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당 페미언니와 성·사랑·몸 수업]

전례력으로 새해인 대림 첫 주부터 청년 칼럼 연재가 시작됩니다. 여섯 번째 시작은 '성당 페미언니와 성·사랑·몸 수업'입니다. 사랑, 섹슈얼리티, 피임, 낙태, 성교육, 윤리 등의 키워드를 통해 엄숙한 교회에 질문을 던지며 대안적인 논의들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칼럼을 맡아 주신 강석주 씨에게 감사드립니다. -편집자


여성의 삶은 단순한 이분법으로 나뉘지 않아

우리는 지난 대림 1주일을 ‘생명 수호 주일’로 보내면서 각자의 본당 미사 중에 다음과 같은 보편지향기도를 바쳤을 것이다. 

“낙태의 유혹을 물리친 미혼모들을 어여삐 보시고, 그들이 겪는 어려움과 아픔을 이해하고 도울 수 있도록 저희의 마음을 열어 주소서.” 

이것은 혼자 아이를 낳아 기르는 여성들의 실질적 어려움을 교회가 보살피기 위한 순수한 기도가 맞는가? 어떤 여자를 추켜세움으로써 다른 여자를 비난하기 위한 의도는 없는 것인가? 교회의 많은 문헌이 혼인을 통한 인간생명 전수를 가르쳐 왔지만, 최근 미혼모 가정을 보듬는 사목방향으로 개방된 것은 고무적인 일이다. 그러나 우리 신앙인들은 아이를 낳지 않은 여성들의 삶 안에도 역시 많은 어려움과 고통이 있음을 알고 있다. 여성의 삶은 “낙태의 유혹을 물리친” 대 “물리치지 못한”으로 단순하게 나뉘지 않기 때문이다.

'더 월'(If these walls could talk, 1996) 포스터. (이미지 출처 = en.wikipedia.org)

영화 ‘더 월’('If These Walls Could Talk', 1996)에는 1952, 74, 96년의 미국사회를 살아가는 세 여성의 뜻하지 않은 임신을 둘러싼 이야기가 나온다. 남편을 잃고 시동생과의 부적절한 관계에서 임신하게 된 자신을 자책하며 두통약을 다량 복용하는 여성, 이미 아이 4명을 키우면서 생활고에 시달리며 아무도 반기지 않은 다섯 번째 아이와 자신의 일과 삶 사이에서 고뇌하는 여성, 그리고 어렵게 낙태를 결심한 크리스찬 여대생은 수술실에서 낙태 반대 규탄시위를 하는 과격종교단체의 난입으로 눈 앞에서 의사가 죽는 걸 보게 된다. 

나는 이 영화를 중학교 생물 수업시간에 봤다. 나와 친구들은 여중생 시절부터 자궁과 질을 가진 사람이 받을 수 있는 삶의 타격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며 자랐다. 영화 속 여성들은 원치 않던 임신에 대한 대처, 가족과 사회로부터의 낙인과 불명예, 삶과 죽음의 기로에서의 순간을 모두 홀로 맞고 있었다.

십 년 전 프로라이프 의사회가 등장하여 동료 산부인과 의사들을 검찰에 고발하던 시기, 그해 우리나라 여성들은 안전을 위협받는 상황에서도 임신중절 수술을 받으러 어렵게 병원 문을 16만 8738번 두드렸다.1) 가임기 여성으로서 나는 동료들이 병원 안팎에서 어떤 대우를 받으며 어떤 심정으로 차가운 수술대 위에 다리를 벌리고 누워 자신에게 벌어지는 모든 일을 감당했을지를 떠올려 보게 된다. 후속처치를 적절히 받았을지, 부작용이나 후유증은 없었는지, 믿을 만한 사람이 주변에 있었는지, 당시의 기억을 아직 털어놓지 못하고 사는지 걱정스럽다. 혹시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면 자기 자신을 벌 주면서 스스로를 고통 속으로 내몰며 상처를 더욱 키우고 있는 것은 아닌지 묻고 싶다.

모든 임신의 약 4분의 1이 인공유산으로 종결된다는 최신 연구결과가 계속 보고될 만큼 임신중지는 여성의 삶에서 흔한 경험이다.2) 이것은 가톨릭이 주장하는 것처럼 도덕 불감증의 결과이거나 죽음의 문화가 만연해 있기 때문이 아니다. 교회가 주입하려는 비난의 프레임 안에서는 자궁과 질을 갖고 살아가는 삶에 무슨 도움이 필요할지 전혀 고려되지 못하고 있지만, 사실 임신은 여성의 인생에서 언제라도 일어날 수 있는 사건이다.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결코 임신이 되지 않는다면 좋겠으나 그것은 많은 경우 통제 아래에 있지 않다. 100퍼센트의 성공률 피임법도 아직 없고, 성관계 자체가 예측 불가능한 면이 많다. 임신 사실을 확인한 여성은 이 상태를 유지하여 출산할 수 있을지의 여부를 자신이 여태껏 살아온, 그리고 앞으로 살아갈 인생의 거의 전부를 걸고 결정한다. 여러 가지 상황을 다 고려해 보아도 안타깝지만 낳을 수 없는 경우에 대해 비난하고 있다면, 그것은 여성들의 총체적이고 심층적인 숙고의 무게를 감히 상상하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2019년 4월 11일, 천주교 남장협 생명문화전문위원회가 헌재 판결에 깊은 유감을 내용으로 하는 성명서 발표하고 있다. 천주교는 2018년 2월 12일에 서울 명동성당에서 주교회의 가정과생명위원회, 서울대교구 생명위원회 주관으로 열린 미사에 100만인 낙태죄 폐지 반대 서명운동 결과를 봉헌했다. ⓒ김수나 기자

죄의식과 수치심 주는 화법, 가장 취약한 여성의 삶부터 파괴

작년 4월 낙태죄가 헌법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판정한 헌법재판소는 “임신한 여성의 안위가 곧 태아의 안위이며, 이들의 이해관계는 그 방향을 달리하지 않고 일치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3) 여성의 신체적 보호와 사회적 안전이 담보되어야만 태아의 생명보호라는 가치가 실질적 효과를 발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임신한 여성의 안전과 위태로움에 대한 헤아림이 부족했던 교회가 이 뜻을 잘 되새겨 주었으면 좋겠다. 교회는 여성들이 아이를 무사히 낳아 기를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방면에서 국가를 서포트하고, 여성들에게 협조를 청하기 위한 겸손한 태도로의 전환을 반드시 보여 주어야 할 것이다. 여성의 내면을 공격하고 수치심을 주는 기존의 화법으로 임신중지를 계속 막으려 할수록 가장 취약한 계층에 놓인 여성들의 삶부터 파괴된다.

새해 첫날 미사 강론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여성에게 가해지는 모든 형태의 폭력은 하느님에 대한 신성 모독이다. 광고, 수익, 음란물 등의 불경한 제단에서 여성의 몸이 얼마나 자주 희생되고 있는지를 묻고, 여성의 몸은 소비주의에서 벗어나 존중을 받아야 한다.”4)

맞는 말씀이지만 여성의 몸을 향한 성적 공격이 만연한 사회 속에서 교회가 할 수 있는 일은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정결에 우호적인 환경을 강조하며 세상을 향해 꾸짖는 손쉬운 포지션을 취하는 것이 교회의 역할인가? 혹은 나만은 그런 일에 연루되지 않고 깨끗하고 착한 남자/여자로 살아갈 수 있도록 기도하는 이들을 생산하는 것이 목표인가?

개별 여성들이 살아온 삶의 궤적과 사연이 낙인 없이 경청되고 지지받을 수 있는 문화적 공간을 조성하는 것에서부터 교회의 노력이 시작되었으면 좋겠다. 내가 속한 가톨릭동북아평화연구소의 미래세대연구자모임 ‘샬롬회’5)에서는 새롭고 가슴 뛰는 대화와 상상들이 가능하다. 청년 평신도 연구자들과 교회의 미래를 함께 고민하면서 부쩍 희망을 느끼고 있다. 우리의 정서와 생활을 중요하게 구성하는 가톨릭이, 드러내 놓고 말할 수 없는 경험과 고통을 가진 이들을 공격하고 배척하는 이기적 종교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 특히 태아를 앞세워 착한 여자와 나쁜 여자를 구별하게 만드는 세계관의 터전이 아니기를. 

1) 손명세 외(2011), '전국 인공임신중절 변동실태조사', 연세대학교, 보건복지부, 48쪽.
2) https://www.ncbi.nlm.nih.gov/pubmed/27179755 (Sedgh, Gilda, et al. "Abortion incidence between 1990 and 2014: global, regional, and subregional levels and trends." The Lancet 388.10041 (2016): 258-267)
3) 헌법재판소, '[2017헌바127] 형법 제269조 제1항 등 위헌소원 결정문', 2019.04.11, 421쪽. https://ecourt.ccourt.go.kr/coelec/websquare/websquare.html?w2xPath=/ui/coelec/dta/casesrch/EP4100_M01.xml&eventno=2017%ED%97%8C%EB%B0%94127
4) http://www.cpbc.co.kr/CMS/news/view_body.php?cid=770077&path=202001
5) http://www.catholic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0087&fbclid=IwAR3iRJQRqjEpSr5JL6ddzDw_Ik4Tik6URphzRTuzKL-42V5s5QIrf7H6JXs

강석주(카타리나)
서울대 종교학과 졸업, 여성학 협동과정 박사 수료. ‘페미니즘 시대, 실천적 종교연구를 위한 시론’, ‘낙태죄 판결의 의미와 가톨릭의 과제’, ‘아일랜드 국민들의 정의로운 선택’ 등을 썼다. 현재 ‘여성 종교인의 임신중지 체험의 의미와 본질에 대한 현상학적 연구’를 주제로 박사논문 준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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