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중원 기수 대책위, 경찰 유가족 폭행 사과하라

한국마사회 문중원 기수의 유족, 시민사회단체가 철저한 수사를 촉구하고, 경찰의 유족폭행을 규탄했다. 7일 ‘문중원 기수 죽음의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위한 시민사회대책위원회’는 경찰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같이 촉구했다.

문중원 기수는 한국마사회 부산경남 경마공원 소속 기수로 “승부 조작, 부당 지시와 횡포, 조교사 개업비리” 등을 고발하는 유서를 남기고 지난해 11월 29일 기수 숙소에서 목숨을 끊었다.

1979년 태어나 8살, 5살 두 자녀를 둔 문 기수는 2005년부터 기수로 일했다. 기수는 경마에서 경주마를 타고 경주에 출전하는 선수다. 마사회 구조상 기수는 전적으로 조교사의 지시에 따라야 하며, 조교사는 기수의 자격을 박탈할 수 있는 권한까지 갖는다.

조교사는 마사회와 용역계약을 맺은 개인사업자로 마방(말을 훈련하고 관리하는 곳)을 운영하며 기수에게 출전기회를 주고, 경주마 훈련비를 주는 등 실질적 권한을 가지며, 경마에서 감독역할을 한다.

‘마방’은 마사회가 심사를 거쳐 결정하기 때문에 외주라 해도 마방 배정의 실질적 권한은 마사회에게 있다.

그는 2015년 조교사 면허를 땄지만 4년이 넘도록 마방을 배정받지 못해 조교사 일을 할 수 없었다. 그는 유서에서 경력자가 제외되고 면허를 딴지 얼마 안 되는 이에게 마방이 배정되는 등 합리적 원칙 없이 마사회가 임의적으로 마방을 배정하는 관행을 고발하며 억울함을 호소하고, “대충 타라”와 같은 승부 조작과 부당 지시를 고발했다.

이에 따라 지난해 12월 2일 마사회의 내부비리에 대해 경찰이 수사를 시작했지만, 현재까지 별다른 수사 결과가 나오지 않은 상태다.

이날 시민대책위는 경찰의 과잉진압을 규탄하며 문중원 기수의 죽음에 대한 철저한 수사를 경찰에 촉구했다. ⓒ김수나 기자

이날 시민대책위 등은 경찰에 철저한 수사를 촉구하고, 지난 12월에 있었던 경찰의 유족폭행에 대해 사과를 요구했다.

시민대책위 대표 송경용 신부(성공회)는 “한 가장이 부모와 형제, 처자식을 두고 왜 스스로 목숨을 끊겠나. 이는 분명한 사회적 타살로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든 이들에게 분명히 책임을 물어야 한다”며 “문중원 기수의 염원대로 더는 억울한 죽임이 반복되지 않도록 마사회는 이번 일로 국민 앞에 사과하고 내부 적폐를 청산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문중원 기수의 아버지 문군옥 씨는 애초 경찰의 약속과 달리 한 달이 넘도록 수사에 진척이 없고, “수많은 경찰을 동원해 김낙순 회장과의 면담을 가로막고, 폭력까지 행사하는 경찰에 크게 실망했다”고 말했다.

문 씨는 “경찰이 수십 명씩 운구차를 둘러싸고 밀쳐서 한두 발자국만 비켜 달라고 요청했는데도 명령이 있어야 움직인다면서 30-40분 넘게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았다”면서 “이제라도 처벌 대상자가 누구이고 어떤 비리가 있는지가 담긴 유서 그대로 밝혀 억울함을 풀어 달라”고 호소했다.

지난 12월 21일 유족은 마사회 김낙순 회장과 면담하기 위해 마사회 본관으로 찾아갔으나 경찰이 저지하는 과정에서 문중원 기수 부인의 머리채를 잡고, 발로 밟는 등 폭력을 행사했다.

이어 12월 27일 경찰은 견인차를 동원하고 경력을 배치해 경남 김해에서 올라온 문중원 기수의 운구차의 이동을 막기도 했다.

이어 문군옥 씨는 “이번에 마사회가 고쳐지지 않으면 1년 이내에 같은 죽음이 반드시 나온다”면서 “조문 온 기수나 관리자들이 울면서 자신들도 유서를 써서 가지고 다닌다고 하더라. 가정이 있으니 억울해도 표현도 못한다고 했다. 이들은 살았지만 죽은 것과 같은 삶을 산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문 씨는 지난달 발표한 마사회의 제도개선안에 대해 “그럴듯해 보이지만 1등 돈을 뺏어 2, 3등에게 분배하겠다는 것이다. 마사회는 아무 손해도 안 보는 것이 무슨 제도 개선인가. 정작 부산 기수들은 그 내용도 모른다”고 지적했다.

문중원 기수의 아버지 문군옥 씨가 발언하고 있다. ⓒ김수나 기자

마사회는 지난달 26, 28일 승자독식 상금 구조 개편과 기수 소득 안정화를 위한 경주마 훈련비 인상을 주 내용으로 하는 개편안을 발표했다.

개편안에 따르면, 1위 상금 비중을 조정해 중하위권 경주마 관계자에게 상금을 재분배하겠다는 것인데, 이는 1위에서 3위까지만 해당되며 4, 5위와 순위권 밖은 해당되지 않아, 노동계는 상위권 상금 독식 구조 개선에는 못 미친다고 지적했다.

또 조교사의 지시를 거부할 수 없는 구조를 그대로 둔 채 경주마 훈련비만 늘리는 것은 조교사의 권한만 더 키우는 꼴이라는 지적도 이어졌다.

인권중심 사람 박래군 소장은 “경찰력 남용으로 인한 인권침해에 대해 민갑룡 경찰청장이 사과한 지 얼마 지나지도 않았는데, 경찰이 또다시 권력의 앞잡이, 마사회의 사설 경호원처럼 행동하니 욕을 먹는다”며 “7명이나 숨졌다면 이는 사회적 타살이다. 경찰은 마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명확히 밝히고 가해자가 누구인지 찾아내야 한다. 유가족에게 사과하고 경찰 본연의 역할을 다하라”고 촉구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천지선 변호사는 “마사회가 마사회, 조교사, 기수로 연결되는 구조를 통해 실질적 지배력을 행사하고, 마사대부 등을 통해 실질적 직무감독을 하며 기수임금구조로 경쟁을 부추겼다”며 “마사회가 외주화를 통해 책임을 회피하는 동안 부산경남 경마공원에서만 7명이 죽었다”고 지적했다.

천 변호사는 “마사회의 외주화는 고인을 고통, 불안, 죽음으로 몰아넣었다”며 “진상규명, 책임자 처벌, 재발 방지라는 요구는 매우 평범하고 당연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시민대책위는 입장문을 내고, “경찰이 마사회에 대한 압수수색조차 하지 않고 미온적 수사로 마사회를 비호한다”며, 마사회 비리에 대해 철저히 수사하고, 지난달 유가족에 대한 폭력행사와 운구차 탈취 시도에 대해 경찰청장이 사과하라고 요구했다.

공공운수노조에 따르면, 부산경남 지역에서만 2010-19년까지 극단적 선택을 한 기수, 마필관리사는 문중원 기수를 포함해 모두 7명이다. 이들은 생계를 보장받지 못한 채 경쟁과 조교의 불합리한 지시를 따를 수밖에 없는 갑질에 시달려 왔다.

공공운수노조 자료를 종합하면, 한국마사회가 1993년 정규직 노동자였던 기수를 개별사업자(특수고용노동자)로 전환하면서부터 “오로지 경쟁에서 이겨야만 노동자가 생존하는 구조”가 됐다.

특히 부산경남경마공원은 서울과 달리 조교사협회, 기수협회, 관리사협회에 지원하는 비용을 경주 결과에 따라 기수에게 상금으로 분배했다. 이에 따라 등수에 들지 못하는 기수는 생계비도 벌기 어려웠고 기수는 임금도 퇴직금도 따로 없는 특수고용노동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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