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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아이를 달리 보는 법

기사승인 2019.11.20  15:0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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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욜라 즐거운 육아 일기 - 97]

약속했던 상담시간이 되어, 교실 뒷문을 노크했다. 실내화가 아닌 신발을 신고 있어서일까, 학부모가 되어 아이의 교실을 방문하는 일은 늘 어색하다. 아이들이 모두 집으로 돌아가고 난 뒤의 교실은 어쩐지 살아 있는 것 같다. 문을 열자 교실 뒷벽에 꾸며진 아이들의 그림, 종이 접기 작품들이 방금 전까지 와글와글 시끄러웠는데 순간 조용해진다. 아이들의 이름이 붙여진 의자와 책상도 꼼짝하지 않고 놓여 있다. 하지만 이내 개구쟁이처럼 킥킥 떠들어 댄다. 3학년보다는 2학년이, 2학년보다는 1학년의 빈 교실이 더 시끄럽다. 그때, 교실의 이런 소란은 별거 아니라는 듯, 선생님이 태연히 책상에서 일어나셨다.

“안녕하세요? 어머님.”

“아, 안녕하세요? 선생님. 욜라…. 엄맙니다.” 입학식과 공개수업 때 멀리서 뵈었고, 가까이서 인사 드리기는 처음이다. 지난 공개수업 때는 욜라도 욜라지만 선생님도 인상적이었다. 선생님은 아이들의 의견이라면 어떤 헛소리라도 응대해 주셨고, 난장판으로 흐를 수 있었던 수업도 ‘오늘의 학습목표’까지 달성하고야 마셨다. 아이들에게 걸핏하면 화를 내는 나와, 말 안 듣기로 작정한 아이들, ‘오늘의 목표’ 같은 것은 있을 리 없고, 간혹 목표를 세워도 달성이 요원한 우리 집과는 너무 대비되었다. 나는 그날 집으로 돌아가면서 ‘화를 내기 전에 세 번 참기’를 실천해 보겠다고 다짐했다. 선생님 같은 따뜻한 카리스마를 보여 줌으로써 궁극적으로 아이들이 내 말을 잘 듣기를 바랐던 것이다. 하지만 참았던 만큼 화를 더 내게 되는 부작용이 속출했고 기껏 화를 내 봤자 소용도 없었다.

“야! 엄마가 방 치우라고 몇 번 말했어! 세 번, 아니 네 번은 말했다! 근데 왜 좋은 말로 할 때 안 들어? 이렇게 꼭 소리를 질러야겠어?”라고 고함을 지를 때, 아이들이 “맞아. 엄마는 참을 만큼 참았는데 우리가 심했어. 어떤 벌이라도 달게 받을게.”라고 빌 줄 알았다. 하지만 아이들은 미리 짠듯이 이 무슨 억울한 경우가 다 있느냐는 듯 황당한 표정이었다. 엄마가 예고도 없이 갑자기 화를 낸다는 것이다. 난 정말 혼란스러웠다. 내가 세 번, 네 번 부드럽게 부탁하고 타일렀던 말을 못 들었다니 믿을 수가 없었다.

솜사탕 먹는 (왼쪽부터) 욜라, 메리, 로. ⓒ김혜율

“메리야, 엄마가 아까부터 말하는 거 들었지? 계속 말했었잖아?”

“언제에~ 엄마가 언제!”

거짓말!

“욜라! 넌 들었지? 아까 엄마가 너 보고….”

“아니, 못 들었어!”

얼씨구.

”로, 로는 들었지? 응?“

“아니! 못 들었는데? 엄마가 말 안 했잖아! (좌중을 둘러보며) 그치이?”

이같은 일이 반복되면서 깨달았다.

‘그래, 다정하고 부드러운 부탁 따위 아무짝에 쓸데없는 거야. 엄마면 엄마 답게, 고함을 질러야 들어 주겠다는 것이로군. 좋아, 좋다구. 후후후.’ 이를 악물고 못되져야겠다고 생각해 버렸다. 이것이 내가 ‘선생님 같은 엄마’ 프로젝트에서 손을 떼고 다시 괴성을 지르는 삶을 살고 있는 이유다. 그런 탓에 내 앞의 선생님은 내겐 너무나 먼 당신처럼 느껴진다. 바로 눈 앞에서 반짝이고 있지만 먼 우주에서부터 날아오는 별빛과도 같다. 선생님이 반짝거리며 “생강차가 있는데, 드릴까요?” 물으셔서 얼른 “네.” 하고 대답했다. 그리고 선생님이 전기주전자에 물을 올리는 사이 나는 교실의 온갖 사물들이 내는 잡음을 들으며 생각했다. 선생님께 욜라는 어떤 학생일까? 공개수업 때 욜라의 활약?을 어떻게 보셨을까. 내가 틈만 나면 ‘욜라, 정신 차려! 손을 들고 발표를 해 봐! 노래를 해! 제발 입을 벌리라고!’ 속으로 외치며 블랙홀 같은 눈빛을 쏘아 댔지만, 욜라는 살짝 미소 지을 뿐이었다. 이런 우주먼지 같은 녀석 같으니! 분한 마음에 조금 떠는 내 앞에 따뜻한 생강차 한 잔이 놓였다. 선생님이 경쾌한 몸짓으로 맞은편 의자에 탁 앉으시며 말씀하셨다.

“어머니, 욜라는 잘 지내고 있어요. 정말 너어무 잘하고 있어요.”

선생님은 분명 ‘욜라는’라고 하셨다. 선생님의 부연설명을 좀 더 들어 보자.

“아이들이 유치원을 졸업하고 왔다고 해도 학교는 또 다른 사회잖아요. 모든 걸 스스로 해야 하죠. 그런데 1학년 아이들은 선생님이 하는 말을 잘 못 알아들어요. 설명해 줘도 금방 잊어버리고 묻고, 또 묻곤 하는 게 일이에요. 자연스러운 거죠. 그런데 욜라는 정말 잘 들어요. 제가 하는 말을 유심히 듣고 해요. 제가 하는 말을 다 기억해요.”

“아…. 네.”

엄마 말은 안 듣지만, 선생님 말씀은 귀담아 듣는구나. 다행이다.

아이들의 땅 파서 라떼 만들기 놀이. ⓒ김혜율

“욜라는 글씨도 잘 써요. 그림도 정말 잘 그리던데요!”

“네? 그림이요? ”

집에서는 그림을 못 그리는 척 부모의 눈을 속였지만, 학교에서 그만 그 재능이 탄로 나 버린 걸까.

“이번에 꽃으로 얼굴 표현한 작품 보셨지요? 그런데 그림 속 표정이 딱 욜라 얼굴 같달까요? 너무 귀엽지 않아요?”

아, 난 또 뭐라고. 선생님이 말씀하시는 꽃얼굴이라 하면 반 아이들 중 한 명도 못 그린 아이가 없을 정도로 완성도가 뛰어났던 작품이 아니던가. 그리고 계속되는 선생님 말씀.

“욜라는 모둠 활동도 열심히 참여해요. 친구들끼리, 짝궁과도 사이 좋게 상의해서 활동을 한답니다. 뭘 하라고 알려 주면 욜라가 제일 먼저 해 놓고 기다리고 있어요. 욜라는 매사에 재빨라서....“

“네? 욜라가! 재빨라요?” 내 목소리가 커졌다. 욜라같이 느린 애는 내 평생 보질 못했는데 재빠르다니, 그럴 리가 없다. 매일 아침 양말 신는 데만 10분 이상 소요되고, 신발을 신는 데도 그만큼이며, “얘들아! 서두르지 않으면 지각이야! 그러니 빨리빨리! 좀 서두르자, 응?”라고 애절하게 간청을 하든 말든, 한 발 한 발 슬로모션으로 걷는 꼴이 가관이고, 자기는 밥도 못 먹고 집을 나서면서 기어이 누룽지(우리 집 진돗개) 밥을 준다고 야단이다. 찌그러진 주전자에 물까지 채워 준 뒤 한가롭게 차에 탑승하는 욜라 때문에 매일 아침 속이 타는데 학교에선 어째서 재빠르다는 것인가! ‘매사에 재빠른’ 욜라는 정말 내 아들인가! 선생님은 의혹에 찬 내 표정을 보시고, 당신은 결코 듣기 좋은 말만 하는 사람이 아니라고 강조하셨다. 그러고도 선생님은 나머지 상담시간을 욜라 칭찬으로 다 쓰셨다. 

예상과 다른 전개였다. 참다 못한 내가 욜라의 이중생활-집에서의 개망나니 짓-의 만분의 일 정도를 일러바쳤지만 선생님은 내 말을 못 믿겠다고 하셨다. 선생님은 어쩌다 욜라의 팬이 되셨나! 욜라는 아줌마들을 주축으로 한 확고한 팬층을 가지고 있는데, 선생님 또한 선생님이기 이전에 아줌마였던 것이다! 팬들이 말하는 ‘그의 매력’을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부끄럼쟁이 상남자’쯤 될까. 하루가 다르게 새로운 것이 쏟아지고, 자극적 캐릭터들이 판치는 시대에 욜라 같은 고전적인 캐릭터를 좋아해 주는 사람도 있는 것이다. 마음이 놓인 나는 욜라 팬, 아니 선생님께 질문을 던졌다. 질문의 저의는 ‘욜라, 이래도 좋은가? 이래도? 이래도?’였다. 그런데 그 질문에 대한 선생님의 답변들이 바로 욜라 상담에서 내가 받은 충격의 실체였다. 아래 나의 우문에 대한 선생님의 현답이 바로 그것이다.

동네 유치원에서 단풍과 세 아이들. ⓒ김혜율

나: 선생님. 공개수업 때 보니까 욜라는 발표를 하지 않더라고요. 발표를 해야 하잖아요?

선생님: 욜라는 발표는 하지 않지만, 할 말은 해요. 예를 들어 수업시간에 끝말 잇기를 할 때도 손을 들지 않고 가만 있어요. 그런데 끝말 잇기가 막힐 때 욜라가 앉은 채로 한마디 하는 단어가 재밌어요. 아이들도 좋아하고 욜라도 뿌듯해 하고요. 그렇게 자기 포지션을 찾나 봐요. 꼭 손을 들고 발표를 하지 않아도, 욜라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수업에 참여하고 있어요. 아주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어요.

나: 선생님, 공개수업 때 아이들이 다같이 노래를 부를 때, 욜라만 노래를 안 불렀어요. 선생님께서도 당황스러우셨지요? 

선생님: 아니요, 어머니. 괜찮아요. 노래 부르지 않아도 돼요. 저는 노래를 꼭 불러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노래는 안 불러도 괜찮습니다.

그밖에 등등. 나는 아이에게 객관적 평가 잣대를 들이밀었다면, 선생님은 아이가 조금만 잘해도, ’잘한다.’ 하시고, 누가 봐도 못할 때도 ‘괜찮다.’라고 하시는 분이셨다. 아이의 편이 돼 주고, 아이를 응원하는 엄마의 마음일 때만 가능한 말들이다. 아이를 잘 키우고자 하는 내게 필요한 것이 ‘선생님처럼 상냥하고, 선생님처럼 카리스마 있게’라기보다는 지금보다 더 ‘엄마처럼’ 되는 거였다니. 놀라운 것은 선생님과의 상담을 마치고 난 뒤에는 욜라가 훌륭하게 느껴져서 전과 달리 참고 견딜 만했다. ‘같은 욜라, 다른 느낌’이었달까. 음, 지금까지 지속된다고는 볼 수 없지만 아무튼 그 이후로 한동안은 화를 내지도 않았다. 그러고 보면 아이가 잘 크는 것은 ‘아이의 몫’이라기보다는 좋은 엄마 한 명이면 충분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거기에 팬이라도 확보된다면 더 바랄 나위가 없을 테고 말이다.

 
 

김혜율(아녜스)
(학교에서건 어디에서건) 애 키우는 거 제대로 배운 바 없이 얼떨결에 메리, 욜라, 로 세 아이를 낳고 제 요량껏 키우며 나날이 감동, 좌절, 희망, 이성 잃음, 도 닦음을 무한반복 중인 엄마. 워킹맘이다. 다행히 본인과 여러 모로 비슷한 남편하고 죽이 맞아 대체로 즉흥적이고 걱정 없이 살고 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김혜율 editor@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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