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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마음에 드는 이

기사승인 2020.01.09  10: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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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상우 신부] 1월 12일(주님 세례 축일) 이사 42,1-4.6-7; 사도 10,34-38; 마태 3,13-17

이번 주일 기념하는 주님 세례 축일로 교회는 성탄 시기를 마무리합니다. 그렇다면 먼저 우리가 던져야 할 질문은 ‘주님 세례 축일이 왜 성탄시기에 속해 있는가?’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리고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성탄과 공현이 가지고 있는 공통적인 신학적 의미인 ‘주님께서 세상에 당신을 드러내심’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아기 예수님의 탄생을 통해 이스라엘 민족들에게 구약에서부터 예언된 세상에 새로운 구세주가 오셨음이 알려지는 사건이 성탄이라면, 공현은 예수님을 경배하러 온 동방박사가 전면에 등장합니다. 교회전승은 동방박사 3명-멜키올, 발타살, 가스팔이라고 불리는–을 통해 이스라엘 민족뿐만 아니라 세상의 모든 민족에게 당신을 드러내신 예수님의 모습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많은 경우 주님 공현 대축일 이후 제대 앞의 구유를 살펴보면 멜키올이 백인, 발타살이 흑인, 가스팔이 황인으로 묘사되고 있는데 이 모습이 바로 이스라엘 민족뿐 아니라 이방인에게까지 당신의 구원 의지를 드러내시는 하느님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성탄 시기에 속하는 주님의 세례 역시 이 ‘드러남’의 맥락에서 이해해 볼 수 있습니다. 인간의 몸으로 태어나신 예수님께서는 ‘육체적 성장’이 이루어지자 아버지께서 당신에게 부여하신 사명인 “모든 의로움”(마태 3,15)을 이루기 위해 요르단 강으로 나아가십니다. “하늘나라가 가까이 왔다”(마태 3,2) 하고 외치는 세례자 요한과 그 외침을 듣는 이들에게 세례자 요한의 외침이 먼 이야기가 아님을 알려 주기 위해 당신께서 직접 세례의 현장으로 나아가시는 것입니다. 그렇게 회개를 위해 모인 이들에게 당신을 다시 한번 드러내는 곳이 바로 요르단 강입니다. 그러기에 세례의 현장은 또 다른 ‘구유’가 되는 셈입니다.

주님 탄생의 순간 하늘의 군대가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느님께 영광 땅에서는 그분 마음에 드는 사람들에게 평화!”(루카 2,14)라고 외쳤다면, 또 다른 ‘구유’인 요르단 강에서는 아버지께서 직접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마태 3,17)라고 선언하십니다. 하늘의 군대들의 외침과 성부의 선언에서 함께 강조되는 것이 바로 ‘마음에 드는 이’입니다.

주님의 세례. (이미지 출처 = Needpix)

이 ‘마음에 드는 이’는 제1독서의 이사야 예언서를 보아도 전면에서 드러납니다. 1독서에 배치된 이사야서는 주님의 종 첫째 노래를 들려줍니다. “여기에 나의 종이 있다. 그는 내가 붙들어 주는 이, 내가 선택한 이, 내 마음에 드는 이다.”(이사 42,1) 전례 안에서 주님의 종 노래들이 부각되는 시기는 바로 성주간입니다. 그리고 오늘 독서로 배치된 이사야서 42장은 성주간 월요일의 독서이기도 합니다. 주님의 수난과 죽음을 앞두고 그 고통의 길이 아버지 하느님의 뜻을 따르기 위함임을 알려주기 위한 말씀인 셈이지요.

결국 이를 통해 봤을 때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예수님의 ‘드러남’이 당신 개인의 명예와 영광을 위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당신의 탄생을 둘러싸고 무죄한 어린이들의 죽음이 있었던 것처럼 그리고 아버지 하느님이 뜻을 이루기 위해 수난과 죽음을 감내하신 것과 같이 세상에 당신을 드러내시는 것은 세속적 의미의 영광의 길이 아니라 고통의 길로 점철되어 있는 것을 우리는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습니다. 자신의 명예와 영광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세례를 받으실 필요가 없는 분이 아버지의 뜻을 따라 세례를 받으러 요르단 강으로 나아가시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에게 있어서도 세례는 아버지 하느님의 뜻에 따라 살아가겠다는 의지를 표명하는 자리입니다. 그리고 그 의지를 잊지 않기 위해 우리는 매해 세례수를 축성하는 부활 성야의 밤에 세례 서약의 갱신을 통해 그 마음을 다지곤 합니다. 이를 통해 세례 역시 성탄 시기의 연장선상인 동시에 파스카를 향하고 있음을 알 수 있게 됩니다. 주님의 세례 축일을 지내면서 우리 역시 하느님 아버지의 뜻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는 마음을 새롭게 가지면 좋겠습니다.

얼마 전 우리 교구에 새로 탄생한 새 신부님의 첫 미사를 다녀왔습니다. 선배 사제들과 많은 교우 분과 함께 새로운 사제의 탄생을 축하하는 자리였습니다. 하지만 그 자리는 마냥 축하의 자리가 아님을 많은 분께서 아시리라 믿습니다. 긴 신학교 생활을 마무리하고 이제 세상 속에서 아버지 하느님의 뜻을 좇아 살아가기 위해 첫발을 딛으신 그 새 신부님의 모습을 보며 요르단 강에서 세례를 받고 세상을 향해 길을 떠나신 ‘청년 예수님’의 모습이 문득 머릿속에 그려졌습니다. 더불어 사목생활 안에서 수없이 넘어지고 실수하는 제 모습과 넘어진 그 자리에서 다시 당신께로 이끌어 주시는 하느님의 힘을 되새기게 됩니다.

성품성사를 통해서 하느님의 성령을 새로이 체험한 새사제들이 “비둘기 모양으로 성령을 보내시어 주님의 종 그리스도에게 기쁨의 기름을 바르시고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셨나이다.”(주님 세례 축일 감사송)라는 그리스도를 향한 교회의 고백처럼 어렵고 아픈 세상 속에서 주님의 기쁜 소식을 전할 힘을 잃지 않도록 함께 기도해 주시기를 청합니다.

유상우 신부(광헌아우구스티노)

부산교구 감물생태학습관 부관장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유상우 editor@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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