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세르바토레 사이언티피코]

전례력으로 새해인 대림 첫 주부터 청년 칼럼 연재가 시작됩니다. 네 번째 시작은 이전수 생명과학 연구자의 '로세르바토레 사이언티피코'(과학의 관찰자)입니다. 과학사적 접근으로 물질세계에 대한 이해를 쉽게 풀어쓰고, 특히 종교 영역에서의 생명과학 연구윤리 비판을 다루고자 합니다. 칼럼을 맡아 주신 이전수 씨에게 감사드립니다. -편집자


1953년 제임스 왓슨과 프랜시스 크릭은 모든 과학자가 게재를 손꼽아 희망하는 유명한 과학저널 <네이쳐>지에 DNA의 이중나선 구조를 규명하는 연구논문을 실었다. 

1977년 프레더릭 생어는 염기서열 분석법을 개발한다. 현대 생명과학사에서 몇 가지 기념비적인 연구결과들은 분자생물학과 유전학 연구의 발전을 가속화했다. 또한 이러한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연구방법의 패러다임도 변화하였다. 생명체의 염기서열을 알 수 없었던 과거엔 눈으로 보아 알 수 있는 개체의 형질변화를 바탕으로 그 원인을 찾고자 연구를 했다면, 염기서열을 분석하여 그 서열을 알 수 있는 현대에는 실험실에서 원인인 유전자의 직접적인 조작을 통하여 그 결과인 형질의 변화를 관찰하고 유전자와 형질 사이의 관계를 증명한다. 사실 1859년 찰스 다윈이 ‘진화론’을 발표하며 과학에 일대 혁명을 일으키긴 했지만 당시 다윈의 진화론 자체에는 실험적 근거가 전무했고, 오늘날 분자생물학자들이 밝혀낸 종 분화와 진화에 대한 분자적 증거들의 연구결과들을 참고하면 다윈의 이론은 대단히 철학적 사유에 가까운 것이다.

1990년대 미국을 포함하는 6개국 생물학자들은 인간 유전체 지도를 만들기로 하고 인간 유전체의 염기서열 분석 프로젝트에 들어간다. 이것이 그 유명한 ‘인간 게놈 프로젝트’(Human Genome Project)다. 게놈이란 단어는 유전자(Gene)들의 전체 집합(-ome)이라는 뜻이다. 이 프로젝트는 대략 32억 개의 DNA 염기서열을 분석하여 인간이 갖는 46개의 DNA에 있는 유전자들의 위치와 염기서열을 알아냈다. 프로젝트의 결과로 생명과학 연구자라면 누구나 염기서열 정보에 접근이 가능하며 연구에 필요한 유전자의 염기서열을 얻을 수 있게 된 것이다. 

1990년부터 2003년까지 진행된 '인간 게놈 프로젝트'. (이미지 출처 = commons.wikimedia.org)

2003년에 프로젝트가 조기 종료될 때, 생명과학자와 의학자들은 유전적 원인에 기인하는 인간 질병의 원인을 빠르게 분석하고 치료방법을 연구하여 질병으로 고통받는 환자들에게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절망적이게도 유전체 데이터는 천문학적 수준으로 방대했으며 유전자와 형질이 1:1 대응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학자들의 기대와는 다르게 연구를 진행하는 것에 엄청나게 많은 시간이 걸렸다. 유전체 정보의 방대함이라는 분석의 한계점은 역설적이게도 컴퓨터공학이 전통적인 생명과학 연구와 융합하여 생물정보학이라는 새로운 연구분야를 개척하는 시작점이 되기도 했다.

유전학의 아버지로 추앙받는 그레고어 멘델이나 초파리를 이용한 초기 유전학 연구자들은 유전자와 형질이 1:1 대응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인간을 포함하는 고등동물이나 식물들의 유전자들은 여러 개의 유전자가 하나의 형질 발현에 관여하는 다인자 유전(Polygenic inheritance)이며 하나의 유전자가 여러 형질 발현에 관여하는 다면 유전(Pleiotropic inheritance)이라는 특성을 동시에 갖는다. 또한 유전자들은 발현하여 서로 상호작용을 하기 때문에 유전자들 상호간에는 상위(Epistasis)가 존재한다. 이러한 특성으로 인해 인간의 유전은 유전자의 빈도가 정규분포 곡선을 그리는 패턴을 띄며 통계적 분석이 용이하다는 장점이 있으나, 하나의 생명 현상에 관련된 유전자들의 행동을 예측하고 실험적으로 증명하는 것은 쉽지 않으며, 여러 변수를 동시에 고려해야 하는 복잡계의 성격을 띤다. 쉽게 바꿔 말하면, 연구가 ‘어렵다’는 말이다.

염기서열 분석으로 유전체 지도가 완성됨에 따라서 급격히 팽창한 질병에 대한 유전자 연구가 가시적 성과를 나타낸 분야는 암 연구 분야였다. 암 관련 유전자들에 대한 염기서열 분석과 서열의 비교는 암에 걸리지 않은 사람과 암에 걸린 환자 사이에 유의미한 차이를 보였으며, 암이 발생하는 기전에 대한 세포생물학적 이해를 증가시키고 암의 조직병리를 분자 수준에서 관찰함으로써 의사가 진단을 내리는 데 많은 도움을 주었다. 

비슷한 시기에 면역학 분야에서 단클론항체(monoclonal antibody)가 개발되고 유전체 정보를 바탕으로 암 연구가 팽창하면서 항암제 개발도 빠르게 증가하였고, 이는 2, 3세대 항암제의 개발로 이어졌다. 특히 2세대 항암제들은 표적 치료제로서 암세포만을 사멸시키고 기존 항암제의 부작용을 줄여 효과적인 항암치료가 가능하도록 했다. 단, 표적 치료제가 모든 암 환자에게 투약할 수 있는 것은 아니고, 투약이 가능하더라도 곧 암세포가 항암제에 반응을 하지 않는 저항성이 나타난다는 문제가 발생하였다. 하지만 암 환자의 유전체를 분석하여 환자에게 가장 적합한 항암제를 투약함으로써 항암치료의 효과를 높인다는 맞춤의료 내지는 정밀의료의 기대도 크게 증가됐다.

미국 배우 안젤리나 졸리는 염기서열 분석을 통해 BRCA 유전자의 돌연변이를 갖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유방암이 발병하지 않았음에도 예방 차원에서 유방절제술을 받았다. (이미지 출처 = commons.wikimedia.org)

여성 암 중에 흔한 유방암은 유전성을 가지고 나타나기도 한다. 인간 게놈 프로젝트가 한참 진행 중이던 당시, 1997년 의학저널 <란셋>(Lacet)에 실린 유방암 분석(Breast Cancer Linkage Consortium: Pathology of familial breast cancer: differences between breast cancers in carriers of BRCA1 and BRCA2 mutations and sporadic cases)에 따르면 전체 유방암 중에서 유전성 유방암은 일반적으로 10-15퍼센트를 차지하며, 유전성 유방암의 원인 돌연변이 유전자 중에서 BRCA1/2 유전자의 돌연변이가 60-70퍼센트를 차지한다. 또한 BRCA1 유전자에 이상이 있는 여성의 경우 70세에 유방암에 걸릴 확률은 87퍼센트로 상당히 높은 비율을 나타냈다. 2013년 미국 배우 안젤리나 졸리는 염기서열 분석을 통해 자신이 BRCA 유전자의 돌연변이를 갖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유방암이 발병하지 않았음에도 예방 차원에서 유방절제술을 받았다. 

게놈 프로젝트가 종료되었음에도 여전히 그 기능이 명확하게 규명되지 않은 유전자들이 많고 실험적으로는 근거가 제시되고 있으나 질병 사이의 인과관계가 분명하게 증명되지 못한 유전자도 많다. 그러나 인과관계가 명확히 드러난 경우에 한해서는 염기서열 분석을 통해 질병 발생의 위험을 예측하고, 질병이 실제로 나타나기 전에 적절한 예방적 치료를 할 수 있는 단계에 어느 정도 이르렀다고 볼 수 있다. 안젤리나 졸리의 예방적 유방절제술은 대표적인 예시다.

인간 게놈 프로젝트가 끝난 직후 유전체 염기서열 분석에 드는 비용은 개인이 부담하기엔 상당히 버거운 액수였다. 1명의 인간 유전체 염기서열을 분석하려면 2003년에 자그마치 3억 달러가 필요했다. 그러나 차세대 염기서열 분석법이 개발되고 발달함에 따라 2020년이 되면서 대략 100달러까지 가격이 내려갈 것으로 예상하기도 한다. 그런데 가장 중요한 것은 1명의 유전체 염기서열을 분석하는 비용이 저렴해진다는 것이 아니라 유전체 염기서열 정보를 어떻게 가공하여 사용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이다. 

2018년 노벨 생리의학상은 면역항암제 개발의 기틀을 다진 암 면역학 연구자 제임스 앨리슨과 혼조 다스쿠에게 돌아갔다. 유전체 염기서열을 통해 밝혀낸 기존 돌연변이 유전자들과 암 면역학의 분자적 발견 사이의 연관성을 밝히는 연구들도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최근 카이스트와 연세대 의대 연구진들은 1퍼센트의 미세 돌연변이까지 찾아낼 수 있는 유전자 분석기법을 개발해 냈다. 이처럼 유전체 염기서열을 분석하고 이를 바탕으로 하는 연구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며, 염기서열 분석법의 발전이 멋진 신세계를 가져다 줄 것인지는 더 두고봐야 할 것이다.

이전수(라파엘)
국립암센터 연구원.
연세대 생화학과, 포항공과대 대학원 생명과학과 졸업. 
생명과학 연구자이자 가톨릭 신앙인으로서 과학-기술-사회(Science-Technology-Society), 과학과 종교간 대화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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