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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한번 공감을 떠올리며

기사승인 2019.12.24  12: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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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상우 신부] 12월 25일(주님 성탄 대축일) 이사 52,7-10; 히브 1,1-6; 요한 1,1-18

“어둠 속을 걷던 백성이 큰 빛을 봅니다.”(이사 9,1) 성탄 밤미사의 문을 여는 이사야 예언자의 말씀과 같이 우리에게 오신 주님의 그 빛이 이 글을 보시는 분들과 그 가정을 밝게 비춰 주시기를 청하며 글을 시작해 봅니다. 

월요일에 교구에 있는 한 수녀원을 찾았습니다. 거기에 계신 수사님께 고해성사를 드리기 위해서이지요. 대림시기 내내 판공성사를 드리느라 정작 제 영혼은 제대로 성찰하지 못했기에 부산에 내려오는 김에 고해성사를 드려야겠다 마음먹고 수사님을 만났습니다. 그렇게 고해성사를 드리고 감사의 인사를 전하니 그 수사님께서도 저에게 고해성사를 청하셨습니다. 당신도 고해성사를 보려고 다른 곳을 찾아가려고 했는데 신기하게도 신부님이 찾아와서 때마침 성사를 드릴 수 있어서 기뻤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저도 고해를 하며 그리고 고해를 들으며 기쁜 대림시기를 마무리하며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다시 한번 공감이라는 말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제와 수도자. 살아가는 형태는 다르지만 결국 하느님을 향해 나아가는 그 여정 속에서 생기는 고민과 어려움 더불어 때때로 그 길 안에서 비틀거리고 넘어지는 모습은 많이 다르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고해성사를 통해 서로를 공감하며 힘을 얻게 됩니다.

주님 성탄 대축일을 맞으면서 그렇게 머릿속을 머물던 단어가 또다시 공감이었습니다.“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요한 1,14)라는 오늘 복음의 말씀처럼 하느님의 은총은 모든 사람에게 가장 공감이 되는 모습으로 다가왔습니다. 하느님의 아들이 인간의 모습으로 온 것입니다. 그렇게 공감하기 위해서는 상대방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주님께서는 인간이 되어 땅에 내려오셨습니다.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 인간의 모습으로 그렇게 사랑 넘치는 공감으로 우리에게 오셨습니다. 인간을 향한 주님의 사랑 넘치는 공감은 탄생 순간에도 절실히 드러납니다. 공감은 특별한 곳에서 드러나지 않습니다. 평범하고 지극히 상식적인 자리에서 꽃핍니다. 주님 탄생의 물리적 장소는 베들레헴입니다. 세계의 수도 로마, 거룩한 도시라고 불리우는 예루살렘, 번성한 항구 도시 카이사리아, 아름다운 해변 도시들도 있는데, 하필이면 그 작은 마을 베들레헴에서 주님께서 태어나십니다. 미카 예언자가 “너 에프라타의 베들레헴아 너는 유다 부족들 가운데에서 보잘것없지만 나를 위하여 이스라엘을 다스릴 이가 너에게서 나오리라.”(미카 5,1)라고 했던 이야기를 생각해 보면 베들레헴이 얼마나 보잘것없는 곳이었는지 알 만합니다. 그러나 하느님은 그렇게 작고 가난한 마을을 역사상 가장 거룩하고 위대한 탄생의 장소로 선택했습니다.

성탄. (이미지 출처 = Pxfuel)

아기 예수 탄생 소식을 가장 먼저 접한 사람을 살펴보아도 그렇습니다. 지식인이나, 사회 지도층이 아니었습니다. 바로 양을 치는 목자입니다. 이 목자들이 살아가는 삶의 조건에 대해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유대인은 구약의 전통에 따라 하느님이 선택한 민족이라고 자신들을 자부해 왔습니다. 그리고 그 유대인들에게 삶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법칙 중 하나가 바로 안식일을 지키는 것입니다. 그렇게 그들은 안식일에 집착하고 그것을 지키려고 애를 씁니다. 그런데 목자들 역시 당연히 유대인이었다는 것에 주목해 볼 만합니다. 그런데 목자들은 자연스럽게 안식일을 지킬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안식일이라고 양이 풀을 뜯지 않고 가만히 있어 주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양을 키워야 하기 때문에 안식일을 지킬 수 없는 사람들이 바로 목자입니다. 자기들이 고용해서 안식일을 지킬 수 없도록 원천봉쇄 해 놓고선 목자들을 죄인이라고 부르는 일이 벌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어쨌든 유대인들은 안식일 법을 준수하지 못하는 목자들을 죄인으로 분류하고 누구 하나 관심을 갖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하느님은 이렇게 관심 받지 못하고 소외된 사람을 선택해서 성탄의 메시지를 가장 먼저 알려 주십니다. 그렇게 하느님께서는 특별하지 않는 사람들, 평범한 사람들에게 당신 사랑의 공감을 선사하십니다.

그렇게 성탄의 신비란 우리가 특별하고 신비롭게 느끼는 감정과 판단을 넘어섭니다. 우리가 구별하고 차별하는 모든 이의 삶의 자리까지 미치는 기쁜 소식입니다. 이렇듯 주님은 특별한 것, 신비한 것, 우리가 그어 놓은 경계선 안으로 들어오시는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가 살아가는 모든 일상 한가운데로 밀치고 들어오십니다. 그리고 가장 낮고 평범한 모습으로 우리 가운데 오십니다. 주님의 성탄을 맞으면서 우리 역시 서로에 대해 공감할 수 있는 사람들이 되기를 청해 봅니다. 인간의 모습으로 오신 하느님의 아들처럼 내 주위의 이웃들의 기쁨과 슬픔에 공감할 수 있는, 그렇게 하여 더욱더 서로에 대해 사랑과 이해가 깊어 가는 나와 너 그리고 우리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유상우 신부(광헌아우구스티노)

부산교구 감물생태학습관 부관장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유상우 editor@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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