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떼제에서 만난 나 그리고 청년들]

전례력으로 새해인 대림 첫 주부터 청년 칼럼 연재가 시작됩니다. 다섯 번째 시작은 '떼제에서 만난 나 그리고 청년들'입니다. 프랑스 떼제공동체에서 자원봉사자로 지내면서 전 세계에서 찾아오는 많은 청년과의 교류, 환대와 일치의 다양한 경험, 그리고 오카리나를 통해 새롭게 마주하는 자신과 타인, 그리고 세상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자 합니다. 칼럼을 맡아 주신 유혜진 씨에게 감사드립니다. -편집자


폴란드 브로츠와프(Wrocław), 42번째 떼제의 유럽 젊은이 모임

지난 2019년 12월 28일부터 2020년 1월 1일까지 폴란드 브로츠와프에서 떼제 유럽 젊은이 모임이 열렸다. 이번이 42번째 모임으로, 프랑스 부르고뉴 지방에 있는 떼제 공동체가 찾아오는 청년들을 맞는 것에 그치지 않고, 프랑스 떼제까지 찾아오기 어려운 많은 청년이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기 위해 함께 모여 기도하고 나눌 수 있도록 매년 연말에 유럽의 다른 도시로 찾아가 함께 기도하고 있다. 최근에 와서 수가 줄어든 편이나 매년 약 1만 5000명 정도의 순례자들이 모이며 이전에는 3만 명 이상 모이기도 했다.

2016년 아시아에서 지리적으로 가까운 라트비아 리가에서 39번째 유럽 젊은이 모임을 가질 때부터 한국과 홍콩, 일본에서도 각각 순례단을 꾸려 모임에 참석하고 있다. 이번 폴란드 모임에도 한국인 20명을 비롯해 일본, 홍콩, 타이완 등 동아시아 순례자가 약 50명, 전체 아시아인은 70여 명 정도 참석했고 1만 5000명의 순례자들이 약 5000여 가정에서 묵었다.

브로츠와프 모임에 참석한 아시아 청년들. ⓒ이주현Gregom

유럽모임에서는 무엇을 하나? 무엇을 위해 모이나?

12월 28일부터 1월 1일까지라면 5일이지만 사실상 오가는 날을 제외하고는 3일밖에 되지 않는 짧은 시간인데, 무엇이 그 많은 청년을 모이게 하는 것일까.

첫날은 우선 도착하자마자 모임기간 동안 머물게 될 숙소를 배정받고 저녁기도를 드린다. 대부분은 일반 가정집에 배정받는데, 서로 누가 오고 반겨 줄지 모르는 상황에서 떼제 공동체를 신뢰하고 문을 열어 주고 환대받는 경험은 굉장히 특별하다. 더군다나 여러 차례 테러의 위협으로 점점 문고리를 닫아 걸고 있는 유럽에서 아직도 이러한 신뢰가 이루어진다는 것 자체에도 감격스럽다.

모임의 일정은 세 번의 기도를 중심으로 오전에는 소그룹 나눔, 오후에는 워크숍에 참석한다. 오전에는 아침을 먹고 순례자들이 머무는 가정이 속한 성당/교회에 가서 50명 정도에서 많게는 100여 명이 함께 아침기도를 드리고 10명 내외의 소그룹으로 나뉘어 성서 공부를 한다. 짧은 성서 구절을 각자의 언어로 읽고 묵상하고 제시된 질문에 따라 돌아가며 답을 하면서 서로의 의견을 나누고 듣는 귀한 시간이다. 떼제의 기본 정신이 경청이므로, 그룹의 인도자는 다른 사람이 이야기할 때에는 항상 경청할 것을 당부한다. 또 다양한 국적의 청년들과 나눔을 하다 보니, 중간중간 통역을 위해 천천히 쉬어 가고 배려하며 서로의 나눔에 귀 기울인다.

소그룹 나눔. (사진 출처 = 페이스북 Taizé 페이지)

근처의 조금 더 큰 성당으로 이동하여 1000여 명이 모여서 함께 낮기도를 드린다. 그리고 미리 받은 간단한 점심거리를 적당한 장소에 둘러앉아 먹는다. 오후에는 각 주제에 따른 워크숍에 참석하는데, 리플렛에 나와 있는 카테고리와 주제가 아주 다양한 워크숍들 중에서 원하는 곳을 고른다. 언어가 자유롭지 않은 순례자는 자기 언어 혹은 영어 통역이 있는 곳으로 찾아간다. 제한된 숫자로만 참석 가능한 워크숍들(국립 박물관, 미술관 관람 등)은 전날 미리 티켓을 배부하는 곳에 가서 받는다.

저녁은 저녁기도를 드리는 곳 근처에서 배식 받는다. 저녁기도를 드리기 위해 몇천 명 이상 모이는 큰 장소(항상 성당은 아니고, 경기장이나 큰 홀을 기도처로 꾸민 곳)로 이동해서 기도하고 각자의 숙소로 돌아간다. 다음 날도 마찬가지로 반복되고 주일에는 오전프로그램 대신 미사와 예배가 있고 12월 31일 저녁에는 신년맞이 평화를 위한 밤기도와 새해의 시작을 알리는 불꽃 구경, 새벽까지 이어지는 나라별 축제(각자의 문화를 소개)를 갖는 것이 특별하다.

함께 모여 기도한다는 것, 단순한 찬양의 힘

아무래도 이 모든 모임과 시간의 중심에는 떼제 공동체의 기도방식으로 드리는 세 번의 기도가 아닐까 싶다. 떼제 공동체가 초교파적 공동체를 추구하며 그들 자체가 다양한 국적과 교파의 배경을 가진 수사님들로 이루어져 있다 보니, 자연스레 모여드는 젊은이들도 다양한 국적과 교파를 가지고 있으며 심지어 무교인 친구들도 꽤 있다. 이런 점이 우리 가톨릭 안에서도 큰 단위로 모이게 되는 WYD(세계청년대회)랑은 큰 차이점이다.

WYD, AYD(아시아청년대회) 등의 모임은 가톨릭 교리 교육과 미사가 중심이 되다 보니 참석자들 대부분이 가톨릭 신자들인 것에 반해 떼제의 유럽 젊은이 모임은 짧은 찬양을 반복하는 것과 짧은 독서와 침묵, 중보기도 등 단순한 기도 형식을 따르기 때문에 다양한 교파의 그리스도인들과 무교인 젊은이들까지도 부담이나 거부감 없이 참석할 수 있다.

물론 미사의 은혜와 성체성사가 가진 은총에 비해 떼제의 기도 방식은 단순 소박하나 전례를 이끄는 자와 따르는 자들의 명확한 구분이 없이 함께 그 기도 전체를 찬양으로 이끌어 가기에 참여하고 있는 모든 사람이 더 전례에 많은 부분 깊이, 능동적으로 참여한다는 차이가 있다. 또 많은 사람이 모일수록 함께 모여 단순하면서도 아름다운 가사를 반복해서 찬양함의 그 큰 울림과 파장은 더 커진다.

폴란드 브로츠와프 떼제 저녁기도. 다음 유럽 모임은 2020년 12월 28일부터 2021년 1월 1일까지 이탈리아 토리노에서 열린다. ⓒ이주현Gregom

뿌리를 간직한 채, 언제나 길 위에서(Always on the Move, Never Uprooted)

떼제의 유럽 젊은이 모임에서는 항상 함께 맞을 새로운 한 해를 살아갈 몇 가지 제안들을 제시한다. 올해의 주제는 ‘뿌리를 간직한 채, 언제나 길 위에서’다. 소주제로는 ‘새로운 출발을 준비하며, 주위 사람들 곁에 온전히 존재하며, 고향 잃은 이들과 함께, 창조 세계 전체의 한 부분으로, 언제나 내적으로 깊이 뿌리내리고’이다.(자세한 내용은 www.taize.fr/ko 참고)

예수님의 성탄을 축하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에서 2, 3번째 소주제의 내용이 더 와닿는다. 안락한 집을 떠나 낯설고 사람이 많이 몰리는 곳에서는 불편함과 어려움을 겪게 된다. 안락한 곳에서는 결코 헤아릴 수 없었던 타인의 마음을 직접 불편함과 마주함으로 다른 이들을 더 이해하고 포용할 수 있게 된다. 그런 와중에 경험하는 환대는 더없이 감사하다.

성가정도 취약한 환경에 노출된 이민자들이었다. 여러 가지 이유로 타국으로 내몰리는 이민자들에게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환대의 정신으로 맞아야 한다. 환대의 실천이 어렵다면 적어도 반대와 핍박은 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

교회일치 중심의 떼제 찬양, 떼제 기도

한국에서도 여러 교단이 모이는 개신교 연합 예배나, 다른 교파가 모이는 자리에서 떼제 노래로 찬양하기를 원하거나 심지어 성직자들이 많이 있는 자리에서도 성직자가 필요 없는 떼제의 기도 방식으로 기도하기를 바라고 평신도 청년들인 우리에게 기도 준비를 요청할 때가 있다. 사실 오히려 유럽에서는 다양한 교파가 함께 모여 기도한다는 것이 크게 문제되거나 그리 어렵지 않고 종종 있는 일이다. 우리나라처럼 하느님/하나님으로 다르게 부르지도 않을 뿐더러, 교회 자체의 분리는 있었으나 서로를 배척하거나 적대시하는 문화는 아니기 때문이다. 전 세계적으로는 어떨지 모르겠으나 적어도 내가 경험한 유럽의 문화나 분위기는 그러했다. 

그런 점에서 우리나라의 가톨릭과 개신교의 거리감, 주님을 부르는 하느님의 호칭부터 다른 것은 큰 아픔과 교회일치의 걸림돌이 되는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또 단순한 가사로 하느님/하나님의 논쟁이 별로 없이 주로 ‘주님’으로 통칭되는 그분께 찬양을 올리기에 떼제 노래와 떼제의 기도 방식이 제일 적합한 것 같다고 판단되는 모양이다. 그런 점에서 서울에서 정기적으로 2번 젊은이들이 준비하는 평화와 화해를 위한 떼제 기도모임을 하고 있는 ‘언덕 위 마을’의 존재가 새삼 감사하다.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전 세계의 교회일치와 세계 평화의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간절히 바라고 기도한다.

프랑스 떼제의 마을 성당. ⓒ유혜진MaryU

유혜진(마리아)
MaryU(메리유)라는 이름으로 활동하고 있는 오카리나 연주자이자 강사. 공연기획 및 진행, 영어 통•번역 일도 하고 있으며 떼제 기도모임에서 선창과 솔리스트를 맡고 있다.
대학에서 영어영문학, 사회복지학, 실용음악학(오카리나)을 전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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