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치스코 교종 최신 강론말씀]

(편집 : 장기풍)

교종, 타이 일본 순방 마치고 귀국

프란치스코 교종은 자신의 32번째 사도적 순방인 타이와 일본 방문을 마치고 26일 오후 4시15분 로마에 귀환했다. 교종은 도쿄에서 로마로 비행하는 동안 관례에 따라 비행경로에 있는 국가 수장들에게 메시지를 보내 각국의 평화와 번영을 위해 기도했다. 교종은 도쿄 출발 직후 나루히토 일왕에게 첫 번째 메시지를 보내 일본인들의 ‘환영과 관대함에 감사했다. 또 교종은 러시아, 핀란드,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폴란드, 체코, 오스트리아,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와 이탈리아 영공을 가로질러 그 나라들을 축복했다.

로마에 도착한 프란치스코 교종은 바티칸에 향하기 전 곧바로 로마 시내 성모 마리아 대성당에서 감사의 기도를 바쳤다. 교종은 ‘로마인의 구원’ 성모상에 꽃다발을 바친 뒤 잠시 침묵 속에서 기도한 후 바티칸으로 향했다.

 

“경쟁과 이윤 극복하고 생명을 받아들이자”

프란치스코 교종, 11월25일 도쿄돔 미사에서 강조

프란치스코 교종은 일본을 떠나기 전날 11월25일 도쿄돔에서 미사를 집전하면서 강론을 통해 우리 모두는 모든 대가를 치르면서도 세속적인 성공만을 좇아가느라고 스스로 고립되거나 함정에 빠지지 말라며 우리 일상의 선택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라고 초대했다. 

강론 내용.

방금 들었던 복음은 예수님의 첫 번째 설교에 속하는 부분입니다. 이는 우리가 ‘산상설교’로 알고 있는 것이며, 앞으로 나아가도록 초대받은 길의 아름다움을 우리에게 제시해 줍니다. 성경에서 ‘산’은 하느님께서 당신 자신을 드러내시고 알리는 장소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모세에게 “나에게 올라오라”고 말씀하셨습니다.(탈출 24,1 참조) 산의 정상은 자신의 의지나 출세주의를 통해 도달하는 것이 아니라, 인생 여정의 모든 교차로 한가운데서 스승님의 말씀을 주의 깊게 그리고 인내를 갖고 세심히 경청하면서 도달할 수 있는 곳입니다. 그 정상은 성부의 연민을 중심으로 우리를 둘러싼 모든 것을 볼 수 있는 새로운 전망을 선사하기 위해 평원으로 바뀝니다. 우리는 예수님 안에서 인간이 된다는 의미의 절정을 만납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희망과 기대를 넘어서는 충만함으로 이끄시는 방식을 보여 주십니다. 

그분 안에서 우리는 새로운 생명을 발견합니다. 그 생명 안에서 우리가 사랑받고 있는 자녀임을 아는 자유를 체험합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길을 걸어가는 중 하느님 자녀로서 누릴 자유가 억압되고 약화된다는 점을 깨닫습니다. 우리가 불안과 경쟁의 악순환에 갇혀 있을 때, 우리가 누구이며 또 얼마나 가치 있는지 정의를 내리면서 분주하게 결과물에 모든 관심과 에너지를 집중할 때, 그리고 우리가 우리의 선택을 확인하고 측정하기 위한 유일한 기준으로 소비주의를 택할 때 말입니다. 이 같은 척도는 조금씩 우리로 하여금 중요한 것에 대해 무감각하고 영향을 받지 않게 만듭니다. 무의미하고 일회적인 것들에 대해서만 헐떡거리도록 부추깁니다. 모든 것을 만들 수 있고, 정복할 수 있으며, 통제할 수 있다고 열렬히 믿음으로써 영혼은 얼마나 억압받고 구속되는지요!

이곳 일본의 경제적으로 잘 발전된 사회에서 오늘 아침 만난 젊은이는 저에게 ‘많은 사람이 사회적으로 고립되고, 자기 존재와 삶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 채 소외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서로가 서로를 지지하고 돕는 장소가 돼야 할 집과 학교, 사회공동체는 이윤과 효율을 추구하는 과도한 경쟁 때문에 갈수록 무너지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혼란과 불안을 느낍니다. 그들은 평화와 안정을 앗아가는 지나친 요구와 걱정으로 압도당합니다. 흔들리지 말고 믿음을 가지라고 초대하시는 예수님 말씀이 치유의 향기처럼 울려 퍼집니다. 세 차례나 끈기 있게 말씀하십니다. “목숨을 부지하려고, 내일을 걱정하지 마라”(마태 6,25.31.34 참조) 이 말씀은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을 무시하거나 혹은 우리의 일상적인 일과 의무에 대해 무책임하라는 초대가 아닙니다. 오히려 그와  반대로 우리의 우선순위를 더 넓은 의미의 지평을 향해 열고 같은 방향 안에서 바라보기 위한 공간을 조성하라는 초대입니다. 

“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아라. 그러면 이 모든 것도 곁들여 받게 될 것이다.”(마태 6,33) 주님께서는 음식이나 의복과 같은 생활필수품이 중요하지 않다고 말씀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삶을 희생해서라도 모든 대가를 치르고 성공을 좇아가는 데 있어 스스로 고립되거나 함정에 빠지지 말고 일상의 선택을 다시 생각해 보라고 초대하십니다. 이 세상에서 자신의 이윤이나 이익만 좇는 세속적인 태도와 개인의 행복만 고집하는 이기주의는 사실 교묘한 방식으로 우리를 불행하게 만들고 노예로 전락시킬 뿐 아니라 참으로 조화롭고 인간적인 사회의 발전을 저해합니다. 소외되고, 고립되고, 심지어 숨 막히는 ‘나’에 반대되는 것은 오직 함께 나누고 기념하며, 친교하는 ‘우리’일 뿐입니다. 주님의 이러한 초대는 다음과 같은 내용을 떠올립니다. “우리 삶이 근본적으로 선물임을 기쁘게 받아들이고 우리의 자유가 은총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오늘날 혼자 힘으로 무언가를 소유할 수 있고 이것이 자신의 독창성과 자유의 결실이라고 믿는 세상에서 이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교종권고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55항) 이 때문에 제1독서에서 성경은 생명과 아름다움으로 가득 찬 우리의 세상이 제일 먼저 우리를 앞서시는 창조주의 놀라운 선물임을 상기시켜 줍니다. “하느님께서 보시니 손수 만드신 모든 것이 참 좋았다.”(창세 1,31) 하느님께서는 좋은 것과 아름다움을 선사해 주시고, 우리는 그것들을 나누고 서로에게 내어 줄 수 있습니다. 주인이나 소유주가 아니라, 창조주 하느님께서 꿈꾸시는 것과 동일한 꿈에 참여하는 사람으로서 말입니다. 모든 것은 서로 관계를 맺고, 우리 자신의 삶과 자연과 맺은 관계를 올바로 돌보는 것은 형제애, 정의, 다른 이에 대한 충실함과 떼어 놓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러한 현실에 직면해 우리는 그리스도인 공동체로서 지혜와 용기를 가지고 모든 생명을 보호하고 무상(無償)성과 연민 그리고 관대함과 단순한 경청으로 특징되는 삶의 스타일과 모든 약함과 결함, 많은 경우 자신의 모든 모순과 의미 상실로 점철되어 다가오는 삶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수용할 수 있는 삶의 스타일을 증거하도록 초대받았습니다. 우리는 이런 형제들을 환대할 수 있는 교육을 발전시키는 공동체가 되도록 부르심 받았습니다. 인생을 받아들이는 것은 완벽하거나 순수하거나 ‘정제된’ 것만 받아들인다는 것이 아니라, 사랑할 가치가 없는 것도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합니다. 장애가 있거나 허약한 사람은 사랑받을 가치가 없습니까? 외국인, 실수를 한 사람, 아프거나 감옥에 있는 사람은 사랑받을 가치가 없습니까? 우리는 예수님께서 하신 일을 잘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한센병 환자, 시각장애인, 중풍병자, 바리사이, 죄인들을 받아들이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도 죄수를 받아들이셨고 심지어 당신을 십자가에 못박은 사람도 받아들이시고 용서하셨습니다. 생명의 복음을 선포하는 것은 공동체로서 상처받은 이들을 치료하고 화해와 용서의 여정을 언제나 선사하기 위해 준비된 ‘야전병원’이 되라고 우리에게 요청하며 재촉합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인에게 있어 모든 사람과 상황을 판단하는 유일한 척도는 당신의 모든 자녀를 위해 베푸시는 하느님 아버지의 연민이라는 척도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주님과 일치하면 선한 의지를 지닌 모든 사람뿐 아니라 다른 믿음을 가진 종교인들과도 항상 협력하고 대화하면서 모든 생명을 돌보고 보살피는 사회의 예언자적 누룩이 될 수 있습니다.

 

“신성한 지혜를 찾아 전파하시오”

교종, 도쿄 소피아 대학에서 강연

프란치스코 교종은 일본 사도적 방문 마지막 일정으로 11월26일 오전 1913년 예수회가 설립한 도쿄 소피아 대학을 방문해 교직원과 학생들을 상대로 연설했다. 교종은 연설에서 품질 높은 교육이 소수의 특권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또한 소피아 대학이 이름이 뜻하는 것처럼 ‘지혜’의 대학으로 성 이냐시오 데 로욜라 정신과 전통에 따라 인본주의와 기독교적, 국제적 정체성을 갖고 공정하고 생태적으로 책임감 있는 교육에 임하라고 당부했다. 

연설 내용.

소피아 대학의 기반이 되는 이냐시안 교육 전통은 교수와 학생들이 모두 반성과 분별력을 키우는 분위기를 조성하도록 영감을 주어야 합니다. 모든 대학생은 자신의 행동이 정직하고 인도적이며 양심적이며 책임감 있는 행동을 자각하고 복잡한 상황에 직면할 수 있어야 합니다. 보편적 가톨릭교회는 전 세계 젊은이에게 희망과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소피아 대학은 젊은이들에게 훌륭한 교육을 제공할 뿐 아니라 그들의 통찰력을 제공하고 미래에 대한 비전과 희망을 공유하는 교육의 일부가 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소피아 대학교의 기독교 및 인본주의 전통은 세계의 가난한 사람들과 버림받은 사람들과 함께 걸으며 완전히 일치하는 방법을 강조합니다. 소외된 사람들은 거리와 단절을 목표로 교육적 접근을 시도하기 위해 대학생활과 교과과정에 창의적으로 통합되어야 합니다. 품질이 높은 대학교육은 소수의 특권이 아니라 정의와 공동선을 위한 노력으로 지속적으로 발전을 추구해야 합니다.

연구와 명상은 모든 문화의 일부이며 일본 문화는 이 점에서 고대로부터 내려온 풍부한 유산을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일본은 아시아의 사고와 종교를 전체적으로 통합할 수 있었고, 잘 정의된 정체성을 가진 문화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 왔습니다. 대학은 미래의 지도자를 훈련시키는 중요한 장소이기 때문에 광범위한 지식과 문화가 교육기관 일상의 모든 측면에서 영감을 얻어 더욱 포괄적이고 기회를 창출할 수 있어야 합니다. 따라서 소피아 대학은 ‘지혜’를 의미하는 그리스어 ‘소피아’를 연주하면서 자원을 건설적이고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참 지혜가 항상 필요합니다. 오늘날 일본은 경쟁적이고 기술 지향적 사회입니다. 이러한 환경에서 소피아 대학교는 지적 형성의 중심일 뿐 아니라 더 나은 사회와 더 희망적인 미래가 형성될 수 있는 장소가 되어야 합니다. 

소피아 대학교는 항상 인본주의적, 기독교적, 국제적 정체성으로 표현되어 왔습니다. 또한 공정하고 생태적으로 책임감 있는 교육의 현장입니다. 소피아 대학의 기반이 되는 이냐시안의 전통으로 교수와 학생 모두 반성과 분별력을 키우는 분위기를 조성하도록 영감을 주어야 합니다. 모든 대학생은 자신의 행동이 정직하고 인도적이며 양심적이고 책임감 있는 행동임을 자각하면서 복잡한 상황에 직면할 수 있어야 합니다. 보편적 가톨릭교회는 전 세계 젊은이들에게 희망과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소피아 대학교는 젊은이에게 훌륭한 교육을 제공할 뿐 아니라, 그들의 통찰력을 제공하고 미래에 대한 비전과 희망을 공유하는 교육의 일부가 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소피아 대학의 기독교 및 인본주의 전통은 세계의 가난한 사람들과 버림받은 사람들과 함께 걸으며 완전히 일치하게 하는 것입니다. 소외된 사람들은 거리와 단절을 목표로 교육적 접근을 시도하기 위해 대학생활과 교과과정에 창의적으로 통합되어야 합니다. 품질이 높은 대학교육은 소수의 특권이 아닙니다. 정의와 공동선을 위한 노력으로 지속적으로 발전을 추구해야 합니다. 주님과 교회는 하느님이 주시는 지혜를 찾고 전파하는 사명에 참여하기 위해 여러분에 의지하고 있으며, 또한 여러분은 오늘날 사회에 기쁨과 희망을 주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장기풍(스테파노)
전 <평화신문> 미주지사 주간
2006년 은퇴. 현재 뉴욕에 사는 재미동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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