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 오디세이아 2 - 박정은]

대림 2주를 맞으면서, 기쁨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너무나 아프고 고단한 세상 속에서, 여기저기에서 축 처진 어깨, 그리고 슬픈 눈빛을 만나는 이 와중에, 내가 느끼는 이 기쁨은 진정성을 가지고 있는 건지를 묻게 된다. 혹시 나의 설레는 마음과 공연히 부푸는 이 마음은 대림에 가지게 된 나의 감상적이고 유약한 신앙적 습관이 아닐까 하고 의문을 품게 된다. 거리를 기웃거리면, 여기저기 예쁜 성탄 장식이 보이고, 내가 사는 동네 성당에는 커다란 트리가 놓여 있고, 가난한 이웃에게 주고 싶은 선물들을 카드에 적어 걸 수 있게 해 주었다. 나는 20불 어치의 바게트 빵과 매일 기도하기를 적어 넣었다. 세상의 아픔은 너무 커서 마음을 초라하게 하지만, 그래도 작은 착한 일을 하고 나니 조금 마음이 편해진다.

The Virgin Point 를 상징하는 자연의 모습. 어느 곳에나 있지만, 어디 에도 없는, 내면의 하느님을 품은 공간이다. 가장 세속적이고 평범한 곳에서 일어나는 가장 성스러운 그런 내면의 공간. ⓒ박정은

이번 주일은 또 원죄 없이 잉태되신 성모님의 축일이다. 성모님의 죄 없으심에 대해 여러 가지 신학적 논란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고, 1854년 교황 비오 9세에 의해 믿을 교리로 선포되었다. 사람들은 이 축일을 별로 이야기하지 않고 싶어 하는 것 같지만, 우리 수도회는 가장 중요한 축일로 지내며 서원을 갱신한다.

하느님의 어머니이신 마리아가 죄에 물들 수 없다는 것이 기본 교의인데, 나는 개인적으로 14세기의 독일 신비가 마이스터 에크하르트의 설명을 더 선호한다. 그는 성모님의 원죄성보다는 예수를 잉태한 여성성을 강조하면서, “우리 모두는 성모님처럼 하느님의 어머니가 되어야 한다. 신성의 육화가 끝없이 일어난다 하더라도, 그 성탄이 내 안에서 육화되지 않는 다면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창조주가 그의 아드님을 계속 낳으신다 하더라도, 내가 사는 시대와 문화 속에서 성자를 낳지 못한다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라고 질문한다. 성모님의 모성과 신성을 그저 바라보고 대상화하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서 성탄이 일어나게 하라는 초대로 난 이 축일을 이해하고 싶다.

성모님이 순결함에 대해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겠지만, 그 순결함이 단순히 육체적 처녀성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며, 아니어야 한다. 에크하르트가 설명하듯이, 그 순결함은 신성이 깃들일 수 있는 내적 공간을 의미한다. 토머스 머튼은 이런 기도의 내면적 공간을 가리켜 “The Virgin Point”라고 불렀는데, 이는 텅 빈, 그래서 환상도, 욕심도 없는, 하여 하늘이 담기는 그런 내면을 의미한다. 사실 토머스 머튼은 이 용어를 설명하면서 일상생활 속에 담기는 비밀스런 내적 공간을 강조했다. 조용히 내리는 비가 나뭇가지에 맺혀 물방울을 만드는 순간, 그 물방울을 조우하는 순간, 온 천지는 침묵한다. 그 순간 사랑하는 사람들, 또 아픈 사람들을 기억하면서, 이 아름다움이 누군가를 위로하길 기도할 때, 그 순간은 the Virgin Point가 된다.

'무염시태', 바르톨로메 에스테반 무리요. (이미지 출처 = ko.wikipedia.org)

성모님의 원죄 없으신 잉태를 기념하는 오늘, 교회인 우리 각자는 얼마만큼 하느님을 잉태할 태처럼, 비어 있는지 바라보아야 할 것 같다. 그런데 비워 낸다는 것은 무얼 의미할까? 사실토머스 머튼이 내면의 고요함과 침묵의 상태를 지적한 이 Virgin Point는 불어로는 Point Vierge 인데, 어디에나 있고, 또 어디에도 없는 문이라는 상징적 비유라고 할 수 있다. 하늘이 사람이 되실 우리 내면의 공간은 사실 어디에나 있다. 그러나 어떤 종류의 마음 상태, 여기서 성모님은 좋은 예가 될 터인데, 열려 있고, 또 사색하는 그런 마음 상태에서는 어디에나 있지만, 어떤 상태가 아니면 세상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하늘나라의 신비가 바로 그런걸 게다. 그래서 종말에 대한 복음서에서는 같은 곳에, 같은 일을 하고 있더라고 한 사람은 하늘나라에 들어가고 다른 한 사람은 그렇지 못한다고 경고한다.

나자렛의 처녀가 하느님의 어머니가 되기까지, 그분은 아직 아무도 가지 않은 알 수 없는 길을 걸어가셨는데, 오늘 온 교회는 그 여정의 시작을 기념하고 있다. 그래서 오늘은 아침 일찍부터 일어나 부지런을 좀 떨며, 집을 치우고 빨래를 하고, 내게 소중한 사람들에게 줄 선물들을 골랐다. 생일을 맞은 캐롤 수녀님을 위해서는 너무 예쁘고 싸서 사 두었던 에코백을 챙기고, 늘 기도하는 친구인 진 수녀님을 위해서는 언젠가 선물로 받았던 페퍼민트 향이 나는 비누를 포장했다. 암을 치료하러 시애틀에서 내려온 오랜 친구 요셉을 위해서는 특별히 조그만 인형을 하나 샀다. 그리고는 서둘러 은퇴한 예수회원들이 사는 곳으로 가서 요셉과 식사를 하며 그를 닮은 아주 뚱뚱한 (요셉 신부는 이젠 아파서 더 이상 뚱뚱하지 않다) 곰을 건네주고, 서원 갱신 미사를 드리러 갔다.

미사는 조금 늦어졌고, 이젠 더 많이 늙은 우리 수녀님들의 얼굴을 보니 반가우면서도 마음이 짠하다. 휠체어에 포도주와 빵을 싣고 제대에 봉헌하러 나가는 수녀님들의 굽은 허리가 주름진 얼굴이 참 자랑스럽다. 일어서는 대신 우리는 모두 앉아서 서원을 갱신했다. 예수님을 따르기로 온 마음으로 따르기로 하고 길을 나섰던 그 젊은 날의 어느 순간을, 침묵 속에 각자 회상하던 우리는 새로운 마음으로 모두 함께 서원을 갱신했다. 정결과 청빈과 순명을 통해 사랑과 공감과 용서를 자유롭게 주고받는 통교를 넓혀 가기로 서로 약속했다.  

The Virgin Point 를 상징하는 거리의 낙서. ⓒ박정은

성모님의 맘을 닮아 가기로 약속하는 이 미사에서, 문득 내가 작은 사람으로 태어난 것에 대해 새삼 감사로운 맘이 든다. 하늘나라는 큰 것이 아니라 작은 행복을 매 순간 낳아 가는 것이기에, 우리는 매 순간 하늘나라를 갈망하며 낳아가는 것이기에, 성모님의 마니피캇이 오늘 내 마음에 더 깊이 와닿는다.

“내 영혼이 주를 찬송하며,

내 하느님 생각에 맘이 울렁거립니다.”

성모님의 맘을 묵상하는 대림 2주간. 그래서 기도한다. 그저 순간을 내 하느님 생각에 기뻐하는 맘으로 살게 하소서. 이 세상의 어둠과 아픔 속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친절로 내 안에 하늘나라를 발견하게 하소서. 그리고 구원의 역사를 일으키시는 하느님, 내 안에, 그리고 사람들 안에 매일매일 탄생하소서.

박정은 수녀
미국 홀리네임즈 대학에서 가르치며, 지구화되는 세상에서 만나는 주제들, 가난, 이주, 난민, 여성, 그리고 영성에 대해 관심한다. 우리말과 영어로 글을 쓰고, 최근에 “슬픔을 위한 시간: 인생의 상실들을 맞이하고 보내주는 일에 대하여”라는 책을 썼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저작권자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