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있는 노래랑 아이들이랑 - 23]

뭐니 뭐니(머니머니) 해도 복 중에 제일은 사람복(인복)이라고 했는데, 그런 관점에서 보면 나는 정말 복이 많은 사람이 아닌가 싶다. 살면서 지금껏 어디를 가든 좋은 사람들 속에 둘러싸여 살아왔기 때문이다. 소신껏 시골살이를 하게 된 것도 결국 첫 귀농지에서부터 좋은 사람들이 끌어 주고 붙잡아 준 덕분인데, 가끔 그때 그 사람들을 한 사람씩 떠올리다 보면 나무실 마을 할머니들이(특히 설매실 할머니가) 지나가는 대목에서 버퍼링 현상 비슷한 게 일어난다. ‘돌아가시기 전에 한번 찾아뵈어야 하는데‘ 하면서도 그러지 못하는 마음의 짐 때문이리라.

그랬는데, 어느 날 갑자기 걸려 온 한 통의 전화! 나 이사 간 뒤로 그 마을에 터를 잡고 살고 계시는 이인화 선생님이었다.

“할매들이 제가 이사 와서 지금까지 청라 씨랑 상아 씨 보고 싶다꼬 얼마나 말씀들을 많이 하셨는지 모릅니다. 더 늦기 전에 할매들 한을 풀어 줄라꼬요. 저랑 서 선생님이 할매들 세 분 모시고 그 집에 갈라 카는데 괜찮겠습니까?”

“네? 정말요? 저야 물론 대환영이지만 할머니들이 괜찮으실까요? 경상도에서 전라도까지 거리가 만만치 않을 텐데요. 저희가 시간 내서 한번 가는 게 낫지 않을까요?”

“괜찮습니다. 고속도로 타면 두 시간 반이면 가는데예. 살살 운전해서 가니 괜찮을 겁니다. 나들이 간다꼬 할매들이 벌써부터 꽃단장하고 난리라예.”

전화를 끊고 나서 한동안 이게 꿈인가 생시인가 싶을 정도로 어리둥절했다. 할머니들이 나를 보러 그 먼 데서 오신다니! 나는 아이들과 신랑에게 곧장 그 사실을 알리고 그날부터 할머니들 맞이 준비 모드에 들어갔다. 집 안팎을 열심히 치우고(치워도 치워도 끝이 없고 치운다고 치워도 티도 안 나는 쑥쑥한 집이긴 하지만 ^^;) 어떤 음식으로 대접할까 골똘히 생각하여 장도 보고 말이다.

그리하여 할머니들 오시는 날, 아침 일찍부터 일어나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점심 상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예정보다 조금 일찍 밖에서 할머니들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통통 튀고 팽그르르 공중제비라도 하는 듯 활기찬 웅성거림.... 아, 그리웠던 저 목소리들!!!

“이보래이! 아덜이 그새 일케 컸나? 놔 노면 크는 건 금방이다카이.“

“아들 둘에 딸 하나제? 잘 했다. 그기 질로 좋다.”

“어데로 들어가노? 여그가?”

할머니들을 부엌 밥상 앞으로 모시고 점심을 대접했다. 할머니들한테 얻어먹은 음식들 하나하나를 떠올리며 은혜를 갚는 마음으로 차린 바다 향기 가득한 밥상이었다. (산골에서 오셨으니 바다 향기를 선물해야 할 것 같았다.) 찰밥, 조갯살 넣은 미역국, 꼬막무침, 보리굴비, 죽순나물, 김장김치.... 사실 지난 은혜를 생각하면 그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건만 할머니들은 차리느라고 욕 봤다며 맛있게들 잡숴 주셨다. 반주로 소주도 한 잔씩 하시면서....^^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이야기꽃이 활짝 피어났다. 할머니들이 어제 일처럼 생생히 전하는 옛날의 기억들, 함께 알고 지내는 누군가의 근황, 나무실 마을 새 소식.... 아야기는 끝도 없이 술술 실타래처럼 풀려나왔다. 특히 설매실 할머니의 입담은 예나 지금이나 하나 다를 바 없이 콸콸 흐르다 힘껏 치솟다 휘돌아 뛰어넘다 하며 큰 비 온 뒤 냇물처럼 막힘이 없었다. (기억력은 또 얼마나 좋으신지 나와 다울 아빠 띠를 여태 알고 계셨고, 그리하여 올해 나이까지 정확히 알아맞히셨다!)

다나와 다랑이의 주워 온 나무로 용마 만들어 놀기. ⓒ정청라

한참 할머니들 이야기에 빠져 있는데 다울이가 와서 귓속말을 했다.

“엄마, 할머니들이 뭐라고 말하는지 못 알아듣겠어. 다른 할머니 말은 그래도 조금 알겠는데 설매실 할머니 말은 정말 하나도 모르겠어.”

다울이 말을 듣고 보니 그럴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 역시도 오랜만에 할머니들 목소리를 들으니 그 속도와 억양을 따라잡을 수가 없어 못 듣고 놓치는 말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아이들은 어떻겠는가. 이게 무슨 말인가, 여기가 어딘가 혼란스러웠을 만도 하다.

그리하여 얼른 2부 순서를 진행하기로 했다, 아이들이 할머니들에게 노래를 들려주는 시간! 아이들은 할머니들을 기다려 온 며칠 동안 이미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했는지 빼지 않고 씩씩하게 노래를 불렀다. 다랑이는 ‘개울물‘을 부르고, 다나는 ‘개구리야 반가워‘와 ‘나의 살던 고향은’을 부르고, 다울이는 ‘사랑은 산길이다’를 부르고, 셋이 함께 ‘동지 노래’와 ‘좋아해’, ‘나무들의 약속’까지 불렀다. 일종의 하우스콘서트랄까?

할머니들은 물론 손뼉을 치며 좋아라 하셨다. 아이들한테 용돈도 주시고, 아 잘 키웠다며 아낌없는 칭찬을 해 주셨다.

“아덜 먹여 살리려면 아바이가 농사 부지런히 지야겠다. 뭣이든지 마이 숭궈라. 숭구고 돌아서서 거두고 숭구고 또 거두고 그래 하면 된다. 그라마 아덜은 꺽정 읎다. 잘 키웠데이.”

“아덜이랑 이래 사는 거 보니 좋다. 참 재미지겄다. 재미진 세월이다카이.“

“하모! 재미질 때제.... 재미진 세월이 한없을 것 같애도 안 그렇더라. 지나고 나면 잠깐이라. 이래 재미지게 살믄 된다. 고거뿐이라.”

할머니들은 몇 번이나 그 말씀을 하셨다. 가난하게 사는 딸래미 보러 왔다 집에 돌아가는 친정 엄마 같은 눈빛으로 집에 돌아가기 직전까지 신신당부를 하셨다. 그런 할머니들 마음이 고마워서 나는 할머니들을 배웅하며 한 분 한 분을 꼭 안아 드렸다. 다시 만날 때까지 부디 안녕하시기를!!!

덧.

할머니들과의 짧은 만남이 있고 얼마 뒤, 아이들과 저수지 너머 산에 가서 놀았다. 태풍에 쓰러진 큰 나무가 우리들의 놀이터! 다울이는 가지고 간 줄로 해먹 비슷한 걸 만들어 놀고(신통방통하다. 혼자서 줄로 별 걸 다 만들며 논다), 다랑이와 다나는 같이 간 고양이들과 어우러져 나무에 올라타 장난을 치고.... 그 그림 같은 풍경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할머니들 말씀이 떠올랐다. 아이들이야말로 한 순간 한 순간을 재미지게 살아 내는 재주를 가진 기묘한 능력자들이 아닌가! 그들 덕분에 그날도 노래가 왔다. 그것이 바로 오늘의 노래, ‘나무실 할머니들의 신신당부’다.

 

잠깐, 아주 잠깐

지나고 나면 눈 깜짝할 새

순간, 한순간도

놓치지 말고 재미지게 살아라!
 

정청라
인생의 쓴맛 단맛 모르던 20대에 누가 꿈이 뭐냐고 물으면 '좋은 엄마가 되고 싶다'고 대답했다. 하지만 막상 엄마가 되고 1년도 채 안 되어 좋은 엄마는커녕 그냥 엄마 되기도 몹시 어렵다는 사실을 깨닫고 '좋은 엄마'라는 허상을 내려놓았다. 그 뒤로 쭈욱 내려놓고, 내려놓고, 내려놓기의 연속.... 이제는 살아 있는 노래랑 아이들이랑 살아 있음을 만끽하며 아무런 꿈도 없이 그냥 산다. 아이를 기른다는 것은 '스스로 길이 된다는 것'임을 떠올리며 노래로 길을 내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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