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24일 프란치스코 교황은 일본 히로시마에서 반핵 메시지를 전했다. (이미지 출처 = 연합뉴스TV가 유튜브에 올린 동영상 갈무리)

“내 형제들과 벗들을 위하여 나는 이르네. “너에게 평화가 있기를!”(시편 122,8)

자비의 하느님, 역사의 주님, 우리는 죽음과 삶, 상실과 부활, 고통과 연민이 교차한 이곳에서 눈을 들어 당신을 바라봅니다.

바로 이곳에서 섬광의 폭발과 화염에 휩싸여 그토록 많은 사람, 그토록 많은 꿈과 희망이 죽음의 그림자와 침묵을 남긴 채 사라져 버렸습니다. 불과 한순간에 모든 것이 파괴와 죽음의 블랙홀에 삼켜져 버렸습니다. 그 침묵의 심연으로부터, 우리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사람들의 외침을 오늘날까지도 듣고 있습니다. 그들은 서로 다른 장소에서 왔고, 다른 이름을 가지고 있었고, 어떤 이들은 다른 언어를 사용했습니다. 그러나 이 나라의 역사에 뿐만 아니라 인류의 면전에 영원한 흔적을 남긴 무시무시한 시간 속에서, 그 모든 것이 같은 운명에 휘말려 버렸습니다.

여기서 나는 모든 희생자에게 경의를 표하며, 그 첫 순간에 살아남았고, 이후 긴 세월 동안 신체적으로는 엄청난 고통을, 정신적으로는 생명력을 고갈시키는 죽음의 씨앗을 지녀야 했던 사람들의 강인함과 존엄 앞에 머리 숙여 절합니다.

나는 평화의 순례자로서 이곳에 와서 고요히 기도를 바치고, 엄청난 폭력의 무고한 희생자들을 회상하고, 평화를 갈망하고 평화를 위해 일하고 평화를 위해 희생하는 우리 시대의 남녀들, 특히 젊은이들의 기도와 열망을 가슴속에 새겨야 할 의무를 느낍니다. 늘 증오와 갈등의 가장 무력한 희생자인 가난한 사람들의 울부짖음과 더불어, 나는 이 기억과 미래에 대한 희망의 장소에 왔습니다.

인간의 공존을 위협하는 용납할 수 없는 불평등과 부당함, 우리의 공동 가정을 보살피지 못하는 심각한 무능, 그리고 마치 그것이 평화로운 미래를 보장하기라도 하듯이 계속되는 무력 충돌의 발발 등, 커져 가는 우리 시대의 긴장을 걱정과 고뇌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는 목소리 없는 사람들의 목소리(the voice of the voiceless)가 되고자 하는 것이 나의 소박한 소망입니다.

깊은 확신을 가지고, 나는 전쟁 목적을 위해 원자력을 사용하는 일이 그 어느 때보다도, 오늘날 인류의 존엄성뿐만 아니라 우리 공동 가정의 미래 삶을 거스르는 범죄임을 다시 한번 천명합니다. 원자력을 전쟁 목적으로 사용하는 것은 부도덕한 일이며, 우리는 그로써 심판받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평화를 이야기하면서 평화를 가져오는 행동을 하지 않는다면, 미래 세대는 우리의 실패를 비난할 것입니다. 가공할 만한 새로운 전쟁무기를 만들면서 어떻게 평화를 말할 수 있겠습니까? 차별과 증오로 가득 찬 말로 불법 행위를 정당화하면서 어떻게 평화에 대해 말할 수 있겠습니까?

나는 평화가 진실에 기반을 두고, 정의 위에 수립되고, 자비행위에 의해 활성화되고 완성되고, 그리하여 자유에 도달하지 못한다면, 그런 평화는 빈껍데기 말에 지나지 않는다고 확신합니다.(cf. 요한 23세 교황 회칙, '지상의 평화' 37)

진실과 정의 위에 평화를 구축하려면 “사람들은 종종 지식, 덕, 지성과 재산 면에서 서로 많이 다르다”('지상의 평화' 87)는 점, 그리고 우리 자신의 특정한 이익을 다른 사람에게 강요하려는 시도를 정당화할 수 없다는 점을 인정해야 합니다. 사실 그런 차이는 더 큰 책임감과 존중을 요구합니다. 정치 공동체는 당연하게도 문화나 경제 발전이라는 차원에서 서로 다를 수 있지만, 모든 사람은 ‘공동의 목적을 위해’,('지상의 평화' 88) 즉 모든 이의 선익을 위해 활동하라는 소명을 받았습니다.

실로 우리가 진정으로 더 정의롭고 안전한 사회를 건설하고 싶다면 우리 손에서 무기를 떼버려야 합니다. “공격용 무기를 손에 들고는 누구도 사랑할 수 없습니다.”(바오로 6세 교황, UN. 연설 1965년 10월 4일, 10월 10일) 무기의 논리에 굴복하고 대화로부터 멀어질 때, 우리는 무기가 악몽을 불러일으킨다는 사실, 희생자와 파멸이라는 엄청난 손해를 초래한다는 사실을 잊고 맙니다. “무기는 엄청난 비용을 요구하고, 연대와 유용한 노동이라는 과업을 방해하며, 국가의 전망을 어둡게 합니다.”(바오로 6세 교황, UN. 연설) 핵전쟁에 대한 위협을 끊임없이 분쟁 해결의 합법적 수단으로 끌어들이면서 어떻게 평화를 제안할 수 있겠습니까? 이곳에서 견딘 고통의 심연이 결코 넘지 말아야 할 경계가 어디인지를 우리에게 일깨워 주기를. 진정한 평화는 오직 무장하지 않은 평화입니다. “평화는 그저 전쟁의 부재가 아닙니다.... 끊임없이 추구해 나가야”('기쁨과 희망' 78)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역사의 교훈에서 배운 것처럼, 평화는 정의, 발전, 연대, 공동 가정을 위한 보살핌과 공동선의 증진의 결실입니다.

기억하기, 함께 여행하기, 보호하기, 이것이 여기 히로시마에서 훨씬 더 강력하고 보편적인 의미를 지닌, 진정한 평화의 길을 열 수 있는 세 가지 도덕적 명령입니다. 이런 이유로 현재와 미래 세대가 이곳에서 일어난 일에 대한 기억을 잃게 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보다 공정하고 우애 깊은 미래의 건설을 보장하고 장려하는 기억, 특히 오늘날 모든 나라의 운명을 결정짓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모든 사람의 양심을 일깨울 수 있는 확장된 기억, 모든 세대에게 말하도록 도와주는 살아 있는 기억입니다. 다시는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이해와 용서의 시선으로 함께 여행하고, 희망의 수평선을 열고, 오늘날 하늘을 어둡게 하는 두터운 구름을 헤치고 한 줄기 빛을 가져오라는 부르심을 받습니다. 우리 모두 희망을 향해 우리의 마음을 열고 화해와 평화의 도구가 됩시다. 우리가 공동의 운명으로 연결되어 있고, 서로 보호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면 이런 일은 언제나 가능합니다. 우리의 세상은 세계화에 의해 연결되어 있을 뿐 아니라, 특정 집단이나 부문에만 배타적 이득을 주기보다, 공동의 미래를 보장하는 일에 공동 책임을 지고 투쟁하는 사람들의 위대함을 성취하기 위해 그 어느 때보다 더 많은 것을 공유하고 요청하는 세상입니다.

원자폭탄과 핵 실험의 모든 희생자들, 그리고 모든 분쟁의 희생자들을 대신하여, 하느님과 선의를 가진 모든 사람에게 호소합니다. 다시는 전쟁도, 무력 충돌도 일어나지 않도록, 두번 다시 그토록 엄청난 고통을 겪지 않게 합시다! 우리 시대와 세계에 평화가 오기를. 오, 주님, 당신은 우리에게 “자애와 진실이 서로 만나고 정의와 평화가 입 맞추리라. 진실이 땅에서 돋아나고 정의가 하늘에서 굽어보리라”(시편 85,11-12) 약속하셨습니다.

오소서, 주님, 비록 늦었지만 파괴가 만연해 있는 곳에서도 우리가 새로운 미래를 기록하고 성취할 수 있도록 희망을 펼쳐 주소서. 오소서, 주님, 평화의 왕자님! 우리가 당신의 평화가 무엇인지 성찰하고 평화의 도구가 될 수 있게 해 주소서!(2019.11.24)

(번역 : 팍스 크리스티 코리아, 박은미 헬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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