 교만하고 너무 자신만만해 보이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주님의 사랑으로 우리는 승리자들 이상이 됩니다. 바오로 사도는 승리자였습니다. 주님께서 다마스쿠스로 가는 길에서 바오로를 불렀을 때부터 그가 그리스도의 신비를 이해하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바오로도 그리스도를 사랑했습니다. 이 사랑은 연속극 주제가 아니라 강력하고 크신 사랑에서 나온 사랑입니다. 그것은 주님께서 좋은 일이 있을 때나 나쁜 일이 있을 때나 항상 함께해 주신다고 느끼게 하는 진지한 사랑입니다. 바오로는 사랑으로 그러한 것을 느꼈습니다. 스스로에게 물어봅시다. 나도 이렇게 주님을 사랑하는가? 흔히 우리는 나쁜 순간이 닥치면 ‘주님께서는 나를 버리셨고 더 이상 나를 사랑하지 않으신다’고 말하고 싶은 생각이 자주 들고 주님을 떠나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바오로 사도는 주님께서는 결코 우리를 버리지 않으실 것이라고 확신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바오로가 우리에게 보여 주는 길입니다. 이 길은 나쁜 일이나 좋은 일이 있을 때나 항상 함께하는 사랑의 길입니다. 항상 그렇게 말입니다. 이것이 바로 바오로 사도의 위대함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하느님 아버지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보내신 분이십니다. 사랑으로 그렇게 하셨습니다. 우리를 위해 목숨을 내어 주셨습니다. 다른 사람을 위해 목숨을 내어 주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습니다. 한 어머니를 생각해 봅시다. 예를 들어 자식을 위해 목숨을 내어 주고, 자식의 삶과 어려운 순간에 항상 함께하는 그것으로도 설명하기 어려운 어머니의 사랑을 생각해 봅시다. 이는 우리 가까이에 있는 사랑입니다. 예수님의 사랑은 추상적 사랑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사랑은 나-너, 나-너, 성과 이름을 가진 우리 각자를 위한 사랑입니다. 루카 복음에서는 예수님의 구체적인 사랑을 표현합니다.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대해 말씀하시면서 ‘암탉이 제 병아리들을 날개 밑으로 모으듯’ 몇 번이나 당신 자녀들을 모으려고 했으나, 거부당하고, 심지어 '우셨다'고 표현했습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은 눈물을 흘리게 합니다. 우리를 위해 눈물을 흘립니다. ’눈물을 흘렸다‘는 표현 안에는 예수님의 애틋한 사랑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을 단죄하고 저주할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암탉의 병아리들처럼 사랑받기 위해 자신을 내어 맡기지 않는 것을 아쉬워하십니다. 이는 바로 예수님 안에서 사랑하시는 하느님의 애틋한 사랑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이것을 이해했습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 각자를 위해 예수님 안에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느님의 애틋한 사랑을 이해하고 느낄 수 없다면, 결코 그리스도의 사랑이 무엇인지 이해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은 항상 기다려 주고, 인내해 주고, 유다에게 마지막까지 탈출구를 제시하며 ’친구야‘(마태 26,50)라고 말하는 마지막 카드를 내미는 사랑입니다. 우리가 다른 길로 가려고 마음먹는 동안에도 우리에게 많은 것을 주시는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울고 계신지 스스로에게 물어보기 바랍니다. 하느님의 사랑은 눈물이 되고 울음이 되고, 예수님 안에서의 애틋한 울음이 됩니다. 이런 이유로 바오로 사도는 “그리스도를 사랑하고, 그 어떤 것도 그리스도의 사랑으로부터 그를 갈라놓을 수 없었다”고 말한 것입니다.

 

“희망은 그리스도인에게 숨쉬는 공기”

교종, 10월29일 산타 마르타의 집 아침미사 강론

프란치스코 교종은 10월29일 산타 마르타의 집 아침미사 강론에서 ‘그리스도인의 희망’에 초점을 맞추어 “희망은 강 건너편에 닻을 던지는 것과 같다”면서 희망의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아무것도 집착하지 말아야 하고 오히려 주님과의 만남에 중점을 두며 살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이러한 관점을 잃는다면 삶은 정체되고 모든 일이 멈추며, 결국 부패되고 만다고 말했다. 

강론 내용.

오늘 제1독서(로마 8,18-25)는 사도 바오로가 ‘희망의 찬가를 노래하는’ 로마인들에게 보낸 서간에서 발췌한 것입니다. 일부 로마인들은 불평을 늘어 놓으려고 사도에게 갔고 바오로는 이들에게 앞을 바라보라고 격려합니다. “장차 우리에게 계시될 영광에 견주면, 지금 이 시대에 우리가 겪는 고난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로마 8,18) 사도 바오로는 계시를 간절히 기다리는 피조물에 대해서도 언급합니다. 바로 이것이 희망입니다. 즉 주님의 계시, 주님과의 만남을 간절히 기다리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고통과 문제가 생길 수 있지만 이것은 내일 겪을 일이며, 오늘 여러분은 약속을 보장받고 있습니다. 그 약속이란 이미 이 순간에 우리를 기다려 주시고 활동하시는 성령이십니다. 사실 희망은 ‘강 건너편에 닻을 던지는 것과 같고’, 그 끈을 붙들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뿐 아니라 모든 피조물은 희망 안에서 해방될 것이고, 하느님의 자녀들이 누리는 영광으로 들어갈 것입니다.(로마 8,20-21 참조) 그리고 ‘성령의 첫 선물’을 담보받은 우리 또한 “하느님의 자녀가 되기를, 우리의 몸이 속량되기를 기다리며, 속으로 탄식하고”(로마 8,23) 있습니다. 희망은 항상 이러한 긴장 속에서 사는 것입니다. 우리가 여기서 둥지를 틀 수 없다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어디론가 향하는 긴장 안에’ 있는 것입니다. 만일 그리스도인이 이러한 관점을 잃는다면 삶은 정체되고 모든 일은 멈추며, 결국 부패합니다. 물을 생각해 봅시다. 물이 정체되고, 흐르지 않으며, 움직이지 않는다면 부패하고 맙니다. 그리스도인이 앞으로 나아갈 줄 모르고 강 건너편을 향하는 긴장 안에 있지 않다면 그에게는 무엇인가 부족한 것입니다. 그는 썩고 말 것입니다. 그에게 그리스도인의 삶은 철학적 가르침에 불과할 것이고 그저 그런 삶을 살아갈 것이며, 그는 그런 것이 신앙이라고 말하겠지만 사실 희망이 없다면 신앙이 아닙니다.

희망을 이해하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만일 우리가 신앙에 대해 말한다면 우리를 창조하신 하느님께 대한 신앙,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님께 대한 신앙을 언급하고, 신경을 바치며, 신앙에 대한 구체적 내용을 말할 것입니다. 또 사랑에 대해 말한다면, ‘이웃과 타인에게 선행을 베푸는 것, 타인에게 행하는 많은 자선활동’이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그러나 희망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희망은 오직 가난한 사람들만이 행할 수 있는 가장 겸손한 덕목입니다. 만일 우리가 희망의 사람이 되기를 원한다면 아무것도 집착하지 않는 가난한 사람, 그런 가난한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가난한 사람들 말입니다. 또 강 건너편을 향해 열려 있어야 합니다. 희망은 겸손입니다. 말하자면 매일 활동하는 덕목입니다. 매일 희망을 다시 부여잡아야 합니다. 매일 겸손한 자세를 취해야 하고 매일 끈을 붙잡고 닻이 그곳에 잘 고정되어 있는지 그리고 그 끈을 손으로 잘 잡고 있는지 살펴봐야 합니다. 우리는 매일 담보를 기억해야 합니다. 그 담보란 작은 일을 통해 우리 안에서 활동하시는 성령이십니다. 오늘 복음(루카 13,18-21)에서 예수님은 하느님나라를 정원에 심은 겨자씨의 비유로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매일 그것이 어떻게 되어 가는지 보러 가는 게 아니라, 씨가 자라도록 기다려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결코 자라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인내’입니다. 사도 바오로가 말하듯이 희망은 인내심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로마 8,25 참조) 우리는 씨를 뿌리지만 자라게 하시는 분은 하느님이라는 것을 아는 인내가 필요합니다. 희망은 작지만 공을 들여야 하고, 씨앗을 뿌린 뒤 땅이 그 씨앗을 성장시키도록 놓아 두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희망에 대해 말씀하시려고 어떤 여자가 가져다가 밀가루 서 말 속에 집어넣었던 ‘누룩’의 이미지를 사용하셨습니다. 냉장고 속에 넣어둔 것이 아니라 ‘삶 안에 반죽된 누룩은 땅 아래 심어진 겨자씨와 같습니다.

따라서 희망은 보이지 않는 덕목입니다. 아래에서 활동합니다. 우리로 하여금 아래를 바라보도록 이끕니다. 희망 안에 사는 것은 쉽지 않지만, 희망은 그리스도인이 숨쉬는 공기, 희망의 공기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기 때문에 앞으로 나아갈 수도, 걸어갈 수도 없습니다. 희망은 우리에게 확신을 줍니다. 이것은 분명하고, 반드시 그렇습니다. 희망은 절대로 실망시키지 않습니다. 주님의 약속에 마음을 열고 그 약속을 기다릴 필요가 있지만 성령께서 우리 안에서 활동하신다는 것도 알아야 합니다. 주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기다리며 살아가는 은총을, 긴장 속에 살아가는 은총을 주시길 빕니다. 결코 신경질적이거나 문제를 통해서가 아니라 긴장 속에서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를 강 건너편으로 이끄시고 우리를 희망 속에 머물게 하시는 성령을 통해 긴장 속에 살아가는 은총 말입니다.

 

교종, 태국, 일본 사도적 순방 세부일정

바티칸 공보실은 10월28일 프란치스코 교종의 11월 태국과 일본 순방 세부 일정을 발표했다. 교종은 11월19일 로마를 떠나 태국과 일본을 각각 3박4일 머문 뒤 11월26일 바티칸으로 귀국한다. 

세부 일정.

2019년 11월19일 
19:00 로마 피우미치노 공항에서 방콕으로 출발

2019년 11월20일 
12:30 방콕 군용공항 제2터미널 도착. 공식 환영행사

2019년 11월21일 
09:00 정부청사에서 환영행사 후 총리, 정부관계자, 시민단체, 외교단과의 만남
10:00 왓 랏차보핏 사팃마하시마람 사원에서 불교 최고지도자 승왕 방문
11:15 세인트 루이스 병원 의료진, 노인 및 장애인들과 만남
17:00 암폰 왕궁에서 마하 와치랄롱꼰 국왕(라마 10세) 비공식 방문
18:00 국립경기장에서 미사 봉헌

2019년 11월22일 
10:00 방콕 성 베드로 성당에서 사제, 수도자, 신학생, 교리교사들과의 만남
11:00 복자 니콜라스 분커드 킷밤룽 성지에서 아시아주교회의연합회(FABC) 및 태국 주교단과의 만남 
11:50 성지 인근 강당에서 예수회 회원들과의 비공식 만남
15:20 쭐랄롱꼰 대학교에서 그리스도교 종파대표 및 비그리스도교 종단 지도자들과의 만남 
17:00 성모승천 주교좌성당에서 젊은이들과 함께 미사 봉헌

2019년 11월 23일 
09:15 방콕 군용공항 제2터미널에서 환송식
17:40 도쿄 하네다 국제공항 도착, 환영행사
18:30 바티칸 대사관에서 일본 주교단과의 만남

2019년 11월24일 주일 
09:20 나가사키 원폭공원에서 핵무기 관한 메시지
10:45 니시자카 언덕의 나가사키 26성인 순교지에서 순교성인들 공경
14:00 나가사키 야구장에서 미사 봉헌
17:45 히로시마 공항 도착, 평화기념관에서 평화를 위한 만남
21:50 도쿄 하네다 공항 도착

2019년 11월25일 
10:00 ‘베루사루 한조몬’ 회의장에서 강진, 쓰나미, 원전사고 등 3악재 피해자들과의 만남 후 고쿄(皇居)에서 나루히토 일왕 비공식 방문
11:45 성모 마리아 주교좌성당에서 젊은이들과의 만남
16:00 도쿄돔에서 미사봉헌. 미사 후 총리 집무실에서 총리, 정부관계자, 외교단과의 만남

2019년 11월26일 
07:45 도쿄 소피아 대학의 ‘쿨트하임(문화관)’ 경당에서 예수회 회원들과의 비공식 미사봉헌 소피아 대학에서 예수회 회원들과 비공식 만남 및 아침식사
09:40 소피아 대학에서 병자와 원로사제들 방문
11:20 도쿄 하네다 공항에서 환송식
17:15 로마 피우미치노 공항 도착

장기풍(스테파노)
전 <평화신문> 미주지사 주간
2006년 은퇴. 현재 뉴욕에 사는 재미동포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장기풍 editor@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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