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교회의 노동사목소위, “사람, 수단이나 비용 아니야”

천주교 희망버스가 톨게이트 요금수납 노동자가 점거 농성을 벌이는 한국 도로공사 본사를 찾아갔다.

24일 경북 김천 한국도로공사 본사로 천주교 사제, 수도자, 평신도 등 30여 명이 찾아가 길어지는 농성에 연대와 위로의 뜻을 전했다.

이번 희망버스는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노동사목소위원회가 주관했으며, 서울대교구, 부산교구, 인천교구 노동사목위원회가 참여했다. 

요금수납원들이 본사 점거 농성을 시작한 지 이날로 77일째며 정부와 도로공사에 요금수납원 직접고용을 촉구한 지 148일째다.

미사 전 간담회에서 민주일반연맹 김봉진 부위원장이 투쟁 경과와 현재 상황을 설명했다. ⓒ김수나 기자

이날 천주교 방문단 30여 명을 포함해 민주일반연맹 소속 조합원 등 모두 100여 명이 모인 가운데 현재 상황을 공유하는 간담회를 열었으며 연대의 뜻을 전하는 미사도 봉헌했다.

미사는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노동사목소위원회 총무 정수용 신부, 서울대교구 사회사목국장 황경원 신부, 부산교구 노동사목위원장 이영훈 신부, 예수회 김정대 신부가 공동 집전했다.

강론에서 정수용 신부는 왕궁이나 왕관, 군사나 대신도 없이 마구간의 가난함과 가시관의 고통을 상징하는 예수를 왕으로 고백하는 그리스도 왕 대축일을 보낸다면서 “이 왕은 당신의 백성을 끔찍이 사랑했다. 그래서 우리에게 왕이란 군림하고 다스리는 사람이 아닌, 더 많이 사랑하고 봉사하는 사람이 진짜 왕이라는 사실을 보여 주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돈이 힘인 사회에서 이제는 돈을 많이 가진 사람이 왕이 돼 버렸다. 모두가 그를 부러워하고, 돈을 많이 벌 수만 있다면 사람은 세상의 중심에서 얼마든지 밀려날 수 있게 됐다”며 “비용을 낮추기 위해 무분별한 비정규직이 생겨났고 산업재해가 일어나도 사람을 돌보는 것이 아니라 이윤이 줄어들까 전전긍긍하는 세상”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 신부는 “우리 사회가 자본의 탐욕에서 회개하도록 기도하고, 돈이 아닌 사람을 섬기며, 지금 내 옆의 사람이 가장 소중하다는 것을 깨닫는 마음을 청한다”며 “이 투쟁의 장소가 단지 고용관계를 바꾸는 것에 그치지 않고, 사람을 수단으로 쓸 수 없고, 비용으로 계산할 수 없다는 단순하지만 매우 중요한 가치를 기억하는 곳이 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천주교 수도자들과 사제들은 지난 추석부터 이곳에서 매주 연대의 미사를 봉헌하고 있으며, 이날 희망버스에는 수도자와 사제뿐 아니라 신자들도 함께했다.

이날 미사는 (왼쪽부터) 서울대교구 황경원 신부(사회사목국장), 정수용 신부, 부산교구 이영훈 신부, 예수회 김정대 신부가 공동 집전했다. ⓒ김수나 기자
미사 뒤 모두 손을 잡고 둘러서서 연대의 마음을 전하는 노래를 함께 불렀다. ⓒ김수나 기자

“오늘 같은 날, 밖에 있었다면 아침 일찍 일어나 미사 드리러 갔을 것”

한편 미사 전 열린 간담회에서 톨게이트 요금수납원 직접고용을 위한 148일간의 농성 경과와 현재 상황을 민주일반연맹 김봉진 부위원장이 설명했다.

그는 “설립된 지 50년이 된 한국 도로공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요금수납 업무”로 “요금수납원은 거의 여성, 장애인, 새터민 등 우리 사회의 가장 약하고 낮은 곳에 있는 노동자”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애초 정규직이었던 요금수납원이 요금수납업무 외주화로 비정규직이 되면서 “상시적 고용불안, 갑질, 차별과 착취, 성희롱 등을 개인으로 인내하면서 저항 한 번 제대로 못하고 지내 왔다”고 말했다.

지난 9월 9일 본사 점거 당시에 대해 그는 “공권력은 약품, 생리대 등 필수품과 전기가 들어오는 것을 차단하는 등 수치심을 감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지만 “우리는 단 한 명도 빼지 않고 대법원 취지대로 원래 일했던 업무로 모두 직접 고용하라고 투쟁한다”고 밝혔다.

김 부위원장은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임명권자인 문재인 대통령이 나서야 하고, 비정규직 철폐를 넘어 가장 낮고 어려운 공간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자기 권리를 찾고, 목소리를 내는 투쟁의 현장”이라며, “우리의 노동이 존중되는 날까지 싸우겠다”고 말했다.

민주일반연맹 경주지회 김정희 조합원(안젤라)이 천주교의 연대에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김수나 기자

민주일반연맹 남정수 교육선전실장에 따르면, 도로공사는 현재 점거 농성자들에게 퇴거 가처분을 냈고, 손해배상도 1억 원을 청구했으며, 농성자 개개인에게 각종 고소, 고발을 제기한 상태다. 퇴거 가처분 결정이 나면 하루에 500만 원을 내야 한다.

또 현재 120여 명이 본사 점거 농성장에 머물고 있는데, 하루 두 끼 식사로 버티며, 대리석 바닥에 박스와 덮개, 매트를 깔고 자는데, 추위와 허리 통증 때문에 힘들다고 전했다.

이날 점거 농성자인 민주일반연맹 경주지회 김정희 조합원(안젤라)은 “오늘 같은 날, 밖에 있었다면 아침 일찍 일어나 신바람 나게 꾸미고 미사를 드리러 갔을 것”이라며, “늘 맨 앞에 앉아 즐겁게 감사한 마음으로 미사를 드렸는데, 여기 와서 제일 힘든 것이 미사를 못 드리면 어쩌냐였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수녀님, 신부님들이 연대하러 오시니 무척 행복하고 주말이 기다려진다. 주말 일정에 미사 소식이 없으면 못 오시는구나 싶어 애가 탄다”며 “이 안에서 힘들거나 지치고 외롭지 않게 감사히 지낼 수 있는 것은 일요일마다 신부님, 수녀님이 와 주시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미사 뒤에 여성 수도자들은 해고된 요금수납원들을 안아 주며 힘을 내라고 위로했다. ⓒ김수나 기자
이날 미사는 천주교 희망버스로 온 30여 명과 농성 중인 요금수납원 등 100여 명이 함께했다. ⓒ김수나 기자

<주요 경과>

-1998년 IMF 외환위기 : 도로공사 직접고용에서 외주 용역업체 고용으로 전환
-2009년 공공부문 선진화 정책 : 요금수납업무 위탁이 모든 영업소로 확대
-2013년 : 요금수납원, 고용지위확인 소송 제기(이후 1, 2심 모두 요금수납원 승소)
-2017년 7월 : 정부,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가이드 라인’ 시행
-2018년 9월 : 도로공사, 요금수납업무 자회사(한국도로공사서비스 설립 추진)로 전환 결정
-2019년 6월 1일 : 요금수납업무 자회사로 이관, 이에 반대하는 요금수납원 해고 시작
-2019년 7월 1일 : 자회사 전환 거부자(모두 1500명) 해고 완료. 해고자들 전날 새벽 서울 톨게이트 옥상 농성, 청와대 앞 노숙투쟁 시작, “자회사 전환 반대, 직접고용” 요구
-2019년 8월 29일 : 대법원, 요금수납 위탁은 도로공사의 불법파견, 도로공사가 요금수납원을 직접 고용하라고 최종 선고
-2019년 9월 9일 : 도로공사 이강래 사장, 대법 판결에 대한 방안으로 해고자 일부만 정규직 전환하겠다고 발표. 이에 해고자들 본사 점거
-2019년 9월 15일 : 천주교 사제, 여성 수도자들 매주 본사 농성장 방문, 연대미사 봉헌
-2019년 10월 9일 : 도로공사, 한국노총 톨게이트 노조, 해고자 일부만 정규직 전환에 합의
-2019년 10월 10일 : 이강래 사장,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민주노총과도 합의하겠다고 밝힘
-2019년 11월 5일 : 천주교, 개신교, 불교 3대 종단 직접고용 오체투지 진행
-2019년 11월 8일 : 문재인 대통령 면담을 요구하는 청와대 앞 집회 당일 민주일반연맹 간부와 노동자 12명 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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