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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배송의 유혹에 대처하는 방법

기사승인 2019.12.10  17: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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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수, 가장 연대적인 사람 - 맹주형]

옷장을 열어 겨울 코트를 꺼내 입었다. 20년 넘게 입은 코트의 왼쪽 어깨 부위는 색이 바래고 헤졌다. 결혼식 때 입었던 옷이니 오래도 입었다. 운동화와 겨울 자켓은 재활용 매장인 '아름다운 가게'에서 아내가 사다 주었다. 그러고 보니 새 옷을 산 게 언제인가 싶다. 올여름 생일이라고 후배가 사 준 검정 티셔츠 빼고는 다 지난해에도 그 전해에도 입던 옷들이다.

얼마 전 지인의 SNS에 새벽 택배 배송 사진과 글이 올라왔다. “새벽 12시 40분에 택배라니 어떤 세상에 살고 있는 걸까요?” 나도 매일 아침 옆집 문 앞에 수북이 쌓인 박스를 보았다. 새벽 배송 택배 박스들. TV에서 그 회사 광고를 보았다. “**는 몰랐습니다. 장 보러 가던 사람들이 어느새 **만 바라보게 될 줄은요. 모두가 사랑하는 장보기” 모두가 사랑하는 장보기를 최초로 새벽으로 바꾸었다는 자부심(?)이 배우 얼굴에서 철철 넘쳐난다.

본래 인간 노동으로 만들어진 모든 물건은 만든 이의 의도에 맞게끔 그 ‘사용 가치’를 가졌다. 그런데 소비사회 이후 이 노동생산물이 교환과정에 ‘상품’으로 바뀌며 인간 노동과 사용가치는 사라졌다. 노동이 숨겨진 상품이 되었다. 화폐도 마찬가지다. 화폐가치는 모든 상품을 구매할 수 있는 힘이 되었고 자본은 스스로 잉여가치를 창출한다. 그래서 돈만 있으면 다 할 수 있다. 관계가 돈이 된 오늘날 소비사회의 물신성이다. 물신은 인간노동 가치를 은폐시켰고 인간노동을 착취 가능토록 만들었다.

“인간은 자신의 노동을 통해 자신을 실현시키지 못하고, 노동과정 안에서, 노동의 결과물에게서 소외당하게 된다. 인간은 이제 상품-화폐-자본을 통해서 그리고 그것들 안에서 자기 자신을 실현하고자 하며, 그러한 물신들에 자신의 운명을 의지하게 된다.”(2019년 제9회 사회교리 주간 기념세미나 자료집, ‘오늘날 자본주의의 물신 숭배적 성격’, 이종화 신부 글)

2018년 12월 13일 광화문 세월호광장에 차려진 고 김용균 비정규직 노동자 빈소. ⓒ맹주형

물신에게 의지하는 세상은 결국 무신론의 세상이다. TV 광고에는 인간노동과 사용가치가 보이지 않는다. “그래 이걸 사. 그러면 너는 다른 사람이 될 거야.” 다만 차별과 다름, 위세만을 보여 준다. 내가 사용가치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자본에 선택당하고 이를 숭배한다.

지난해 이맘때쯤 청년 비정규직 노동자 김용균 씨가 컨베이어 벨트에 말려 들어가 사망했다. 그 사고 뒤에도 하루에 7명, 한 해에 2000여 명이 일하다 죽었고 비정규직 노동자 유품에는 언제나 컵라면이 있었다. 인간과 노동, 재화의 보편적 사용권리보다 상품과 자본과 사유재산 우위의 자본주의 물신숭배 사회에서 어찌 보면 놀라운 일도, 새로운 일도 아니다.

그리고 난 내 부끄러움의 이유를 찾았다. 내 코트는 신상도 아니고 심지어 낡았기 때문이다. 재활용 매장에서 아내가 사 준 신발과 겨울옷도 물신 세상에 맞지 않는 삶의 방식이었다. 그래서 이번 겨울은 더 추울 예정이다. 이 추위와 부끄러움을 극복하기 위해 TV를 끈다. 위험한 핵무기를 평화로 이야기하고, 핵발전소를 청정에너지로 말하며 비정규직 노동자의 죽음과 노동의 가치를 감추고, 제주 제2공항과 설악산 케이블카 난개발이 마치 미래세대의 행복인 양 부추기는 TV를 끄고 프란치스코 교종의 ‘찬미받으소서’를 기도처럼 다시 천천히 읽는다.

“그리스도 영성은 소비에 집착하지 않고 깊은 기쁨을 누릴 수 있는 예언적이고 관상적인 생활 방식을 독려합니다. 곧 “적은 것이 많은 것이라는 확신입니다.” 그리스도교 영성은 절제를 통하여 성숙해지고 적은 것으로도 행복해지는 능력을 제안합니다. 이는 바로 검소함으로 되돌아가는 것입니다. 이러한 검소함은 우리가 작은 것들의 진가를 차근차근 알아볼 수 있게 하고, 삶이 우리에게 주는 기회들에 감사하면서 내 것에 집착하지 않고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하여 탄식하지도 않게 합니다. 여기에서는 지배의 논리를 피하고 단순히 쾌락을 쌓는 일을 삼가는 것이 필요합니다.”(222항 참조)

인간노동 가치를 되찾고 새벽 배송과 신상으로 유혹하는 집착적 소비주의에서 벗어나는 방법이다.

맹주형(아우구스티노)

서울대교구 사회사목국 정의 평화 창조질서보전(JPIC) 연대 담당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맹주형 editor@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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