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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아 보시겠습니까, 그리스도의 얼굴

기사승인 2019.11.28  16:0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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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도자가 바라본 세상과 교회]

'그리스도의 얼굴, 레오나르도 다 빈치’, 1495년경. (이미지 출처 = 밀라노 브레라 미술관 홈페이지)

주님의 얼굴을 알아 볼 수 있을까? 어떤 얼굴을 하고 계실까? 성경을 읽거나 기도를 하다가 자주 들었던 질문입니다. 그렇게 예수님 생전에 곁에서 따르고 사랑하던 사도들 막달라 마리아도, 다시 고기 잡으러 간 제자들도 부활하신 예수님을 못 알아 봤는데, 난 무슨 수로 알아 볼 수 있을까? 걱정도 됐습니다.

악을 따라 살다 악만 남은 이가 물었습니다. “당신이 왕이라며! 당신 자신도 이 고통에서 벗어나게 하지 못하는구만! 이 고통을 왜 못 없애냐고!” 절망의 도가니에 모여든 이들은 말마디만 조금씩 다를 뿐 이렇게 외치며 어둠의 구덩이를 더 깊이 팠습니다. 그런데 그중 가장 절망할 만한 또 다른 이가 이 ‘왕’을 알아 보았습니다. “예수님, 선생님의 나라에 들어가실 때 저를 기억해 주십시오.”(루카 23,42) 이에 대답하시는 예수님. 그리고 그 어둠 속 갑자기 분명해지는 진정한 왕과 그의 나라. 대체 그는 어떻게 주님을 알아 봤을까요. 절망의 구덩이 속 주님 나라의 선포는 갑자기 어둠 속 제 눈을 뜨게 합니다.

조석으로 하느님을 섬기던 청년 다니엘이 있었습니다. 땅의 나라 임금만을 섬기지 않는다는 이유로 그는 사자 굴 속에 던져져 밀봉을 당합니다.(다니 6,12-28) 하느님을 알지만 아직 ‘다니엘이 믿는 하느님’일 뿐이던 다리우스 왕은 다니엘을 죽이려는 대신들의 간계에 빠진 것을 알면서도 땅 나라 자기 선대 왕들이 만들어 놓은 법에 걸려 다니엘의 처형을 명합니다. 그러고는 단식하며 뜬 눈으로 밤을 새고 그 닫힌 굴 앞에 달려가 슬퍼하며 묻습니다. “살아 계신 하느님의 종 다니엘아, 네가 성실히 섬기는 너의 하느님께서 너를 사자들에게서 구해 내실 수 있었느냐?”(다니 6,21)

다니엘은 그 하느님께서 자신을 보호하셨음을 힘찬 목소리로 답했고, 그를 사자 굴에서 당장 꺼낸 다리우스 왕은 더 이상 땅의 법 때문에 지체하지 않고 하느님이 주님이심을 외칩니다. “나는 칙령을 내린다. 내 나라의 통치가 미치는 모든 곳에서는 누구나 다니엘의 하느님 앞에서 떨며 두려워해야 한다. 그분은 살아 계신 하느님, 영원히 존재하시는 분이다. 그분의 나라는 불멸의 나라, 그분의 통치는 끝까지 이어진다. 그분은 구해 내시고 구원하시는 분, 하늘과 땅에서 표징과 기적을 일으키시는 분 다니엘을 사자들의 손에서 구해 내셨다.”(다니 6,27-28) 땅의 나라 왕이 모든 땅에 하느님의 나라와 통치를 선포합니다. 다니엘의 주님이 이제 자신과 모든 이의 주님이 됩니다. 하느님의 나라 백성이 됩니다.

아, 그렇구나. 나의 눈이 무엇을 찾았고 무엇을 보려 했는가가 주님의 얼굴을 알아 보게 할 것임을 이들이 알려 줍니다. 눈에 보이는 고통, 눈에 보이는 나라, 그 모든 것이 사실임에도 나의 눈이 조석으로 무엇을 보고자 했는가, 하느님만을 찾고 거기에 나의 희망이 있었는가가 ‘나의 눈에 무엇이 보이는가’를 결정한다 하겠습니다. 보고자 하는 바가 내 안에 있어야 그것이 보입니다. 주님을 내 안에 모시고 있어야 주님이 보입니다.

결국, 제 안에 주님을 섬기고 있는가가 제 영혼의 눈을 뜨게 하고 그 눈에는 하느님나라가 보일 것입니다. 그리고 그 나라의 법칙 안에 살게 될 것입니다. 대림을 시작하며 기다리는 우리 주님은 이런 분이라 합니다. "보아라, 내가 택한 나의 종 내 사랑하는 사람, 내 마음에 드는 사람, 그에게 내 성령을 부어 주리니 그는 이방인들에게 정의를 선포하리라. 그는 다투지도 않고 큰소리도 내지 않으리니 거리에서 그의 소리를 들을 자 없으리라. 그는 상한 갈대도 꺾지 않고 꺼져 가는 심지도 끄지 않으리라. 드디어 그는 정의를 승리로 이끌어 가리니 이방인들이 그 이름에 희망을 걸리라."(마태 12,17-21) 예수님이 자신에 대한 예언으로 직접 골라 선포하신 이사야의 예언입니다. 눈에 보이는 것들만 보면서는, 눈에 보이는 것들에 희망하고 절망해서는 주님을 알아 볼 수가 없겠습니다. 주님의 정의, 주님의 법이 보이지 않겠습니다.

지금 나의 눈은 무엇을 보고 나의 귀는 무엇을 듣고 있는가, 보이느니 어둠 속, 사자 이빨, 절망과 저주의 외침 속에서 내가 보고 듣고자 하는 그 자리에 나의 희망이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구세주가 지금 나를 구원하고 계시는 것을 보고 다른 이들이 그분이 세상의 왕이심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 눈을 뜨자고, 이 대림의 시기가 마련되어 있나 봅니다.

하영유(소화데레사)
성심수녀회 수녀
서강대학교, 서울교육대학교 출강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하영유 editor@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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