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생자 가족, 유해 수습, 진상규명 촉구

제32주기 KAL858기 희생자 추모식에서 희생자 가족회와 연대 단체가 “조속한 유해 수습과 재조사를 통한 진상규명”을 촉구했다.

29일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희생자 가족, 천주교 등 연대 단체 관계자 80여 명이 모인 가운데 열린 추모식에서 희생자 가족회 김호순 회장은 “가족의 힘만으로는 진상규명이 어려우니 힘을 모아 달라”면서 “당시 안기부(현 국정원) 발표는 모두 거짓으로 드러났다. 지금이라도 정부는 가족들에게 진실을 답해야 한다”며 재조사를 촉구했다.

추모식을 시작하며 가족회 동반사제인 김정대 신부(예수회)는 “가족의 삶이 1987년 11월 29일의 고통에 멈춰 있다. 더 이상 이들이 고통을 겪지 않기 바란다”며 “32년을 고통스럽게 죽어간 가족의 몸으로 산다는 것에서 국가의 무관심을 넘어 사악함을 본다”고 말했다.

이어 김 신부는 “가족들의 가슴 깊은 바람은 희생자의 유해를 찾는 것”이지만 “희생자 유해를 찾는 것은 단지 가족들만의 노력으로 되지 않는다. 반드시 정부가 나서 유해를 찾고 진상도 밝혀야 가족들은 희생자를 편히 보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추모식 참가자들이 희생자들의 사진 앞에 헌화하고 있다. ⓒ김수나 기자

추모식에는 416 세월호참사 가족협의회 등 연대 단체도 참석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채희준 변호사는 “이 사건에 대해 김현희 씨가 거짓말했다는 것은 확실”하다며 “김현희 씨는 모르는 것을 아는 체했고, 있지 않은 사실을 있는 것처럼 이야기했다. 만약 그가 자신이 아는 사실 만큼, 행동한 만큼만 이야기했다면 오늘 여기 앉아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채 변호사는 KAL858사건은 지금도 계속 진행되고 있다며, 최근 이와 관련해 작은 진전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당시 김현희가 붙잡히자마자 안기부가 만든 ‘무지개공작 문건’이 대법원까지 간 끝에 안기부 직원과 직책을 뺀 모든 내용을 공개하라는 판결이 났다.

무지개공작 문건은 KAL858사건을 1988년 서울올림픽을 방해하기 위한 북한의 테러로 단정하고 얼마 남지 않은 대통령 선거에서 여당후보에게 유리하게 이용한다는 내용이다. 또 지난 3월 외교부가 공개한 30년 전 문서들에서 KAL858사건이 담긴 내용을 서현우 작가가 분석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서현우 작가는 2003년 KAL858사건 의혹을 다룬 소설 “배후”를 펴냈다.

416 세월호참사 가족협의회 유경근 씨(전 집행위원장)는 “KAL858사건의 진실을 밝히고 범인을 찾아내면 세월호참사의 진실도 드러나고 범인도 찾을 수 있다. 마찬가지로 세월호참사의 진실을 밝히고 범인을 찾아 벌을 주면 KAL858사건 진실도 밝혀지고 범인도 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피해자 가운데 단 한 명이라도 진실 찾기를 포기하지 않으면 반드시 그 진실이 밝혀질 것이라 확신한다”며 “세월호 참사도 과연 진실을 밝힐 수 있나라고 많은 이가 등을 돌릴 때 우리 아이들이 하나씩 하나씩 그 진실을 보여 주며 여기까지 왔다. 우리 아이들과 30년 전 겨울에 가신 그 모든 이가 우리를 돕고 이끌어 주실 것을 믿고 포기하지 말자”고 당부했다.

이날 2014년 ‘땅콩회항 사건’의 피해자로 민주노조를 만들고 대한항공 조양호 회장의 사내이사 불신임안을 통과시킨 대한항공 전 사무장 박창진 씨(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대한항공지부장)도 “아픔을 아는 사람으로서 연대하고 함께해 나가겠다”고 위로했다.

(왼쪽부터) KAL858기 박명규 기장(당시 53살)의 딸 박은경 씨, 부인 차옥정 가족회 전 회장. ⓒ김수나 기자

“많이 보고 싶습니다.... 작은 유품이라도 찾고 싶습니다”
“진실이 이길 것이라고 믿습니다”

이날 추모식에 참석한 희생자 가족 가운데 10여 명은 당시 상황과 각자의 사연을 말하며 오열했다.

작은 유품 하나조차 찾지 못한 이들의 고통은 32년 전 그대로였다. 어느 남편은 결혼기념일인 11월 29일에 맞춰 들어오려고 애써 비행기에 올랐다 희생됐고, 한 가정의 3살, 6개월이었던 아이들은 평생 아버지를 모르고 자라 벌써 30대가 됐다.

외국 건설 현장에서 일하느라 한국에 자주 들어오지 못했지만 많은 추억을 남긴 아버지의 작은 유품이라도 찾고 싶은 딸, 훗날 남편이 아부다비의 마지막 탑승객으로 맨 뒷좌석에 홀로 앉아 있다 사고를 당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한 부인은 끝내 오열했다.

가족회 임옥순 부회장은 정부를 향한 호소문을 통해 “사고해역을 조속히 수색해 유해를 수습할 것”과 “가족 동의 없는 민간 수색단과 국민모금 운동을 단호히 거부한다”고 밝혔다.

임 부회장은 “비행기가 실종되면 우선 실종 지점을 정확히 수색해 동체와 잔해를 수거하고 유해를 수습한 뒤 사고 원인을 밝혀야 하지만, 그들은 사고 3일 만에 범인을 알아내고 북한의 테러라고 단정한 뒤 온갖 거짓 정보를 언론에 쏟아내면서 처음부터 비행기를 아예 찾으려고 하지 않았음이 이미 세상에 다 밝혀졌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역대 정권에서는 진실을 밝히기 위한 가족들의 투쟁을 감히 기대할 수 없었고, “오히려 피해자인 가족들은 죄인처럼 숨고 진상규명에 대한 멍에를 짊어지고 살아야 했다”면서 “비로소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에서 활발히 활동하며 기대했었으나 끈질긴 수구세력들에 의해 좌절되어 실망으로 끝났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가족들은 죽을 때까지 KAL858기 사건의 진상규명을 위한 투쟁을 포기할 수는 없다. 이제 다시 촛불혁명으로 문재인 정부가 탄생했다. 우리는 또 기대를 걸어 본다. 아니 이제는 믿으려 한다. 왜냐하면 문재인 정부는 정의와 공정과 평등을 국정의 기반으로 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추모식을 시작하며 참가자들은 KAL858기 희생자를 위해 묵념했다. ⓒ김수나 기자

이날 천주교에서는 기쁨과희망사목연구원, 남자수도회 사도생활단 장상협의회 정의평화환경위원회, 여자수도회 장상연합회 생명평화분과, 예수살이공동체, 천주교인권위원회, 천주교정의구현전국연합 등이 참여했다.

한편 KAL858기 사건은 대한항공 KAL858 여객기가 1987년 11월 29일 오전 이라크 바그다드 공항을 출발해 아랍에미리트의 수도 아부다비를 거쳐 김포국제공항으로 오다 미얀마 남쪽 안다만 해역 상공에서 폭파된 사건이다. 

당시 비행기에는 모두 115명이 타고 있었고, 승무원 11명, 승객 104명으로, 지금까지 정확한 사고 원인이 밝혀지지 않았다. 피해자 가족과 인권단체 등의 꾸준한 재조사 요구를 통해 지난 2007년 재조사가 이뤄졌지만, 실종자, 비행기 동체, 블랙박스 수색 등 실질적 재조사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

사고 당시 정부는 사고 발생 단 10일 만에 수색작업을 중단하고 현지 조사단을 철수시켰으며, 안기부(현 국정원)가 무지개 공작 문건을 만들어 1988년 서울올림픽 방해, 한국정부 불신 조장을 목적으로 한 북한의 테러라고 발표하고 김현희 씨를 북한 공작원이자 폭파범으로 지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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